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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r)헤어날 수 없는 탈모
작가 : 탈모인
작품등록일 : 2017.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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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장: 피부과, 불안
작성일 : 17-12-16     조회 : 326     추천 : 0     분량 : 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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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피부과(dermatology)

  중학교 마지막 시험이 끝난 날이었다. 머리카락이 빠진 지 3주에 다다른 날이었다. 시험을 치르고 정오의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이 퇴근하는 이슥한 밤까지 나는 탈모에 대해 검색하고, 머리를 확인하며 기다렸다. 인터넷을 통해 탈모는 피부과에서 진료한다는 걸 파악했다. 또한, 거울 두 개와 왼손으로 점검한 끝에 병변이 좀 더 넓어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50원은 어느덧 500원이 되어 있었다. 두피에서 만져지는 매끈한 500원은 차가운 쇳덩이로 전환되어 가슴속 깊숙한 연못으로 가라앉았다. 무서웠다. 찜찜함을 넘어선 시커먼 공포가, 모래사장을 덮치는 거대한 파도처럼 가슴속을 짓눌렀다. 더 이상은 숨길 수도 미룰 수도 없었다.

  퇴근 후 내 머리를 살펴본 부모님은, 특히 엄마는 화들짝 놀란 기색이었다.

 “원형 탈모 같은데. 내일 학교 끝나고 피부과에 가 보자.”

  다음 날, 엄마와 나는 피부과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해산바닷가 백사장이 엿보이는 정류장에서 엄마와 나는 내렸다. U피부과는 해산바닷가 앞의 대형마트 옆에 위치한 3층짜리 건물의 1층에 위치했다. 2층에는 심리상담센터, 3층에는 정신과가 들어서 있었다. U피부과 간판이 눈에 들어오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피부과에 가는 건 생전 처음이었다. 소아과, 이비인후과, 치과, 한의원이야 이따금씩 가 봤지만 말이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접수대로 다가가자 간호사가 맞아주었다.

 “어제 예약했습니다.” 라고 엄마가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엄마는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모니터를 잠시 들여다보더니 간호사는 대기석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로 대기석 소파는 빽빽했고, 엄마와 나는 구석진 자리에다 겨우 엉덩이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엉덩이가 살짝 가라앉을 정도로 소파는 푹신했고, 바로 앞에는 48인치 벽걸이용 텔레비전이 걸려 있었다. 잡지가 얹힌 유리 테이블은 먼지 하나 없을 정도로 말끔했다. 의원 내부를 전반적으로 감싸는 베이지 풍의 인테리어 또한 더없이 말쑥했지만, 나는 그저 불안하고 초조했다.

  의사의 이름이 적힌 진료실은 악어의 입처럼 환자들을 집어삼켰다. 이따금씩 의사는 진료실에서 나와 처치실로 들어가기도 했다. 30분은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30분이라는 시간 내내 나는 불안함과 초조함의 시소를 번갈아 타며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러다 마침내 우두커니 앉아 있던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한지현, 1번방으로 들어오세요."

  진료실 문을 열고 피부과 의사에게 인사한 뒤에 나는 책상 앞의 의자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왁스를 듬뿍 바른 올백머리의 젊은 의사는 컴퓨터 뒤에 앉아 있었다. 주름 한 점 없는 새하얀 얼굴의 피부과 의사는 귓불까지 내려오는 구레나룻이 인상적이었다. 하얀 가운 속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청색 와이셔츠를 받쳐 입은 차림이었다. 의자에 걸터앉은 나를 보며 피부과 의사는 문진을 시작했다. 창백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목소리는 온화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우리 애가 머리카락이 빠져서 왔습니다. 뒤통수 쪽이 훤해졌더라고요.”

 “그래요? 머리 한번 봅시다.”

  의자에서 일어난 피부과 의사는 내 뒤로 다가왔고, 나는 머리카락이 빠진 부위를 왼손으로 가리켰다. 긴 생머리를 파헤치며 검은 수풀을 탐색하던 피부과 의사는 곧 수색을 멈췄다. 잠시 동안 하얀 500원을 들여다보던 피부과 의사는 이번엔 머리 전체를 전반적으로 살펴보았다. 머리검사를 마친 뒤에 피부과 의사는 다시 의자로 돌아갔다.

 “머리카락은 언제부터 빠지기 시작했습니까?”

 “어젯밤에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저한테 말하더라고요.” 엄마가 말했다.

 “발견은 어제 했단 말이군요. 처음 빠진 겁니까? 아니면 예전에도 빠진 적이 있었습니까?”

 “처음이에요.”

 “음, 처음이군요.”

  엄마와의 대화가 끝나자 피부과 의사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15초도 안 되어 손가락 운동을 멈추더니 피부과 의사는 엄마와 나를 차례대로 바라보았다. 판결을 앞둔 피고처럼 나는 피부과 의사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다. 깍지 낀 나의 양손은 땀으로 습지를 이뤘고, 초조하게 박동하던 심장마저 차갑게 숨죽이고 있었다.

 “원형 탈모증입니다. 거의 500원짜리 동전 만한데,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 봅시다. 주사는 2주 간격으로 6번을 맞아야 하니까 일단 오늘 맞고, 다음번에는 2주 뒤에 오시면 됩니다.”

 “머리카락은 다 날까요?”

  엄마의 말에 피부과 의사는 왼손의 검지와 엄지를 동전 모양으로 둥글게 말며 말했다.

 “탈모 병변이 500원보다 크면 머리카락이 자라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려요. 그것보다 크기가 작으면 빨리 나고요. 지금은 딱 500원만 한데, 몇 달 있으면 다 날 겁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긍정적인 답변이었다. '몇 달'이나 걸린다는 게 다소 신경 쓰이긴 했지만 나는 비로소 한 조각의 웃음을 머금을 수 있었다. 불안하게 요동치던 내 마음속 호수는 일순간에 평온한 잔디로 뒤덮였다. 피부과 의사를 따라 엄마와 나는 진료실을 나와 처치실에 들어갔다. 의료용 침대 위에 엎은 자세로 누우라고 피부과 의사는 나에게 지시했다. 잠시 뒤 피부과 의사는 내 머리털을 들추더니 조금 따끔할 거라고 말했다. 조금 따끔할 거라는 말과 달리 내 입에선 ‘앗’하는 신음소리가 반사적으로 새어 나왔다. 엉덩이 주사와 치과 스케일링보다도 한수 위의 통증이었다. 피부과 의사는 머리카락이 사라진 그곳에, 그러니까 왼쪽 귀 근처 후두부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은 것이다.

  주사를 놓아준 뒤에 피부과 의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를 돌려보냈다. 처치실을 나가면서 나는 피부과 의사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곧이어 다음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고, 엄마와 나는 진료비를 내고 피부과를 빠져나왔다.

  청아했던 하늘은 어느덧 누르스름하게 변질된 상태였다. 시원한 바람을 맞은 머리털은 검은 나비처럼 사뿐히 나풀거렸다. 스테로이드 주사 한 방에 며칠 동안 느꼈던 막연한 불안함은 눈 녹듯 사라졌다. 찜찜함과 불안함, 두려움과 무서움의 감정은 어느덧 홀가분함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더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5. 불안(anxiety)

  머리카락은 다음 날 아침에도 빠졌다. 주사 맞은 지 이제 하루 됐으니까, 라는 심정으로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하루도 빠짐없이 머리카락은 계속 빠졌고, 주사 한 방이 선물한 안도감은 깡그리 바닥나 버렸다. 머리를 물에 적실 때까지는 괜찮았다. 샴푸를 묻혀 거품을 낼 때도 마찬가지였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건 두피를 빡빡 문지르는, 절묘한 마찰의 순간이었다. 손끝에서 두피로, 섬세한 압력과 속도가 가해질 때면 머리카락은 속절없이 빠져 버렸다.

  2주라는 시간이 그런 식으로 흘러갔고, 우중충한 마음으로 나는 두 번째 진료를 맞이하게 되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나는 버스를 타고 머리에 주사 맞으러 U피부과에 갔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피부과 의사는 곧바로 나를 처치실로 데려갔고 저번처럼 엎드리라고 말했다.

  날카로운 주삿바늘을 튕기는 피부과 의사에게 나는 머리카락이 계속해서 빠진다고 호소하였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그 끔찍한 기분을, 나는 그저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표현할 뿐이었다. 주사를 놓아준 뒤에 피부과 의사는 머리채를 들추며 병변을 살펴보았다.

 “흠, 확실히 탈모 병변이 계속 넓어지네. 그러면 주사 맞는 간격을 좀 줄여보자. 이제부터는 일주일마다 주사 맞자.”

  머리에서 떨어진 머리카락은 화장실 바닥의 물줄기를 타고 힘없이 배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지독한 광경은 아침마다 반복되었다. 날이 갈수록 화장실 바닥의 새까만 시체는 늘어만 갔고 줄어들 기미는 전무했다. 당연히, 지극히 자연스럽게 나는 공포와 불안에 휩싸이며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고, 피부과에 가는 일주일의 간격이 탄성을 잃은 용수철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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