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화장해 주는 남자, 머리 감겨 주는 여자
작가 : 세빌리아
작품등록일 :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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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내 꿈은 제 2의 정샘물???
작성일 : 17-10-25     조회 : 324     추천 : 0     분량 : 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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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 학원 문을 힘차게 열어졎혔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동시에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마디씩 했다.

 

  "오, 유시아! 오랜만이네?"

  "너 미술 다시 시작해?"

  "내년 1년 바짝해서 미대 가보게? 하긴 니 성적에...대학가려면 그 방법 말고는..."

 

 나를 보는 그들의 하나같은 표정에 마음이 구겨졌다.

 

 '내가 이렇게 이들에게 우습게 보였나? 왜 보자마자 인생태클 크리람? 관심 좀 꺼주면 좋겠으련만...'

 

 고1때부터 1년간 해온 미술을 그만두겠다 결심한 이후로 학원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두 달만에 다시 문을 열어본 미술학원이었다. 나는 재빨리 내 뒤에서 폰 게임을 하고 있는 가린이를 안으로 밀어넣었다.

 

 "어, 어...야, 이번 판 아직 안 깼어. 내가 깨고 들어간다고..."

 

 린이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교실에 들어갔다. 나는 양양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린이가 문 열 손이 없대서 대신 열어준 것 뿐이야. 갈 거라고."

 

 그때 나를 본 선생님이 진지하게 물었다.

 

 "시아야, 너 정말 미술 안 할 거야?"

 "뛰어난 소질도 없고 우월한 재능도 없고 돈도 없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나는 선생님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언젠가 선생님들만 있는 교무실에서 그녀가 내 얘기 하는 걸 우연히 문틈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분명 내 레슨 선생님은 날더러 그렇게 말했었다.

 

 '어.중.간...하다고. 뭔가 확실하게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으면서 이 길에 대한 확신 또한 없다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어서 더 속이 쓰렸던 그녀의 말이었다. 정말 칼날 같은 말은 미술에 대한 정나미를 뚝뚝 떨어뜨리게 했다.

 

 "어? 그, 그건..."

 "전 어중간하잖아요. 어차피 잘 하는 애들 입시 경쟁률만 올려주고 들러리하다가 떨어져나갈 텐데요."

 

 이 말은 그녀가 하지 않았지만 꽤 논리적이지 않은가. 내 스스로 칭찬할 만한 말빨이다. 자기 디스였지만 이런 표현 흡족했다.

 

 "그래도 시작했으면 끝을 보는게..."

 "이 학원에 돈 바치는 일이죠. 샘이 메고 다니는 명품백에 일조하면서."

 

 그녀는 항상 명품백을 들고 다녔다. 명문대 입시 강사로 뛰면서 강남의 부잣집 애들 개인레슨도 하는데 한 달에 천만 원도 넘게 받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도 미대교수라 이 샘한테 잘 보이면 그 학교로 가는 지름길이라도 열리는 양 학부형들도 상담하면서 굽신굽신하는 게 보였다. 한 마디로 금수저였다.

 

 "안녕히 계세요."

 

 당황해하는 그녀의 얼굴을 뒤로 한 채 문을 박차고 나왔다. 내가 생각해도 참 싸가지 없는 발언이었다.

 

 "그래, 다신 올 데 아니야. 오지 않을 거야."

 

 그때 린이가 따라나왔다.

 

 "야, 유시아!"

 '역시 친구 밖에 없군. 마지막 길 배웅해주러 나오는 건...'

 

 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뒤를 돌아봤다.

 

 "너 이제 학원 안 나올 거면 4B 좀 주고 가라. 학교에 두고 왔다."

 

 띵.

 아니, 미술학원 천지에 깔린 게 4B구만. 굳이 관둔다는 사람한테서 그걸 가져가려고 그런담? 내가 미술을 관두다고 해서 니 경쟁자가 줄었다고 지금 좋아하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심증만 가지고 굳이 쓰지도 않을 연필을 안 빌려줄 이유도 없었다.

 

 "옜다. 내 유품으로 피카소되라."

  "땡큐."

 

 무표정한 그녀가 연필을 들고 안으로 가버렸다. 바람이 불지는 않았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 쌩 하고 소용돌이가 지나간 기분이었다. 같이 미술 시작한 동기로서 우정이라든가 전우애라는가 그런 게 그녀의 심장 속에는 없었던 건가. 행여 다시 생각해보라던가 같이 좋은 대학 가자던가 그런 따뜻한 우정을 바랬다면 당장 집어치우라는 듯 차가운 공기만 날 학원 밖으로 밀어냈다.

 

 "에라이..."

 

 그렇게 학원 밖을 나왔다. 엄마는 아직 모른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어서 아직 말을 못 했다. 손가락이 부러졌거나 안구 손상을 입지 않은 한 이때까지 뒷바라지했는데 싫증 났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얼른 이유를 찾아야했다. 엄마가 날 미술 시킨 건 그저...우아해 보이고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안에 한 명 쯤 화가가 있으면 있어보이지 않겠냐고 꼬셨었다. 본인이 하지 못한 걸 대리만족하고픈 욕구가 다분했다. 그런데 이제 어쩐담? 난 공부도 그닥이었는데 다시 공부를 시작해 대학에 간다는 건...벼락에 맞아 뇌 손상이 일어난 후, 유전자 돌연변이가 되어 '천재'로 돌변하는 수밖에 없는 일인데...18살 인생에 위기가 닥쳤다.

 

 '꼬르륵'

 

 영락없이 배가 고팠다. 난 괴로워도 잠은 잘 잤고, 걱정거리가 있어도 밥은 먹혔다. 지갑을 뒤지니 천원짜리 몇 장이 나왔다. 편의점으로 향했다. 어차피 학원에 있는 줄 아니까 시간은 때우고 집으로 가야했다.

 

 편의점 유리 너머로 건물에 하나 둘이 불이 들어왔다. 방과 후 곧장 학원만 가는 일상이었어서 건너 건물 윗층에 뭐가 있는지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1층이 아니면 올라갈 일도 볼 일도 없었다.

 

 '샹들리제뷰티아카데미'

 

 뷰티아카데미?언젠가 티비에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화장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이라 했다.

 

 '화장이라...화장...'

 

 편의점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얼굴에 그림 그리는 거니까 이것도 미술이잖아?'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건물을 쳐다봤다. 날 기다리는 것처럼 간판 네온등에 형광 레몬빛 불이 팟 하고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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