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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일록 ~난세의 잠룡~
작가 : 태평
작품등록일 : 201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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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누란지위(累卵之危) (9)
작성일 : 19-02-23     조회 : 364     추천 : 0     분량 : 4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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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응신의 안내에 따라 무수성 안에 들어온 장무량 소리없이 감탄했다. 무수성이 작기는 하지만 방어시설이 잘 갖춰진 성임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그는 감탄치 않을 수 없었다. 만일 그들이 항복치 않았다면 며칠 더 시간을 끌게 되었을 게 분명했다.

  조응신의 안내를 받으며 성벽 위로 올라 돌아보던 중 장무량은 하나의 시체에 눈이 꽂혔다.

  나이 든 노장, 직접 본 적은 없으나 이 자는 분명 조수문이 분명했다. 듣자하니 조응신의 숙부에 해당하는 인물이라 하는데 정작 조응신은 조수문의 시신을 보고 껄끄러워하며 치우라고 할 뿐이었다. 그 시신에 꽂힌 화살을 모른 체 하며 말이다.

  대강의 사정을 이해했지만 증거도 없고, 무엇보다 지금 이를 트집잡아봐야 이득될 게 없다는 판단하에 장무량 역시 조수문의 시신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성문에 올라가는 아군의 깃발을 바라보며 물었다.

  “분명 그대들은 항복한 것인가?”

  도대체 왜 그런 걸 알 수 없어 당황한 조응신은 급히 답하였다.

  “물론입니다. 저희는 여러분께 분명히 항복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물론, 더 이상 이 나라에 충성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계림의 여러 문제점들을 열심히 열거하는 조응신이었으나, 장무량은 이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 지금 조응신이 늘어놓는 문제점들은 장무량도 잘 아는 내용인 것도 있지만 그가 항복한 이유가 단순히 계림이라는 나라가 썩어서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조응신을 무시하며 장무량은 성벽 아래에서 성 안으로 진입하는 아군의 병력을 내려다보았다. 작은 성 하나에 이틀의 시간이 소모되기는 했지만 엄연히 승리를 했다는 것에 다들 기뻐하는 눈치였다.

  장무량 역시 속으로 승리라는 것에 기쁘긴 했지만 앞을 생각해본다면 순수히 기뻐할 수는 없었다.

  “이보게, 조 중랑장.”

  “아, 예.”

  “이곳에 있는 무기와 군량은 어느 정도 되는가?”

  장무량의 물음은 당연히 물어볼 수 있는 물음임에도 조응신은 뭐라 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을 슬쩍 쳐다보며 대신 대답하라는 눈치를 주고 있었다.

  참으로 한심한 광경에 장무량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런 자의 항복을 순순히 받아주어 아군으로 삼는다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숙부이기도 한 상관을 죽이고 의리도, 충심도 없이 항복한 그를 당장이라도 베는 게 정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 물자의 양에 대해 아는 부하가 장무량의 물음에 대답을 했다. 떠듬거리며 그 부하가 알려준 내용에 장무량은 씁쓸히 입맛만 다셨다. 왜냐하면 현재 이 성에 있는 물자의 양은 앞으로 중경을 점령하는데 장기전이 되었을 때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은 성에 얼마나 많은 양이 있었겠는가 싶지만 실제로 확인을 하니 기분이 착잡했다. 이를 모르는 조응신과 그의 부하들은 뭔가 심기를 거스른 게 아닌가 하고 다들 바짝 긴장했다.

  “이거이거, 꽤나 걱정이 많으신가 보오, 장 장군.”

  건들거리며 성벽위에 모습을 드러낸 버들은 조응신과 그의 부하들에게 물러나라는 눈치를 주었다. 어찌 해야하는가 하고 눈치를 보던 그들은 장무량 역시 물러나라는 눈치를 주자 그제서야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정말 이게 옳은 걸까요?”

  “시끄럽다. 이미 정해진 거 이제와서 뭘 어쩌라고.”

  그렇게 속닥이며 그들이 내려간 뒤에 버들은 껄껄 웃어보였다.

  “이거 승리를 하긴 했지만 마냥 기뻐하긴 힘들구려.”

  소리 높여 웃기는 했어도 버들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그 역시 앞으로 있을 전투에 있어 필요한 물자의 양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서 그 이상의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오. 이보다 많은 수가 있는 중경으로 진격해 들어가는데 있어서 많은 피해가 있어서는 아니 되지 않겠소.”

  “그렇소.”

  “게다가 저 자는 나름 중경 내부의 정보를 좀 아는 듯하니 저 자를 통해 중경의 현 상황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그럴 것이오.”

  담담히 버들의 말에 동의를 하는 장무량이었지만 썩 순조롭게 일이 진행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막상 눈앞의 목표가 사라지고 거대한 진짜 목표를 마주하니 부담감이 몇 배로 늘어나고 있었다.

  “허허, 너무 걱정하는 것 아니오? 비단 적들이 아무리 정예라 해도 우리도 밀리는 건 아니오. 특히 수적으론 우리가 분명 우세하오. 아, 물론 전쟁이라는 게 수로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수라는 건 상당히 중요한 것이외다.”

  나름의 기운을 내기 위한 방법인건지 버들은 열심히 장무량에게 말을 걸며 격려했다. 장무량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 입을 열었다.

  “버들 장군, 내려가서 물자들을 확인하고 이곳 무수성에 주둔시킬 병사들을 선별해주시오. 그리고 지금 중경에서 오는 지원병을 상대하는 아군에게 지원병을 보내주도록 하시오.”

  “알겠소이다.”

  내려가는 버들과 교체하듯 이번에는 진만이 올라왔다.

  “심란한가보오. 아니면 앞으로의 일이 부담되는 것이오?”

  진만의 물음에 장무량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둘 다입니다. 중앙군과 맞붙는다는 건 한 때 몸담아 충성하던 이 나라와 전면적으로 맞붙게 된다는 것이고, 동시에 이 나라 최정예인 병사들과 맞붙어서 중경이라는 큰 도시를 점령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니…….”

  한 때 계림의 충성스럽고 유능한 장수였던 그가 지금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며 내뱉는 자조적인 웃음은 분명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진만은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 모든 게 저 백성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나라란 백성이라 하였소. 바로 그 백성을 구한다는 건 나라를 구한다는 것이 아니겠소. 이름뿐인 나라가 아닌 진정한 나라를 구하는 대의요. 그리고 저들이 아무리 최정예라 한들 바로 그러한 대의를 안고 싸우는 우리보다 얼마나 큰 뜻을 가지고 싸운다고 할 수 있겠소. 그러니 너무 착잡해 하지도, 걱정하지도 마시오. 그대의 곁에는 백성들이 있고, 나 진만도 있소.”

  “감사합니다.”

  진만의 격려를 받으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는 장무량이었다.

  그것만으로 진만은 만족하고 저녁에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를 열 것이라 말하곤 내려갔다. 사실 앞으로 더 큰 전투가 기다리고 있지만 일단 승리는 치하해야 하기 때문에 여는 잔치라고 했다. 아니, 앞으로 더 큰 전투가 있을 것이기에 병사들을 독려하는 자리가 필요하기에 여는 잔치라고 했다.

  잔치가 열릴 때까지 아직 시간은 있기에 장무량은 성벽 위를 계속 돌아보기로 했다.

 

  “결국은…….”

  점심때가 지나고 슬슬 해가 지기 시작했을 무렵, 김창헌은 무수성이 함락되었다는 전갈을 받았다. 미리 무수성 인근으로 보냈던 척후가 급하게 전한 그 전갈을 다른 장수들과 함께 들으며 김창헌은 곁에 있는 장수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임무를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착잡해하는 눈치였다. 단, 하나 나래만이 예상은 했다는 듯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나래 별장은 예상하고 있었나 보군.”

  김창헌의 말에 나래는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곳의 수비를 담당하는 조응신이라는 이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끝까지 지키긴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호, 그에 대해서 아는가? 그보다 그곳의 수비는 실질적으로 판관 조수문이 이끌지 않았나?”

  “그렇긴 합니다만, 엄연히 그 성의 대다수 장수들과 병사들은 조응신의 부하들이죠. 전에 저들 무리가 쳐들어왔을 때 무수성으로 지원을 나가 격퇴하는데 일조를 하여 조응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대강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첨을 잘 하고 출세만을 꿈꾸는 소인배였죠.”

  “허면 그가 항복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겐가?”

  김수문의 물음에 나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아무리 조 판관이 갔다고는 하지만 역시 무수성을 지휘하는 건 조응신이니.”

  “됐다. 어느 쪽이든 저들은 무수성을 함락했고, 우리, 정확히는 중경의 상황을 얘기해줄 수 있는 정보원을 획득했다. 그것이 분명한 사실이 아니겠느냐.”

  다들 조용해진 와중에 김창헌은 잠시 생각을 해봤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서기는 좀 그렇군. 저들의 다음 목표가 중경인 이상 우리가 이를 제지할 필요가 있다. 무수성은 바로 그 중경의 안전을 위한 것인데 그것을 잃었으니 이를 대체해야할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오면…….”

  “일단 무수성의 일을 중경에 보고해라. 우리는 여기서 저들의 진격을 차단한다. 지금 우리 앞에 위치한 적들이 하는 것처럼 중경으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한다.”

  ““““““존명!””””””

  진영을 울리는 대답이 떨어짐과 함께 장수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의가 끝났으니 제각기 자신들의 위치로 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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