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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속의 남자
작가 : 탁지원
작품등록일 :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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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완전한 각성 (2)
작성일 : 17-12-18     조회 : 293     추천 : 1     분량 : 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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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한주가 더 흘러가니까 돈이 백만원도 채 남지 않았다.

 여인숙비와 PC방, 그리고 식비만 해도 하루에 나가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거기다 옷이 없어서 위아래 옷과 속옷 몇 벌 사입었더니 돈이 한꺼번에 엄청 나갔다. 게다가 짐을 넣고 다닐 싸구려 비닐 가방까지 샀더니 무슨 엄청난 사치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돈이 들지 않는 여수여객선 터미널이나 근처 돌산대교 너머 돌산공원에서 보내기로 했다. 다행히 무더운 여름날씨에 공원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낮에 혼자서 시간 보내기에는 적당했다.

 

 난 그곳 나무 밑 그늘에 앉아 나의 능력에 대하여 깊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자유자재로 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지 못했다. 어떨때는 쉽게 쑥 벽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어떨때는 아무리 용을 써도 손가락 한마디도 벽에 집어 넣을 수가 없었다.

 

 난 문방구에서 종이와 펜을 사다가 나의 능력에 관한 사항을 적으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어떤 환경에서 나의 능력이 발휘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동안 발휘됐던 상황들을 되짚어보니 전부 급박한 상황들 뿐이었다. 지난번 학교 소각장에서 엄지발가락 하나만 들어가는 신공을 발휘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최악의 사건을 생각하며 공포감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면서 정신을 집중하여 얻은 결과였다.

 그렇다. 나는 긴박하거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고도의 집중을 할 때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필요할 때마다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좋다. 그 다음은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벽에 관한 질문들 이었다. 난 여태까지 시멘트 벽속에만 들어갔었다. 그럼 다른 벽은? 물론 대부분의 벽이 시멘트이기는 하나 목재나 금속,석재로 되어 있는 벽도 있지 않은가. 마침 주위에 커다란 오동나무가 있어 그 나무를 벽으로 생각하고 그 기둥에 들어가 보려 했다.

 

 “야잇!”

 신발을 벗고 발가락을 들이밀어 보았다.

 전혀 들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세게 밀다가 발가락이 부러질 뻔했다.

 두세번 더 시도해보았다.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나무는 안되는 건가?’

 

 날도 더워서 그냥 포기하고 싶었다. 될려면 제대로 되든가. 이따위 되다 말다 하는 능력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짜증이 났다.

 게다가 무슨 슈퍼파워도 아니고 겨우 벽속에 숨는 따위의 능력이라니. 나의 보잘 것 없는 능력이 하두 한심해서 나도 모르게 열이 머리 끝까지 뻗쳐 올라왔다.

 

 그 상태에서 에이! 이런 제기랄 하면서 눈앞의 나무를 걷어 찼다. 그 순간 앞으로 뻗은 오른발이 그만 쑥하고 그 나무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다. 나무는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재질 이었다.

 

 내친김에 석재와 금속에도 바로 도전했다.

 주변에 충혼탑이라고 석재로 되어 있는 높은 조각물이 있어 거기다 시험 해보았다. 역시 정신을 집중하고 발을 쑥 밀어 넣어 보았다. 나의 오른발은 큰 무리없이 석재속으로 쓱하고 사라졌다.

 

 ‘좋았어. 아무래도 재질보다는 얼마나 집중하느냐 하는 심리상태에 영향을 받는 것 같군’

 

 무언가 하나라도 정리하고 결론을 내리자 마음속이 좀 차분해졌다.

 

 돌산공원에서 내려오면서 철제로 된 어느 집 대문앞을 지나게 되었다.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해서 발을 쓱 들이 밀어 보았다.

 

 발이 들어가긴 했는데 그 안에 머물러 있는게 아니라 대문 반대편으로 발이 쑥하고 튀어 나왔다. 아무래도 너무 얇은 금속 철판에는 머물러 있지 못하고 그냥 반대편으로 통과가 되는 것 같았다.

 

 벽도 내가 들어갈 만한 충분한 두꺼운 두께나 높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가지 더 실험을 하고 싶었지만 무더운 날씨에 쉬지 않고 여러가지 실험을 해서 땀이 비오듯 했기 때문에 오늘은 여기서 그만 하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고 더 많은 실험과 검증이 필요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내 몸에 지닌 사물과 같이 내가 벽속으로 이동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일단은 내가 신은 운동화, 옷 등은 내가 벽속으로 이동할 때 같이 이동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더 크거나 다른 재질이거나 무언가 특별한 것이라면? 그때도 같이 이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일단은 중요한 정보를 몇가지 얻었기에 몸이 지친 나는 이제 그만 좀 쉬러 가기로 했다.

 

 근처 시계탑에 시간을 확인했다. 근처에 찜질방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저녁 6시 이후에 가야만 했다. 그래야만 추가요금 없이 아침까지 취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늦게까지 근처에서 그냥 개기기로 했다.

 

 시간을 죽이느라 할 일도 없이 수산물 시장에서 비린내 나는 생선 구경을 하다가 저 멀리 자산공원에 이순신 장군님 동상 앞까지 그냥 터벅거리며 걸어갔다.

 

 이순신 장군님 동상 앞에 서니까 동상은 구리로 주조하여 지는 석양의 햇빛에 강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장군님의 동상은 높다란 석탑 위 이층에 서 계셨다.

 

 난 주위에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석탑을 통해서 벽안으로 들어가서 스물거리며 이동하여 맨위 장군님 동상의 투구 꼭대기까지 올라 가보았다. 그곳에서 내려다 보는 자산공원의 밑에 펼쳐진 돌산도 앞바다가 볼만 했다.

 

 나는 잠시 동상안에 머물렀는데 너무 뜨거워서 오래 참지 못하고 다시 스물거리며 밑으로 해서 내려왔다.

 

 그 때 시간이 얼추 6시가 다 되어가서 나는 이제 그만 찜질방에 가기로 했다. 오늘은 찜질방에서 자고 거기서 컵라면으로 저녁 아침을 때울 생각 이었다. 운이 좋아 관리인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이틀 정도도 버텨 볼만 했다.

 

 혼자 다니면서 가장 짜증나는 것이 심심하면 찜질방이나 여인숙에서 민증을 제시하라고 하면서 확인하려 드는 것이었다.

 내가 93년생 10월 생으로 만 17세가 안됐기 때문에 밤에는 찜질방이나 여인숙을 혼자서 출입할 수 없었다.

 그동안 대충 부모님을 찾으러 왔다는 둥 민증을 두고 왔다는 둥 별별 핑계를 다 대고 통과 했지만 언제 무슨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었다.

 

 하루 빨리 이 불안한 상황을 타개하고 다시 서울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집에 가면 다시 에릭이 나타날 것만 같아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전화 몇 통화만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번개같이 들이 닥친 그 검은 잠바 사내들을 떠올려 보면 지금 나는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 연락조차 쉽게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만일 그때 수상한 화물차 기사가 준 전화번호만 있었다면? 그래서 약속한 시간에 통화만 했었다면?

 나는 그가 무슨 해법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번호를 적은 쪽지를 잃어 버린 상황에서 모든게 다 부질 없는 가정이었다.

 

 땀을 잔뜩 흘렸기에 나는 편의점에서 갈아 입을 속옷 한두벌을 더 샀다. 그리고 오늘 밤 몰래 남탕에서 속옷 빨래를 해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찜질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느낀 건데 웬 거지 같은 사내가 공원입구에서부터 졸졸 따라 오고 있었다. 행색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해 보였고 멀리서도 역겨운 냄새가 바닷바람에 실려 풍겨 오고 있었다.

 난 그 거지 사내로부터 멀어지려고 일부러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그래 이만 하면 멀리 떨어뜨려 놨겟지.

 재수없게 거지까지 날 따라다니다니…’

 한참을 걷던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본 순간 그 거지 사내는 엄청 빠른 속도로 따라와 바로 내 뒤에 다가와 있었다.

 

 “헉! 뭐에요? 아저씨…”

 

 그 거지 사내는 에릭은 아니였지만 누군지 정체를 통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동안의 체험을 통해 공포에 휩싸였다.

 

 ‘어디 숨을 벽이라도 없나?’

 

 난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길가 한가운데 서있었고 더구나 지나가는 차량이나 보행자가 있어서 함부로 어딘가로 빠져 들듯이 숨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순간 나는 나를 쏘아보는 듯한 거지 사내의 눈과 마주쳤다. 그 거지 사내의 초라하고 처량한 모습에서 나는 나의 미래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도망다니며 숨어 지나야만 한단 말인가.

 

 내 나이가 불과 열일곱…죽는 날까지 이렇게 한심한 인생을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아주 작은 일부터 세상에 부딪쳐 보기로 결심 했다.

 

 민변구에 대갈통에 화분을 던져 대갈통을 박살낸 것처럼 이제부터 나는 내가 두려워 했던 세상에 정면으로 맞서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당연히 그렇게 맞설 것이다.

 도망치는 삶은 이제 지긋지긋 했다.

 

 난 그 거지 사내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의 앞에 똑바로 마주 섰다. 그리고 피하지 않고 그가 누구인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이제 도망가는 것은 맨 나중에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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