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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내리면 피는 꽃
작가 : 꿍아
작품등록일 :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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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복이와 금석이
작성일 : 17-12-12     조회 : 349     추천 : 0     분량 : 4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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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이 집 앞 마당. 새어나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안심하는 한 남자가 있다.

 

 바로 며칠 전 원범을 구해준 하주다.

 

 검은 옷에 얼굴을 전부 가린 갓을 쓰고 있는 하주는

 

 웃고 있었다.

 

 

 “그래. 그리 소리 없이 살거라. 그럼 되었다.”

 

 

 원범을 향해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하주는 뒤돌아 걸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하주는 응경이 죽은 동굴 앞까지 왔다.

 

 하주는 주위를 잠시 경계하고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바로 며칠 전 기혁의 눈을 피해 숨겨둔 응경의 시신이 있었다.

 

 

 “다행히 짐승이 물어가지는 않았군..”

 

 

 하주는 응경의 시체를 품에 안고 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응경을 내려놓고는 말없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하주는 자신의 허벅지 정도의 깊이까지 묵묵히 땅을 팠다.

 

 그러더니 응경의 시체를 조심스럽게 땅속에 눕혔다.

 

 

 “내 너를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구나. 하지만 너의 몫까지 원범은 끝까지 지켜내겠다.”

 

 

 이내 응경 위로 흙을 덮고 그 위에 돌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돌을 쌓는 하주의 손이 점점 느려지더니 이내 손을 멈추고 한손으로 무덤을 집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해서 제가 멈추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안될 일이라 말했잖아요...이게 뭡니까”

 

 

 하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주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응경의 무덤에 엎드려 어린 아이 처럼 울기 시작했다.

 

 

 “저는 약조를 지켰습니다.. 조선 최고의 무사가 되었어요. 허나 이광 당신은 어찌 이리 허망하게 가셨단 말입니까.”

 

 한참을 서럽게 울던 하주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술을 응경의 무덤에 뿌린다.

 

 “약속을 바꾸겠습니다. 반드시 지켜낼게요. 당신의 아들을. 아저씨 당신을 저승에서 만나는 그날까지.”

 

 

 

 ** 금석 이와 효복이**

 

 이른 아침 이광의 집이 시끄럽다.

 

 

 “이런 거지새끼가 어디 남의 집에서 밥을 훔쳐 먹어! 너 또 뭐 훔쳤어 밥 말고 또 뭐 훔쳤냐고!”

 

 

 이광의 집 노비 종만의 목소리다.

 

 평소에도 성격이 투박하고 언행이 거칠어 늘 이광에게 주의를 받고 있지만 그 고약한 성품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그런 종만이 오늘은 이제 다섯 살이나 됐을 정도로 작은 아이 둘의 목덜미를 잡고 연신 흔들어대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정말이에요 너무 배가 고파서...정말 밥만 훔쳐 먹은 거예요 진짜에요”

 

 

 종만의 오른 손에 잡혀있던 효복이 종만의 손을 잡고 울며 말했다.

 

 반면 왼손에 있는 금석은 울지도 않고 종만을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다.

 

 종만은 그런 금석을 보자 더 부아가 치밀었다.

 

 

 “아니 근데 이 거지새끼가 뭘 잘했다고 눈깔을 그렇게 뜨는 거야!”

 

 

 종만이 금석을 내리치려 손을 올렸다. 그러자 효복이 그 손을 붙잡으며 애원했다.

 

 

 “잘못했어요. 다신 안 올게요. 한번만 봐주세요. 이틀이나 굶어서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어요.”

 

 

 “됐고, 당장 관아로 가자 너 같은 놈들은 혼쭐을 내줘야해.”

 

 

 종만이 효복과 금석의 뒷덜미를 잡고는 질질 끌고 갔다. 그때

 

 

 “밖이 왜 이리 소란스러운 것이냐?”

 

 

 방 안에서 이 집의 주인 이광이 나왔다. 낮지만 근엄한 목소리엔 위엄이 있었고,

 

 비단 옷을 입지도 값비싼 장신구를 하지도 않았지만 그에게는 고귀함이 묻어났다.

 

 

 “아 그게 글쎄 소인이 아침에 와보니 이놈들이 부엌에서 음식을 훔쳐 먹고 있지 뭡니까. 하여 혼쭐을 내주고 지금 관아로 끌고 가려 하는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종만이 말하였다. 그러자 이광이 버럭 화를 냈다.

 

 

 “지금 이제 무슨 짓이야. 그 아이들은 내 손님이다. 당장 정중하게 사과하여라.”

 

 

 종만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광에게 말했다.

 

 

 “네? 이..거지새끼들이 대감마님의 손님이라고요?”

 

 

 “어허 그래도 이놈이 당장 사과하지 못해! 네놈이야 말로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종만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효복이와 금석의 뒷덜미를 내려놓았다.

 

 

 “미안하다.”

 

 

 종만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를 했다.

 

 

 “내 그 성미를 고치라 그리 일렀거늘 몇 번을 더 말해야 듣겠느냐! 어서 방으로 모셔라!”

 

 

 이광이 다시 종만 에게 호통을 치고 들어갔다.

 

 

 금석과 효복은 영문을 몰라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종만은 이광이 들어간 방을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금석과 효복의 등을 우악스럽게 밀었다,

 

 

 “뭐해? 들어오라 시잖아 이 거지새끼들아”

 

 

 “우리 거지새끼 아니라고! 이 돼지새끼야!”

 

 

 금석이 자신의 등을 밀어대는 종만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 질렀다.

 

 

 “아니 근데 이놈이”

 

 

 종만이 다시 손을 올려 금석을 내리치려다가 이광이 들어간 방문을 쳐다보고는 마지못해 손을 내린다.

 

 

 “오늘 이후로 한번만 더 눈에 띄어봐 그땐 정말 가만 안 둬!”

 

 

 종만의 손에 떠밀려 금석과 효복은 얼떨결에 이광의 방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방바닥에 발을 디디는 순간 둘은 온몸이 녹는 기분이었다.

 

 금석과 효복은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기였다.

 

 

 “이리 와서 앉아라.”

 

 

 이광이 둘을 향해 손짓했다. 하지만 둘 다 쭈뼛거리기만 하고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괜찮아. 혼내려는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제야 둘은 슬금슬금 이광의 앞으로 와서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금석이 볼멘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우리를 손님이라고 해요?”

 

 

 그러자 이광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면, 그냥 그대로 관아에 끌려가도록 둘 걸 그랬느냐?”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냐고요”

 

 

 “허허 당돌한 놈이네.

 나한테도 너희만한 아들이 있단다. 그래서 너희를 모른 체 할 수 가 없구나.

 앞으론 배가 고프면 몰래 들어와 먹지 말고 언제든 대문을 두드리고 당당하게 들어와 먹어라. 사내자식이 부끄럽게 그게 뭐니”

 

 

 “우리가 왜요!”

 

 

 금석이 발끈하여 소리를 지른다. 효복이 그런 금석에게 그만 하라는 뜻으로 옷깃을 잡아 끓었다.

 

 하지만 금석은 그마저 뿌리치더니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아저씨가 우리가 정말 거지새끼들인 줄 알잖아. 양반이면 다에요? 아저씨가 뭔데 우릴 동정 하냐고!”

 

 

 금석은 이광을 향해 퍼붓듯 말하고 방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런 금석을 보며 이광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다 금석을 쫓아나가지 않고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효복을 향해 말했다.

 

 

 “너는 왜 따라 나가지 않느냐?”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요”

 

 

 효복이 웅얼거리듯 말했다. 이광은 효복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며칠을 굶었는지 까칠한 얼굴과 군데군데 찢어져 너덜너덜한 옷.

 

 그 어느 곳에도 어미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았다.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여덟입니다.”

 

 

 이광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금석과 효복의 왜소한 체구로 인해 이제 겨우 다섯 살 정도 되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어디계시고 너희 둘이 이렇게 다니는 거니?”

 

 

 “금석이네 부모님도 우리 부모님도.. 돌아가셨어요..”

 

 

 효복이 담담하게 말한다.

 

 

 “어쩌다 돌아가셨는지 물어봐도 되겠니?”

 

 

 “금석이랑 저랑은 같은 동네 살았어요.

 저는 어머니랑 단 둘이 살았는데 금석이네 부모님이 끝도 없이 오르는 조세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울 끊었어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금석이네 조세까지 떠안게 됐고

 결국 내지 못해 어머니는 관아로 불려가 곤장을 맞으셨어요.

 근데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하셔서 우리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금석이랑 저만 남아서 지금은 여기 저기 다니면서 밥을 얻어먹고 있어요..”

 

 

 “어찌..그런 일이”

 

 

 “그래도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운이 좋다니?”

 

 

 “옆 동네는 조세 못 냈다고 부모고 자식이고 모두 관노로 넘겨버렸대요 그래도 우리는 노비는 안됐잖아요..”

 

 

 이광은 효복을 안타깝게 쳐다봤다. 그는 문득 왕족의 신분인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세상을 바꾸진 못하여도 내 눈앞에 있는 이 삐쩍 마른 아이의 인생은 내 반드시 바꿔 주고 싶다..’

 

 

 이광이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자 효복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감사해요. 그리고 금석이 대신 사과드릴게요. 쟤가 마음은 착한데 부모님이 금석이만 두고 그렇게 가셔서 조금 삐뚤어졌어요. 저 이만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효복이 이광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가려 한다.

 

 그런 효복을 이광이 다급히 붙잡았다.

 

 

 “밥을 구걸하여 살지 않을 길을 알려주마.”

 

 

 그러자 효복이 고개를 저었다.

 

 

 “안돼요. 아저씨도 아까 금석이 봤잖아요. 거지 취급 하지 말라고 난리치는 거..마음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아니. 우리 집에서 공짜로 밥을 얻어먹으라는 것이 아니다. 너희를 스스로 지킬 힘을 갖게 해주겠다는 거야.”

 

 

 “스스로 지킬 힘이요?”

 

 

 “그래. 힘이 있다면 적어도 자신과 네가 아끼는 사람들을 지키며 살 수 있어”

 

 

 “그 방법이 뭔데요?”

 

 

 “내 너희에게 검술을 가르칠 스승을 소개해주마. 일단 거기서 먹고 자며 검술을 배워.”

 

 

 “검술이요? 그걸 배운다고 우리가 힘이 생겨요..?”

 

 

 “날 믿고 한번 해보 거라. 내 서찰을 써 줄 테니 내가 알려주는 곳으로 가보 거라.”

 

 

 “근데요 밥이나 훔쳐 먹으러 온 저희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조선 최고의 무사가 되어라. 그래서 나를 지키러 돌아와.”

 

 

 효복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이내 결심한 듯 빛나는 눈빛으로 이광을 올려보며 말했다.

 

 

 “할게요! 서찰 꼭 써주세요. 대신 금석이도 같이 갈게요. 꼭 조선 최고의 무사가 돼서 아저씨 목숨 지켜드리러 돌아올게요!”

 

 그날 이광은 두 거렁뱅이 아이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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