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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마마의 은밀한 기녀생활
작가 : 지놓
작품등록일 : 20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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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어찌하여 기생이 되었느냐
작성일 : 19-11-07     조회 : 254     추천 : 0     분량 : 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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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그게…….”

 

  이만한 압박감은 저 좌상대감 앞에서조차 느껴본 적이 없다. 실로 놀라운 자들이로고…… 단 몇 차례의 문답만으로 이토록 사람을 죄어올 수가 있다니. 그 자신이 대상이 아니었다면 진실로 감탄했을지도 모른다.

 

  “왜, 답하기 힘든 질문이더냐?”

 

  답하기 힘드냐고 물으면서 저토록 낄낄대는 모습들이라니. 정말이지 질릴 정도로 교활한 악취미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딱히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 당장 이안에겐 어떻게든 대답을 쥐어짜는 것 외엔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 집안이 가난하여…….”

 

  “그래? 그렇다는 것은 부모가 너를 팔아넘겼단 소리더냐?”

 

  “그, 그것은 아니온데…….”

 

  이안은 ‘이것’을 가벼이 여겼던 아까의 자신을 뼈저리게 원망했다.

 

  “허면? 원래 노비 집안이더냐?”

 

  “아니요…….”

 

  “어미가 기생이더냐?”

 

  “그, 그것도 아니긴 한데…….”

 

  “허어, 말이 앞뒤가 다르지 않느냐. 그럼 어찌하여 기생이 되었단 말이야.”

 

  “그, 그게…….”

 

  얼버무리는 와중에도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으나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미리 대비해놓지 않은 것이 이리도 화근이 될 줄이야. 경고를 들었음에도 이를 미룬 것은 자신의 탓이다. 이안은 홍월의 말을 가볍게 여긴 자신의 경솔함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홍월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이는 굉장히 교양 없고 ‘못된’ 질문 중 하나였다.

 

  어찌하여 기생이 되었느냐.

 

  이는 또한 ‘누가 네 머리를 올려주었느냐’, ‘언제 처음 머리를 올렸느냐’와 더불어, 기생들이 면피하고 싶은 대표적인 질문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것이었다.

 

  평소 ‘꽃’이라 불리는 이들이지만, 진정 이들을 ‘꽃’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 수준 높은 학식과 기예, 교양을 지녔음에도 시장의 백정만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이 바로 그들 기생이다. 천하디 천한 신분이라는 인식이 모두에게 뿌리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기녀들의 화려한 의복에 혹한 아이들이 자신도 저와 같이 되고 싶다며 떠들어대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자신이 원해서 기생이 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여, 기생에게 어찌하여 기생이 되었느냐고 질문하는 것은 본인더러 ‘결코 좋지 않은’ 가정사를 털어 놓으라는 것에 다름이 없고, 또한 ‘어떤 양반이 첫 잠자리 상대였냐’고 묻는 것도, ‘그것이 몇 살 때였냐’는 질문도 여인 된 입장으로서 당연지사 치욕스러울 수밖에 없다.

 

 

  “참으로 생각 없는 자들 같으니…… 어찌 그런 질문들을 해가지고 그이들의 마음을 어지럽힌단 말인지…….”

  “웬걸요, 그자들도 다 알지요 당연히.”

  “안다고요?”

  “그럼요. 다 알면서 묻는 거예요. 대답하기 곤란한 거 다 알면서.”

  “어, 어째서요?”

  “그야…… 그걸 재미있어 하니까요. 그걸 보는 걸 즐기거든요. 기녀들이 곤란해 하고, 힘들어 하는 걸.”

 

 

  홍월은 이를 ‘기녀 골리기’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어느 기녀가 콧대가 높다거나,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다 싶으면, 하루 날을 잡고 패거리가 다 같이 몰려가선 그러고 괴롭힌다고. 말이야 골리기지, 실은 ‘기녀 죽이기’나 다름없다고.

 

  ‘운 나쁠 때 가끔 그런 진상들이 걸릴 수도 있다더니…….’

 

  이안은 기녀생활 첫 날부터 당장 이 ‘기녀 골리기’에 당첨되고 말았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물론, 이 ‘골리기’가 그에겐 조금 다른 의미에서 난감한 것이긴 했지만.

 

  “기생이 된 건…… 사실 그……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아니, 그러니까 그 피치 못할 사정이 무엇이냐고 지금 묻고 있는 게 아니더냐. 허허, 참…….”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걸 묻지 말라고 지금 이러고 대답하는 게 아니더냐!’

 

  차마 소리칠 수가 없어 대신 고개를 푹 숙인 이안이었다.

 

  ‘정녕 그 방법뿐인가……?’

 

  정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쓰라며 홍월이 일러준 비책이 하나 있긴 했으나, 이안은 그럼에도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그 비책이라는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의 사내대장부로서의 정체성을 심히 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냐, 아니다. 그건 정말이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방책!’

 

  ……이라 여기기엔 상황이 좋지 못했다.

 

  “어허, 대답을 하지 않을 셈이더냐?”

 

  “이런 식이면 우리도 네게 벌주를 내릴 수밖에 없는데…….”

 

  “벌써부터 우릴 실망시키려는 건 아니겠지?”

 

  신나서 잔을 채우고 있는 면면들을 보니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사내는 무슨 사내…… 나는 기녀다, 나는 기녀다!’

 

  이안은 굳게 마음을 먹었다.

 

  이어,

 

  “소녀, 옛 일만 떠올리면 눈물이 가슴 가득 차올라…….”

 

  이야기를 쥐어짜는데 실패했으니 대신 다른 것이라도 쥐어짜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표정연기는 이골이 난 터였다.

 

  ……흐, 흐흑.

 

  느닷없이 이안이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낄낄거리며 대답을 재촉하던 이상환 무리도 꽤나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 아…… 이것 참…….”

 

  “그러게 그만 하자니까 참내…….”

 

  “아니, 자네가 언제 그랬다고!”

 

  “청화야……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면 그만 물으라 하지 그랬더냐. 그만할 테니 울음을 그치거라…….”

 

  ‘당신네들이 잘도 그러겠구려.’

 

  이안은 기세를 몰아 더욱 서럽게 울먹거렸다.

 

  이에 이상환 역시 당황한 듯,

 

  “이, 이런…… 놀림이 지나쳤나 보구나. 더 묻지 않을 테니 일단 울음을 그치거라.”

 

  이러한 이들의 반응에 이안 역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생각보다 효과가 상당한데?’

 

  이후의 분위기가 다소 침체된다는 부작용이 있긴 했으나, 그럼에도 ‘골리기’의 싹을 잘라버렸다는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인 성과였다.

 

  성정체성에 관한 처음의 저항감은 온데간데없이, 이 ‘여인의 눈물’을 자주 애용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이안이었다.

 

  그리고 그즈음,

 

  톡톡.

 

  누군가 방문 밖에서 문고리를 두드렸다.

 

  “홍월이라 하옵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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