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파수꾼
작가 : Enyy
작품등록일 : 2019.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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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작성일 : 19-11-09     조회 : 296     추천 : 0     분량 : 4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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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전 모든 훈련이 끝나고 현장 투입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까지 NSR의 일원으로 필요한 정신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NSR 본사로 가라는 명을 받았다.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는 이유는 그동안 휴가도 없이 2년간 받아온 훈련에 대한 잠깐이지만 보상이리라. 전화와 인터넷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있었지만, 그래도 함께 훈련 받은 동기와 다시 사회로 돌아온 첫 발걸음이었다. 이제 이 언덕을 올라가 저 경비원에게 말을 거는 순간 더 이상 예전의 이창현으로는 영영 돌아갈 수 없다.

 

  창현은 마음을 정한 듯 동식을 불렀다.

 

 “가자 이제. 여기서 더 있어 봐야 아무도 안 나오겠는데 뭐. 시간도 8시 지났어.”

 

 “그.. 그럴까?”

 

  짧은 언덕이었다. 그 짧은 거리를 걸어 올라가면서 고요한 적막만이 흘렀다. 숲속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창현의 목덜미를 스쳐 지나가며 시원함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숲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치고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동식아. 이상한 냄새 안 나?”

 

 “무슨 냄.. 응?”

 

  동식 역시 냄새를 맡은 듯 자리에 서서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그러게 휘발유? 가스? 냄새가 왜 이런 산 깊숙한 곳에서 나는 거지? 본부 안에서 무슨 일 있었나?”

 

  저 NSR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그렇지 않고서 이렇게 산속에서 이런 냄새가 날 이유가 없었다.

 

 “누구십니까?”

 

  아까 길가에서 수상하게 서성거리던 남자 둘이 이제는 가까이 다가오자 경비원이 밖으로 나왔던 것이었다. 190은 돼 보일 법한 키에 짧은 반팔이 당장에라도 찢어져 버릴 것같이 근육질의 몸매였다. 그리고 허리춤에 차여진 권총이 남자를 더욱 무섭게 보이게 만들었다.

 

  남자는 의심에 눈초리로 창현과 동식을 살펴본 뒤 건조하게 말했다.

 

 “이곳은 민간인 출입제한 구역입니다. 돌아가십시오.”

 

 “저하고 이 친구는 부속기관에서 온 사람들인데요. 오늘 8시까지 여기 오기로 되어있었거든요. 확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이내 부동자세로 황급히 몸을 바꾼 뒤 창현과 동식에게 경례하고 말했다.

 

 “파수꾼 분들이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

 

  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정문 옆 초소가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쾅!’

 

  초소는 절반이 통째로 날아가 아랫동이만 남아있었다. 남자는 그 자리에서 앞으로 쓰러져버렸고, 그의 등에는 커다란 쇠 파편이 박혀있었다. 아마도 즉사한 것 같았다.

 

  갑작스런 폭발에 귀에서는 이명과 함께 머리는 어지러웠다. 하지만 창현은 황급히 뒤돌아 동식을 찾았다. 다행히도 동식은 무사했다. 인상을 잔뜩 쓰고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기는 했지만.

 

 “이게 무슨 일이지?!”

 

  동식의 외침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주황빛 불빛들과 함께 연기가 치솟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거 지금 설마 불이야?”

 

  바로 그때 창현의 뇌리를 무언가 빠르게 지나갔다. 조금 전 택시에서 보았던 버려진 폐드럼통. 그리고 그 뒤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

 

 “설마?!”

 

  곧이어 NSR 건물에서 귀를 찌르는 경보음이 울려댔고 창문 곳곳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창현과 동식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언덕 아래 도로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그리고 천천히 창문이 내려가고 나타난 사람. 창현은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그곳에 앉아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서혜진이었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입고리가 말려 올라갔다. 분명 창현을 비웃는 얼굴이었다.

 

 “저거 서혜진 아니야?! 형 맞지?!”

 

  창현은 동식의 외침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떠오른 조금 전 음식점에서 동식의 말.

 

 ‘어제 이상한 꿈을 꾸긴 했어. 그 왜 서혜진인가. 그림자 그 여자. 그 여자를 보는 꿈을 꿨어. 그것도 NSR정문 앞에서. 이게 우리 같은 파수꾼들도 개꿈이라는 게 있는 거야?’

 

  보고를 해야 했다. 파수꾼에게 꿈이란 허투루 보여 지는 미래가 아니었다. 개꿈이란 것은 파수꾼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걸 깨닫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사람이 죽었고 사방에선 불이 치솟고 있었다.

 

  차 창문은 천천히 올라갔고, 서혜진의 얼굴 또한 사라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차 역시 소리 없이 미끄러져 사라져버렸다. 잠시 뒤 건물에서 검은 옷에 눈 밑까지 오는 검은 복면을 쓴 사람들이 자동소총을 들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쏟아져 나온 사람들 일부는 창현과 동식을 둘러쌌고, 나머지는 넓게 퍼져 산속으로 흩어졌다.

 

 “손들고 엎드려! 당장!”

 

  당장에라도 총을 발포할 듯 거친 음성과 함께 한 손으로는 총을 쥐고 한 손으로는 바닥을 가리켰다. 창현과 동식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바닥에 꼼짝없이 팔을 벌리고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연달아 들려오는 소리.

 

 “찾았습니다!”

 

  역시나 검은 옷을 입고 총을 든 남자는 밑동이만 남은 초소 뒤편에서 무언가를 들고나왔다. 그리고 창현과 동식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와 말했다.

 

 “간단한 타이머식 폭탄입니다. 바닥에 놓인 가스통 때문에 폭발이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대체 이걸 언제 여기다가 설치한 거지?! 너희들은 저놈들이 여기다 이걸 설치하는 동안 대체 뭘..”

 

 ‘쾅!’

 

  또다시 폭발이 일어났다. 이번엔 초소 맞은편 NSR라 적힌 타원 모양의 커다란 돌덩이가 폭발하며 아름다웠던 조형물은 파편으로 변해 사람들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창현과 동식 역시 수많은 파편을 그대로 맞아야 했다.

 

 *****

 

 “형!”

 

  창현은 동식의 부름에 눈을 떴다. 사방은 고요했고, 자신의 눈앞에는 검은색 가죽이 뒤덮은 자동차 시트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창현을 보고 있는 동식의 얼굴.

 

 “뭐야? 그새 잠든 거야? 아무리 밥 먹은 지 얼마 안 됐다지만 형도 참 대단하다.”

 

  동식의 얼굴 옆에 있는 초록빛 시계를 보았다.

 

 ‘PM07:47’

 

  창현은 다급하게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아저씨 최대한 빨리요. 빨리!”

 

  갑작스런 창현의 태도에 동식은 놀라 물었다.

 

 “형 왜 그래. 갑자기 왜 이렇게 급해.”

 

 “네가 본 어제 그 꿈. 그거 개꿈 아니었어. 서혜진은 오늘 여기에 있어. 지금 여기. 곧 폭발이 일어날 거야. 빨리 가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해!”

 

  동식은 창현이 졸다 깨서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다가 갑작스레 웃음이 멈췄다. 자신들이 파수꾼이란 사실을 깨달았는지 좌석 위에 있는 손잡이를 꽉 잡으며 말했다.

 

 “아저씨 최대한 밟아주세요. 지금 이후에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서는 저희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빨리요!”

 

  하지만 택시기사는 코웃음을 치며 동식에게 말했다.

 

 “학생. 책임지긴 뭘 책임져. 학생이 돈이 어디 있어서 사고를 책임져? 그리고 내가 택시기사 이전에 자네보다 어른이야. 어른한테는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요새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려고. 에잉 쯧쯧쯧. 젊은 사람들이 말이야. 나 때는 말이야. 어른들한테 말할 때는 최소한 이렇게 해주세요. 이렇게 부탁하고 그랬는데 말이야.”

 

  기사의 말에 동식은 얼이 빠진 듯 잠시 멍한 얼굴로 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 듯 말했다.

 

 “아저씨 그게 아니라요. 지금 아주 큰 일이 생긴다니까요? 조금 있으면 여기서 폭발이 일어난다고요!”

 

 “이 사람들 이거 정신 나간 사람들 아니야? 자네들 술 마셨어? 자다 깨서 뭔 폭발이 일어난다느니 헛소리들을 하고 있어?!”

 

  동식이와 기사는 옥신각신하는 와중에 차는 천천히 NSR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창현의 손목시계에 떠오른 숫자는

 

 ‘19:52’

 

  점점 커져가는 동식과 기사의 말싸움에 차는 기어코 멈춰 섰다.

 

 “에이 드러워서! 젊은 놈들한테 이런 소리 들어가며 내가 이렇게 살아야 돼? 당장 내려!”

 

  동식은 잘 됐다는 듯 말했다.

 

 “아저씨 두고 봅시다. 내가 번호판 다 기억해 둘 거예요.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 줄 알고 지금!”

 

  창현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동식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 새끼들아! 여기까지 온건 계산하고 가야지!”

 

  뒤에서 택시기사의 외침이 들렸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 막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앞으로 일어날 일은 전혀 모르는 듯 고요한 NSR의 모습이 창현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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