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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틸던
작가 : Indignation
작품등록일 : 201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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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무인도시
작성일 : 18-12-21     조회 : 257     추천 : 0     분량 : 8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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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인도시는 어찌 보면 지상낙원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아무데나 용변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더라도 뭐라 할 사람도 없었고 손으로 뒤를 닦아도 눈치를 줄 사람도 없었다. 혼자 밥을 먹어도 외로움을 알 수 없었다.

 

  식물도 동물도 당연히 사람도, 정말 살아있는 것이라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을 상상해볼 수 있겠는가. 덕분에 사람만이 저지를 수 있는 납치, 살해, 강간, 사기 같은 범죄가 일어날 일도 없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건, 첫 번째로 너무나 무자비하게 파괴되어버렸다는 것과 두 번째는 경찰이 쓸모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몇 달 동안 이 도시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며 느낀 바였다.

 

  나이 든 보안관은 신호등이 부러져 기울어진 횡단보도를 건너며 생각했다. 그는 능숙하게 도로와 거리, 건물을 넘나들었다. 보안관은 자신의 행동이 쓸모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다.

 

  그는 연방에서 파견된 사람이었다. 누군가 남아있거나 올지도 모르는 곳에 파견되어 근무하다가 시간이 되면 돌아가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사실 이제 도시에 아무도 없다는 건 확실해서 이렇게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오는 사람 역시 있을 리 없었다. 도시 전체가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칙칙한 갈색의 단복을 입고 오른쪽 다리에 권총을 꽂아둔 채 묵묵히 연방이 준 임무를 수행했다. 단복의 오른쪽 가슴팍에는 명찰이 붙어있었지만 그걸 알아봐줄 사람은 없었다.

 

  그의 눈은 흐릿했고 반쯤 감겨있었다. 초점이 없어 어디를 보고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정수리 부근에 있는 머리는 거의 비었고 남아서 바람에 힘없이 흔들리는 머리카락도 윤기 없는 회색빛을 띄었다. 그것들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가늘었다. 그도 언젠가는 젊고 건강한 육체를 가진 사내였을 터였다.

 

  비참한, 엄청난, 혹은 지독하다 할 재앙이 그들을 집어삼키기 전까지는, 그는 테네시 주의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경찰관이었다. 경력도 꽤 오래 되어 간섭할 사람도 없었고, 그가 관할하고 있던 지역은 인구도 적어 큰 사건사고 없이 느긋하고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바가지를 자주 긁어대지만 사랑스러운 아내도 있었고 장성하여 군대에 들어간 아들과 귀여운 막둥이 딸도 있었다. 기억하기에 그의 가족은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아갔던 것 같다. 그 거대하고 붉었던 악몽이 그들을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재앙이 닥치기 전날, 아들이 중사로 진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 후로는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재앙이 닥치고 순식간에 통신도구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재앙은 피할 수도 없이 신속하고 재빠르게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재앙은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나서야 멈췄다. 그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재앙은 멈춘 듯 보였지만 그 찌꺼기가 그의 가족처럼 간신히 모면한 사람들을 향해 미친 살인마처럼 쫓아왔다. 그의 아내와 딸은 그 찌꺼기에 함몰되어 죽고 말았다. 둘의 죽어가는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온몸의 혈관이 톡톡 터지는 끔찍한 느낌이 들었다.

 

  거미줄처럼 온몸이 쩌억쩌억 갈라지고 핏줄이 피부를 뚫고나올 것처럼 도드라져서 피눈물을 흘리며 올려다보는 그들에게서 그는 도망쳤다. 시체들을 수습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버려두고, 그는 도망쳐버렸다. 그 무거운 죄악감은 지금까지도 그의 어깨에 자리 잡고 그를 짓눌렀다.

 

  가족을 전부 잃은 뒤 폐인이 되어버린 그가 1년 동안 거지처럼 떠돌아다니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용하게도 살아남아버렸다. 그는 가끔 자기를 가족의 곁으로 보내주지 않은 행운의 여신을 저주했다.

 

  그는 그 뒤 연방으로부터 구조되어 그전까지의 경력을 인정받아 보안관이 될 수 있었다. 생존자들은 여러 구역에 나뉘어있는 것 같았다. 실낱같은 희망을 찾고자 그가 있던 곳의 생존자 목록을 살폈으나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구역까지도 찾아봤지만 그 아이는 아무래도 연방의 보호를 받지 못한 듯 했다.

 

  그는 완전히 희망을 놓아버렸다. 더 이상 희망은 그의 손에 없었다. 하루 종일 술을 입에 달고 살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행동을 하고 다녔다. 당연히 보완관이라는 작자가 술 마시고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을 연방은 좋게 보지 않았다. 일종의 좌천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외딴 무인도시로 쫓겨난 것은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그는 원래의 그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더 이상 배불뚝이 필립도 아니었고 유쾌한 필립도 친애하는 무덤지기 씨도 경찰관 필립 툼키퍼도 아니었다. 그는 홀쭉해졌고 시체처럼 고요했으며 비틀비틀 걸어 다녔다.

 

  이곳에서 연방이 준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사실, 굉장히 쉽다고 할 수 있었다. 3개월간 근무하며 도시를 찾아온 생존자가 없는지 확인하라는 게 전부였다. 아니면 아직까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이나. 물론 지금까지 둘 다 본 일이 없었다. 혹시 살아남았다고 해도 이런 곳에 계속 남아있을 리 없었다.

 

  주변이 무지막지하게 큰 사막이라 발이 떨어지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발견할 오아시스를 찾아 모두 떠났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생존자 구역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오는 동안 사람이 살 만한 곳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 연방의 생존자 구역과도 이만치(헬리콥터를 타고서도 반나절은 날아야하는) 떨어진 곳에 사람이 찾아올 일도 없었다.

 

  벌써 두 달하고도 스무 며칠이 지났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그는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이 이름 모를 무인도시를. 연방이 아직 그를 잊지 않았다면 말이다.

 

  애초에, 연방은 일부러 알코올 쓰레기인 그를 이곳으로 보냈는지도 몰랐다. 가서 조용히 죽으면 여러모로 편리하니까. 하지만 정기적으로 통신을 보낼 때 신호가 가는 걸 걸 보면 아예 잊은 것 같진 않았다. 그 윗대가리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알려주고 싶은 것만 알려주었고 다른 건 접착제를 처바른 것처럼 다물고 있으니 속내는 알 길이 없다.

 

  피사의 사탑마냥 기울어진 빌딩을 기어올랐다. 건물의 무언가를 이루고 있었을 철근에 올라 눈앞에 황량하게 펼쳐져 있는 풍경을 내다보았다. 길게 뻗쳐있는 붉은 사막에서 한줄기 바람이 불어와 기둥에 걸린 예전에는 어떤 회사의 세탁기를 광고했을 찢어진 현수막을 흔들었다. 모래바람에 바짝 마른 입술이 따끔거렸다.

 

  사람은 이제 희귀동물이나 다름없었다. 일순간에 개체수가 이렇게나 떨어졌으니 앞으론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분류하고 철장에 가둔 채 보살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럼 사육사는 누가 되지?’

 

  그는 구레나룻 사이로 비질거리며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지금이 시기상 늦여름이긴 했지만 이곳의 날씨는 뒤죽박죽이었다. 갑작스레 눈이 내리거나 우박이 쏟아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마치 냉온수를 조절하는 장치가 고장 난 수도꼭지 같았다. 이게 범세계적인 현상인지 이곳에 국한되어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구도 알려 예전에 생존자 지구에 있었을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쨍쨍하게 내리쬐는 태양이 사라지는 밤이 될 때까지 더위를 피할만한 장소는 없었다. 건물들은 반파되어 통풍은 아주 잘 됐지만 언제 그 기반이 무너져 내릴지 알 수 없어 오래 있기는 어려웠다. 여기 와서 몇 번이나 그는 천둥치는 소리와 함께 땅으로 꺼지는 건물들을 보았다. 다행히도 그가 묵고 있는 숙소이자 경찰서이자 민원상담소인 건물은 그를 위해 따로 지어졌고 자체적인 발전기까지 있어 전기걱정도 없었다.

 

  그는 다시 눈가에 흘러내리는 땀을 훔쳤다. 에어컨은 바라지도 않고 선풍기 바람이나 쐬고 싶었다. 아침에 탁자 위에 꺼내두었던 작은 선풍기가 생각났다. 창고에서 힘들게 찾았던 것이었다.

 

  땀에 젖어 달라붙는 불쾌한 감각을 더 이상 견디기 싫었다. 필립은 바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숙소는 도시의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곳에 폐허가 된 백화점 옆에 작은 구멍가게처럼 지키고 서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백화점은 그가 이곳에 와서 처음 들어가 본 건물이었다. 외관과는 달리 안에 괜찮은 물건들이 많았다. 덕분에 연방에서 주었던 6개월 치 보급품 외에도 꽤 사치를 부릴 수 있었다.

 

  그는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긴 숙소의 문 앞에 섰다.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자물쇠를 만지작거리다가 화라도 난 것처럼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섰다. 맞이해주는 것은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와 감도가 나쁜 구식 라디오에서 나오는 지지직거리는 소리뿐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어떤 방송도 송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필립은 이 털털거리고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주변이 완벽하게 고요해지는 것을 그는 원치 않았다. 도시를 돌아다닐 때의 그 고요함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그를 쫓아다니며 집요하게 괴롭혀댔다. 긴장이 풀린 위가 기지개를 펴자 그제야 배고픔이 느껴졌다.

 

  필립은 소형 냉장고에서 감자와 빵을 꺼내 태양 아래 놔두었다. 10분 정도로 따끈하게 익을 정도로 전자레인지가 따로 필요 없었다. 감자를 으깨 빵 위에 올린 뒤 마요네즈를 그 위에 넘칠 만큼 뿌렸다. 그렇게 만든 샌드위치를 한 번에 입안으로 털어넣었다. 거대한 덩어리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면서 목울대를 탕탕 두드린 다음 내려갔다. 목이 텁텁해지면서 몸이 물을 요구해왔다.

 

  물을 마시는 대신 그대로 매트리스 위에 몸을 뉘였다. 그 동작은 굉장히 조심스러워야 했다. 스프링이 망가져서 그렇게 눕지 않으면 바닥으로 꺼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눕자마자 피로와 잠이 그를 그물처럼 옭아 끌어내렸다.

 

  그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옆집의 이빨이 다 빠진 사샤와 앞집의 멋쟁이 청년 피터를 만났다. 그 둘은 그에게 방긋 웃어주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다음으로 하나하나 그가 지금까지 알고 만났던 인물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미소를 지어주고는 무대에서 퇴장하는 배우처럼 퇴장했다. 어리벙벙하게 그들을 지켜보던 필립의 앞에 그토록 다시 보고 싶어 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안나...”

 

  눈물이 자연스럽게 고였다가 땅에 떨어졌다. 귀여운 딸이 누군가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이사벨...”

 

  이사벨이 딸을 안아 올렸다. 그들도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이 그를 더 목메게 했다. 다가가고 싶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최후를 지켜봐주지 못했다. 둘은 아무 말 없었지만 행복한 얼굴이었다. 그것은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았다.

 

  둘은 다른 사람들처럼 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야에서 점점 흐릿해져 갔다. 그러다가 곧 꺼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흐느적댔다. 필립은 허망하게 둘이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느릿하게 그들에게 손을 뻗었다.

 

  힘없이 뻗어가는 손은 조금만 더하면 둘에게 닿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아내가 딸을 한 팔로 감쌌다. 그녀의 표정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무서웠다. 필립은 숨이 막혀 헐떡거렸다. 그들은 손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의 여운처럼 사라져버렸다.

 

  쿠당!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바닥에 코를 박았다. 바닥은 부드러운 모래가 아니라 나무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아플 터였지만 그에겐 코보다 머리가 더 고통스럽게 지끈거렸다. 수백 개의 바늘이 두개골 안쪽에서 직접 뇌를 찌르는 것 같았다. 그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몸부림쳤다.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번갈아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고 점차 점차 잦아들었다.

 

  서서히 몸이 고통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필립은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태양은 지평선 너머로 저물어 가고 있었다. 뚜껑만 내민 노을이 마지막 힘을 다하여 대지를 비췄다. 창가에 놓인 접시가 그 빛을 담아냈지만 누가 벌컥벌컥 마시는 것처럼 순식간에 줄어갔다. 그는 창가로 다가섰다. 그리고 신비한 현상을 목도했다.

 

  거대한 초록빛의 커튼이 하늘을 나풀거리고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창문을 열고 목을 길게 뺐다. 찬란한 빛깔, 신비로운 움직임. 아주 오래 전 간 적이 있던 홍등가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친구들과 길을 걸으며 욕정에 가득 찬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붉고 반투명한 천 뒤로 여자들이 반나체로 그들을 유혹했다. 그의 친구들은 자석처럼 그녀들에게 끌려가버렸다. 그는 술에 취해 알싸한 기분 속에서도 열심히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 여자를 찾지는 않았다.

 

  그러나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는 그곳에서 초록색 천막을 발견했다. 보이지 않았지만 그 천막 뒤에 여자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상야릇한 감정이 그를 휩쓸었고 정신 차렸을 땐 천막을 들추고 있었다. 예상대로 그 안에는 한 여자가 누워 있다가 들어오는 그를 놀랜 눈으로 쳐다봤다.

 

  그녀는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다른 차원에, 이 세계 너머에 있는, 또 다른 곳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손을 뻗었고 그의 볼을 차가운 손으로 어루만졌을 때야 같은 곳에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그녀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몽롱했다. 다시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려 해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 하늘에서 펄럭이는 것이 그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한참동안 그것을 지켜보며 그 거대한 커튼을 사진으로 머릿속에 저장하려고 노력했다. 커튼의 너머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그것은 바람에 쓸려 날아가듯이 모서리 부분부터 조금씩 바스러져갔다.

 

  과자처럼 부서져 날아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그때 그의 귀에 문득 어떤 소리가 들렸다. 바람소리도 침대가 삐걱대는 소리도 라디오의 전자음도 아니었다. 이 안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소리는 밖에서부터 나고 있었다. 두런거리는 소리 같기도 속삭이는 소리 같기도 했다. 확실한 건 동물의 소리는 아니었다. 아주 정교하고 분명 제대로 된 체계가 있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그가 여태껏 들어본 것 중 가장 괴상하고 소름끼치는 소리였다. 지구상 어떤 동물도 이런 소리를 내지 못할 것이었다.

 

  재빨리 무전기를 쥐고 문가에 귀를 댔다. 소리가 좀 더 분명하게 들렸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규칙적이지만 연속적이고 낮았다가 높아지는 식으로 소리는 끊기지 않고 계속 들렸다. 하지만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기는 필립 보완관이다. 생존자를 발견한 것 같다. 응답 바란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지직 지직 거리는 기계음만 반복적으로 울렸다.

 

  필립은 무전기를 뒤로 던져버렸다. 딱히 응답을 바란 건 아니었다. 보고는 의무적으로 해버린 것이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숨을 깊이 들이쉬고 마침내 결심이 선 필립은 문고리를 돌렸다. 거친 쇳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그가 차가운 저녁바람을 맞으며 밖에 나왔을 때 소리가 뚝 끊겨버렸다.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하여 숨어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주변 어딘가에 숨어서 상황을 살피고 있을 것이다. 그는 큰소리로 외치며 찾는 대신 소리가 났던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있었던 흔적조차 없었다. 발자국 같은 것은 해가 저물어 알아보기 어려웠고 주변의 경치는 몇 달 동안 봐온 그대로였다. 하지만 착각일리는 없었다. 문가에서 그토록 시간을 죽이며 들었으니까.

 

  “도대체 어디...”

 

  그는 말을 멈췄다.

 

  눈앞에 있는 부러진 철골 사이로 뭔가가 꾸물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곳은 사람이 들어가기엔 너무 비좁았지만 개나 고양이 같은 작은 동물이 들어갈 정도는 되었다. 안에 들어있는 것이 사람일리는 없었지만 무엇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까 들었던 소리가 너무나 괴상해서 아직까지도 머릿속에서 고장 난 라디오처럼 울려댔다.

 

  다시 주변을 둘러봤지만 여전히 실속 없는 바람소리만 들렸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철골 사이로 왼손을 뻗어 넣었다.

 

  그러자 안쪽에 있는 꾸멀거리는 것이 뒤로 물러났다.

 

  짧게 욕설을 내뱉고 더 깊숙이 손을 넣었다. 그러자 왼쪽 팔 끝을 따라 짜릿한 통증이 뇌로 전달됐다. 필립은 움찔거리며 손을 빼냈다. 뒤로 계속 물러나던 그 짐승이 끈질기게 다가오는 손을 물어버린 것이다.

 

  “도대체 뭐지?”

 

  그는 안쪽을 노려보며 투덜거렸다. 잠시 물러난 필립은 왼쪽 팔의 통증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금까지 멀쩡했던 팔 끝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의 손이 있던 자리가 허전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손끝을 까닥일 수도 없었다. 그쪽에 있는 모든 근육들이 작동하지 않았다.

 

  그는 휘둥그레 눈을 뜨고 내려다보았다.

 

  “내 손! 내 손!”

 

  필립은 눈물을 흘리며 손목 밖에 남지 않은 왼팔을 부여잡았다. 팔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떨 때마다 젤리 같은 것이 뇌를 감싸 안는 기분이 들었다. 발작하듯이 뒷걸음질을 처대다가 넘어져버렸다. 무엇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기만 했다. 극심한 통증에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고통과 공포로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헉...헉...”

 

  가쁜 숨을 내쉬고 있을 찰나 철골 안쪽에서 게걸스러운 입가심 소리가 들렸다. 육식동물이 먹잇감의 고기를 천천히 음미하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였다. 필립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렴풋해져가는 시야 속에서 그는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이... 저 안쪽에 있는 무언가가 오른손 손을 씹어 먹은 것이다.

 

  도대체 뭐지? 괴물? 그는 오른손으로 권총을 더듬어 꺼냈다. 무전기를 내팽개쳐두고 온 게 후회됐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머리가 허공을 휘저었다. 자리에 주저앉아 권총을 든 손으로 위를 겨눴지만 결국 떨어졌다.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톱으로 쇠를 긁어대는 것 같은 끽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붉은 무언가가 그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철골 사이로 온통 붉게 물든 이빨들이 기어 나왔다. 그는 그것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더 이상 아무런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피가 너무 급속하게 그의 몸속에서 빠져나갔다.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어 암흑으로 바뀌기 전 마지막 순간, 그 끔찍하게 벌어진 이빨 사이로 잃어버린 그의 검지가 끼어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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