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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어떻게 오는가.
작가 : 아를르
작품등록일 : 20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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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보상인 R
작성일 : 17-07-26     조회 : 516     추천 : 0     분량 : 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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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새로운 몸은 대단했다. 주인이 교활하긴 해도 영 허풍쟁인 아닌 모양이다.

엘리는 뺨에 닿는 뜨거운 햇살과 미적지근한 바람을 느꼈다. 한때는 평범했던 그 느낌들이 그녀에겐 한없이 낯설고 이상했다.

"거의 유기체의 감각기관을 재현했습니다. 오감을 느끼고 식사를 할 수도 있죠. 원하신다면 섹스도 가능합니다."

주인은 자랑스레 떠벌렸다.

"왜 이런 안드로이드를 만든 거죠?"

가끔 그 존재의 원인이 모호한 것들이 있다. 도대체 안드로이드에게 감각을 부여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이 안드로이드는 대량생산 제품이 아닙니다. 철저한 수제입니다. 전문가가 아니면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부활시키기 위한 몸으로 만들었다고 하죠. 물론 실패했습니다. 말하자면 긴데..."

엘리는 고개를 저었다. 인간이 플랭크슈타인을 만들었고 실패했던 많은 이야기들은 종종 전해진다. 생명의 형태를 바꾸는 일도 쉽지 않은데 이미 죽은 영혼을 살려내는 일은 첨단의 과학 시대에서도 아직 먼 이야기였다.

다행히 다른 이를 위해 만들어졌던 그 몸은 엘리에게 잘 맞았다. 거부반응이 심하면 큰 돈을 주더라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엘리는 발바닥에 전해지는 둥근 자갈들의 단단한 질감을 느꼈다. 어디선가 고소한 빵냄새가 났다. 그녀는 갑자기 허기가 찾아왔다, 아니 찾아온 것만 같았다.

그녀는 한꺼번에 살아난 여러감각들 때문에 조금 어지러웠다. 그녀를 둘러싸고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연주가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유흥가인 실버스트리트의 풍경은 좀 더 화려했다. 홀로그램 네온이 몽환적인 빛으로 거리를 수놓았고 독특한 양식의 건물들은 선명한 색으로 이목을 사로잡았다.

저만치 '붉은 장화'의 간판이 보였다. 겉보기엔 평범한 여관겸 펍이었지만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떠돌이들의 성지였다.

호흡이 필요없는 엘리였지만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펍의 문을 밀었다. 

테이블에 앉자 붉은 머리의 여종업원이 다가왔다. 사실 머리카락이 아니라 두피에서 뻗어나온 촉수라고 해야할 터였다.  물고기 인간형으로 은빛 비닐이 덮인 얼굴 위로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촉수는 고대 신화속의 메두사를  떠올리게 한다.

"헤이, 프리티, 뭘 마시겠어? 아니면 식사? 푹신한 침대와 섹시한 남자도 있는데..."

"고양이들은 장화를 왜 좋아하죠?"

엘리가 물었다.

"죽은 쥐를 숨겨놓기 좋아서라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종업원이 대답했다.

"따라와, 아가씨에겐 스페셜 음료를 대접하지."

엘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여행자들은 보고 듣는 게 많았지만 어디까지 사실이고 거짓인지 늘 애매했다.

종업원은 그녀를 이층의 제일 끝 방으로 인도했다.

침대와 테이블, 간소한 가구가 전부인 허름한 방에서 한 남자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광대뼈가 도드라진 얼굴 위로 푸른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흩어진 남자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젊은 남자처럼 보이지만 날카로운 검은 눈은 이미 세상의 깊은 곳을 들여다본 늙은이의 것이었다.

어쨌든 종업원의 얼굴에 교태가 어리고 목소리가 간드러지는 걸 보면 밉상은 아닌 것 같았다.

"허니,손님이야. 근데 빈속에 술만 마시면 속 아픈데... 뭐라도 갖다줄까?"

종업원은 나갈 생각이 없는 것처럼 남자의 곁에서 붉은 촉수를 나른하게 움직였다.

"진, 걱정해줘서 고맙지만 나 손님하고 얘기 좀 할께."

남자의 목소리는 의외로 다정했다.

"알았어. 허니, 내가 늘 기다리는 거 알지?"

진이라고 부린 종업원은 치마를 살짝 걷어올려 반짝이는 지느러미를 흔들어 보였다.

"프리티, 네가 예쁜 건 사실인데 허닌 좀 더 농염한 여자를 좋아해. 헛꿈 꾸면 안돼."

 방을 나서며 진이 엘리에게 속삭였다. 붉은 촉수가 위협적으로 목을 스쳤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엘리의 새로운 몸도 작은 키는 아닌데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였다.

남자는 엘리에게 다가와 빤히 쳐다보았다. 장난기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술 한잔 할래요?"

남자가 술잔을 내밀었다. 유리컵 안에서 황금빛 액체가 출렁거렸다. 문득 엘리는 이 안드로이드가 취할 수도 있는지 궁금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로 시간을 허비할 생각은 없었다.

"당신이 R이 맞나요? 악명 높은 정보상인 R을 만나러 왔어요."

"물론 내가 R입니다. 악명 보다는 인기가 높은 걸로 알고 있는데?"

R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굳이 악명이라고 표현한 것은 의뢰인의 부탁을 들어주고 R이 요구하는 댓가가 가혹하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엘리로서는 더 잃을 것도 없었다. 다만 그의 명성이 사실이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모든 정보는 R에게 모인다, R이 모르는 일은 세상도 모른다, 등등...

"생각했던 모습과는 좀 다르군요."

R에 대한 또다른 풍문들을 떠올리며 엘리가 말했다.

그의 정체가 고대 문명이 만든 로봇이라거나 삼천 살이 넘은 문어라거나 또는 스피릿 노마드라거나, 드물게 세상사에 관여하는 사이버인이라는 말도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인간 같았다. 그녀가 보기엔 그랬다. 인간도 여러 종류겠지만.

"나를 찾아 주세요."

엘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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