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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프라친카치아 (미친+가짜+츠프라카치아)
작가 : 나드
작품등록일 : 2017.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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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소설_6> 미프라친카치아 (미친 + 가짜 + 프라카치아)
작성일 : 17-12-13     조회 : 336     추천 : 0     분량 : 5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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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정적이 깨졌지만 여의사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말문을 열었다.

 자신을 J라 소개한 의사는 내 심리 테스트 결과를 살피고 있었다고 했다. 예진설문 분석이 나오는 동안은 상담시간에서 제외되는 것이니 염려 말라고 했다. 의사가 자료를 더 살펴보는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나는 민망함으로 붉어진 얼굴을 달래보려 손부채질을 해댔다. '이런식으로 시간떼우며 돈버냐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면전에 하다니!' 생각으로만 있어야 할 말이 입을 타고 어그적 거리며 나와버린 까닭이었다. 병원에서까지 이런 반응을 보이는 난 정신적으로 심하게 뒤틀린 상태구나를 자각할 수 있었다. 민망함에 의사를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황급히 돌렸다. 돌린 시선에 들어온 무엇 때문에 그나마 그 불편한 상황을 견딜 수 있었다. 그 무엇은 대기실에서 본 ‘미프라친카치아’였다. 대체 왜 새장에 갇힌 채 진료실에도 있는 것일까 궁금해 하면서, 새장이 아니라 식물장이 되어버린 노란색 창살속의 '미프라친카치아'를 핸드폰으로 사진 찍었다.

  잠시 후 고개를 든 의사는 내 상태가 자살 충동이 가득 차 있는 위험한 단계라고 했다. 왠지 돌팔이 의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담을 계속 진행했다. 그 외에도 나에 대해 몇 가지 더 짚어 내었다. 그 네장정도에 불과한 문항들을 통해 나에 대해 알아낸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J씨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내 입술로 조잘거렸다는 것이었다. 내 얘기 중간 중간 호응해주는 그 여자의 반응이 나를 더 처참하게 만드는 기분이 들어서 더 이상 내 얘기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입에 지퍼를 달아서 잠그는 상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나는 계속 쫑알댔다.

  실컷 내 속 얘기를 하고 나서도 의심의 눈초리로 쏘아보았는데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J씨였다. 그녀는 담담한 눈으로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내 의심과는 달리 그녀는 어떤 의심도 불안도 없이 단지 나와 소통하고 싶을 뿐이라는 마음을 눈빛으로 보내오는 것 같았다.그 묘한 힘에 이끌려 진행된 첫 질료와 상담이 신기했으면서도 뭐에 홀린듯해서 다시는 오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작별인사를 고하고 병원을 나왔다. 그러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상하게 며칠 동안 J씨의 눈빛과 관심을 잊을 수 없었다. 그 묘한 힘에 이끌려 J씨와의 만남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졌다. 성격유형검사인 MBTI와 에니어그램, 행동유형 검사인 DISC, 정신병리 집단을 가려내기 위한 다면적 인성검사라는 MMPI등 여러 정신분석검사까지 했다. 게다가 그 여자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과거 상처들을 다 토해내기까지 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이끌려 내가 움직여지는 것만 같았다. 이처럼 J씨를 만나는 순간에는 내가 나답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J씨를 만나기 전의 내가 불쑥 고개를 들곤 했다. 이런 내 상태를 알기라도 한 듯이 J씨는 약 처방전을 써주면서 잘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다.

  J씨가 처방한 약이 무슨 약인지 궁금해서 약사에게 물었더니 신경안정제라고만 대답했다. 분명 처방전에는 일곱 가지가 적혀있는데 한마디만 하는 그 약사에게 왜 그리 성의 없이 대답하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말을 삼켰다. ‘이 사람아 운 좋은 줄 아시게! 그냥 참고 갈 테니 그 따위로 건성으로 장사하지 마!’ 라는 말을 눈빛에 담아 표독스럽게 약사를 쏘아본 후 문을 박차고 나왔다. 길가로 나와서는 분이 풀리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것으로 속을 풀었다.

  일명 스마트폰이라고 불리는 3G핸드폰을 내 것으로 맞이하지 않고, 마치 2G핸드폰 찬양론자처럼 일명 ‘조선폰’이라 불리는 것을 8년째 사용하고 있었던 까닭에 머리끝까지 찬 궁금함을 즉시 검색해 볼 수가 없었다. PC방은 담배와 라면냄새가 찌든 악취가 방향제와 뒤섞인 채 콧속을 엄습할 것이고, 정신없이 울어대는 게임 소음이 귀를 괴롭힐 것이 분명하기에 발기도 주기 싫었다. 그 까닭에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낮 2시 3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학원으로 바로 출근했다. 환자보관용으로 받아온 처방전에 적힌 약 이름을 인터넷 검색창에 쓰고 답을 얻었다. 왜곡현상과 망상현상이 있는 환자가 먹는 약 두 알과 항우울제, 식욕촉진제와 소화제, 공복에 먹으라는 위 보호약 그리고 밤에만 먹으라고 체크된 수면제였다. 그 답을 받은 기쁨도 잠시,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겼다.

 ‘내가 무엇을 왜곡한다는 거지? 난 과거 사실만 말했을 뿐인데 무슨 망상?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며 사는데 무슨 우울? 평소에 잘 먹고 잘 싸는데 무슨 식욕촉진제와 소화제? 식욕을 촉진시킬 약을 먹여서 과식하게 해 놓고는 소화시키라고 소화제를 또 먹이는 거야? 도대체 무슨 모순이야? 약 과다 복용시키는 것 아니야? 의료보험공단에 신고할까? 위보호제를 줄 생각 말고 위를 구멍 나게 할 수 있는 약의 양을 줄여줄 것이지! 약 많이 먹다가 위에 병나고 그것 치료하려고 또 약 먹기의 악순환으로 인해, 정신질환 치료하다가 저세상 가갔네.’ 이렇게 약에 대한 물음표를 시작으로 결국은 내가 약에 의해 죽는 것까지 상상하며 속에서 화를 끓이고 있었다. 그렇게 신경질적인 물음표를 발생시켜서 꼬리 물고 확장하기를 하며 뇌세포들은 정신세계에서 쉼 없이 널뛰기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왕성한 식욕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밥 한 그릇을 고집스럽게 비우고 그렇게 욕하던 그 일곱알의 약을 꼬박꼬박 잘도 챙겨 먹었고 병원도 주기적으로 잘 다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의사 J씨를 찾아갈 때마다 그녀에게 내 속 얘기를 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J씨의 용어를 빌리자면 ‘쓴 뿌리 찾기’라는 치유의 필수 과정이었다. 그것은 권위자로부터 과거에 받은 상처를 발견하고, 견고하게 뿌리내린 상처를 끄집어내서 제거하는 것인데 나에게 불가피한 그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무엇인가에 이끌려 내 과거 얘기를 다 토해내고 나서부터 J씨는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 여자는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랬다. 기실 상담치료와 복용한 약의 효과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다섯 번째 만남 후로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그 기간에는 일산화탄소를 마셨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쓰러져서 병원에 수송된 적도 없었기 때문에 의사 P의 얼굴도 볼일이 없었다. 내가 J를 만났던 과정이 치료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속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 한 유일한 친구를 얻었다 생각하고 일주일에 한번 씩 그 여자를 만나러 병원으로 나들이 갔다.

 

  인체의 흐름을 따라 S자의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는 핑크색 욕조에 말려놓은 보라색 라벤더 꽃과 노란 국화꽃을 거품입욕제와 함께 넣었다. 말려진 상태로 있던 꽃 봉우리가 뜨거운 물을 만나자 만개하면서 수면위로 둥둥 피어올랐다. 노랑과 보라의 오묘한 색상 조화와 국화꽃향기를 즐기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색체의 어울림이 인간 내면에서 나오는 감정처럼 느껴진다는 것에 놀라고 있을 때였다. 문득 새장 속에 있던 미프라친카치아가 떠올랐다. 마른 잎의 국화도 이런데 당당하게 ‘사람의 영혼을 가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그 식물은 내게 어떤 놀라움을 선물해 줄까? 무엇인가에 기대하는 감정이 생긴 것은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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