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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rnica for the city
작가 : 날개이름
작품등록일 : 20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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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톱니바퀴 part. 1]
작성일 : 19-02-10     조회 : 381     추천 : 0     분량 : 1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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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깅. 키깅.

 키깅.

 키깅. 키깅. 키깅.

 마치 금색 파도를 보는 듯이,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빼곡이 맞물려 굴러가고 있었다. 여기저기 올랐다 내렸다하며 풍경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 위로는 푸른 하늘대신 증기기차의 밑바닥마냥 복잡한 기계들이 얽혀 있다. 가끔씩 내뱉는 연기는 잠깐 동안 구름을 연기하다가, 다시 그 기계들 사이로 녹아들듯 사라지는 것이 전부였다.

 키깅. “우왓?!”

 밟고 있던 톱니가 돌아가 앞으로 고꾸라질 뻔 한 남자는 가까스로 다음 이빨로 뛰어내렸다.

 “휴... 정말 끽하면 바로 골로 가겠구만.”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고 오르락내리락 맞물리는 발밑의 금색 톱니를 보며 남자는 생각했다.

 ‘이런 환경에서 태연하게 잘들 살고 있단 말이지. 뭐, 나도 그렇지만.’

 금색 톱니들의 위에는 심심찮게 사람들이 서 있었다. 물론 이 남자처럼 위태위태하기 짝이 없는 꼴로 말이다. 하지만 동요하거나 평정심을 잃는 이는 없었다. 아마 평생 이곳에서 살고 있기에 익숙해져버린 것이 아닐까. 집에 불을 켜두고 오는 것은 식겁하면서, 자칫 잘못 디디면 전신이 평평하게 다져질 수 있는 코앞의 위기에는 퍽도 관대한 듯 보인다.

 “저, 저기...” 누군가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같이 걸어도 될까요?”

 돌아가는 타이밍에 맞춰 다음 이빨로 폴짝 뛰어오른 그녀는 남자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안되려나, 하하....”

 “아....”

 말총머리에 동그란 눈을 가진, 선해 보이는 소녀였다.

 “되, 됩니다. 동행하시죠.”

 그 나이에 칠칠치 못하게 얼굴을 붉히는 남자였다.

 “그럼...” 키깅. “읏차.”

 남자가 뒤로 움직이는 이빨에 그대로 서있자 소녀는 그리로 폴짝 뛰어 가볍게 안착했다.

 “꽤나 몸놀림이 가벼우시네요.”

 “한창일 나이니까요. 그래도 잘 부탁드려요. 저는 여기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르는 게 많거든요.”

 생긋. 억지로 만들지 않은 듯한 그 순수한 미소가 남자의 가슴을 한차례 뛰게 만들었다.

 남자는 애써 태연한 척 다음 이빨로 건너갔다.

 “어라? 그런데 혹시.....”

 의아한 듯 소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남자가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올해로 17살이에요.”

 “17살...!?”

 남자는 놀란 듯 눈을 깜빡거리며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괴, 굉장히 젊네요. 이곳에 온 사람 치고 서른 살 아래인 사람도 찾기 힘든데 18살이라니, 그런 한창 청춘일 나이에 왜 이런 곳에....”

 질문을 받은 소녀는 무심한 듯 시선을 잠깐 아래로 내리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웃으며 답했다.

 “청춘....인가요? 그렇네요.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돈벌이 생각 안 하고, 청춘이라면 청춘이려나요, 하지만 오고 싫다고 해서 오지 않을 수 있는 곳은 아니잖아요? 여기는.”

 달관이 담긴 미소를 지은 소녀는 뒷짐을 진 채 아래로 기우는 이빨에서 뛰어내려 다음 톱니에 살포시 안착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걱정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던 남자는...

 “우, 우왓?!”

 잠시 잊고 있던 톱니의 회전에, 이빨에서 미끄러져내려 그 살벌한 맞물림의 틈에 발이 끼일 뻔 했지만, 신속히 그의 손을 뒤로 잡아당긴 소녀 덕에 다행히 아무 탈 없이 다음 톱니 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고, 고마워요.”

 “뭘요.”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시네요. 회전하는 톱니 위에서 그렇게나 빠르고 정교한 움직임이라니, 여기에 40년씩이나 살았다는 사람들조차도 그렇게 능숙하진 않아요.”

 “하하....”

 칭찬 아닌 칭찬을. 칭찬 아닌 칭찬을 받아버렸다며 소녀는 또 한 번 멋쩍게 웃었다.

 “그런 저도 실수할 때는 많으니까, 그때에는 잘 부탁드릴게요.”

 지나칠 정도로 올곧은 소녀라는 생각을 하며, 남자는 그녀의 웃음을 맞받았다.

 뒤로 돌아가는 톱니를 역행으로 거슬러 다음 톱니의 앞에 다다랐다.

 “걸을까요?”

 “아, 네. 그러죠.”

 그렇게 상승하는 다음 톱니의 이빨에 발을 올린 그들은, 그 후로도 잡아주고 당겨주고 하며 한참동안 금색 바다 위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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