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게발 선인장
작가 : 직깨미
작품등록일 : 201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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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작성일 : 18-12-14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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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네 잘못이지 내 잘못이냐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몸짓이었다. 시선을 더 뒀다가는 순희가 민망해서 눈물을 쏟아낼 건 훤한 사실이라고 단정을 지은 수리가 고개를 돌려 직원들에게 눈을 찡긋했다. 그게 순희 약을 더 올리게 하는 짓이었다. 그 눈짓은 TS건설에서 하던 짓을 TS검정에서 잠시 활용했을 뿐이었지만 순희 입장에서는 이부장이 박대리에게, 자기만 쏙 빼고, 은밀한 지시를 내릴 때 하던 짓이었다. 수리가 한 절반의 윙크는 순희에 대한 배려였지만 순희 전혀 그렇게 받아드리지 않고 있었다. 손님들이 접견 실로 들어 간 걸 확인한 지원병들이 입을 막고 자리에 앉았다. 접견 실로 안내했던 경호가 밖으로 나와 수리 옆으로 바짝 다가가서 귀에다 입을 대고 속삭인다.

 

 “형님! 저도 명함 하나 주세요. 저 사람들이 명함을 주던데 저는 없어서 못 줬습니다. 직책은 뭐라 해야 하죠?”

 

 수리가 서랍을 뒤척거리면서 명함을 한 묶음 꺼내며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자! 이거 줘라. 참! 지금 밥그릇 싸움 중인 건 형님에게 대충 얘기 들어서 알지? 오줌 정도만 질기게 적당히 주물러줘. 잘못 입 놀리다 배에서 만나면 가만두지 않는다고 해버려.”

 

 “형님! 저는 수영할 줄 모릅니다.”

 

 “야 임마! 네가 바다에 들어가는 게 아니고 저 영감 말이다.”

 

 “그래도 건져는 내야죠. 못 건지면 살인자 되잖아요. 싫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경호 눈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걱정 마! 네가 배에 갈 일이 어디 있어. 유람선도 아닌데.”

 

 “저도 배타고 싶은데.”

 

 “이번 일 잘 되면 질리도록 배타게 해 줄게. 그럼 됐나?”

 

 “아이 참! 그 배 말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접견 실로 돌린다. 수리가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야! 할망구다.”

 

 경호가 같잖은 듯이 웃으며 주먹으로 수리 어깨를 세게 치며 비웃는다.

 

 “형님한테는 과분합니다. 지나가는 똥개한테 물어보십시오. 그나저나 방금 한 말 바꾸기 없깁니다.”

 

 경호 입장에서는 살짝 쳤지만 수리 입장에서는 전혀 아니었다.

 

 “어이 씨! 야 임마! 야! 살살 쳐. 아이고 아파라! 나도 이번 일 성사되면 직원이 필요하니까 형님에게 물어보자. 일단 이 일부터 성사하고. 오케이?”

 

 경호는 주먹 세계에서 시작된 건설 회사에서 오래 전에 떠나고 싶어했지만 받아주는 회사는 둘째치고 똑똑하고 날쌘 경호를 아재도 형님도 놔주기를 않았다. 친척인 수리는 급하면 언제던 부를 수 있지만 성호는 떠나면 적이 될 수도 있단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형님은 늘 가지고 있었다. 살짝 스친 사람 주먹이었지만 실제로는 주먹이 아니었다. 살인무기였다. 수리가 고통스럽게 곧 죽을 듯이 인상을 찡그려 어깨를 주무르며 서랍에서 꺼낸 명함을 성호 손에 쥐어준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이경호란 친구가 회사를 먼저 그만두고 다른 직종을 찾던 중에 수리는 창업을 하게 되었다. 그때 자격증이 필요해 그 친구에게 4대 보험을 들어주고 자격증을 빌리면서 무직인 친구에게 명함을 한 묶음 준 적이 있었다.

 

 명함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기분 나쁘다며 투덜거린다.

 

 “형님! 저는 성호잖아요. 이건 경호고. 또 직책은 이게 뭡니까? 대리 말고 부장 정도는 돼야죠. 휴대폰 번호도 틀리잖아요.”

 

 수리가 싱거운 소리로 웃으며 성호 머리를 한대 쥐어박으며 말한다.

 

 “이대리님! 대리님 연세가 올해 27살이잖아요. 이 나이에 부장은 좀 그렇죠? 차라리 본래 직책인 행동대장으로 바꿔드릴까요? 번호는 휴대폰을 바꿨다고 하고 대리만 3년째라고 투덜거려보세요. 혹시 압니까! 저를 나쁜 업자라며 저 할망구가 대리님 편 들어 줄지. 똥구멍 잘 간질여 보세요. 요즘은 갑이 하라는 데로 할 수밖에 없어요. 제 의사와 상관없이 대리님을 사장으로 바꿔버리는 게 갑이에요.”

 

 성호가 기가 찬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무식하게 힘만 센 줄 알았는데 우리 형님이 사기꾼 기질도 있네. 이렇게 은근슬쩍 저를 여기로 불려 드리려고. 허허! 하긴 주먹질할 때 이리저리 잘 피하는 걸 보면 충분히 그럴 위인이란 건 알았으니 새삼스럽지는 않네요. 그럽시다. 이 참에 저도 개과천선하고 사장 한번 해 봅시다. 이 생활 접고 여기서 일하다가 회사 뺏어 버리면 되지. 그러려면 당분간 행동대장 이성호가 아닌 이경호대리로 살겠습니다. 저를 부를 때 성호라고 하면 알죠?”

 

 불끈 쥐어진 주먹을 수리 눈 앞에 갖다 놓고 협박을 한다.

 

 “경호라고 하는 건 상관이 없는데 그 사장이란 말은 좀 그렇네. 말이 씨가 된다 하던데 뭔가 불안해. 혹시라도 그렇게 되면 나이 들어서 내쫓지는 말아주세요. 서럽습니다.”

 

 “하는 거 보고.”

 

 싱거운 얘기 속에는 성호의 진담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걸 수리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성호가수리 회사를 탐을 낸다는 의미가 아니고 TS 건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애당초 주먹이 아닌 TS건설회사에 취업을 했더라면 이런 생각은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회사인지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변천하는 과정이 달랐기 때문에 성호는 떠나고 싶어했다. 만약에 성호가 TS검정의 대표가 되면 바로 상호부터 바꿔버릴 것이다. 이건 성호의 생각이 아니고 수리 생각이었다. 상호를 등록하고 난 뒤에야 수리는 아차 했기 때문이었다. 성호가 명함을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밖으로 나왔다.

 

 조직에서 가장 영리한 성호는 그런 자리엔 오래 앉아 있으면 바로 이 회사 직원이 아니란 게 들통이 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대학도 수리처럼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는 사립대가 아닌 국립 대학을 간 똑똑한 청년이다. 자기 입으로 중퇴했다고 했지만 중퇴인지 휴학인지는 본인만 알고 있다. 그 대학에 다닌 건 확실했다. 성호가 명함을 주고 나온 뒤에 수리가 접견 실로 들어갔다.

 

 김소장이 뒤로 나자빠질 정도로 의자에 몸을 맡긴 채 팔짱을 낀 채 삐딱한 눈으로 수리 몸을 탐색하듯이 쳐다본다. 같은 업종에서 일을 하지만 김소장과는 처음 만나는 자리다.

 

 수리는 나이로 치면 김소장 회사의 대리나 과장 정도다. 충분히 이런 자세를 취할 수 있지만 엄연히 수리는 소장보다 높은 직책인 대표였다. 그보다 수리 성질이 이런 자세를 용납해줄 만큼 너그럽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수리가 김소장을 모르듯이 김소장도 수리를 모르기 때문에 남의 회사를 자기 안방으로 여기고 거의 드러눕듯이 앉아 사팔뜨기 눈으로 힐끔거리며 입을 열었다.

 

 “야! 너 이 새끼! 어느 회사 출신이야?”

 

 서슬 푸른 눈으로 수리를 노려보며 지른 고함소리에 순희 얼굴이 엄동설한 개울가에 서 있는 소녀처럼 새파랗게 얼어붙어 버렸다.

 

 그러나 김소장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박대리는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다. 왼쪽 입술로 광대뼈 살점들을 눈 아래로 밀어 몰리고 있다. 김소장 고함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나온 비아냥의 미소였다. 밤새 마신 술로 내장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머리도 어질어질한 상태에서 들린 이 한마디에 전신이 해독되어버렸는지 이거다라고 딱 꼬집을 수 없는 어떤 후련한 희열이 밀려온 미소였다.

 

 김소장이 살아온 인생의 절반을 살고 있는 이 애송이에게서 어떤 대응이 나올지 어렴풋이 짐작을 했는지, 김소장도 박대리도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으로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말이 아닌 전혀 엉뚱한 말이 나왔다.

 

 “야? 너?”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란 말에 어울리는 딱 두 마디자만 나왔다. 그러나 위력은 대단했다.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김소장 고함은 새 발의 피였다.

 

 그렇다고 김소장처럼 젖 먹던 힘처럼 쏟아낸 소리도 아니었다. 낮게 깐 저음의 소리로 위압감을 주는 그런 소리도 전혀 아니었다. 평범한, 일상적인 질문에 지나지 않는 소리였다.

 

 그런데 순희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벌써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자동적으로 순희 시선이 밖에 있는 군인머리 남정네에게로 갔다. 온몸이 세찬 찬바람이 흔들리는 사시나무보다 더 심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박대리도 마찬가지였다. 순희가 김소장과 박대리의 눈치를 살핀다. 이들 시선도 밖으로 기웃거리며 벌써 얼굴이 파랗게 질린 듯이 보였다. 적막을 느낄 정도의 살벌한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이 사람이 밖으로 고개를 돌려 직원을 불렀다.

 

 “이대리!”

 

 순희가 고개를 갸웃한다. 김소장에게도 그랬지만 직원을 부르는 목소리도 낮은 소리였다. 무섭다가 보다 이유 모를 호기심이 순희에게 발동하고 있었다. 팔색조처럼 여러 개 색과 같은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 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사람이라는 데에 관심도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한가지 확신도 섰다. 김소장이 이 업계의 대부라는 허세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거란 거였다. 이대리란 사람이 총알처럼 쫓아왔다. 키는 이 사람과 비슷하지만 겉 옷을 벗기지 않아도 속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근육질이었다. 여기가 검정회사인지 깡패소굴인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차는 뭐로 드시겠습니까? 커피밖에 없는데.”

 

 김소장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김소장이 불쾌한 표정만 보냈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하고 있었다. 커피밖에 없으면서 물어보긴 왜 물으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대리란 사람이 커피를 가지러 나갔다. 다시 수리가 김소장 눈을 삼킬 듯 응시하며 가슴을 철렁하게 말을 한다.

 

 “야와 너를 빼고 다시 한번 물어 보시겠습니까? 그럼 제가 대답을 해주죠.”

 

 일그러져 있던 김소장 인상이 한번 더 일그러지며 썩어도 준치나 되는 듯이 호기를 부리고 있다.

 

 “이 새끼가, 대가리 피도 안 마른 놈이 건방지게 어디서 어른한테 함부로 대들어. 버릇없이.”

 

 이런 말을 들으면 대부분은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는 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주먹이 어느새 겨드랑이 속으로 파고 들어가 있었다.

 

 주먹질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던지는 행위는 아니었다.

 

 김소장의 화를 더 북돋우려는 의도로 보였다. 팔짱을 낀 양 팔꿈치가 유리탁자 위에 괴어졌고, 허리가 앞으로 굽어지면서 가슴이 김소장 얼굴 아래로 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턱도 같이 테이블에 닿을 만큼 내려가 있었다. 김소장이 어른답게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몸은 움찔하는 것 같았다.

 

 그때 김소장 허리가 순간적으로 꼿꼿이 세워지다 못해 뒤로 나자빠질뻔했다. 그런 김소장을 보고도 수리 눈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김소장 눈이 자기 눈에서 못 떨어지게 붙잡고 있었다. 화가 났거나 당장이라도 응징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박대리를 더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이로 봐서는 한마디로 게임도 되지 않은 싸움인데도 터줏대감의 든든한 배경을 등에 엎고 온 김성태가 신생업체간의 기 싸움에서 밀린다는 생각을 한 순희 마음이 알 수 없는 희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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