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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토피아
작가 : 잠빛
작품등록일 : 2018.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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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음모론
작성일 : 19-01-04     조회 : 313     추천 : 0     분량 : 5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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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승은 믿을 수가 없었다. 강윤선이 뭣 때문에 자신에게 드럭필을 준단 말인가. 카퍼필드가 강윤선을 아는 것도 신기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리가 복잡했지만 강윤선이 그런 짓을 할 까닭이 없다는 점만은 분명했다.

 

 기승이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이젠 아무한테나 누명을 씌우려는 속셈인가. 분노관리본부 소속 의사가 패스필을 드럭필로 바꿔치기 했다고? 그것도 사이코패스한테 줘야 되는 걸?”

 

 “내가 네 패스필을 드럭필로 바꿔치기 할 이유는 있고?”

 

 기승은 잠깐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변명조로 소리쳤다.

 

 “강윤선은 내게 호의적인 사람이었어. 앙심을 품을 이유가 없다고!”

 

 “나 역시 자네한테 앙심을 품을 까닭이 없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겠지.”

 

 “사주를 받았을 가능성은 강윤선이 더 크지. 더구나 그녀는 패스필을 직접 다루잖나.”

 

 “뭐 하나 부족할 게 없는 분노관리본부 의사가 뭣 때문에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하겠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군. 발각됐다간 가볍게 넘어가지 못하리라는 건 그녀가 더 잘 알걸. 이렇게 위험부담이 큰 짓을 감수할 리가 없어.”

 

 카퍼필드가 감탄한 표정으로 느긋하게 박수를 쳤다.

 

 “강윤선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군. 아니, 맹신이라고 해야 하나. 왜 그녀는 절대 범인이 아닐 거라고 믿는 거지? 강윤선한테 남몰래 흑심이라도 품은 건가?”

 

 기승이 헛웃음을 켰다.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군. 그녀를 좋아해서 편든다고 생각하는 건가. 유치하기 짝이 없군. 난 지극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어. 객관적인 사실을 얘기하고 있다고. 강윤선이 날 속이고 패스필을 가로채지 않은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거야. 난 당신보다 그녀를 안지 훨씬 오래 됐다고.”

 

 “자네 말이 맞아. 전도유망한 분노관리본부 소속 직원이 금지 규정을 어길 리가 없지. 하지만 명령을 받았다면?”

 

 기승은 선뜻 카퍼필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명령? 명령을 받았다니 무슨 소리야?”

 

 “그녀에게 명령을 내릴 사람이 누가 있지?”

 

 “분노관리본부.”

 

 “뭐라고? 분노관리본부가 그녀한테 명령을 내렸다는 거야? 내게 패스필이 아닌 드럭필을 주라고?”

 

 기승이 소리치듯 반문하자 카퍼필드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네. 차라리 강윤선 개인의 일탈이라고 우기는 게 낫지 않나. 그나마 그쪽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데. 분노관리본부가 왜 그런 미친 짓을 하지?”

 

 “왜냐하면 자네가 건드려선 안 되는 걸 건드렸거든.”

 

 “그건 또 무슨 얘기야? 내가 뭘 건드렸는데?”

 

 “분노본부관리의 치부.”

 

 “치부? 난 그쪽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 같은 건 하지 않았어. 평범한 드론 기사일 뿐이란 말이야.”

 

 “자네가 요즘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녔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내가 한 일이라곤….”

 

 기승은 입을 벌린 채 말을 멈췄다.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기승이 카퍼필드에게 따지듯 물었다.

 

 “설, 설마 장민혁의 죽음?”

 

 카퍼필드가 정답을 맞힌 학생을 보는 선생님처럼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좀 말귀를 알아듣는군.”

 

 기승이 황당한 얼굴로 외쳤다.

 

 “장민혁의 수상한 죽음을 파헤치고 다닌 것 때문에 분노관리본부가 내게 드럭필을 줬단 말이야? 내게 살인 누명을 씌운 놈들이 다름 아닌 분노관리본부라고?”

 

 “맞아. 이 모든 일의 배후에 분노관리본부가 있지.”

 

 기승의 표정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왜? 어째서 그런 거지? 장민혁의 죽음에 수상쩍은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분노관리본부하고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건데?”

 

 “그의 죽음은 분노관리본부가 숨기고 싶은 비밀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아무도 알아서도 건드려서도 안 되는 금기를 들쑤시고 다니는 자를 놔둘 순 없었겠지. 그 탓에 자네가 30년 만의 살인자가 된 거야.”

 

 기승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카퍼필드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어쩌면 이 모든 소란이 카퍼필드의 사기행각일수도 있다. 새빨간 거짓말로 기승을 기만하는 건지도 모른다.

 

 “장민혁의 죽음이 분노관리본부의 비밀과 관계있다고? 내가 어떤 금기를 건드렸는데? 날 살인자로 만들면서까지 그의 죽음을 덮어야하는 이유가 뭐냐고?”

 

 “자네가 직접 알아내는 게 좋을 것 같군. 내가 입술이 부르트도록 얘기해봤자 헛소리라면서 믿지 않을 테니. 비밀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팁을 한 가지 알려 줄게. 정성훈이 죽기 전 아주 중요한 증거를 남겼어. 분노관리본부가 찾아내기 전에 먼저 그걸 확보하는 게 좋을 거야.”

 

 “정성훈을 당신이 어떻게 알지? 그가 정말 자살한 게 맞아?”

 

 기승의 질문에는 당신이 죽이고 자살로 위장한 게 아니냐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내가 그를 죽였을 것 같나? 좋을 대로 생각해. 정말 그런 거라면 내가 자네를 만날 이유가 없지. 경찰서에서 탈출시켜줄 까닭도 없고 말이야. 어떤 얘기를 믿고 누굴 신뢰하는가는 자네 마음이지만 내 말은 흘려듣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나중에 땅을 치면서 후회하지 않을 거면. 그럼 난 이만. 건투를 빌겠네.”

 

 카퍼필드는 몸을 돌리더니 올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기승은 그를 붙잡을 생각도 못했다.

 

 머릿속이 터질 듯이 혼란스러웠다. 음모의 배후에 분노관리본부가 있다는 얘기도 놀랍기 그지없는데 장민혁의 죽음과 관계가 있다는 주장에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현아를 손님으로 태우지 않았더라면, 끝끝내 강화도행을 거부하고 승차거부를 했더라면, 시키지도 않은 장민혁의 죽음을 파헤치고 다니지 않았더라면 살인범 누명을 쓰고 쫓기는 신세가 되지 않았을 거란 소리였다.

 

 카퍼필드의 주장을 무조건 신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한 귀로 흘려듣기에도 찜찜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다.

 

 분노관리본부가 개입됐다면 더 이상 이 나라에 발붙이고 살 수 없어진 건지도 모른다. 기승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고현아가 기승의 심각한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기승은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정성훈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죠?”

 

 “두세 번 얼굴 본 게 다예요. 그 사람은 왜요?”

 

 기승은 아직 현아에게 카퍼필드가 한 얘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미친놈의 헛소리일 가능성이 다분한 음모론을 사실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전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혼란과 불안만 가중시킬 뿐이다. 만약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알리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현아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을 가만둘 리 없다. 입막음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현아에겐 카퍼필드를 뒤쫓았지만 경찰이 나타나는 바람에 놓쳤다고 둘러댔다.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장민혁 씨 사건이나 조사해보려고요.”

 

 그녀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괜찮아요. 이제까지 기승 씨가 애써준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더욱이 지금은 기승 씨의 안전이 최우선이에요. 죽은 사람한테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요.”

 

 “난 정말 괜찮아요. 이렇게 마냥 쫓겨 다니느니 뭐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요.”

 

 “도피중인데 어떻게 조사를 하겠다는 거예요? 경찰의 추격을 피해 도망 다니는 것만으로 버거울 텐데.”

 

 “본격적으로 나서진 못해도 추리는 가능하잖아요. 정성훈 씨 여자 친구나 애인을 만난 적은 없어요?”

 

 현아도 기승이 딴 곳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그나마 불안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겼는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대답했다.

 

 “딱 한 번 본 적 있어요. 셀릭스 창립기념 파티에서요.”

 

 “이름이 기억나요?”

 

 현아가 고개를 저었다.

 

 “여자 친구와 연락처나 명함을 주고받진 않았죠?”

 

 “당연하죠. 회사 파티에 참석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 일인데 남자친구 회사 동료의 애인하고까지 엮이고 싶은 사람은 없잖아요.”

 

 “혹시 정성훈의 애인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나요? 직업이라든지, 아니면 회사 이름이나 어디 사는지 같은 거요? 아니면 취미 같은 거에 대해서 말하진 않았어요?”

 

 “인사치레로 대화를 나누긴 했는데 하도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현아가 팔짱을 끼고 턱에 손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머리를 저었다.

 

 “미안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기억나는 게 없네요. 근데 왜 그렇게 성훈 씨에 대해서 집착하는 거죠?”

 

 “그가 장민혁 씨 죽음에 대한 열쇠를 갖고 있을 거란 기분이 들어요. 제가 만나자고 한 직후 자살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요. 장민혁 씨의 죽음에 커다란 마음의 짐을 지고 있었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을 가능성이 커요.”

 

 “그렇군요. 미안해요. 도움이 되지 못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3년 전 일을 기억해내라는 게 더 무리한 요구죠.”

 

 그들은 맥도날드를 나와 걷기 시작했다. 큰 대로 보다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이용했다.

 

 도로에 순찰차가 보이거나 공중에서 경찰 드론의 엔진소리가 들리면 뒤돌아서 반대쪽으로 움직이거나 가까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기승이 경찰서에서 탈출한 뒤 눈에 띄게 길거리에 경찰차가 늘어났다.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상가에 붙어서 처마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잽싸게 걸어가던 기승이 우뚝 멈춰 섰다. 약 삼십 미터 앞에서 경찰 네 명이 길을 막고 검문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스캐너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생체감정칩을 스캔하고 있었다. 저 스캐너에 걸려들면 끝장이다.

 

 즉시 기승의 정체가 탄로 날 것이다. 기승은 현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자연스럽게 뒤돌아가려던 기승은 멈칫했다. 무인 경찰차가 50미터 후방에서 접근 중이었다.

 

 경찰차 지붕에는 중형 스캐너가 달려 있었다. 반경 50미터 이내에 있는 생체감정칩을 스캔할 수 있는 스캐너였다.

 

 재빨리 좌우를 살폈지만 빠져나갈 수 있는 옆길이나 골목길은 보이지 않았다. 사면초가였다.

 

 그때 현아가 기승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녀는 상가를 따라 이동하다 정면에 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승이 그녀에게 다급하게 속삭였다.

 

 “여기로 들어가면 꼼짝없이 갇혀요. 무인 경찰차에 달린 스캐너는 50미터 전방의 모든 사람들 생체정보를 스캔한다고요. 건물에 들어가 숨어도 소용없어요.”

 

 “걱정 말아요. 나한테 다 생각이 있으니까.”

 

 현아는 기승을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지하 3층으로 내려가자 미로같이 복잡한 지하상가가 나타났다.

 

 기승은 그제야 그녀가 여기로 들어온 이유를 알았다.

 

 “뭐해요. 빨리 걸어요. 스캐너에 포착되기 전에.”

 

 그들은 지상 경찰차와 반대 방향 통로를 종종걸음을 치며 지나갔다. 뛰어다니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도 있기 때문에 빠른 속보로 이동했다.

 

 지하상가를 지나치던 현아가 갑자기 통로 중간에서 멈춰 섰다. 기승은 한참 가다 그녀가 따라오지 않는 걸 뒤늦게 알아채고 뒤를 돌아봤다.

 

 그녀는 전자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은 상점 유리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아직 그들은 스캔 반경 범위 안에 있었다. 애가 탄 기승이 재빨리 돌아가서 그녀의 팔을 잡았다.

 

 “뭐하는 거예요? 빨리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돼요.”

 

 “생각났어요.”

 

 “네? 뭐가요?”

 

 “정성훈 씨 여자 친구가 무슨 일을 했는지요.”

 

 현아가 벽에 달린 포스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두 명의 남녀가 춤을 추고 있는 댄스교습소의 포스터가 상가 유리창에 붙어 있었다.

 

 현아가 말했다.

 

 “정성훈 씨 여자 친구는 춤을 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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