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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플레이리스트
작가 : 땡글
작품등록일 : 20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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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게 반하지 않았어
작성일 : 20-09-27     조회 : 353     추천 : 0     분량 : 2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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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겨울에는 버스킹을 하지 않는다. 다들 그랬겠지만 겨울은 우리에게 특히 시린 계절이다. 2회짜리 공연이었지만 연초에 계획했던 공연치고는 반응이 나쁘진 않았다. 그래서 우린 좀 더 큰 무대를 물색하면서 정규앨범을 준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앨범 준비는 이건이와 말자 언니가 맡았고 대관은 나와 은복이가 맡기로 했다.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계획이었고 처음으로 작은 무대를 벗어난다는 기대에 모두 열심이었다.

  1월의 날씨는 우릴 도와주지 않았다. 연일 계속되는 한파와 폭설에 공연할 무대를 찾는 일은 고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은복이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너무 설레발 아니야? 아니, 요즘 같은 때에 누가 공연을 해! 미친 거지!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생각을 좀 다시 해보죠? 우리?”

  은복이는 나름 눈치를 보았다.

  “그래.”

  말자 언니가 바로 대답했다. 우린 깜짝 놀라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녀의 대답이 반가운 건 사실이었다. 스스로 조금씩 헤이해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찜찜함도 있지만 말자 언니는 정규앨범 작업에 몰두하자고 다시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저....... 저기.......”

  뭔가 머뭇거리던 이건이가 입을 뗐다.

  “다음 앨범에 넣을까하고 만들어 둔 곡이 몇 개 있는데요....... 공연이 아니더라도 제가 버스킹을 해서 반응을 좀 보고 싶은데........ 누나.”

  “헐........ 지랄 똥을 싼다!”

  은복이가 궁시렁댔다.

  “그래? 혼자서?”

  말자 언니가 이건이에게 물었다.

  “네.......” 그가 대답했다.

  “그래, 그럼. 그건 네가 알아서 해. 그것도 계획의 일부가 될 수 있으니까. 난 작업할 녹음실 알아본다. 수복, 너네는?”

  말자 언니가 나와 은복이에게 물었다. 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녹음실, 내가 알아볼게요. 예전에 같이 연습했던 애들한테 부탁하면 될 거야.”

  은복이가 먼저 대답하자 세 사람은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어....... 저는....... 그냥 건이랑.......”

  의도한 대답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맘에 없는(혹은 맘에 두었던) 말을 내뱉고 있었다. 난, 버스킹을 해 본 적이 없다. 세 사람은 모두 말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말을 뱉어 놓고는 난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 이건이만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말이야, 건아....... 나.......”

  “훗! 귀여워!”

  이건이에게 말을 꺼내려 하자 그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난 내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옷 따뜻하게 입고 나와! 추울 거야. 누나한테 앰프랑 악기는 얘기해 놨고 스토브도 준비했으니까 넌 몸만 오면 돼.”

  이건이가 내게 말했다.

 

  추웠지만 다행히 날씨는 맑았다. 이건이는 깡마른 몸에 커다란 덕다운 점퍼를 무릎 아래까지 감싸고 두툼한 비니를 눌러쓰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 그는 내게 야릇한 미소를 보냈다. 희멀건 그의 얼굴이 왜 그리 예쁜지, 그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난 고개만 끄덕였다. 이것저것 장비들을 체크하고 들어 옮기는 그를 보며 몇 시간 뒤 거리에 서서 연주를 하고 있을 나를 상상해 보았다. 내 모습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고 그의 모습만 상상되었다.

  홍대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북적거리는 거리 중 한 곳. 평소에도 곧 잘 버스킹 공연이 있는 곳이지만 요즘엔 그렇지 않았다. 바람도 없이 무겁게 내려않은 차가운 공기는 겨우 노출된 내 양 볼의 감각을 금세 앗아갔다. 나름 단단히 무장을 했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공연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이건이는 장비를 하나씩 세팅했고 나는 그를 도왔다.

  그는 먼저 배터리에 기타 앰프와 스토브를 연결했다. 하나뿐인 스토브를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내게 담요도 건넸다.

  “다리에 얹어. 앉아 있다 보면 하체가 춥거든.”

  그가 말했다.

  “고마워.”

  난 대답했다. 추위와 긴장감에 몸이 떨렸다. 기타 조율을 하고 있는 그를 보았다. 그는 담담해 보였다. 그의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자, 시작할까?”

  그는 스토브를 내 앞으로 좀 더 가까이 당겼다. 난 온 힘을 다해 의식을 내려놓으려 애쓰며 그가 리드하는 연주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건이도 곧 노래에 몰입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천천히 나도 그의 노래에 기대기 시작했다.

  첫 곡을 마쳤을 때, 우리 앞에 서 있는 몇몇 관객들이 보였고, 두 번째, 세 번째 곡을 부를 때까지 느끼지 못한 양 볼의 감각이 네 번째 곡을 마친 후 관객들의 박수를 받고 나서야 살아났다.

 

  ‘그것 봐! 무리라고 생각했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 안 했다. 난 약국에서 사온 몸살 약을 그에게 건넸다. 버스킹을 했던 다음 날부터 기침을 하더니 아침부터 그의 이마에 열이 느껴졌다.

  “뭐라고 했어, 방금? 쌤통이라고?”

  약을 받아들며 그가 말했다.

  “응?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내가 말했다.

  “후후....... 네 얼굴에 다 써 있어. 걱정 마. 몸 혹사하면서까지 미련 떠는 멍청이는 아니야.” 그가 말했다. 그는 늘 이렇게 예상을 빗나가곤 했다. 그의 행동들에, 갈수록 내 머릿속은 그로 채워져 가는데 그는 너무나 자유로워 보였다. 옆에 있으려 해도 다가가지지 않게 그가 있는 자리는 너무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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