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마지막까지 읽어주신 분들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공모전을 끝낸 뒤에 어떤 이야기를 해야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몇 글자 쓰게 되었습니다.
신변잡기적인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한가하신 분들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십대 중반까지는 어떻게든 글을 쓰는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보고 싶어서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재능이 없었기에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공모전에선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늘 뭔가 쓰고 싶은 욕구는 제 안에 존재했고 떠오르는 글감 마다 항상 메모해 저장해 두는 것은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2년 전 까지였습니다. 이번 공모전을 시작하기 전까지 2년 정도 아무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흔한 인터넷 덧글 조차 쓰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무서워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하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내 뱉는 건, 자신안의 무언가를 깎아 허공에 던져버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느낌을 10여년 가까이 받았고 어느새 자신 안에 더 이상 아무런 이야기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허비한 2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와중 이전에 제가 쓰던 글을 읽어주던 친구 K군이 안타깝게 여겨 이번 공모전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제 안에 글쓰기에 대한 욕망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몇 글자를 쓰고 바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안 그래도 모자라던 재능은 사라져 있었고 겨우 몇 마디를 적는 것만으로 어떤 문장을 적고 싶은 것인지 모르게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며칠을 반복했습니다.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오래전 제가 써두었던 여러 가지 메모들과, 글감들을 열어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걸 아직까지 PC한 구석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 자체가 미련이겠지요.
그 폴더 안에는 열정이 넘치던 제가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자료들과 단편적인 플롯, 쓰다가 만 이야기들, 완성하지 못한 세계들. 여러 가지 파편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눈에 띈 것이 바로 ‘개와 늑대의 시간’ 이었습니다.
50P 이상 되는 분량이 각각 다른 버전으로 4종류 이상 있었습니다. 몇 번이나 인물과 이야기를 바꾸고 어떻게든 써보겠다고 고민하던 이야기였습니다. 당시에는 가벼운 판타지 배틀물을 생각하고 썼던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그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쓰지 못했던 이야기입니다.
계속 마음에 걸리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이번 기회를 빌려 글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무엇인가에 충실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이전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이유는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충족감이 좋아서였을지도 모릅니다.
공백이 길었던 탓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문장은 생각대로 써지지 않고, 상상력은 떨어졌습니다. 특히 문제였던 것은 후반으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졌습니다. 문장을 구상하는 게 힘들어 집어 던져놓고 밖에서 뛰고 온 일도 있습니다. 쉽게 술술 써 진다는 분들은 정말 부러울 따름입니다.
제가 쓴 글 안의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이 글의 중심은 역시 도진과 리리 두 사람입니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리리는 도진을 대신해 흡혈귀가 되었고, 도진은 그런 리리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모전에 제출한 분량에서 모든 이야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사건은 다 생략하고 두 사람의 불안한 관계에 대해서 집중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래야 이후에 이야기를 풀어갈 때 불합리하게 이야기가 전개 되더라도 납득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인간의 감정은 불합리 합니다. 특히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게 된다면 더더욱 두드러집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있는 눈치 싸움이나, 불안함, 두근거림 등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집어넣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 하나라도 느끼신 부분이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4년 전에는 능력자 판타지 물로 계획되었던 것이 현재의 내 손에 들어와 무엇이라 말하기 힘든 물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4년 전의 나에게 심심한 위로를. 하지만 결과물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한 이야기를 끝까지 써 낼 수 있었으니까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리리의 경우 명확한 모델이 있습니다. 바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라는 작품의 클라우디아입니다.
1997년 KBS에서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집중해서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퇴폐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는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좋아할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세일러 문이나, 천사소녀 네티나 보며 좋아하던 나이었으니까요.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두 가지입니다. 뱀파이어가 된 클라우디아는 잠깐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만 곧 변화 없는 삶에 싫증을 내게 됩니다. 그러다 외형의 변화를 주기 위해 거울을 보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움 큼 잘라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비명을 지릅니다.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갔거든요.
그리고 그녀는 살인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 두 장면이 제 안의 소녀 뱀파이어의 이미지를 고정시켜 버렸습니다. 결국 제 안의 소녀 흡혈귀, 라고 하면 클라우디아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리리 같은 드세고 행동력 있는 캐릭터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도진의 경우 레스타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이야기는 다르게 되겠지만 리리와의 공범입니다. 본편에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항상 리리에게 끌려 다니는 줏대없는 녀석에 이야기 내내 유하에게 얻어맞고 구르고, 개차반 취급당하고 … 미안. 시리즈를 계속해서 쓸 수 있다면 조금더 멋지게 활약하는 이야기도 만들어보고 싶네요.
유하의 경우 롤 모델이 없는 오리지널 캐릭터입니다. 이름이 버전 따라 다 다르게 설정되어 있어서 잘못된 이름으로 타이핑하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제발 오타가 없기를) 개인적으로 유하가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입니다. 완성하기 위해서 꽤 애정을 많이 쏟았고 정신 병력이 있는 사람들의 대사를 알고 싶어서 스토커 사건이나 신문기사나 인터뷰 기사를 조사했었습니다. 예전 원고의 플롯에서는 마지막 장면에서 완전하게 죽었습니다만 아끼는 캐릭터를 차마 죽일 수가 없어서 나중에라도 사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주연 3인 이외의 나머지 조연들은 다 실제 인물들을 참고 했습니다. (주변인). 창권의 경우 실제 바리스타를 하고 있는 제 친구입니다. 성격도 바보같이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모자란 것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공모전의 시간이 오늘로서 끝나버렸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남은 건 언제나처럼 속을 깎아먹고 완성된 기약 없는 원고뭉치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차갑게 식어있던 불꽃에 살짝 온기가 붙었습니다.
뭐라도 좋으니 조금씩 다시 써 보려고 합니다.
저는 여전히 글쓰는 게 좋은가 봅니다.
저는 지금 대구로 향하는 길입니다.
사실 10월 30일 새벽 2시 쯤 외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바로 따라가지 못하고 몇 글자를 더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았습니다. 솔직히 원고가 손에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먼저 출발한 어머니께 전화를 했습니다.
원고지의 몇 글자를 더 채우기 위해 자리에 남았던 제 결정은 인간으로서의 결락일까요.
원고는 완성했고 업로드 한 뒤에 전 대구로 향하는 차 안에 있습니다.
다행히 할머님은 한 고비는 넘기셨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생과 사를 오가고 계십니다.
할머님을 만나면 전 어떤 얼굴로 뵈어야 되는 걸까요.
아직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떤 게 옳은 행동 이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생은 어렵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