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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명
작가 : 살찐감
작품등록일 : 201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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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의 만남
작성일 : 17-11-04     조회 : 200     추천 : 0     분량 : 2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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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감상은?"

 

  한참 뒤에야 욕실에서 나온 로즐리는 나른하게 물었다. 정말이지 시정잡배와 다를 게 없다.

 

  "별로였습니다. 저는 더 몸이 좋은 남자가 취향이라서요."

 

  인위적인 미소를 지어보이곤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더니 로즐리는 젖은 머리로 내게 다가왔다.

 

  아무리 목욕가운을 걸쳤다지만 귀족 가의 영식답게 관리가 잘 되어있는 매끈한 몸이 힐끗힐끗 보였고 그의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내 잠옷을 적셨다.

 

  "정말이지 자각이 없으신 것 같네요."

 

  나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 침대에 앉아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로즐리는 미간을 조금 좁혔다.

 

  "뭐하는 짓이지?"

 

  "영식이 바라던 걸 해볼까 하고요."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마 자존심이 상하겠지.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걸터앉아 있는 그의 무릎 위로 올라탔다.

 

  내 가느다란 손이 다리부터 서서히 위로 올라가자 로즐리는 위기감을 느꼈는지 내 손을 꽤나 세게 잡아챘다.

 

  "내가 졌어. 그러니 너도 그만하는 게 좋겠군."

 

  "바라신다면야."

 

  나는 마치 사교계에 갓 데뷔한 영애처럼 우아하게 치마를 살짝 올려 인사했다. 질린 표정의 로즐리는 하, 하고 한숨섞인 웃음을 내뱉었다.

 

  "항상 그런 식으로 남자를 갖고 노나?'

 

  "어머나, 제가 어지간히 매력적이었나 보군요. 그런 질문을 다 하시고."

 

  "그런 게 아니라...! 하. 말할 가치가 없군."

 

  로즐리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털었다. 묘한 승리감을 느낀 나는 그의 눈을 피해 몰래 키득거렸다.

 

  "아 참. 저희 계약 내용. 이행 안 합니까? 계획이라도 짜둬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야지. 그 전에 테스트부터 하자."

 

  내 물음에 그는 언제 신경질을 냈냐는 듯 무언가를 들고 왔다.

 

  "여기에 손을 대 봐. 정확하진 않지만, 전투력을 대강 측정해줄 거야."

 

  나는 얌전히 수정구에 손을 댔다. 솔직히 좀 기대하긴 했다. 왜냐하면 나는 단 한번도 나의 실력을 검증받는 테스트를 해본 적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마법사의 수정구는 오차가 거의 없기로 유명했다. 그러니까 정확하지 않다는 그의 말은 아마도 겉치레일 것이다.

 

  수정구는 내가 손을 대자마자 새빨갛게 변했다. 뭐야. 이런 반응은 듣도보도 못했는데. 설마 오류인가? 마법사의 수정구, 그것도 대마법사의 길을 착실히 걷는 로즐리의 수정구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거 왜 이래요."

 

  "낸들 아냐. 나도 몰라."

 

  그의 말투는 침착했지만, 행동은 명백한 당황이었다. 수정구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로즐리는 이내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가끔 수정구가 측정할 수 있는 전투력을 넘어가면 이럴 때가 있긴 한데. ....네가?"

 

  꼭 이럴 때마저 재수 없다니까.

 

  "하. 제가 누군지는 알고 계신 겁니까? 제국의 셋밖에 없는 발현자 중 하나라고요."

 

  "그래. 그것도 말이 되는군."

 

  아니, 야. 네가 그렇게 쉽게 긍정하면 어떡해. 그래도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날 인정했단 얘기니까.

 

  "그럼 이제 기술을 배워야하지 않겠어?"

 

  기술. 그러고 보니 나는 발현자가 어떻게 독자적인 기술을 만드는지 몰랐다. 그걸 알려면 다른 발현자, 그러니까 나보다 먼저 발현자가 된 사람을 찾아가야 했다. 일종의 스승님같은 것이었다.

 

  "그건 그렇지만... 황궁 안에 있는 발현자를 위험부담이 크고, 숲으로 들어간 발현자는 저를 안 만나줄 겁니다."

 

  "그러니까 만나게 해야지."

 

  "예?"

 

  헛웃음만 나왔다. 숲으로 들어가서 10년째 나오지도 않고 만남도 하지 않는 사람을 무슨 수로.

 

  "나는 몰라도 너라면 할 수 있어. 너 자신을 믿어. 네가 널 믿지 않으면 아무도 널 믿으려 하지 않아."

 

  "...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즐리가 답지않게 잠깐 미소지었다. 순간 손 끝이 조금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착각이겠지.

 

  "자, 그럼 난 이만 가본다."

 

  "어디를요?"

 

  내가 반문하자 그는 미간을 좁혔다.

 

  "당연히 수업이지. 멍청이냐?"

 

  "지금 몇 시죠?"

 

  "4시 3분 조금 넘어가네."

 

  수업시간은 4시 30분이었지만, 나는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늦어서 또 모욕적인 언사를 듣고 싶진 않았다.

 

  나무문을 박차고 들어갔더니 그 안에는 4명의 학생들과 하렐 교수가 있었다.

 

  "아, 왔구나?"

 

  학생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전부 입학 때 2등부터 5등까지의 성적을 차지한 영식들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너희는 입학시험 때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이들이다. 그런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지. 여기는."

 

  교수님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평소의 설렁설렁한 모습과는 딴 판이었다.

 

  한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얼마 못가 그 정적은 깨졌다. 한 사람의 웃음소리로.

 

  "나 참. 여자한테 뭘 배우라는 건지."

 

  명백한 조롱과 무시였다. 여성은 그 어떤 사회적 지위도 가져선 안 된다는.

 

  "그러니까 말이야. 더군다나 여자 한 수업에 둘이나 있다니. 이게 말이 돼?"

 

  나는 하렐 교수와 눈빛을 교환했다. 다행이도, 생각이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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