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 일기
1, 소녀 가장
영자는 남쪽나라 바닷가 근처에서 태어났다.
영자는 엄마와 작은오빠 3식구가 가난하지만 단촐 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엄마는 농사도 없고 남의 품팔이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못해 먹겠다고 하시면서 가까운 M시로 이사를 가자고 하셨다. 영자는 엄마가 하시는 말씀을 듣고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이 불안 하였으나 엄마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영자는 M시로 이사를 왔다.
M시 달동네는 높은 산 밑에 위치하는 곳이 많았지만 영자네 집은 철길 옆 달동네였다. 모두가 영세민들이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자가 이사를 온 동네 옆으로 하루에도 수 십 차례씩 기차는 오고갔다. 기차가 올라가고 내려오는 소리만 듣고도 시계가 없어도 몇 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차가 씩씩거리면서 달릴 때에는 철길로 쫒아가서 애들과 함께 기차를 구경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영자네가 이사를 온 집은 진흙과 돌로 쌓은 집이었다.
방 두 칸 부엌 한 칸짜리였다. 작은방에 작은 광이 하나 있었다. 엄마는 옷 장사를 하신다고 보따리를 이고 아침에 나가시면 저녁 늦게 돌아오셨다. 엄마는 먼 동네로 다니시면서 옷 장사를 하셨다. 저녁이면 힘이 드셔서 끙끙 앓기도 하셨다. 어느 때는 다리가 퉁퉁 부어서 냉수 찜질을 하시고 아침이면 옷 보따리를 이고 나가셨다.
영자는 학교에 갔다 오면 보리밥이지만 맛있게 먹었다.
작은오빠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였다. 오빠와 공부를 하면서 엄마가 장사를 끝내고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초등학교 상급반에 다니는 작은오빠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였다. 반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좋았다. 선생님의 칭찬도 많이 받았다. 작은오빠는 활달한 성격이 아니었지만 정의심은 강하였다. 약자가 어려운 처지를 보면 어린 나이였지만 참지를 못하였다. 영자는 학교성적이 중간 정도에 머물렀다.
엄마는 작은오빠에게 온 정성을 쏟으며 인생을 걸고 있는 것 같으셨다.
시집간 둘째 언니도 집에 오시면 작은오빠를 끔찍이도 사랑하셨다. 큰 언니는 시집을 간 후로는 살기가 힘드시는지 집에 한 번도 오시지 않으셨다. 둘째 언니는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명랑한 편이었다. 살고 있는 동네뿐만 아니라 이웃동네 총각들로부터 인기가 좋았다. 매일 연애편지가 집으로 오지 않은 날이 없었다.
수십 통씩 날라 올 때도 있었다.
둘째 언니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지만 어떻게 한글을 깨우쳤는지 연애편지는 줄줄 읽을 줄 알았다. 영자는 둘째언니가 신기하였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았는데 어떻게 글을 잘 읽지 놀라웠다. 영자는 둘째 언니만 보면 작은오빠만큼 자랑스러웠다. 큰오빠는 서울에서 양복점에서 시다 일을 하고 있었다. 큰오빠 역시 작은오빠에게 자긍심을 가지고 계셨다. 하루는 이웃집아저씨가 집에 놀러 오셨다. 아주머니는 앞으로 걱정이 없겠다고 하셨다. 엄마가 무슨 말이냐고 아저씨를 쳐다보셨다.
아저씨는 웃으면서 작은오빠 이야기를 하셨다.
장군같이 잘 생기고 공부도 잘 하는 둘째아들이 있으니 무엇이 걱정이냐고 하셨다. 엄마는 그 후로는 매일 기분이 좋으신 것 같으셨다. 힘든 보따리장사를 마치고 수 십리 길을 걸어서 집에 오셨다.
힘들어하신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어떤 때는 남이 보기 쑥스러울 정도로 집 마당에서 춤을 덩실덩실 추시고는 하셨다. 작은오빠는 영자를 무던히도 사랑해 주었다. 동네 애들하고 구슬치기를 하여 구슬을 따다가 영자에게 주고 팽이를 만들어서주고 들에 나가서 여치나 잠자리를 잡아다 주고는 하였다. 작은오빠 때문에 영자는 남자애들이 하는 놀이를 곧 잘 하였다.
영자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던지 해주고 싶어서 작은오빠는 안달이었다.
하루는 영자가 동네 애들과 싸워서 힘이 부치자 울고 들어왔다.
작은오빠는 화가 났는지 영자를 때린 애 집에까지 쫒아가서 영자를 때린 애를 실컷 때려주고 나왔다. 작은오빠가 막 집을 나오려는데 그 집 어미한테 들켰다. 오빠도 실컷 얻어맞고 왔다. 애들 싸움이 어른싸움이 된 다나 엄마가 돌아오시자 씩씩거리고 쫒아가셨다. 키도 작고 똥똥한 여자를 머리를 끌고 팽개쳤다. 여자는 병원에 입원을 하고 말았다. 저녁이 되었다. 남편이 없다고 얕보았는지 맞았던 여자 남편과 형제들이 쫒아 와서 큰소리를 쳤다. 엄마는 악을 써가면서 차라리 죽여라는 식이었다.
쫒아온 어른들은 어이가 없어 하셨다.
눈만 굴리며 쳐다만 볼 뿐 말을 하지 못하였다. 엄마와 싸운 남자들은 혀를 내두르고 돌아가고 말았다. 세상에 사람 두들겨 패놓고 저렇게 큰소리친 인간은 처음 보네. 쫒아온 남자들은 돌아가면서 혀를 내둘렀다. 서울에서 영자 큰오빠가 이 소식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차를 몰고 후배 서너 명을 데리고 쫒아 내려왔다.
큰오빠후배들은 자유당시절 깡패로 이름을 날렸던 이정재보다 덩치가 컸다.
누가 우리 집을 함부로 넘봐 이 새끼들 다 죽인다고 큰 소리를 쳤다. 큰오빠는 서울에서 M시까지 고물차를 몰고 한 걸음에 달려 왔다. 큰오빠는 큰 소리치를 치면서 동네를 시위하였다.
동네에서 주먹깨나 쓴다는 청년들도 슬슬 피해버렸다.
복돌이란 놈이 서울을 가더니 돈을 벌어서 자동차도 사고 보디가드도 데리고 다닌다고 동네는 크게 술렁거렸다. 사실 똥차지만 부자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한 시절이었다. 양복집 사장이 조경사가 있을 때 몰고 다니는 것을 큰 오빠가 사정사정 하여 빌려 타고 내려왔다. 농사철이 다가왔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씩 팔려 나갔다.
영자가 이사를 온 M시 변두리는 아직도 농사를 많이 짓고 있었다.
동네는 집지키는 강아지들만 왔다 갔다 할 뿐 마을은 조용 하였다.
날씨치고는 너무나 더웠다. 남순이와 복순이가 영자네 집에 놀러 왔다. 복순이가 셋이서 참외서리를 가자고 꼬드겼다. 영자는 노랗게 익은 꿀참외를 생각을 하면 침이 넘어갔다. 사근사근하고 단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홀딱 했으나 겁이 덜컹 났다.
묵돌이 영감한테 들키면 죽을 것 같았다.
영자는 참외를 먹고 싶어서 환장했다. 없는 살림에 엄마한테 사달라고 할 수 없어서 침만 삼키고 있었던 차였다. 복순이가 와서 영자를 부추기자 묵돌이 영감한테 옛날에 혼났던 일이 생각이 났다.
애들과 산에서 놀다가 집에 오는 중이었다.
군불이라도 때려고 묵돌이 영감네 산에서 나뭇가지 몇 개를 꺾어 왔던 일이 있었다. 묵돌이 영감이 어떻게 알았는지 동네 산마루에서 큰 소리로 영자네 집을 향하여 죽이니 살리니 배상을 열배로 해라. 아니면 순사를 부르겠다고 겁을 주었다. 영자는 하루 종일 겁을 먹고 방을 나가지 못하였다. 순사가 오면 장롱 속으로 숨을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
영자는 혼났던 일을 생각하면 겁이 났다.
참외가 먹고 싶어도 참외서리를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복순이가 뒤에서 따라만 오라고 꼬드기자 영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오늘저녁에 하자고 영자가 가만히 말을 하였다. 복순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비가 와야 돼. 왜! 다시 영자가 물었다.
비가 오면 묵돌이 영감하고 그 무서운 불독 개가 지키지 않거든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영자는 호기심이 나서 물었다. 복순이가 다시 말을 하였다. 영감탱이가 저녁이면 참외밭을 지키려고 덩치 큰 불도그개하고 우리 집 앞을 지나다니는데 비가 오면 안가. 영자는 그래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가 언제 오지 영자가 복순이한테 물었다. 우리할머니가 그러시던데 요즘날씨도 꾸물거리고 어깨가 쑤시는 것을 보니 비가와도 많이 올 것 같다고 하셨어. 다음 날이 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꽤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여름방학이라 복순이와 영자 남순이는 하루하루 셋이서 고무 줄 놀이로 보내고 있었다. 고무줄놀이도 싫증이 나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는 중에 과감히 동네청년들도 하지 못하는 묵돌이 영감네 참외밭에 눈독을 드렸다. 지금 한 창 물이 익어 가고 있는 참외서리를 하기로 하였다. 셋이서 묵돌이 영감과 무서운 불도그 개와의 한 판 승부를 걸게 되었다. 남들은 모두 비닐하우스에서 참외를 심었다.
묵돌이 영감만 비닐에 키운 참외는 맛이 없다고 밭에다가 참외를 심었다.
저녁이 되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번개까지 동반하는 폭우가 쏟아졌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지척을 알아 볼 수 없는 심야 시간이 되었다. 남순이와 복순이가 얼굴에 검정수건을 쓰고 보자기를 들고 나타났다.
보자기는 왜. 영자가 놀라서 물었다.
참외를 따서 들고 와야지 영자 너도 빨리 머리에 수건을 쓰고 보자기를 준비해 영자는 따라만 간다고 하였으나 묵돌이 영감탱이한테 혼난 일이 생각이 나서 겁이 났다. 영감탱이만 생각하면 무서워서 이가 덜덜 떨렸다. 영자는 사근사근하고 꿀맛 같은 참외를 먹고 싶어서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비가 많이 내리자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묵돌이 영감네 참외밭은 마을 뒷산 고개를 넘어 들판에 있었다. 영자가 사는 변두리는 오이 참외 토마토 같은 특작 물 제배를 많이 하였다. 숨을 죽여가면서 얼마를 갔을까 앞에서 불이 뻔쩍 거렸다.
아이고! 영자가 겁을 먹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번갯불이야 복순이가 대답하였다. 묵돌이 영감탱이 참외밭에 가까이 왔으나 비가 많이 와서 참외밭까지 건너 갈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남순이가 앞장을 섰다 내손잡고 따라와 여기는 내가 많이 다녀봐서 잘 알아 남순이가 용기를 내서 말을 하였다. 복순이는 남순이 손을 잡고 영자는 복순이 손을 잡고 밭에 까지 갔다.
참외밭까지 가는데 물이 무릎까지 찼다.
참외밭까지 왔다고 생각을 하니 두려움도 무서움도 없어져 버렸다. 꿀맛 같은 참외만 생각났다 남순이가 가만히 말을 했다. 원두막에 접근을 해봐야 돼. 묵돌이 영감이 원두막에서 잠이라도 자고 있으면 안 되니까.
너희들 여기 갈대밭 속에서 숨어있어라. 내가 가서 살피고 올 테니까. 남순이가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갔다. 남순이는 살금살금 원두막 근처에 까지 가더니 인기척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돌아왔다. 남순이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참외밭은 비가 많이 와서 줄기는 보이지 않았다.
노랗게 읽은 참외들이 어두운 밤에도 확연히 보였다. 누가 뒤질세라 주섬주섬 참외를 따서 담기를 보자기가 모자랄 정도가 되었다. 남순이가 빨리 가자고 재촉하였다. 보따리가 무거웠으나 셋이서 끙끙거리며 물을 헤치고 나왔다.
영자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참외보따리와 함께 물에 휩쓸려 갈 찰나였다. 복순이가 잽싸게 손을 잡아 주어서 무사히 길을 건넜다. 영자는 길을 건너기는 하였으나 복순이가 손을 잡아주지 않았으면 물길에 휩쓸러 갔을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오싹 하였다. 영자는 겁이 덜컥 났으나 오직 맛있는 참외를 빨리 가서 먹는 것을 생각하자 두려움이 사라지고 말았다. 동네 뒷산 밑에 까지 도착 하였다. 참외를 몇 개먹고 가자고 남순이가 말을 하였다. 남순이가 참외를 꺼내어 아삭아삭 씹었다. 영자도 보자기에서 참외를 꺼내었다.
물에 씻을 필요도 없이 내리는 비에 씻어 먹었다.
올 여름은 날씨가 더워서 참외가 달다고 남순이가 말을 하였다. 영자가 물었다. 날씨가 더우면 참외가 더 달아 남순이가 말을 하였다. 우리할머니가 그러시던데 날씨가 더우면 그해 참외 맛이 달고 비가 많이 온다거나 날씨가 서늘하면 참외 맛이 덜 달다고 하셨어. 남순이는 말을 하면서 맛있게 참외를 먹었다.
셋이서 실컷 참외를 먹고 있는데 어디서 개짓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참외를 먹다말고 영자가 정신없이 튀기 시작하였다.
비가 내리고 칠흑같이 어두어도 매일 다니는 길이라서 영자는 넘어지지 않고 잘 뛰었다. 뒤에서 복순이 남순이가 헐레벌떡 뒤따라 쫒아왔다.
먼 거리를 도망 왔다.
개가 묵 돌이 영감네 불도그개가 아니라 건너편 마을 개짓는 소리라는 걸 알고는 영자는 한 숨을 쉬었다. 복순이와 남순이는 참외 몇 개라도 보따리에 남아있었다.
영자는 어찌나 놀랐는지 보따리고 신발이고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하지 엄마가 시장에 가셔서 꽃신을 사다준 게 그저껜데 영자는 걱정하였다. 복순이가 영자를 위로 하였다. 자기 보자기에서 참외 두 개를 꺼내주면서 내일 날이 밝으면 꽃신을 찾으러 가자고 하였다. 영자는 참외 두 개를 치마 속에 감추었다. 맨발로 누가 볼세라 급히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집에 가까워지자 멀리서 동이 터오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였다. 가만히 작은방을 열었다. 방에 들어서자 걸레로 발을 적당히 씻었다. 비에 젖은 몸을 씻을 생각도 않고 복순이가 준 참외부터 먹기 시작하였다. 아삭아삭한 맛이 꿀맛이었다. 이웃집 할머니 말이 생각났다.
밭에서 난 참외를 먹다가 비닐에서 키운 참외는 맛이 없어서 먹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웃집 할머니 말이 맞다고 생각하였다. 작은오빠를 줄 생각으로 참외 한 개를 남겨 놓았다. 영자는 그것마저 먹고 싶어서 비에 젖은 옷을 벗을 생각도 않고 있었다. 대충 머리를 수건으로 씻고 똥구멍 까지 젖은 옷을 벗었다. 빗물을 짜서 뒤 광에 널어두고 잠을 청했다. 영자는 남겨놓은 참외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뒤척이다가 참외를 반으로 썰 둑 칼로 잘라서 베어 물고 씹고 말았다.
반이라도 남겨 두어야지 하면서 또 먹고 보니 조금만 남았다. 이제 작은오빠를 주어야지 하고는 잠이 들었다. 영자는 피곤하였던지 세상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다. 어느새 날이 밝았는지 엄마가 영자를 깨웠다. 비도 그쳤으니 외상값도 받을 겸 장사를 나간다고 하셨다. 오빠하고 밥을 챙겨 먹으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상하다.
방에서 상큼한 참외 냄새가 난다. 영자는 엄마가 하시는 말을 듣고 졸리는 눈이 번쩍 뜨였다. 영자는 덜컹 겁이 났으나 애써 태연한척 말을 하였다.
복순이네 집에 놀러 갔어요.
복순이 할머니가 참외를 주어서 먹었어요.
영자는 얼버무렸지만 엄마는 수상쩍은 눈치를 하시고 집을 나가셨다. 다시 잠을 청하고 곤히 잠들고 있었다. 작은오빠가 변소 간을 갔다 오는지 방문을 열고 영자를 깨웠다. 오빠는 밥 먹자고 하였다.
오빠 먼저 먹어 난 안 먹을 테야.
졸리 운 세상에 무슨 보리밥 생각이 나겠어. 어제 저녁에 쌀밥보다 맛있는 참외를 실컷 먹었다. 오빠 이것 먹어봐 먹다 남은 참외를 작은오빠에게 주었다. 작은오빠는 의외란 듯 무슨 맛있는 참외야 하면서 먹다 남은 참외를 성큼 입에 물고 먹었다.
실컷 자고 일어났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작은오빠는 큰방에서 영어단어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철길 위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묵돌이 영감소리 아니야. 영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가 어제저녁에 참외밭에서 참외를 싹 쓰리 하여 버렸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참외만 따간 게 아니라 참외밭 전부를 망쳐 놓았다고 화가 나서 숨넘어가는 소리로 외쳐대고 있었다. 묵돌이 영감이 외치는 소리가 동네를 울렸다.어떤 놈들이 했는지 꼭 잡고야 말겠다.
아우성 소리가 동네방네에 요란스럽게 들렸다.
영자는 겁이 나서 광문을 열고 들어가 숨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비가 많이 와서 애들 발자국이 어른발자국 같이 크게 보여서 동네 청년들의 장난으로 착각한 게 다행이었다. 영자는 오줌을 누러고 변소 간 가는 것도 겁이 났다. 언제 묵돌이 영감이 쫒아 와서 죽일 것 같아서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전 같으면 복순이와 남순이가 고무줄을 하자고 집으로 쫒아 왔을 것이다.
애들도 묵돌이 영감이 큰소리치는 소리에 집에서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영자는 작은방 광에서 거적을 깔고 옷가지로 덮고 떨리는 몸을 가누고 누워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묵돌이 영감탱이 외치는 소리가 조용해졌다. 복순이와 남순이가 와서 영자야 영자야 가만히 불렀다. 영자는 광에서 숨어 있다가 방문을 가만히 열어 주었다. 들어와 하고 손짓을 하였다. 복순이와 남순이는 방으로 들어 왔다.
남순이와 복순이는 겁이 났는지 신고 있는 신발을 가지고 들어와서 숨겼다.
남순이와 복순이는 두려운 표정으로 서로 처다 보았다.
동네가 발칵 뒤집혔어 복순이가 말을 하였다.
가게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데 순돌이 삼돌이 그놈들 장난이 아니야. 서로 눈치를 하면서 동네어른들이 술을 먹고 있다고 하였다.
영자는 엄마가 사다준 꽃신이 걱정이었다.
꽃신을 찾으러 가야 하는데 엄마한테 혼나면 어떻게 하지 영자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조용해지면 한 번 우리 같이 가서 찾자 남순이가 위로 하여 주었다. 어둑해 저서야 엄마가 장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셨다. 어떤 놈들이 무서운 묵돌이 영감 집 참외밭을 싹 쓰리 하였을까. 엄마는 중얼거리셨다. 엄마가 변소 간을 간 사이에 복순이와 남순이가 가만히 집을 간다고 갔다.
변소 간에서 엄마가 나오시면서 말을 하셨다.
영자야. 너 왜! 새로 사다준 꽃신 안 신고 헌신을 신고 있어. 엄마가 의심스럽게 물으셨다. 영자는 겁이 났으나 순간 재치 있게 대답하였다. 꽃신이 아까워서 추석 명절 날 신으려고 닦아서 광에다가 올려놓았어요. 영자는 잽싸게 얼버무리고 말았다. 엄마가 눈치를 챌까보아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영자야. 너 왜 밥을 안 해 놓았어. 엄마가 배가 고프신지 화를 내면서 말을 하셨다. 배가 아파서 들어 누워 있다가 보니까 못했어요. 엄마가 참외서리를 하는 것에 대하여 눈치를 챌까봐서 가슴이 조여 왔다. 엄마가 밥을 하셔서 작은오빠와 셋이서 밥상에 앉아서 보리밥을 먹었다.
작은오빠가 문득 물었다. 아침에 어디서 먹다가 남은 참외를 주었어. 영자는 밥을 숟가락으로 입에 넣다 말고 겁이 났다. 영자는 급히 말을 하였다. 시장에 가서 남이 버린 것 주어왔다고 둘러 대었다.
오빠는 시장에서 주어온 것치고는 싱싱하고 맛있더라고 하였다.
영자는 묵돌이 영감네 참외밭 참외서리를 한 것을 눈치를 챌까봐서 엄마 눈치를 살폈다.
영자는 밥을 떠서 입으로 가져가면서 턱이 덜덜 떨렸다.
보리밥을 흘리고 말았다. 엄마는 무슨 밥을 그렇게 먹느냐고 하시면서 밥을 주어 먹으라고 화를 내셨다. 영자는 서둘러 상 바닥에 떨어진 보리밥을 주어서 먹었다. 엄마는 한참이나 영자를 쳐다보더니 말을 하셨다. 다시는 시장에 가서 더러운 것 주어오지 말라고 하셨다. 엄마가 눈치 채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알았어요.
대답을 하고는 엄마 눈치를 다시 보았다.
밥을 먹었지만 두려워서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알 수 없었다. 영자는 상을 들고 나가서 설거지를 하였다. 전보다 깨끗이 하였다.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오시면서 말을 하셨다. 오늘은 웬일이냐.
부엌이 전보다 깨끗하다.
영자를 보고 오늘은 다른 날같이 않다고 하셨다. 엄마를 안심을 시킨 것에 속으로 안도하였으나 여전히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다음 날이 되었다. 동네는 묵돌이 영감 감시망에 동네 청년들은 물론이고 이웃동네 청년들까지 숨을 죽이고 꼼짝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 꽃신을 찾으러 가지 영자는 꽃신 생각만 하고 있었다.
묵돌이 영감과 순사들이 동네를 왔다 갔다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무서운 불도그 개가 긴 혀 바닥을 내밀고 도둑놈의 냄새를 맡은 냥 킁킁거리는 모습이 보통이 아니었다.
영자는 불도그 개가 무서웠다.
집으로 도망을 와서 방문을 잠그자마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동네가 조용해졌다. 영자는 남순이를 찾아 갔다. 꽃신을 찾으러 가자고 하였다. 남순이는 오늘은 집에서 엄마가 일을 하라고 해서 나갈 수가 없다고 하였다. 영자는 복순이한테 갔으나 복순이도 외할머니 댁에 가고 없었다. 혼자 신발을 찾으러 뒷산으로 갔다.
참외를 먹던 산 밑에까지 왔다.
버러진 참외들만 썩어서 냄새가 나고 신발을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영자는 온종일 꽃신을 찾아 헤매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해질녘에야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서둘러 밥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집에 들어서면서 말을 하셨다. 철길 건너에서 방자를 오면서 만났는데 방자가 영자 너에게 사다준 꽃신과 같은 것을 신고 있더라고 하셨다.
영자는 엄마가 하시는 말을 듣고 눈이 뒤집혔다.
밥을 하다 말고 쫒아가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영자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방자 그 애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가 키웠다는데 어디서 꽃신을 샀지. 방자네 할머니가 뒷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오시다가 내 신발을 주어온 것이 분명해. 어떻게 하지. 방자는 키도 크고 덩치가 컸다. 방자는 상급생들도 두려워하였다.
영자는 속으로 걱정하였다. 밥을 하고 상을 차려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생각하였다.
내일 방자네 집을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꽃신 때문에 영자는 밤잠을 설쳤다. 다음 날 일찍 방자네 집을 찾아가서 방자야 하고 불렀다. 방자가 씩씩거리면서 나왔다. 꽃신을 신었는데 신발이 작아서 발이 불룩하게 보였다.
방자가 자기 집을 찾아온 영자를 보자 의외란 듯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영자 네가 우리 집에 오다니 무슨 일이야.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영자는 용기를 내서 말을 하였다. 너 꽃신 어디서 났어. 저번에 비온 날 뒷산에서 신발을 잊어버렸거든 내 꽃신 같아서 그래. 방자는 눈을 크게 떴다. 그렇지 않아도 할머니가 나무를 하려 뒷산에 갔다 오시면서 주어다준 신발이었다. 작아서 신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다. 영자가 자기 신발이라고 하자 불쾌 하였으나 방자는 그래 하고 벗어주어 버렸다.
방자야.
고맙다. 영자는 꽃신을 찾는 것이 신이 났다.
집에 와서 예쁘게 꽃신을 씻고 햇빛에 말렸다. 그동안 방자가 꽃신을 신어서 신발이 늘어나 있었다. 영자가 꽃신을 신자 발이 헐렁하였다. 추석 한가위가 다가왔다. 가난한 달동네였으나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다. 돼지를 잡아서 동네 사람들이 서로 나누어 가지고 가고 있었다. 용순이 아빠가 돼지고기를 사가지고 용순이 손을 잡고 가고 있었다. 앞에서 방출이 엄마가 오면서 무엇을 하려고 고기를 사가지고 가느냐고 하셨다.
용순이 아빠가 말을 하셨다.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어 놓았다가 추석 때 조상님께 올리겠다고 하셨다. 방출이 엄마는 어디서 돼지를 잡았느냐고 다시 물으셨다. 용순이 아빠는 철길 건너 마을이라고 하셨다. 방출이 엄마도 미리 가서 돼지고기를 사놔야겠다고 하시면서 방출아! 이리 오너라 방출이를 부르더니 길 건너 마을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영자는 지금까지 돼지고기를 먹어보지 않아서 그 맛을 몰랐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 서러웠다.
사진 영정만이 큰방에 덩그렁 걸려 있었다. 아빠가 저렇게 생기셨구나. 생각만 하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빠가 보고 싶었으나 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영자는 오늘은 왜 이렇게 아빠가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용순이가 자기 아빠의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이 부러울 수가 없었다. 작은오빠는 학교에서 장학생이라서 공부를 잘 하였다.
장학생이 아니면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작은 오빠는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오빠는 영어와 수학을 잘 하였다. 집에는 공부를 하는 책상이 없었다. 오빠는 뒷받침이 없는 미싱 의자에 앉아서 미싱을 책상삼아 공부를 하였고 영자는 밥상위에서 공부를 하였다. 영자는 공부에 별로 취미가 없어서 책만 보면 하품이 나오고 졸음이 왔다. 엄마가 저녁에 오시면서 생선을 사가지고 오셨다.
몇 마리는 국을 끓였다.
나머지는 추석에 제사상에 올리기 위하여 빨래 줄에 매달아 놓았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빨래 줄에 매달아 놓은 생선을 찾았다. 쥐가 물어갔는지 누가 훔쳐갔는지 흔적이 없었다. 이일을 어쩌나 엄마는 화를 내시면서 찾으셨다. 엄마는 정신없이 생선을 찾느라고 이리저리 쫒아 다니셨다. 엄마는 한참 있다가 뒷집 텃밭에서 생선뼈만 조금 남은 생선 찌꺼기를 발견하고 도둑고양이 짓이라고 혀를 차셨다.
엄마는 고양이만 보면 악을 쓰고 고양이를 잡는 다고 쫒아 다니셨다.
허탕만 치기 일쑤였다. 영자가 6학년이 되자 엄마는 영자 중학교 진학문제로 고민을 하시는 것 같으셨다. 작은오빠는 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녀서 학비 들어가는 것이 없어서 걱정이 없었다. 영자는 공부를 못하니 중학교를 보내기가 벅찬 모양이셨다. 서울에 있는 큰오빠에게 작은오빠가 편지를 써서 상의를 하였다.
큰오빠는 집안이 가난하여 초등학교 3학년을 다니다가 그만두셨다.
큰오빠는 못 배운 게 한이 되셨다. 큰 오빠의 답신이 왔다. 일을 해서 조금씩 도와줄 테니 여자도 중학교 정도는 나와야 한다면서 영자를 중학교를 보내라고 하셨다. 큰 오빠의 편지를 보고는 영자는 신이 났다. 밥을 안 먹어도 살 것 같았다. 예쁜 교복을 입고 중학교에 가는 것을 생각하니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꼈다. 영자는 빨리 중학생이 되는 게 꿈이었다. 작은오빠가 중학교에 가면 영어를 배운다고 알파벳 A B C를 영자에게 가르쳐 주었다.
다른 공부 같으며 졸리고 하품이 나왔다.
영자는 신이 나서 알파벳을 쓰고 외우고 하였다. 오빠가 중학교 일학년 때 배운 굿 모닝 굿 모닝 영어책을 찾아서 가르쳐 주면서 영어사전 찾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중1 수학책도 꺼내서 가르쳐 주었다. 남순이와 복순이가 집에 놀러 왔다. 영자가 굿 모닝 굿 모닝 영어책을 읽자 복순이와 남순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자 너 중학교에 가니 부러워서 물었다. 그래 서울에 계시는 큰오빠가 중학교를 보내 준다고 하셨어.
영자가 자랑스럽게 대답하였다.
너희들은 집이 부자라서 중학교를 보내줄 게 아니야. 영자가 물었다. 남순이와 복순이는 아직 우리 엄마 아빠는 대답이 없어. 복순이와 남순이는 영자를 처다 보고 부러운 눈빛을 하였다. 영어책을 들어다 보면서 복순이가 물었다. 이 꼬불꼬불한 글씨가 영어란 것이야. 영자는 자랑스럽게 응! 하며 대답하였다.
남순이도 호기심이 나서 물었다.
이걸 어떻게 읽어 누가 가르쳐 주었어. 영자는 작은오빠가 가르쳐 주었다고 말을 하였다. 복순이와 남순이는 오빠가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영자. 너 산수는 잘 못하잖아. 이렇게 어려운 산수책도 하는 거야. 이번에는 복순이가 의아스러운 얼굴을 하고 물었다. 복순이 남순이가 물으면 물을수록 영자는 신이 나서 대답하였다. 작은오빠가 수학도 가르쳐 주고 있어 수학이라고. 남순이가 놀라는 표정을 하였다. 영자는 자랑스럽게 말을 하였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산수가 아니고 수학을 배운데 영자가 말을 하였다.
남순이와 복순이는 처음 듣는 소리라서 그래하고 고개를 끄떡거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남순이와 복순이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자기들도 중학교를 보내 준다고 엄마 아빠가 이야기를 하셨다면서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영자는 신이 났다. 굿 모닝 굿 모닝 하였다. 복순이와 남순이는 따라서 영자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아이 엠 어 걸 이것은 무슨 말이야 복순이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나는 소녀야. 그런 말이야. 소녀 그래 여자아이들을 소녀 걸이라고 한다고 작은오빠가 가르쳐 주었어.
남자 아이들을 보이 소년이라고 가르쳐 주었어.
영자 복순이 남순이 셋이는 학교만 갔다가 오면 고무줄놀이는 팽개쳐 버렸다. 영어 공부를 한다고 동네 밖까지 들렸다.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하게 되었다. 동네에 사는 4학년 5학년 애들도 영자네 집에 놀러 와서 영자와 복순이 남순이가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부러워하였다.
방자가 근처를 지나가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자 밖에 서서 듣고 있었다.
들어와 영자가 말을 하였다. 방자는 머뭇거리더니 들어오면서 말을 하였다.
너희들 중학교에 가니 부러운 듯이 물었다.
그래. 남순이가 대답을 하였다. 방자는 말을 하지 못하였다.
복순이가 방자 너는 하고 물었다.
아니야. 난 중학교를 못가 엄마도 안 계시고 아빠가 그러시는데 집에서 살림을 해야 한다고 하셨어. 너희 할머니가 계시지 않니 영자가 말을 하였다. 아니야. 할머니는 너무 나이가 드셔서 집안일은 내가 앞으로 해야 한다고 아버지가 말씀을 하셨다고 하였다. 영어책을 뒤적이면서 부러워하였다. 영자는 좋은 중학교를 갈 실력이 못 되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중학교를 가게 되었다.
남녀 공학이었다.
영자가 가게 될 중학은 공부를 별로 하지 않는 애들만 모인 학교였다. 영자는 학교는 나빠도 중학교를 간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시내교복점에 진열해 놓은 옷을 보면 교복이 너무 예쁘게 보였다. 영자는 집에 와서 생각하였다. 저렇게 비싼 옷을 엄마가 어떻게 사주지 걱정하였다.
영자는 집안청소도 열심히 하고 중학교 가는 것만 생각하였다.
복순이와 남순이는 남녀 공학이 아닌 여학생들만 다니는 중학교를 같이 가게 되었다. 복순이와 남순이가 가게 될 중학교도 영자가 가게 될 학교같이 공부를 하지 않는 애들이 모인 학교였다. 일요일 날이었다. 영자는 복순이 남순이가 시내 구경을 가자고 해서 시내 구경을 갔다. 시내구경을 하고 돌아오면서 멀리서 혼자 가는 남복이를 영자는 보았다. 저 새끼 하면서 영자는 깜짝 놀랐다 남복이 하면 생각도 하기 싫었다. 남복이는 영춘이와 친구였으나 영춘이는 착하고 남복이는 나쁜 짓만 골라 하였다. M시로 이사를 오기 전 일이었다.
옛날 바닷가에서 살 때였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던 기억이 났다. 병우네 담벼락 옆에 곡식 낱 가리를 모아 놓은 틈바구니에서였다. 저 새끼가 나를 눕혀 놓고 얼굴에 뽀뽀를 하였어. 처음에는 장난인줄 알고 영자는 웃기만 하였다. 영자가 집에 오자 저 세끼가 집에까지 쫒아 와서 나를 눕혀 놓고 뽀뽀를 해댔어. 지금 생각을 하면 남복이가 자기에게 성추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자 기분이 나빴다. 영자는 증오심이 떠올랐다.
농사철이라 집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누구라도 보았으면 어린 나이에 큰일 날 일이었다.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만 해도 영자는 장난을 하는 줄 알고 웃기만 하였다.
나중에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 나이지만 약간 흥분이 된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서 화가 났다. 영자는 그때를 생각을 하면 남복이가 미울 수가 없었다. 저 세끼가 우리가 사는 동네 철길 너머 마을로 이사를 왔다고 들었다. 그쪽 동네는 가지 않기로 하였다.
영자가 중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집에 오자 엄마가 일찍 들어오셔서 집에 계셨다.
엄마는 예쁜 교복을 입은 영자를 보시고 예쁘다. 예쁘다하셨다. 영자는 교복을 벗어서 단정히 걸어놓고 집에서 입은 헌 옷으로 갈아입었다. 복순이네 집에 놀러갔다. 복순이도 학교를 갔다가 집에 막 도착해 있었다. 복순이가 교복을 입는 모습을 보고 너의 교복은 이렇게 생겼구나. 영자가 말을 하자 복순이가 말을 하였다.
영자 너. 교복을 왜 안 입었어하고 물었다.
집에다 걸어 놓고 왔어. 영자가 말을 하였다. 복순이 하고 놀고 있는데 남순이도 집에 가면서 잠깐 들렸다. 셋이서 놀다가 보니 또 고무줄 타령 이었다. 복순이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너희들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 고무줄 같은 것 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셋이는 그 후로는 고무줄놀이를 다시는 하지 않았다. 고무줄놀이를 하고 싶어도 초등학생들이 보면 창피하여 자연히 그만 두게 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영자는 일요일 집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앞집 똥퍼아저씨가 씩씩거리며 영자네 집을 찾아왔다.
비가 오는 날에는 똥을 푸는 사람이 없어서 비가 오는 날에는 똥퍼아저씨는 휴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주머니가 돈을 벌어 오라고 아침부터 달달 볶았다. 공처가 아저씨가 영자네 집으로 피신을 온 모양이었다. 아주머니는 아침부터 껌을 짝짝 씹으면서 다리를 쩍 벌리고 빨래를 하고 있었다. 노란팬티가 훤히 보였다. 돈도 못 버는 놈이니 나가서 죽어라. 되질 놈 살릴 놈 누가 듣지 않아도 혼자 시부렁거렸다. 아주머니는 빨래 방망이를 탁탁 치면서 빨래 감에다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작은오빠가 공부를 하다 말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똥퍼아저씨가 잠이 들었는지 꼼짝을 안하였다.
괜히 똥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영자는 빨리 똥퍼아저씨가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이 돼서야 똥퍼아저씨가 갔다.
영자는 방을 열고 청소부터 하기 시작하였다.
후- 냄새 방안에서 똥냄새가 난다.
아이쿠. 여기서도 나고 저기서도 나고 영자는 정신없이 청소를 하였다. 작은오빠가 철길 옆 동네에서 놀다가오는지 웬 저녁에 청소냐고 물었다. 똥 냄새 안나 똥냄새 오빠는 무슨 소리냐 하며 눈만 껌벅거렸다. 앞집 똥퍼아저씨가 방에서 자고 갔어. 똥냄새가 난다 말이야.
영자는 짜증을 내면서 청소를 하기 시작하였다.
똥퍼아저씨가 지나가면 똥냄새가 나니 하면서 코를 틀어막았다. 똥퍼아저씨를 흉을 보고는 하였다. 동네사람들은 똥퍼아저씨를 흉을 보아도 똥퍼 아저씨를 무시를 못하였다. 변소 간이 차서 똥푸는 일이 생기면 며칠 전부터 가서 이야기를 해서 순서를 기다렸다. 사정을 해서 똥을 퍼야 하였다. 영자가 사춘기가 되자 장난기도 없어지고 남학생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영자는 얼굴 예뻤다.
오빠가 가르쳐준 덕분에 영어와 수학은 그런대로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인기가 학교에서 제일 좋았다. 중3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중3부터는 영어와 수학이 달라졌다. 영자는 공부를 하는데 싫증을 내고 말았다. 영어는 그런대로 취미가 있어서 따라 갈 수가 있었다. 수학은 하루 종일 끙끙거려도 알 수가 없었다. 작은오빠는 고2가 되자 지방에서 합격하지 못한 서울 A대를 목표로 코피를 쏟으며 공부만 하였다. 오빠가 다니는 지방에서는 한 번도 합격해 보지 못한 A대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 영자는 은근히 겁이 났다.
오빠가 보고 있는 영어책이고 수학책을 보면 두려웠다.
책이 두꺼운데도 오빠는 깨알 같은 작은 글씨를 써가면서 공부를 하였다. 영자는 작은오빠가 자랑스러웠다. 엄마는 영자가 고등학교를 진학할 나이가 되자 또 다시 고민을 하시는 모양이셨다. 영세민 촌이지만 웬만하면 여자애들도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의 보내고 있는 실정이었다. 엄마는 영자를 고등학교에 보낼 여력이 없었다.
영자를 고등학교에 보내자니 돈이 없었다.
보내지 않자니 안 되었다. 엄마는 고민하시는 모양이 역역하셨다. 보따리 장사도 되지 않아서 이래저래 걱정하셨다. 엄마가 한 마디 하셨다. 너 고등학교 보내줄 테니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는 가지 말라고 하셨다. 애들이 공부는 안 하고 연애 짓만 하고 다니는 학교는 가지 말라고 하시면서 M시에서 제일 좋다는 M여고 시험을 보라고 하셨다. 공부는 안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학교는 가지 말라고 하셨다.
영자는 의외라고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하고 고민에 빠졌다.
작은오빠 실력 같으면 M시에서 어느 학교도 갈 수 있었다.
영자는 M여고를 합격할 자신이 없었다.
영자는 서둘러 공부를 한다고 책을 잡았지만 기초가 부족하였다. 첫째 수학부터 알 수가 없었다. 엄마 말씀이 고마워서 학교만 갔다 오면 공부를 한다고 하나 공부가 되지 않았다.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수학은 작은오빠에게 물어 보고 싶었으나 오빠가 너무 바쁘게 공부를 하고 있어서 물어 볼 수 없었다.
영자는 매일 혼자 끙끙거리며 책을 보았다.
벌써 원서를 쓰는 날짜가 다가 왔다. 교무실을 찾아가서 M여고에 원서를 써 달라고 담임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영자를 한참이나 쳐다보셨다.
떨어진다고 가지 말라고 하셨다. 영자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 진학하라고 권하셨다. 영자는 울컥 화가 났다 떨어져도 좋으니 원서를 써달라고 보채었다.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원서를 써주셨으나 불안 하셨던지 고개를 갸우뚱 하셨다. 휴- 영자는 한숨을 쉬었다. 영자는 다니고 있는 학교에 정나미가 떨어져 있었다.
남학생들은 중3학년만 되면 공부는 안하였다.
나팔바지에다가 모자는 쓰지 않고 손에 들고 다녔다. 아니면 모자를 책가방속에 넣고 다녔다. 고등학생들한테 들키면 얻어터지고 꼴불견이 말이 아니었다.
복순이와 남순이가 놀러 왔다.
자기들은 자기들이 다니는 여고를 가기로 하였다고 하였다. 복순이가 영자에게 말을 하였다. 영자 너. M시에서 제일 좋다는 M여고에 원서를 냈다면서 의외란 듯이 물었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복순이와 남순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였다. 엄마가 시험을 보라고 해서 어쩔 수없이 원서를 냈어. 영자는 자신 없는 말을 하였으나 저녁이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공부를 안 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어느덧 시험 보는 날짜가 다가왔다. 영자는 내심 걱정을 하면서 M여고에 가서 시험을 보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지를 받아 보았다.
시험지에는 모르는 것만 있었다.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주관식은 손도 못 대보고 객관식만 연필을 굴러서 번호를 대충 적어놓고 시험이 끝났다 집에 오자 작은오빠가 시험 잘 봤느냐고 웃었다.
영자는 오빠 보기가 부끄러워서 그냥 봤어.
얼버무리고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밥 먹고 싶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부터 청하고 말았다. 합격자 발표 날이 다가왔다. 영자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오후 늦게야 학교를 가보았다. 학교는 썰렁하니 아무도 없었다. 합격자 발표를 붙여 놓은 종이벽보만 바람에 나부기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이미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고 집으로 간 모양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을 본 수험번호를 찾았다.
영자 이름도 수험번호도 없었다.
다시 한 번 확인을 하였으나 아무리 찾아봐도 영자의 이름이 없었다. 두려움과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엄마고생한 일과 서울에서 힘들게 양복점 시다 일을 하시면서 돈을 보내준 큰오빠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영자는 재빨리 학교 교문을 나왔다. 뒷골목으로 빠져나갔다. 밤에 비가 내려서 그러는지 날씨는 꽤 쌀쌀하였다. 영자는 마음이초조하고 답답하였다.
이일을 어쩌지 슬픔이 엄습해 왔다.
엄마가 저녁에 오시면 무어라 말을 해야 하나 걱정이 되었다. 집에 들어 갈수가 없었다. 복순이와 남순이를 찾아 갔다. 자기들 고등학교는 학생들 지원이 적었다. 미달이라서 원서를 낸 아이들은 모두가 합격했다고 하였다. 영자는 생각하였다. 중학교 때 우리 학교나 너희 학교 그때도 미달이었는데 고등학교도 똑 같구나. 복순이가 영자 너 M여고 합격자 발표 오늘 아니야. 발표를 보고 왔어. 복순이가 영자를 처다 보면서 호기심어린 모습으로 물었다.
아니야. 내일 가보려고 해.
영자는 대답을 하였으나 창피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저녁 늦게까지 영자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와 작은오빠가 영자를 찾아 나섰다. 영자는 이미 복순이네 집을 나와서 방자네 집에서 놀고 있었다. 방자는 이미 처녀같이 키도 크고 덩치도 커졌다 혼자 집안 살림에다 아버지를 도와서 농사일 까지 하고 있었다.
영자는 방자가 대견스러웠다.
날이 저물어도 영자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엄마와 작은오빠는 날이 어두워져도 영자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자가 어디를 가서 날이 저물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걱정하셨다.
엄마와 작은오빠가 복순이네 남순이네 집을 가서 영자를 찾았다.
남순이와 복순이는 영자와 오후에 헤어지고 모른다고 하였다.
엄마와 오빠는 이곳저곳 영자가 놀만한 장소와 집을 찾아다녔다.
영자 이년이 어디 가서 놀기에 저녁 먹을 생각을 않고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아 걱정을 하셨다. 엄마는 일단 집에 가서 기다려 보기로 하자고 하셨다. 작은오빠를 재촉하여 집으로 향하셨다.
엄마는 피곤 하셨던지 영자를 기다리시다가 지쳐서 잠이 드셨다.
오빠는 공부를 한다고 하나 밤늦도록 영자가 들어오지 않자 다시 찾아 나섰다. 다 큰 애가 밤늦도록 들어오지 않고 어디서 무엇 을 하는 거야. 오빠는 영자를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다시 찾아 다녔다. 오빠가 이집 저집 기웃거리자 동네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하였다. 온 동네 개들이 따라서 짖기 시작하였다. 묵돌이 영감탱이 덩치 큰 불도그개가 제일 크게 짖어댔다. 영자는 방자네 집에서 방자와 놀다가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밤도 깊었는데 동네 개들이 이집 저집에서 짖기 시작하였다.
영자는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다.
방자는 낮에 농사일이 힘들었던지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영자는 가만히 방을 나와서 집으로 갔다. 영자가 집에 오자 작은오빠도 공부를 하다 지쳤는지 불이 꺼져 있었다. 집안이 조용하였다 작은 방을 가만히 열고 들어가서 잠을 청하였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떨어졌으니 앞으로 일이 캄캄하였다.
후기를 모집하는 학교도 없었다.
엄마는 필시 공장에 가서 기술이나 배우라고 할 텐데 한심하였다. 요즈음은 불경기라서 공장일도 없어서 공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다고 하였다.
공장에도 못 들어가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버스 안내양 밖에 없는데 아이쿠, 오라 잇! 버스 출발합니다. 어떻게 그 짓을 해. 그러다가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생들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영자는 한숨이 나왔다.
아침에 엄마가 영자를 깨웠다.
너 어젯밤에 어디를 갔기에 늦게 들어 와 자는 거야. 화를 내셨다.
방자네 집에서 놀다가 잠이 들어서 늦게 들어 왔다고 하였다.
방자네는 농사가 많아도 방자가 영자하고 동갑인데도 살림을 잘한다고 칭찬을 하셨다. 방자가 살림에다가 농사일 하지 동생들 뒷바라지까지 그 애는 다 컸더라. 시집을 가도 되겠다고 혼자 중얼거리셨다. 시집이라는 말에 영자는 어린 나이에 당황하였다.
시집을 가면 누가 살림을 해요.
영자가 놀라서 말을 하였다. 동생송자도 커서 걱정이 없겠다고 엄마는 말을 하셨다. 방자는 나이가 아직 어리지 않아요. 영자가 말대꾸를 하였다. 방자네도 이제 큰 걱정이 없겠더라고 엄마는 말을 하시고는 방을 나가버리셨다. 오늘 저녁에는 밀가루를 좀 사가지고 올 테니까 국수 좀 해먹자고 하셨다. 작은오빠도 학교를 간다고 갔다. 영자는 일어났다.
어제 저녁을 굶어서 배가 고팠다.
부엌에 들어가서 보리밥을 양푼에 넣고 김치를 비벼서 허겁지겁 먹었다. 밥을 먹고 나자 살 것 같았다.
언제까지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진 것을 감추고 살 수 없는 일이었다.
동네에서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졌다고 소문이 나면 어떻게 하지 가슴이 조여 왔다.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진 것이 엄마한테 혼난 것보다 동네사람들이 알면 더 부끄러워서 못살 것 같았다. 멀리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도망도 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영자는 다시 작은방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고 말았다.
오후가 되서야 작은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엄마도 오늘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일찍 집에 들어오셨다. 엄마는 집에 들어 오시자마자 말을 하셨다. 복순이 하고 남순이는 고등학교에 합격을 하였다는데 영자 너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으셨다. 영자가 풀이 죽어서 말이 없었다.
작은오빠가 옆에서 한 마디 하였다.
너무 센 곳을 지원해 가지고 떨어졌나 봐요. 영자는 오빠가 미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할 말이 없으신지 아무 말도 안 하시고 밥이나 먹자고 상을 차리셨다.
영자는 할 말을 못하고 있었다. 작은오빠가 말을 하였다. M여고는 학급에서 1-2등을 해야 붙는다는데 중간정도 실력을 가지고 지원 했으니 당연히 떨어지지 하였다. 엄마는 말을 하시지 않고 밥이나 먹자고만 하셨다. 영자는 애가 탔다. 차라리 죽일 년 살릴 년 하시면 좋으려만 엄마는 영자가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진 것을 아시고도 가만히 계시니 영자는 속으로 애가 탔다.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뒤에 아는 사실이었다.
엄마는 영자를 중학교는 그런대로 보낼 수 있었다. 고등학교는 보낼 돈이 없으셨다. 일부러 어려운 학교를 시험 보게 하여 낙방을 시켰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부모책임을 영자에게 떠밀어 버렸던 것이다. 공부나 잘해 가지고 작은오빠같이 장학생으로 다니면 모를까 등록금에다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시집간 둘째언니가 집에 일이 있어서 오셔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는 방에서 언니와 옷을 다리면서 말을 하셨다. 언니한테 가만히 이야기를 하는 것을 몰래 들었다. 영자는 이런 소리를 들었을 때는 화도 나고 엄마가 밉고 서운하였다. 엄마가 너무 야속하였다.
집안이 가난하여 중학교라도 보내준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작은오빠는 오직 서울에 있는 A대를 목표로 밤을 지세우면서 공부에만 전념하였다. 오빠가 고등학교 2학년말에 공부를 하다 말고 뒤받침도 없는 미싱의자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오빠에게 무서운 허리 병이 온 것이다. 허리 병은 약도 없고 치료하기가 어려운 병 이었다. 공부를 하면서 영양 섭취를 제대로 해야 하는데 잘 먹지 못하고 무리하게 공부를 한 결과였다. 엄마는 장사를 한다고 밖으로 돌아다니셨다.
작은오빠가 먹는 것은 매일 꽁보리밥에다가 반찬은 김치가 전부였다.
밤을 세워가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 너무 무리를 한 모양이었다. 먹은 것이 없으니 어쩌면 작은오빠의 병은 예고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오빠의 병은 쉽게 낫지 않았다 변소 간도 겨우겨우 허리를 끌면서 다녔다. 엄마는 걱정이 되어서 일도 나가시지 않고 오빠 병간호에만 매달리셨다. 영자는 애가 탔다. 집안의 희망이요 대들보 같은 작은오빠가 병이 났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영자는 산으로 들로 쫒아 다니면서 허리에 좋다는 약은 모조리 캐어 와서 약을 해서 드렸다.
쉽게 오빠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오빠는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엄마와 영자를 위로 하고는 하였다.
학교에서도 결석이 하루 이틀이지 3개월을 아프다고 결석을 하였다. 담임선생님이 걱정을 하시면서 고민을 하신 모양 이셨다. 담임선생님은 주위의 학생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작은오빠의 병이 크다는 것을 알고 안타까워 하셨다. 영자는 엄마가 장사를 나가시지 못하셨다. 가정을 위해서는 무슨 일 이라도 해야겠다며 발 벗고 나섰다. 공장을 이곳저곳 쫒아 다녀 보았다.
나이가 어려서 힘든 일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가는 곳마다 퇴자를 맞았다.
버스안내양 모집 중이라고 버스 뒤 창문에 안내문을 붙이고 질주를 하는 것을 보았다. 버스안내양들은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렸다. 안내양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 영자는 부끄러움이고 뭐고 사랑하는 작은오빠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동창생들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마음에 걸렸다. 영자는 더 이상 집에서 놀 수가 없었다.
운수회사를 찾아가서 버스안내원을 한 번 해 보겠다고 하였다.
뚱뚱하게 생긴 회사 부장이라는 사람이 이력서를 보더니 학력도 있고 얼굴이 예뻐서 버스안내양 하기가 아깝다고 하셨다. 내일부터 당장 나오라고 하셨다. 버스안내양은 초등학교도 못 나온 여성들이 많이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다음 날 일찍 운수회사로 나갔다. 운전기사아저씨를 소개를 해주시면서 시내를 경유하여 예비군 훈련장을 오고가는 변두리 노선을 안내를 맡았다.
영자는 주위에서 하는 말을 간접적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버스안내양은 월급은 적어도 부수입이 있다고는 들었으나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영자는 빨리 타세요. 소리도 못하였다. 버스표를 받는 것도 부끄러워서 표표 소리만 하였다. 이튼 날이 되자 운전기사 아저씨가 말을 하셨다. 출발! 빨리빨리 타세요하고 손님들을 유도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버스가 제 시간에 도착 할 수가 없다고 훈계를 하셨다.
영자는 다음 날 그 다음 날에도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무슨 아가씨가 이렇게 순하느냐고 짜증을 내셨다. 기사아저씨는 말을 크게 하면서 버스출발 신호를 하라고 독촉을 하셨다. 영자는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말이 떨어지지 않는 걸 어떡하란 말이야. 일주일이 지났다. 영자도 제법 손님들을 다루게 되었다. 오라-잇! 버스 출발 합니다. 버스를 탕탕 치면서 빨리빨리 타세요. 신나게 말을 하였다.
차 떠납니다.
말이 술술 나왔다.
운전기사아저씨는 기분이 좋아하셨다. 처음부터 똑똑하게 생겼더니 잘 한다고 하셨다. 술을 먹고 타는 손님들이 안내양이 예쁘다고 농을 하며 차 한 잔 하자고 유혹을 하곤 하였다. 바빠서 버스표를 사지 않고 타는 손님들이 있어서 현금으로 받을 때는 처음에는 또박 또박 운수회사에 갖다 바쳤다. 2주일 정도가 지났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영자를 밖으로 불러내더니 한 마디 하셨다.
삥땅 생긴 것 운수회사에 다갔다 주지 말고 하셨다.
1/3만 갔다가 주고 나머지는 반반씩이다 하셨다.
그렇게 하다가 발각이라도 되면 어떡하지 겁이 났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고 영자는 조금씩 뱃장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탔을 때는 누가 표를 주었는지 표를 안 냈는지 구별하지 못하였다. 한 달이 지나자 귀신같이 요령을 피우고 버스표를 사지 않는 사람들을 가려내서 돈을 받아내고 말았다. 일부를 회사에 입금을 시키고 운전기사 아저씨께 담배 값을 주고도 집에 가면서 아픈 작은오빠가 좋아하는 라면과 빵도 살 수 있었다.
영자는 하루 18시간씩 버스와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피곤 하는 줄을 몰랐다.
오빠의 병은 차도가 약간 있었으나 여전히 학교에 갈 수는 없었다. 서울에 있는 큰오빠한테서 편지가 왔다. 대학을 가려면 예비고사를 보아야 한다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작은오빠한테 물어 보는 편지였다. 작은오빠는 아직까지 서울 A대에 미련이 많았다. 몸이 나으면 재수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일요일이었다. 작은오빠와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놀러 왔다. 친구는 조금이라도 걸을 수가 있으면 예비고사라도 보러가자고 하였다. 작은오빠는 3학년 공부는 안하였지만 1-2학년 때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친구가 가져온 예비고사 예상문제를 보더니 쉽다고 하였다.
예비고사 원서를 내고 예비고사 날짜가 되었다.
작은 오빠는 친구 부축을 받으면서 완행열차를 타고 예비고사 시험을 보러 갔다. 걱정이 되셨던지 엄마도 오랜만에 옷을 갈아입고 시험장 까지 따라 가셨다. 작은오빠는 지친 몸으로 시험장에 앉았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하였다.
시험은 어렵지 않았는데 아는 문제를 여러 개 놓쳤다고 아쉬워하였다.
오빠는 오후 시험시간까지 힘들게 시험을 마쳤다.
걱정을 하고 계시는 엄마 앞으로 왔다 시험이 어려웠느냐고 엄마가 물으셨다. 오빠는 시험이 쉬웠는데 집중력이 떨어져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를 풀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엄마는 그래도 다행이다. 위로를 하여 주셨다. 그 정도라도 됐으니 망정이지 엄마는 한시름을 놓으셨다. 학교를 못 갔으면서도 쉬웠다니 엄마는 흐뭇해 하셨다.
오빠의 병은 젊다고 하지만 한 번 망가진 건강이 쉽게 아물지 않았다.
예비고사 발표 날자가 어느새 다가왔다. 많은 응시생 중에서 오빠는 M고등학교에서 열 번째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영자도 기뻤지만 엄마는 너무 좋아서 오랜만에 떡을 하고 막걸리를 사와서 동네 사람들한테 한턱을 내셨다.
작은오빠는 오랜만에 식구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는 기뻐하였다.
동네어르신들이 칭찬이 자자하셨다. 몸이 아팠으면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다고 축하를 해주셨다. 영자는 더욱 열심히 일을 하였다. 가끔 짓궂은 손님들이 있어서 그만 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작은오빠를 생각하면 힘들은 줄을 몰랐다.
서울에서 양복점 시다 일을 하고 계시는 큰오빠가 제일 좋아 하셨다.
엄마는 교육대학이라도 가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라고 하셨다. 작은오빠를 계속 설득하셨다. 작은오빠는 재수를 해서라도 반드시 서울에 있는 A대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서울 A대 법대를 가서 약자와 가난한자를 돕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하였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영자가 벌어서 겨우 풀칠을 하고 살았다. 봄이 되자 주말이면 행락객 보다 예비군 아저씨들이 많았다. 예비군훈련을 받으러 버스를 많이 탔다.
예비군 훈련이 끝난 오후라서 예비군아저씨들로 버스는 만원이었다.
영자가 버스표를 걷으러 가는 순간 예비군아저씨들이 영자를 에워싸고 성추행을 하기 시작하였다. 궁둥이를 만지고 젖가슴을 만지고 영자는 흥분을 가누지 못하였다.
여자의 가장 깊은 곳까지 손으로 수 십 명이 못 할 짖을 다하였다.
영자는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하고 흥분이 되어서 끙끙거리기만 하였다. 잠시 후 버스가 정차를 하였다. 예비군아저씨들이 내리면서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내려 버렸다. 영자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속도 모르고 운전기사 아저씨는 그렇게 앉아 있느냐고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으셨다.
영자는 창피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에요. 말을 하고는 얼굴을 숙이고 말았다. 영자는 말을 하엿다. 오늘은 몸이 아파 도저히 근무를 하기 어렵다고 기사님한테 말을 하고는 집으로 일찍 들어오고 말았다. 집에 들어오자 작은오빠가 오늘은 웬일이냐. 이렇게 일찍 들어오느냐며 놀라서 물었다. 영자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몸이 안 좋아 일찍 들어왔다고 힘없이 말을 하였다.
대충 씻고 작은방으로 가서 잠자리에 들었다.
한숨자고 일어나 생각하니 화도 나고 인생이 서글퍼졌다. 평소에 나라를 지킨다는 군인이나 예비군 아저씨들을 존경해 왔다. 예비군 아저씨들한테 성추행을 당하다니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였다. 버스안내양을 그만 두고 말았다. 명절이 다가왔다 서울에서 오래간만에 큰오빠도 내려오시고 시집간 둘째언니도 오셨다. 몇 년 만에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큰 오빠가 말씀을 하셨다.
작은오빠도 재수를 하고 영자도 집에서 놀고 있으니 서울로 이사를 가자고 하셨다. 영자는 큰오빠가 서울로 이사를 가자는 말을 듣고 귀를 의심하였다.
서울은 물가가 비싸서 살기 힘든 다는 말을 들어 왔다.
큰오빠는 양복점 기술을 어느 정도 배워서 스스로 해나갈 수 있다고 하셨다. 친구가 사는 동네가 개발이 한창이라고 하시면서 서울에 조그만 양복점을 내볼 생각이라고 하셨다. 큰오빠가 서울로 이사를 가자고 엄마한테 이야기를 하자 모든 식구들이 찬성하였다.
영자는 M시가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
존경하는 예비군아저씨들한테 성추행을 당한 후에는 M시가 정나미가 떨어져 있었다. 서울로 이사를 가는 것을 생각을 하자 영자는 기분이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가을하늘은 높고 파랗게 수를 놓고 있었다. 기차가 서울을 갔다 오는지 씩씩거리며 달려왔다.
영자는 기분이 좋아서 철길을 걸었다.
철길을 걷다 보면 집에서는 보이지 않은 앞뒤 모든 동네가 다 보였다. 철길 뒷동네 앞 동네 누가 무엇을 하는지 다 볼 수 있었다.
영자는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꿈에 그리던 서울로 이사를 왔다.
큰오빠는 시장 근처에 양복점을 조그마하게 차렸다. 방을 하나 얻어서 온 식구가 같이 살게 되었다. 큰오빠가 일을 끝내고 저녁에 돌아오시면 영자는 엄마와 작은오빠와 같이 좁은 방이지만 4식구가 오순도순 살았다. 시장 통은 팔도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저녁이면 사람들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팔도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말투며 행도거지가 남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