[스토리테마파크] 피난길의 왕, 구국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왕세자의 조정을 탄핵하다
글쓴이 :
스토리야 16-09-07 22:19
조회 : 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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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6월 13일 저녁에서 14일 아침, 영변까지 피란 온 선조는 분조(分朝)를 결정하였다. 분조의 내용은모든 실권을 세자에게 주어 강계로 보내고 왕은 의주 용만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6월 14일 아침, 왕과 세자는 서로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하였다.
이날 선조는 의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태주로 갔고, 세자는 강계로 가기 위해 운산(雲山)으로 갔다. 제2의 조정, 세자의 분조에는 좌의정 윤두수를 제외한 영의정 최흥원(崔興源)과 우의정 유홍이 모두 배종하였고, 외교 부문을 제외한 핵심 관료들이 세자(광해군)를 따랐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선조가 분조를 결정할 때 자신은 가벼운 행장으로 의주로 들어가 만일의 사태에는 중국으로 망명하겠다는 것이었고, 세자는 조선에 남아 행정과 사법, 그리고 군사와 인사에 이르는 것까지 모두 도맡도록 한 것이었다. 즉 실질적인 국가 운영의 책임은 선조의 행재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분사(分司)된 제2의 조정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자의 제2조정은 왕이 아니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세자의 일행은 갖은 고생 끝에 강원도 이천에 도착하여 7월 11일부터 실질적인 조정의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7월 25일 의주 행재소에서 온 관료로부터 기막힌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세자 일행을 모시던 고위 관료에 대한 탄핵이었다.
당초 주상은 세자 일행을 강계로 가라고 하였다. 아울러 그와 함께 세자에게 편의에 따라 나랏일을 돌보라고도 말하였다. 더욱이 선조는 선왕의 신주를 모두 왕세자 및 왕세자를 모시는 신료들에게 맡겼다.
이 소식을 접한 대신(大臣)들은 깊은 시름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정승 반열의 신료들, 그리고 나이 많은 신료들은 영변을 출발하여 이천에 이르기까지 장마철의 비를 맞으며 산의 협로와 강을 건너면서도 아무 말 없이 그냥 걸어야 했다.
산골짜기 길을 타면서 넘어지고 엎어진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고, 비 내리는 밤에는 비를 맞은 채로 자야 했다. 식량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거니와 마련된 식량조차 비 가릴 곳 없는 풀 섶에서 빗물이 섞인 밥을 먹어야 했다.
세자 또한 말을 탔다고는 하지만 말고삐를 잡을 사람조차 없었고, 특별한 대우라야 자거나 식사를 할 때 임시로 비를 가리는 정도였다. 세자조차 이천으로 오는 여정에 많은 날 노숙을 해야 했다. 그런데 그나마 나랏일을 조금이라도 돌 볼 사정이 되자, 행재소에서 날아든 소식이 탄핵이었다.
세자는 이러한 처사가 부당하다고는 생각하였지만 아버지 선조에 대해 그 어떤 언급도 할 수가 없었다. 세자는 아버지 선조에 대해 자식의 도리, 신하의 도리를 먼저 생각해야 했었다. 아무리 자신에게 전권이 있어도 의주에 있는 선조가 왕이고 아버지였다. 신하들 역시 마음으로 끙끙 앓아야 했다. 실제로 세자가 하였던 일이 왕인 선조가 해야 했던 일이었다. 선조는 죽어도 천자(天子)의 나라에서 죽겠다고 하였다. 그러한 선조의 고집을 신료들은 막을 수가 없었고, 선조는 중국과 접경한 의주로 가 버렸다. 그 때문에 세자와 자신들은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강계로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탄핵’이라니!
이천으로 오는 여정에서 신하들은 강계로 갈 수 없었던 사정을 또 자세히 행재소에 아뢰지 않았던가. 함경도 북쪽의 강계가 설령 안전하다고 할지라도 그곳은 직접 왜적과 대적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강계는 명령이 하달되지 않고 보고가 올라 올 수 없는 곳이다. 국가 회복의 염원을 가슴에 담은 자로서는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더욱이 선조는 세자에게 편의에 따라 처결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종묘의 신주는 왜 세자에게 맡겼는가. 제2조정의 신하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선조가 자신의 존재를 신하들에게 각인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제2조정의 신하들은 석고대죄하며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고 하였다.
행재소에서도 사실은 ‘탄핵’이란 말만 하였지 그들을 실제로 그들을 탄핵한다면 현재의 전황과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나아가 국가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선조는 그들의 어깨에 지워진 짐에 짐을 더 하나 얹는 방식으로 여전히 자신이 조선의 왕임을 말하고 있었다.
출전 : 피난행록(避難行錄)
저자 : 정탁(鄭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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