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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크릿서비스-밀사
작가 : 사오정
작품등록일 : 2019.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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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점의 아이-그 사람
작성일 : 19-10-02     조회 : 470     추천 : 0     분량 : 5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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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두 남자, 사십 대 중반의 김 치호 부장의 눈이 살짝 졸린 듯 감긴다. 졸린 것이 아니다. 무언가 중요한 일을 눈 앞에 두고 있을 때 그의 눈은 늘 그렇게 고요하게 떠있다.

  -이제 시작해야지?

  김 치호는 맞은편에 서 있는 윤 경영에게 말을 건넨다. 경쾌하면서도 중후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다.

  -어떻게 데려와야 할까요?

  윤 경영은 상사인 김 치호에게 사뭇 긴장된 목소리로 묻는다. 이십 대 후반의 나름 세련되고 댄디한 분위기를 풍기는 감색 슈트가 오늘따라 유난히 패셔너블한 느낌을 준다.

  -내가 그것까지 가르쳐줘야 하나? 내가 자네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보라고.

  -그럼 이 친구를 한 대 쳐도 되는 건가요?

  -내가 너한테 손을 냈나?

  -기억은 당하는 사람만 하는 거죠.

  윤 경영이 장난스럽게 웃음을 흘린다. 김 치호는 피식 웃으며 그건 다 네 탓이라는 혹은 네 팔자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냥 만나서,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니 이제 우리와 함께 일해야 한다. 그게 너의 숙명이다, 뭐 그렇게 말하면 간단한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하지. 헌데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일인데 세레모니가 있으면 좋잖아. 우리 선배들이 굳이 절차를 만들어 놓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겠어! 캐스팅, 헌팅, 스카우팅. 너 나름대로 각본을 짜서 한 번 재미진 그림을 만들어 보라고. 각인, 선명한 각인이 잠들어 있던 그들의 기억을 수면으로 끌어오는데 효과적이니까. 이를테면 충격요법.

  -각인이라... 충격요법이라......

  -간혹 우리를 경찰에 신고한다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도 있어.

  -하긴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 그 말을 믿고 바로 따라오기는 힘든 구석이 있죠. 하지만 이 얼굴로 꼬시면 뭐 어렵진 않을 거에요.

  -도대체 넌 네 얼굴이 어디가 마음에 드는거냐?

  -부장님, 솔직히 부러워하시잖아요. 아닌 척 하시기는.

  -그래, 부럽다 부러워. 얼굴 두꺼운 게.

  -내가 누구보다 빨리 이 친구를 스카우팅 해올 겁니다. 최고 기록 한 번 세워 본다고요.

  -나무아미타불.

  -성공하면 소고기 한 번 쏘시는 겁니다.

  -나 힌두교야.

  그들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 세 장의 사진이 펼져져 있다. 사진 속에는 초등학생 여자아이와 고등학생인 여자애 그리고 이십대 초반의 여자가 있다. 그 세 장은 모두 동일한 한 사람의 사진이다. 기관에서 오래전에 찍어두었던 인물이다. 이제 김 치호가 그 여자애를 처옴 보았을 때부터 십이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윤 경영은 테이블에 놓인 세 장의 사진과 A4용지로 철이 되어 있는 서류 파일을 들고 김 치호 부장을 향해 두 주먹을 들어올려 파이팅을 외치며 그 방을 나왔다. 자리로 돌아온 윤 경영은 책상에 앉아 사진 속의 여자애를 들여다 본다. 귀엽게 생긴 여자애다, 라고 생각했다. 그는 파일을 들추어 사진 속의 여자에 관한 기록을 읽어 내려간다.

 

 

  일 년에 한 번 학교에서 하는 신체검사. 키, 몸무게, 시력, 청력 등등의 검사다. 검사지에 적힌 란에 <특이 사항 기록- 의학자료용>란이 있는데 혈액형 RH-, 2.0이상의 시력, 비정상 청력, 그리고 동전크기 이상의 점,을 적게 되어 있다. <특이 사항 기록>에 적힌 학생들의 자료는 우선 지역 보건소에 모이는데 그 중에서 비정상 청력과 동전 크기 이상의 점이 적혀 있는 검사지는 다시 <국립 문헌 정보 연구원>으로 최종 집결한다. 최종 집결에 모이는 신체검사 기록지는 고작 몇 십장 안팎이다. 거기다 동전 크기 이상의 점이 기록되이 있는 경우는 대체로 희박하다.

  그럼에도 <국립 문헌 정보 연구원>이 굳이 학생들의 신체 검사서를 조사하는 이유는 바로 동전 크기 이상의 점이 있는 학생을 찾으려는 것 뿐이다. 혈액형 RH-, 2.0이상의 시력, 비정상 청력 기록란이 있는 이유는 동전 크기 이상의 점이 있는 아이를 가려내기 위한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특이 사항 기록>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의학 자료용이라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말뿐이다. 거기다 동전크기의 점이 의학 자료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 다들 하라고 하니 할 뿐이고 그 안에 숨은 저의는 국가만이 알아서 할 일이다.

  신체검사를 통해 푸른 점이 있는 아이를 다 찾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 하는 신체검사의 정밀도의 한계 탓이다. 여러분! 몸에 이렇게 생긴 푸른 점이 있는 학생은 손을 드세요! 하고 물어보면 끝날 일이지만 숨길 게 많은 국가 기관이라 대국민 발표는 먼 나라 아니 우주의 이야기다. 그래도 이 방법이 현재로서는 최상이다. 그래서 2007년, 강 차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왼쪽 팔뚝에 동전만한 크기의 푸른 점이 있는 아이. 그들이 찾는 <그 사람>일지 모른다.

 

  김 치호는 우선 강 차리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보험 설계사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접촉을 시도하기로 한 것이다. 치호는 희영이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남의 고리를 한 번 엮으면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기 쉬운 직업, 순전히 김 치호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물론 강 차리가 <그 사람>이어야 하지만.

  -00 보험 김 희영 설계사님이신가요? 저는 김 치호라고 하는데요, 보험을 좀 가입하려고요. 지인한테 김 희영 씨 소개를 받고 전화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 그러세요. 생각하고 계신 보험이 있으신가요?

  김 희영은 전에 누가 이런 적이 있었는지 누구한테 소개를 받았는지 묻지도 않고 일체의 경계 없이 상냥하게 전화를 받는다.

  -저축보험을 좀 들어볼까 생각중인데요.

  -네 그럼 우선 기존에 가지고 계신 보험의 보장 내용을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김 치호는 김 희영의 메일로 가입되어 있는 보험 내용을 보내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이후 보험 가입을 이유로 치호는 김 희영과 몇 번 전화를 주고받았고 어느 날 희영이 다니는 보험 회사 근처 커피전문점에서 직접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강 차리의 엄마 김 희영은 사십 대 초반에 한 눈에 보험 설계사다운 느낌을 주는 사람이라고 김 치호는 생각했다. 정장 왼쪽 깃에 보험 회사 배지를 달고 서류가 든 가방을 든 모습이 누가 봐도 그럴 것이라는 인상. 김 치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동원해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안녕하세요. 김 치호라고 합니다.

  -네 반가워요. FC 김 희영이라고 해요.

  커피 전문점 직원이 그들 테이블로 와서 아메리카노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보험 일을 오래하셨다고 들었어요. 아주 베테랑이라고.

  -베테랑은요 뭐. 오래 하다보니까 여기저기 소개가 많이 들어오기는 하지요.

  김 희영은 보험의 필요성과 위대함을 설파했는데 치호는 열심히 듣는 척을 하느라 나름 애를 먹었다. 월 10만원을 내는 저축 보험 하나 가입하는데 은퇴를 준비해야 하느니 노후자금이며 간병이 어쩌구저쩌구.

  -결혼은 아직 안하셨어요? 직업도 좋고(별정 공무직 연구원이라고 전화로 미리 말했다) 외모도 반듯하시고 성격도 좋으신데.

  -결혼할 사람 있어요.

  -그러시군요. 역시. 그럼 언제 와이프 되실 분 보험도 한 번 정리해드려 볼까요?

  (한 번 잡으면 끝까지 물고 들어지는 아줌마군, 억척스러워)

  -네. 나중에요.

  -언제든 연락 주세요.

  -대단하세요. 하시는 일에 자부심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애를 둘이나 키우려면 열심히 해야죠.

  -자녀분이 몇 살인데요?

  -딸애가 열세 살이고 아들애가 이제 막 초등학교 들어갔어요.

  치호는 김 희영과 수다의 꽃을 피웠다.

  (아줌마가 되어야 한다, 나도)

  결혼 생활, 자식 키우는 얘기, 남편이 벌이가 시원치 못해서 자신이 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 하다못해 빨래 세제는 어떤 게 좋고 어떤 회사 세탁기 성능이 어떤지 등등 한 시간 넘게 신변잡기의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치호는 김 희영이 자신을 퍽이나 편안하게 여기고 있다고 거의 확신했다.

  -설계사님,

  -아이고, 설계사가 아니고 FC라니까 그러네. 보험아줌마라고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니까.

  어느새 말을 슬쩍 놓는 김 희영. 치호는 밀어붙여야겠다고 생각한다.

  -자녀분들 공부는 잘 해요?

  -우리 애들 공부... 그냥 그래. 큰 애는 어릴 적에는 걔가 신동인줄 알았다니까. 세상에 어디서 그런 걸 배웠는지 어른들도 모르는 것을 알아서 하잖아.

  -그래요? 뭐를 하는데요?

  -나도 할 줄 모르는데 김장을 무슨 전문가처럼 떡 하니, 그것도 아주 모양을 내서 담그는 거지. 집에서 잔치를 한다고 뭐를 만들면 애가 와서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 나한테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라고 하더라니까. 언젠가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한문을 읽는데 깜짝 놀랬지.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었을 때인데.

  -대단한 아이네요.

  (그 사람인가)

  -어릴 때 신동이라고 했던 애들이 뭐가 잘못됐는지 커서는 그냥 평범해지는 경우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제가 하는 일이 교육부 쪽인데요 몸에 커다란 점이 있는 아이들이 보통 신동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와 있거든요.

  -어머! 어머! 우리 애가, 우리 큰 애가 그렇잖아. 걔가 여기에 점이 큰 게 있어. 푸른 색점, 이만한 거, 이만한 거.

  (그 사람이다!)

  -언제부터 있었나요?

  -태어날 때부터. 처음에는 콩알만했는데 그게 자라면서 점점 커지더라고.

  -제가 한 번 만나보고 싶네요. 교육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영유아 때 천재나 신동들이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사실 그 아이들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이 아직 체계화되어 있지 않거든요. 아주 오래 전 1960년대에 박 호섭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분이 뛰어난 영재라서 일찍 미국으로 건너가서 NASA에 까지 있었거든요. 그런데 적응하지 못하고 지금은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고 계시죠.

  -그럼 우리 딸도 그런 건가?

  얘기치 않은 횡재다. 강 차리의 푸른 점을 어떤 식으로 볼 수 있게 될지 고민하는 중이었는데 말이다. 술에 물탄 듯 술술 굴러가는 시나리오. 치호는 속으로 미친 듯 환호성을 질렀다.

 

  푸른 점이다. 우리가 찾는. 치호는 강 차리의 왼쪽 팔에서 그것을 보았다.

  -아프진 않지?

  -안 아파요.

  강 차리는 처음 본 아저씨에게 팔뚝의 점을 보이는 게 싫은지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엄마가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보여는 준다는 듯 서둘러 소매를 걷어 내렸다.

  -네가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증표야.

  치호는 그날 이후 자연스럽게 김 희영과 보험 설계사와 고객으로 친분을 이어갔다. 간간히 지인들에게 김 희영을 소개해서 보험에 가입하도록 해준 덕에 김 희영은 치호를 무한 신뢰했고 그로 인해 너무도 자연스럽게 강 차리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관찰에 의하면 강 차리는 대한제국 전후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고종의 부드러운 말투와 온화한 성품을 옆에서 본 듯이 그렸고 명성황후의 한숨을 잘 알고 있었다. 고종의 궁녀 두 명이 소리 소문 없이 죽어나갔다는 것, 허약한 순종의 손목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명성 황후의 독한 죽음을 끌어냈다. 영친왕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엄상궁이 누구와 손을 잡았는지도 아는 듯했다. 저쪽에서 강 차리는 궁에 있었다.

  이쪽에서 강 차리는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00대학 조리학과에 입학했고 졸업을 한 후 한정식 대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지금은 <장예원>이라는 한국음식점 주방에서 양파를 다듬으며 한 걸음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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