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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틸던
작가 : Indignation
작품등록일 : 201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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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의문
작성일 : 18-12-28     조회 : 245     추천 : 0     분량 : 2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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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의 재치로 첫 번째 불어 닥친 폭풍은 어떻게든 비껴갔다. 하지만 두 번째도 이러리란 보장은 없었다. 코비는 이번 일로 그 신용을 잃었겠지만 다시 신용을 얻기 위해 이쪽을 더욱 예의주시할 것이다.

  ‘그런데 왜 탈출에 관한 건 이야기하지 않았지?’

  그 부분이 의아하긴 했다. 그들을 딱 보고서는 ‘도망치려는 거야?’라고 지껄이지 않았던가. 코비가 그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정말로 도망치리라고는 생각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일단 질러볼 만한 가치는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는지는 역시 짐작하기 어려웠다.

  페리는 억지를 부린 끝에 옆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타이니를 보았다. 그녀의 밤색 머리가 팔을 간질였다. 침대가 두 명이 자기에는 그리 넓지 않아 페리는 거의 끝 편에서 누워야 했다. 타이니도 그것을 알고 미안해하면서도 같이 자겠다는 고집을 꺾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 사건이 그녀에겐 고역이었던 모양이다. 그건 페리나 사라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정도로 따지자면 마음 여린 타이니가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눈을 감자 케인의 답답한 얼굴이 떠올랐다. 두 친구를 희생하면서까지 도와주려는 소꿉친구. 과연 이게 옳은 것일까. 주먹을 꽉 쥐고 이마를 쭈그리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밤새 뒤척이던 페리는 아침이 되자마자 책방으로 달려갔다. 피곤해서 머리가 띵하고 제대로 가는지 조차 알 수 없었지만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었다. 책방에 들어서자 당연한 듯이 낡은 소파에 앉아 책을 보는 남자아이를 발견했다.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는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티 없이 깨끗한 피부에 조금 낮은 코, 또랑또랑한 눈동자. 그도 피곤한지 자주 하품을 해댔다. 하품을 할 때마다 약간 갈라진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혔다.

  “케인.”

  큰 소리로 부르려고 했지만 목이 잠겼는지 개미 기어가는 듯한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케인은 돌아서 그녀를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책에 꽂혀있었다.

 페리는 다시 한 번 그를 불렀다

  “케인.”

  이번에는 좀 더 컸는지 케인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그녀를 발견하고는 눈을 휘둥그레 하게 떴다.

  “무슨 일이야?”

  “앉아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를 다시 앉히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여전히 큰 눈알을 위아래 굴리며 무슨 일로 그녀가 찾아왔는지 추측하고 있는 듯 했다.

  “어제 토트 패거리가 우리 방에 쳐들어왔었어.”

  “뭐라고?”

  케인이 깜짝 놀라 엉덩이를 들썩이며 외쳤다. 들고 있던 책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땅에 떨어졌다. 그는 그 책을 주울 생각도 않고 더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코비가 뭔가를 눈치 챈 것 같아. 원장에게 알리고 토트 패거리까지 끌어들여서 왔더라고. 지난번에 맞은 게 독이 됐었나봐.”

  “눈치 챘다고? 설마... 탈출에 대해?”

  조심스러운 말씨로 그가 물었다. 누가 또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겁먹은 몽구스 마냥 고개를 들고 주변을 휘휘 살폈다.

  “아무도 없으니까 안심해. 그리고 코비도 이쪽으로 오는 건 거의 보질 못했으니까.”

  그 말에 케인이 약간 안심한 듯 굳은 어깨의 긴장을 풀었다. 그의 모습에 피식 웃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야. 그 애가 탈출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어. 눈치 못 챈 건지. 아니면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어. 걘 우리가 먹을 걸 훔치고 있단 것만 밀고했어.”

  “식량에 대한 거야? 어떻게 됐어? 다 뺏긴 거야?”

  케인은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페리는 진정하라는 뜻으로 한 손을 든 다음 답해주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안 뺏겼어. 사라가 마침 코비한테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식량하고 음식물 쓰레기 자루를 바꿔쳤더라고. 정말 다행이었어. 사라 아니었으면 식량도 다 뺏기고 우리 전부 지금쯤 훈육실에 처박혀있었을 걸.”

  “진짜 다행이네.”

  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떨어진 책을 그제야 인지했는지 허리를 굽혀 책을 주어들다가 뭔가가 떠올랐는지 물었다.

  “나가는 날짜는 아직 못 정했지?”

  “그게... 응. 아직 못 정했어.”

  페리는 잘못을 시인하는 것처럼 두 손을 들었다.

  “그냥 내가 정하도록 할게. 결행일은 이번 주 금요일 밤으로 하자. 원장도 그 날은 언제나 바쁘잖아. 왠지는 모르지만. 너무 이르다고는 하지 마. 이래도 많이 늦춘 거잖아. 그리고 코비가 어느 정도 알아챘다는 게 위험해. 언제 원장한테 완전히 들통 날지 알 수가 없어. 질질 끌다가는 언제 나갈 수 있을지 몰라.”

  페리는 어쩔 수 없이 순응했다. 그녀가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케인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케인은 피곤 때문인지 눈은 퀭하니 움푹 들어가 있었고 피부는 평소보다도 더 창백했다. 입술도 다 터지고 갈라져있었다. 엄청난 병이라도 겪고 난 후 같았다.

  무슨 일 때문인지 궁금했지만 페리는 묻지 않기로 했다. 답해줄지도 의문이었지만 자기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는 듯 고개를 책으로 떨구고 있었다.

  “그럼 이제 가볼게.”

  “응.”

  “있다가 보자.”

  “응.”

  단조로운 대답을 뒤로하고 페리는 책방을 나섰다. 발을 문밖으로 내딛는 순간 불현 듯 그녀의 입술에서 낮은 중얼거림이 터져 나왔다.

  “이게 정말 옳은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자신이 중얼거렸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페리는 그대로 숙소로 돌아갔다. 이제 일어났을 친구들에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결행 날짜를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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