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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rnica for the city
작가 : 날개이름
작품등록일 : 20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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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악]
작성일 : 19-02-01     조회 : 354     추천 : 0     분량 : 3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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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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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핏빛 광야.

  살아있는 거인의 살점을 방금 막 도려내어 깔아놓기라도 한 듯 뜨겁게 두근거리는 새빨간 혈육에, 나의 발목은 파묻혀 있었다.

  하늘이며 주변은 새까매 거리감이 없고

  벌린 입술 사이로 가늘게 늘어지는 진득한 혈액마냥, 여기저기 위로 솟은 혈관들이 있었다.

  자극적인 색상에 눈이 충혈 되어온다. 뇌와 맞닿은 깊숙한 곳까지, 눈알이 달궈지는 느낌이 들었다.

  “으으...”

  그렇게 신음할 무렵,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피의 폭포가 떨어졌다.

  촤아악!

  팽배하게 부풀었다 움츠러들기를 반복하는 혈육을 타고, 선혈이 얇은 파도로 밀려와 내 발이 움푹 밟아놓은 곳 안으로 고여 들었다. 맨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한층 더 미끄러워졌다. 발을 감싸는 압력이 변할 때마다, 피의 수면이 상하 운동을 하며 발목 아래부터 복숭아뼈 위까지 계속해서 훑었다. 물보다 무겁기에, 그 경계를 기준으로 압력의 차이가 굉장하다. 잠긴 부분으로 터질듯 피가 쏠린다.

  “흐아아아, 아아......!”

  발뿐이 아니라 온 몸을 헐벗고 있지만, 실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체온과 이곳의 온도는 비슷했다. 그러니 바깥에서처럼 돌출된 몸의 곳곳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자궁 속에 들어와 있는 태아와도 같이. 하지만 분명 태아에게는 없었을 가슴 속의 이물감에, 나는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아아악!!” 까악, “아아아아아아악!!!”, 까악. “아가아악!!” 까악.

  그 사이사이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끼어들었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간헐천마냥 주변의 혈육이 곳곳에서 폭발한다. 피가 솟친다. 눈부신 백색 아니면 새빨간 어둠으로 쉼 없이 뒤바뀌며 발작을 일으킨다. 기관총의 빛나는 총구처럼. 총성 대신 파도의 폭음이. 계속해서. 까마귀 수십 마리도 그 사이를 날았다. 바닥에서 터져 오른 핏줄기에 직격당해 천장과 충돌한 까마귀의 깃털이 털려 나온다. 첨벙첨벙, 여기저기 비 오듯 까마귀의 사체가 떨어졌다.“아흐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까악.까악.까악.까악.까악.까악.까악.까악.까악.까악.까악. 암적색과 눈부심이 반복되어 세상의 움직임이 끊어져 보인다. 청각과 촉각은 연속적인데 반해 시각은 혼란의 파편만 비춘다. 예측할 수 없이 날아드는 까마귀의 사체에 맞아 이리저리 휘청인다. 넘어지려는 몸을 지탱하려 간신히 두 발을 내딛을 때마다 정강이까지 움푹 들어가 균형을 유지할 수가 없다. 와중에 팔을 허둥지둥 휘둘렀지만 덧없는 공기만 손가락 새로 빠르게 지나친다.

  “으아, 흐으, 흐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디선가 날아든 까마귀 한 마리에 머리를 강타 당한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아아....아, 흐으,”

 

  첨벙.

 

  잔잔한 핏빛 파문이 일었다.

  살점 위로 얇게 퍼진 피의 웅덩이 위에, 까마귀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깃털을 붉게 적신 채,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그 중 한 마리의 퍼진 동공 위로, 핏줄기 하나가 주륵 흘러내렸다.

  천천히,

  진득하게.

  그렇게 내리다가...

  ―푸드득!

  갑자기 몸을 털며 일어난 탓에 사방으로 핏방울이 튀겼다. 동공도 생생하게 돌아와 있었다. 그러자 마치 연쇄반응이 일어나듯 그 까마귀를 중심으로 다른 까마귀들이 확산되며 깨어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깃털을 털어대기 시작했다.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까악?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까악! 까악. 까악. 까악?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까악! 푸드득. 까악!

  금세 다시 시끄러워졌다.

  어떤 까마귀는 아직도 몸을 털어대고

  어떤 까마귀는 고개를 까딱이며 주변을 둘러보았으며

  어떤 까마귀는 새까만 천장을 향해 부리를 열어들고 까악까악 목청을 울렸다.

  그리고 죽은 인간의 이마를 밟고 서 있던 까마귀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눈꺼풀이 한차례 감겼다 뜨이자, 그것의 두 눈은 전체가 빨갛게 도색되어 있었다. 핏방울이 눈꺼풀 밑에 깔려 터진 모양이다.

  그 까마귀가 목을 치켜들고 위엄 있게 울기 시작하자, 다른 모든 까마귀들도 날개를 퍼덕이며 울더니, 사방으로 날아오른 그것들은 어지럽게 얽히다가―

  이윽고 남자의 사체를 온통 새까맣게 뒤덮으며 내려앉았다.

  찌걱찌걱, 한동안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눈을 뜨고 일어났다.

  랄까.

  혈관에 매달린, 눈꺼풀이 없어진 눈알을 뼈가 훤히 드러난 손바닥에 받쳐 올렸다.

  몇 개 안 남은 내장은 파헤쳐져 뱃가죽 밖으로 걸쳐 있고

  한쪽 턱관절이 삐걱거리더니 똑 하고 떨어졌다.

  “......”

  멍이나 때리며, 한참동안 가만히 있던 남자는

  갈비뼈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생채기 하나 없이 혼자 멀쩡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꺼내 들었다.

  두근두근. 지 친구들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고 신나게 박동하고 있었다. 안에서 성인 남자의 비명소리 같은 것이 작게 들려온다.

  남자는 있는 힘껏 심장을 잡아 당겼다, 하지만 혈관에 넥타이처럼 매달려 주욱 늘어질 뿐 절대 끊어지지 않았다.

  “......”

  남자는 그 심장을 바라보며 잠시 동안 생각에 잠기나싶더니, 곧 앙상한 정강이뼈로 혈육을 딛고 일어나 그 심장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뾰족한 손가락뼈를 송곳삼아 두드려보기도 하고

  신경질적으로 내던져보기도 하고

  있는 힘껏 발로 차보기도 했지만

  고무줄에 매달린 공처럼 되돌아온 심장에 애꿎은 두개골만 저만치 떨어져 굴렀다.

  곧 나머지 뼈들도 분리되어 무너졌다.

  우수수수수....

  피 웅덩이 위에 널브러진 앙상한 뼈들.

  살점은 녹아 없어지고

  홀로 남은 심장의 박동에, 조그마한 파문이 반복해서 일고 있었다.

 

 

  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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