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화장해 주는 남자, 머리 감겨 주는 여자
작가 : 세빌리아
작품등록일 :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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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모네의 여인
작성일 : 18-02-05     조회 : 294     추천 : 0     분량 : 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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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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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까지는 불과 15분 거리 밖에 되지 않았지만 꽤 먼 거리처럼 느껴졌다. 서둘러 교실로 올라가 사물함을 뒤적거려 사탕바구니를 꺼냈다. 타고 온 택시는 아래에 정차시켜둔 터라 기동력있게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그래봐야 총 30분 남짓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포집 골목 입구에서 내려 들어가려는 찰나, 그녀가 주문한 아이스크림이 떠올랐다.

 

  "아...그래, 아이스크림...그까잇 거."

 

 그렇게 아이스크림까지 단단히 챙기고 그가 서둘러 대포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 야?!"

 

 친구가 그를 보자마자 불러세웠다.

 

  "왜?"

  "야, 어디 갔다 왜 이제 와?"

  "왜 이제 오냐니? 잠깐 나갔..."

  "갔어."

  "어?"

 

 그제야 서늘한 낌새를 느낀 파랑이 로사가 있던 다락방으로 들어갔다. 술상은 그대로였으나 그녀가 없었다.

 

  "어? 뭐야? 진짜 간 거야?"

  "갔다고 했잖아. 술값도 다 계산하고 나갔어. 계산도 정확하게 잘 하던데?"

  "그럴리가...취해있었는데? 나보고 기다리겠다고 해놓고 내뺐단 말이야? 헐..."

  "야, 내가 보기까 그 여자 보통은 아닌 것 같더라. 꽃뱀...은 아니겠지만 암튼 뭔가 있어. 조심해."

  "뭐가 있어?"

  "되게 뭐랄까? 능숙한...닳고 닳은 그런 느낌? 아, 뭐라고 설명해야 하냐? 산전수전 다 겪은 그런 능란함? 어쨌거나 너랑은 좀 안 맞는 거 같어."

  "야, 사귀어보지도 않았는데 맞는지 안 맞는지 어떻게 알아?"

  "지금도 봐라. 니가 좋아하는 거 알면서 어장관리 하는 거 아냐?"

  "어장관리?"

  "내가 보기엔 그런 남자가 30명도 넘을 것 같다. 구미호 냄새가 나."

  "자길 좋아하지 말라고 하긴 했어."

  "그래?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나, 나는 뭐...별 말 안 했는데?"

  "것봐. 니가 얼마나 티 냈으면 알겠냐? 넌 너무 티가 나."

  "야, 그럼 좋아하는데 티를 안 내면 어떻게 알아? 내가 여자도 아니고...남자면 직진이지."

  "그래도 계산 좀 하지 그랬냐? 상대방이 호감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고 덤벼야지. 너도 니 마음 다치는 것에 대해 최소한의 보호장비는 갖춰야지. 너 순정파잖아. 정을 확 다 줘버리는."

  "나한테 먼저 키스했단 말이야!"

  "맨 정신에?"

  "그건 아니지만. 클럽에서 놀다가 키스하고 모텔까지 갔었다고."

  "오...진짜? 그럼 잤어?"

  "그건 아니지만..."

  "왜?"

  "먼저 잠 들었어. 편의점에 그거 사러 나간 사이에."

  "쳇. 너도 참...지고지순하다. 그 와중에 지켜줬네, 줬어. 으이구, 착하다."

  "야, 그럼 동의도 없이 어떻게 막 가냐? 그리고 학원에서 계속 볼 사이인데. 학원비도 일시불로 낸 마당에."

  "전화나 해봐. 그냥 간 건지 바람 쐬러 나간 건지."

 

 파랑이 핸드폰을 켜자 때마침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파랑씨, 오늘 즐거웠어요. 먼저 갈게요.'

 

  "엥? 이게 다야?"

  "꼭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다니까..."

  "자기 쉬운 여자 아니라 이거지?"

  "그럼 이제 어떡해?"

  "혹시 결혼한 여자 아냐?"

  "엥? 그래 보여?"

  "비밀이 많은 여자 같기도 하고...보기완 다르게 철벽녀다. 겉보기엔 엄청 놀게 생겼더만."

  "그래서 더 매력있는 거 같어."

  "얼씨구, 매력? 이 자식 완전 빠졌구만?"

  "이건 매력이라기보다 너한테 관심이 없다는 소리일 수도 있어.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나, 객관적인 거 싫어한다."

  "에이구, 야! 밀당도 싫고 객관적인 사실도 싫고...꿈 속에서 연애할래? 니가 10대냐?"

  "야, 사랑을 머리로 하냐? 감정으로 하는 거지?"

  "니가 좋아하는 사람이 순순히 그렇게 넘어가지 않으니까 그런 거지. 끙끙거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물어보고 해결봐. 그 여자 아마 집에 아직 안 갔을 거다. 멀쩡하니까 뭘 물어봐도 맑은 정신으로 대답해줄 거라고. 그리고 너 아니라고 하면 깨끗이 정리해. 만나봐야 너만 애타고, 만나도 산 넘어 산일 테니까. 완전 선수라니까."

  "뭐, 뭐라고 물어봐?"

 

 전화기는 들고 있으나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눈으로 친구를 보는 파랑이었다.

 

  "좋아하니까 사귀자. 싫음 말고. 나도 아쉽지 않다. 뭐, 이렇게 너도 돌직구로 나가라고."

  "이, 이거는?"

 

 그가 손에 든 사탕바구니를 들어보였다. 곰인형의 표정이 수줍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참...귀엽다, 귀여워."

  "문자로 보낼까?"

  "그 사탕 바구니는 이모티콘으로 보낼 꺼냐? 야, 따져봐. 왜 그렇게 갔냐고? 심부름 시켜놓고 가는 게 어딨냐고 세게 나가보란 말야. 넌 화도 안 나냐?"

  "나지, 화 나! 우씨, 그래 전화한다, 해."

 

 그가 로사에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안 받으리란 예상을 깨고 그녀가 활기찬 목소리로 받았다.

 

  "여보세요?"

  "저기, 왜, 왜...기다린다 해놓고 간, 간 겁니까?"

 

 갑자기 따려물으려니 말이 버벅거리는 건 파랑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 미안해요. 내가 좀 취해서 그랬어요. 더 있으면 실수할까봐."

  "아, 네에..."

 

 그의 반응에 친구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더 화내라고 속삭였다.

 

  "아니, 그래도 그렇게 가버리면 어떻...아, 아이스크림이 다 녹았잖아요."

 

 그건 따진다기 보단 칭얼거림에 가까웠다. 참 처량한 이유였다. 친구는 조언하기를 포기했다.

 

  "아, 아이스크림...이걸 어쩌나..."

  "할 말 있어요. 멀리 안 갔으면 잠깐 봤으면 해요."

  "..."

 

 그녀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대포집 길 건너 공원으로 오세요. 그 부근에 있어요."

  "알겠어요."

 

 그가 전화를 끊고는 부리나케 나갔다. 뚝뚝 녹는 아이스크림은 친구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그가 아이스크림이 묻은 숟가락을 빨며 파랑의 건투를 빌어줬다.

 

  "자식, 완전 빠졌네. 쳇, 좋을 때다."

 

 전속력으로 달려 공원에 도착한 그가 로사를 찾아해맸다. 밤 공원을 비추는 가로등은 안개 때문인지 모든 사물을 퍼져보이기 했다. 눈꺼풀에 자체 포샵 기능을 씌워버렸다.

 

  "로사샘! 어디에요?"

  "여기요."

 

 그때 가로등에 앉아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아까와는 다른 청순함이 있었다. 물에 젖은 종이처럼 이 그림에 축 젖어있는 것 같았다. 모네의 유화 속 여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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