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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순정
작가 : 송루나
작품등록일 : 20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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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순정 01
작성일 : 18-07-02     조회 : 991     추천 : 15     분량 : 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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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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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호야, 여기서."

 "아버지. 조심해요."

 

 

 

 은색 달빛이 어른 거리는 그 강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건너다 목숨이 끊어진 걸 상기할 때마다 물결은 은빛이 아닌 핏빛으로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물기 젖은 흙바닥에 불안한 아버지의 발자국이 찍힌다.

 어둠속에 찍힌 그 자국을 멀끄러미 보다가 이내 바람이 귓불을 스치면 그제야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할아버지의 뒤늦은 탈북에 온 가족이 며칠 전부터 가슴을 졸여야 했다.

 종전 선언 이후 완벽한 통일을 기다리기엔 본인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남은 생만이라도 자식과 손주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지막 바람.

 

 

 

 '할아버지 연세에 그 강을 건널 수 있을지 걱정이다.'

 

 

 

 다른 방법은 절차가 까다로웠다.

 그래서 우리가 중국으로 가 할아버지가 두만강을 건너면 안전하게 모시고 오기로,

 일단의 우리의 계획은 그랬다.

 아버지 혼자서 모든 걸 할 수는 없었기에 내가 따라나섰지만 고모는 강하게 반대를 했었다.

 혹여라도 독자인 내가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하는 마음에.

 어머니는 일찌감치 병으로 돌아가셨다.

 당시 너무 어렸던 나에겐 그 일은 중요한 일이 아닐만큼 잊혀지고 있었다.

 

 

 

 "아버지, 할아버지 보여요?"

 "아, 아버지!!"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던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고 나는 서 있었던 자리에서 재빨리 그가 있는 곳으로 뛰었다.

 풀숲의 따가운 성분들이 다리와 팔을 스쳤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뛰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깜깜하기만 한 그 강 앞에 멈춰 섰다.

 

 

 

 "할아버지!"

 

 

 

 핏빛 강물은 허상이 아니었다.

 물에 가까스로 떠 있던 할아버지 주변에 크게 핏물이 퍼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손을 뻗었고 나는 그런 아버지의 허리를 뒤에서 받쳐 안았다.

 

 

 

 '탕-'

 

 

 

 저만치에서 총을 쏘는 소리가 들려왔고

 아버지와 나는 손을 뻗은 채로 허리를 숙였다.

 물살이 너무 셌다.

 

 

 

 "아버지!!! 손잡으세요!!"

 "태, 태성아. 이 아이 좀-"

 

 

 

 할아버지가 뻗어진 아버지의 손을 잡지 못한 이유는 그의 팔에 붙들린 소년 때문이다.

 정신을 잃은 건지 축 늘어져 있는 그 소년을 있는 힘껏 아버지가 있는 쪽으로 밀어준 할아버지는 급물살에 그대로 쓸려가버렸다.

 모든 게 순간이었다.

 그 강은 할아버지를 삼켰다.

 

 

 

 "아, 아버지...."

 

 

 

 아버지의 손에 들린 그 소년만이 그 강에서 살아남았다.

 2014년, 7월 6일 두만강에서, 할아버지의 마지막.

 그리고 손영주.

 

 

 

 -

 

 

 

 

 앳돼 보이는 소년은 나보다 두어 살이 적어 보였다.

 며칠 묵기로 했던 중국 호텔에서 녀석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이 자리는 원래 할아버지의 자리였는데,

 어쩌다가.

 아침거리라도 사 오겠다는 아버지는 일찍이 밖으로 나섰고 나는 벗어두었던 안경을 면 티셔츠에 닦고 스윽- 얼굴에 썼다.

 

 

 

 "......!"

 

 

 

 그리고 뿌예진 시야가 갑자기 선명하게 자리를 잡았을 때 그 자리에서 얼고 말았다.

 

 

 

 "일어난 거야?"

 "........."

 

 

 

 좀 전까지 죽은 듯 누워있었는데 큰 두 눈을 꿈뻑 거리며 주변을 살피던 그 소년은 이내 상체를 벌떡 일으키더니 살짝 풀어진 셔츠 깃을 한 손으로 여며댔다.

 

 

 

 "여기가 어딥니까."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습관적으로 이름 석 자를 말하려다가 알아봤자 당황한 저 눈깔이 도로 돌아올 것 같진 않아서 그만두었다.

 협탁에 있던 물을 유리잔에 따르며 필요할만한 대답을 했다.

 

 

 

 "여긴 중국. 너 탈북했고."

 "........"

 "탈북할 때 너 구해준 할아버지 기억나?"

 

 

 

 침대 시트 어디쯤에 혼란스런 시선을 두고 있던 소년은 이내 초점을 맞추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분이 내 할아버지."

 "그, 그분은 어디 있습니까?"

 "돌아가셨어."

 

 

 

 덤덤하게 말했지만 결코 덤덤하지 못한 내 시선처리에 소년은 크게 놀란 듯 해 보였다.

 그게 사실이냐 두 발을 호텔 바닥에 붙이고 물어보는 걸 보면.

 나는 그런 그에게 다소 복잡 미묘한 얼굴로 말했다.

 상대는 결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내 속내를 다 감춰버린 채로.

 

 

 

 "자초지종을 설명해. 이젠 네 차례야."

 "........."

 "할아버지랑은 어떻게 안거야."

 

 

 

 미미한 끄덕임이나 기어들어갈 것 같은 대꾸 정도는 했었는데 이번엔 좀처럼 대답을 안 하기에 고개를 푹 수그린 그를 흘끔 바라보았다.

 떨어진 투명한 눈물방울이 침대 시트를 짙게 물들인다.

 

 

 

 "우연히 두만강 사찰하던 중 탈북 도모하던 분을 만났습니다."

 "그게 우리 할아버지야?"

 

 

 

 소년은 호텔 바닥에, 정확히 내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양손을 무릎에 꼭 쥐어 올려놓고 입술을 깨문다.

 손에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쥔 건지 하얗게 질린다.

 

 

 

 "버, 버리라고 했습니다. 절 버리라고 그분께 말씀드렸는데..."

 "......."

 "변명과도 같이 들리겠지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 굉장히 변명같이 들리네-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손에 들린 봉투를 침대 한켠에 아무렇게 놓고 깊은 한숨을 내쉬는 아버지는 실의에 빠진 얼굴을 좀처럼 펴지 못했다.

 이해한다.

 나 같아도 하루 만에 아버지가 눈앞에서 죽어버리면 제정신은 아닐 것 같으니.

 

 

 

 "정신 차렸으면 대책이나 말해보렴."

 

 

 

 아버지의 냉한 태도에 이미 얼을 대로 언 소년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상황에 나는 방관자였다.

 그냥 어느 쪽에도 딱히 감정이 없는,

 협탁 의자에 앉은 아버지는 쓰고 있던 안경테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그 소년을 가만히 응시했다.

 

 

 

 "설마 대책 하나 없이 탈북을 감행한 건 아닐테고."

 ".........."

 "입을 다물고 있으면 해결이 나나."

 

 

 

 낮게 목을 끌며 자리에서 일어난 아버지에 소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내 앞에서 순식간에 아버지 앞으로 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북으로만 보내지 말아주십시오."

 

 

 

 제발 내래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어느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는 소년이 불안함의 극으로 달했는지 꿇고 있던 무릎을 움적 거리며 아버지에게 더 붙었다.

 

 

 

 "그냥 중국 땅에 버려도 됩니다. 부디-"

 "........."

 "신고만 하지 말아주십시오."

 

 

 

 아,

 움적 거리던 여린 무릎 살갗에 기어이 피가 맺힌다.

 그쯤 되니 내게도 방관의 태도가 걷히고 있었다.

 소년이 불쌍하게 느껴졌던 걸까,

 조심스레 '아버지' 하고 불렀다.

 

 

 

 "크흠-"

 

 

 

 아버지와 내 눈이 허공에서 마주하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딱히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한풀 꺾인 눈빛으로 뒤돌아 호텔방을 나섰다.

 저를 뿌리친 줄만 알고 바닥에 두 팔을 대고 엎어져 흐느끼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한쪽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돌아가기 싫습니다. 절대로..."

 "일단 일어나 봐,"

 "신고하시면 저는 어쩝니까."

 

 

 

 아 신고 안 하니까 좀-

 일어나 보라고.

 결국 힘주어 그를 일으켰다.

 그리고 침대에 앉혀놓으니 까진 무릎에서 새어 나온 피가 종아리 쪽으로 흘러내린다.

 손을 뻗어 곽티슈를 뽑아 대충 그의 무릎에 대주었다.

 

 

 

 "신고는 안 할 거야. 그렇게 냉혈한 아니야 울 아버지."

 "아, 진실입니까?"

 

 

 

 얼추 지혈을 끝낸 그의 무릎에서 휴지를 떼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볼에 눈물 자국이 다 배었다.

 붉으죽죽한 그 눈가를 까만 앞머리칼이 찌른다.

 연신 훌쩍이는 코, 그 아래로 보이는 입술 역시 얼마나 깨물었던지 피가 몰려 선홍빛을 띄고 있었다.

 앳되보이는 그 얼굴에서 절박함이 보여서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마음이 쓰였던 것 같다.

 

 

 

 "어디로 갈 거야."

 "어디로..."

 

 

 

 가야 됩니까, 저는.

 

 

 

 아-

 아무 대책 없이 국경을 넘어 올만큼 넌 절박했다.

 아주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갈 곳조차 정해지지 않은 채 넘어온 그는 아마 할아버지가 거둬주기로 했었나 보다.

 

 

 

 "은호야, 짐 싸. 떠날 준비하자."

 "잠깐만요, 아버지."

 

 

 

 아직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불편하게 앉아 있는 그를 슬쩍 돌아보고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호텔 방 밖으로 나섰다.

 

 

 

 "데리고 가요."

 "그럴 이유 없다."

 "갈 데가 없대요."

 "깨어날 때까지 재워준 걸로 됐지 싶다만-"

 

 

 

 원망이 서려있는 그 눈빛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눈앞에 펼쳐진 핏빛 두만강, 그 속에 위태롭게 소년을 붙잡고 있던 할아버지.

 죽음을 앞둔 순간 자신보다 그 소년의 목숨을 구하기에 급급했던 내 할아버지의 마음을 잠시나마 헤아려본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구한 아이에요."

 "그게 뭐."

 "그 분을 생각해서라도 저 소년을 모른 체할 수는 없어요."

 

 

 

 잘못되기라도 하면,

 헛되게 돌아가신 거예요.

 

 

 

 결국 마음을 돌린 데에는 다른 이유는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 뜻을 기리는 것 외에는.

 어려운 결정을 한 아버지의 등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나름의 위로.

 결국 우리는 그 소년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남한으로 넘어 가려 가짜 여권을 발급받기 위한 절차를 밟던 도중에서야 소년의 이름을 처음 물었다.

 너 이름.

 

 

 소년은 나를 돌아보며 하얀 얼굴로 대답했다.

 

 

 

 "손영주 입니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돌아온 송루나 입니다.

 공지에도 말씀드리겠지만 탈북 과정에 대한 내용이나 북한 사투리 등등의 대한 것들이

 내용 흐름과 읽히는 문체상 실제와 다소 다르게 서술 되는 것을 알려드려요!

 조금 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내용 전개를 위함이니 미리 양해말씀 부탁드립니다.

 

딥블루민 18-07-02 20:42
 
* 비밀글 입니다.
찡킴 18-07-02 23:49
 
* 비밀글 입니다.
뽀롱 18-07-04 01:13
 
* 비밀글 입니다.
구름아밥먹자 18-07-16 08:33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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