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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준비하는 다섯 가지 방법
작가 : 멀이
작품등록일 :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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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작성일 : 18-12-25     조회 : 209     추천 : 0     분량 : 2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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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de. 언젠가

 

 렌체스터 백작가의 고문 변호사인 벤자민 브라운은 어느 날 급한 호출을 받고 고용주의 저택을 찾았다가 심각한 얼굴로 골똘히 생각하는 고용주를 보곤 속에서 우러나오는 욕을 차마 참지 못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겨우 이딴 걸로 날 불러?”

 “입 닥치고 의견이나 내봐.”

 “이미 넌 충분히 미친 짓을 하고 있어. 어느 누가 부인 입덧 때문에 먹던 약도 끊고 주방에서 음식을 하고 있냐? 어느 누가 부인 움직일 때마다 본인이 안아서 옮겨. 너 요즘 일도 알버트한테 미룬다더라?”

 “그럼 그것도 안 해? 애를 가졌는데도 더 마른 사람 앞에서?”

 “니 가족일은 니가 알아서 하세요. 왜 나한테 이러세요?”

 

 고용주만 아니었어도 확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 진짜. 아오! 스스로 이 상황이 아주 분한지 발을 쾅쾅 구르던 벤자민은 소파에 길게 늘어지며 손을 휘휘 저었다. 저런 걸 친구라고 두고 있으니. 쓸모없는 것을 바라보는 눈빛을 미처 알지 못했던 벤자민은 천장을 바라보며 그냥 생각나는 대로 툭툭 내뱉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거나.”

 “물 냄새만 맡아도 토해.”

 “뭐 좋아하는 것들을 하게 해준다거나.”

 “앉아있기도 힘들어 하는 사람이 퍽이나.”

 “편하게 있을 수 있게 환경을, 아, 나 왜 이런 거 하고 있냐고!”

 “더 없냐?”

 “하나 있다. 부인한테 네 머리채를 쥐어주고 이 놈 때문에 부인이 고생이라고 해주고 싶어. 네가 시작했으면 네가 책임지세요. 고용주 놈아.”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의견이 영 마음에 차지 않는 듯, 혀를 끌끌 찬 레슬리는 알겠다며 손을 휘저었다. 가는 길, 조심하고. 웬일이냐. 내 걱정을 다 하고? 가다가 엎어져서 코 깨지라 할까? 미안하다. 실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벤자민을 현관까지 배웅하던 레슬리는 급히 움직이는 고용인들을 발견하곤 친구의 등을 빠르게 밀기 시작했다.

 

 “야, 왜. 왜!”

 “부인 보려고 그런다 왜. 그리고 너 향수 좀 뿌리지 마라. 내가 속이 더 안 좋아지네.”

 “청정 지역에서 맑은 공기나 쐬라. 간다, 가!”

 

 부인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깊은 빡침이 느껴지는 말을 뒤로 하고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온 레슬리는 체통이고 뭐고 전부 집어던진 채 급하게 계단을 올라 자신의 부인이 자주 머무는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모로 누워 피곤한 눈을 겨우 뜨고 있던 아가사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누구 왔어요?”

 “벤자민이. 잠깐. 지금은 좀 괜찮아요? 뭐라도 먹을 수 있겠어?”

 “글쎄요. 딱히 생각나는 건 없는데.”

 “생각나면 말해줘요.”

 

 아이는 어미의 양분을 먹고 자란다지만 새로 들어가는 것이 없는 몸은 외려 아이를 가지기 전보다 더 말라가고 있었다. 그것이 미안하고 안쓰러워 레슬리는 전전긍긍 아가사의 상태를 몇 분마다 확인하고 신경 썼으나 그렇다고 무언가 더 나아지는 일은 없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을 전부 게워내질 않나. 막달이 다 되어감에 따라 마른 몸임에도 팔다리가 붓고 제대로 움직이는 것도 버거워하질 않나. 상황을 보아하니 방금 전까지도 화장실에 있던 모양이었다. 반쯤 감은 눈을 들어 레슬리를 바라보던 아가사는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누가 보면 나 죽는 줄 알겠어요?”

 “그런 말은 왜 해요. 죽을 사람이 없는데.”

 “괜찮다는 말은 못하겠는데, 그래도 뭐. 나중에 열심히 뜯어먹을래요.”

 “평생 모시고 살 거랍니다. 마음껏 뜯어가세요.”

 

 얼굴 위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손가락 새로 빗어 내리며 뒤로 넘겨주고, 마른 뺨을 손끝으로 훑어내자 조금 더 분명한 웃음소리가 뒤를 따랐다.

 

 “여보, 아무리 생각해도 둘째는 안 되겠어요. 차라리 입양을 하고 말지.”

 “레슬리. 누가 낳아준대요? 누가 보면 혼자 애 만드는 줄 알겠어.”

 “할 수 있으면 내가 해주고 싶어요. 정말로.”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 걱정해주는 이 상황을 뭐라고 해야 할까.”

 

 팔을 뻗어 침대에 걸터앉은 이의 허리를 끌어안자, 그저 깔끔하게 느껴지는 체향이 은은하게 풍겨왔다. 전에 레슬리가 평소에 먹던 약을 먹고 가까이 왔을 때 속이 그렇게 뒤집어진 이후로 약도 안 먹고 있다고, 그렇게 전해 들었다. 미안하면서도 고마운데 하지 말라고는 못하겠다. 남편의 품에 잠시 얼굴을 비비적거리던 아가사는 고개를 빼꼼 들고 남편의 눈을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나도 미안해요.”

 “고맙고?”

 “그것도.”

 “응, 그래요.”

 “설마 거기까지가 끝인 건 아니죠?”

 “그럼?”

 “사랑한다는 말은 해줄 줄 알았는데.”

 “그래요, 사랑해요. 지금은 좀 덜 사랑하지만.”

 “응, 그래요. 나도 사랑해요. 당신보다 더 많이.”

 

 평생을 공유하지는 못했어도 지난 4년에 가까운 시간을 나눈 부부는 꽤 비슷한 미소를 짓고 서로를 가만히 응시하며 순간을 흘려보냈다. 가물거리던 눈꺼풀이 닫히고 고른 숨이 색색 새어나오는 이를 가만가만 다독거리던 레슬리는 문득 생각난 듯 고개를 기울여 아가사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지금은 조금 덜 반갑지만, 그래도 사랑한단다. 아가야.

 

 ❦

 

 “너 뭐하냐?”

 “볶음 국수가 먹고 싶다고 해서.”

 “그래서 지금 직접 요리를 하세요?”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평소엔 죽어라 지 먹을 것만 만드는 놈이.”

 “그 입 닥쳐.”

 

 ❦

 

 한참 후에, 이 순간을 되돌아 봤을 때 적어도 아쉬워하지 말기를 바라.

 너의 모든 순간들이 하나의 기억으로, 추억으로 남길 바라.

 그게 너를 사랑하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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