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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아내는 극한직업입니다
작가 : 월급좀도둑2
작품등록일 : 20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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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제 입맛대로 키워보겠습니다
작성일 : 20-08-26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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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정의 피가 섞인 혼혈의 수명은 300살까지이다. 어느 예외도 없었다. 사고나 질병으로 죽지 않는 한, 모두 300번째 생일이 지난 다음날 눈을 감았다.

 

 나, 미르하 메르헨은 메르헨 공작가의 사생아이다. 그리고 요정의 피가 섞인 혼혈이었다. 어머니는 아스란네 제국의 메르헨 공작이고 아버지는 유희를 나온 요정족이었다. 이 둘의 불같은 사랑의 결실로 내가 태어나게 되었다.

 

 미르하. 요정의 언어로 ‘생명’이라는 뜻에 맞게 나는 싱그러운 녹읍의 색을 그대로 이었다. 요정족의 특징인 연한 연두색 머리카락과 메르헨 공작가의 녹색 눈동자를 물려받았다.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아버지를 후처로 들이시고 나도 함께 거둬주셨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 아래, 나는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위로는 아버지가 다른 오라버니 두 명이 있었다. 다행히 오라버니들은 나를 아꼈다. 이종족의 피가 섞인 나는 아무리 뛰어나도 공작가를 계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예쁜 영특한 동생쯤으로 여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라버니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예언 능력 덕분이었다.

 

 ‘첫째 오라버니, 오늘은 손수건을 챙겨가. 좋은 운명을 만날 거야.’

 

 꿈속에서 첫째 오라버니는 어느 한 여성을 만났다. 그녀의 연분홍색 옷이 더럽혀지자 오라버니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 후 둘이 결혼하는 미래를 보게 되었다. 그 날 오라버니는 반신반의하며 손수건을 챙겨갔고, 아스란네 제국의 황녀와 미래를 약속하는 사이가 되었다.

 

 ‘어머니 검은색 마차를 타지 마세요.’

 

 평범한, 황실에서 빌려주는 검은색 마차를 탄 어머니는 마차 사고로 크게 다치는 미래를 보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를 말리며 당부했다. 어머니는 내 충고를 들어주셔 무사히 귀가를 하셨고, 그 날 검은색 마차를 탄 리테아 백작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소하게는 가족의 일상부터 크게는 몇 년 후에 일어날 가뭄까지. 육신과 영혼을 불리하는 감각은 신비로웠다. 이 감각을 타고, 의식을 집중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미래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완벽하게 예언능력을 조절할 수 있었다.

 

 ‘미르하, 이 능력을 비밀로 하렴.’

 

 아버지는 내 어깨를 잡으며 엄격하게 말씀하셨다. 자상하신 아버지의 무서운 표정에 나는 알겠다며 얼떨결에 약속을 했다.

 

 ‘요정족의 능력은 수명을 대가로 한단다. 그러니 능력을 남용하지 말고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아껴두렴.’

 

 예언능력은 수명을 깎기 때문에 아버지는 나를 말리셨다. 순혈 요정족인 아버지는 천 년 넘은 수명을 가져 큰 타격이 없었지만, 나는 혼혈이기에 300살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수명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예언능력을 조절하지 못한 척을 했다. 오라버니들은 아쉬워했지만 여전히 나를 아끼고 사랑을 해줬다.

 

 내가 열여섯이 되던 해, 아버지는 이상한 의식을 행하셨다. 아버지는 내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라며 별의 가호를 양도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어린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읽지 못하는 요정족의 문자 위에 나는 내 운명이 갈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커다랗고 포근한 운명과 이어지는 생소한 감각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뭣도 모르고 아버지의 손에 끌려 의식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요정족이 죽으면 그 자리에 나무가 자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공작가의 정원에는 보지 못한 신비로운 나무 한 그루가 생겼다.

 

 그 후 십년 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메르헨 공작위를 잇게 된 것은 둘째 오라버니였다.

 

 ‘이 공로를 하나뿐인 동생 미르하를 위해 바친다.’

 

 오라버니의 작위 계승에 크게 기여한 나를, 오라버니는 공작가의 웃어른으로서 대접을 해줬다. 그리고 이십년이 지나자 오라버니는 죽었다. 오라버니의 딸인 조카가 메르헨 공작이 되었다.

 

 ‘고모님께서 저를 도와주셨으니 제가 살아있는 한 메르헨 공작가는 고모님을 은인으로 모실 겁니다.’

 

 조카도 나를 웃어른으로서 대우를 해줬다. 세대가 거듭하면서 메르헨 가문의 전통은 바뀌었다. ‘메르헨가의 수호 요정의 선택을 받는 자가 가문을 가진다.’

 

 말도 안 되는 소문에 나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이종족 혼혈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기에 나는 공작가를 떠나가는 것을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문을 이용해 공작가에서 안락한 의식주를 보장받았다.

 

 그러나 이 전통은 잘못 변질되었다. 반쯤 미친 공작이 나를 지하 감옥에 가두고 가축처럼 취급했다. 능력을 사용하면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혈연의 정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공작과 소공작만이 아는 공작가의 물건이 되었다.

 

 수 세대가 더 지나자 나와 메르헨 공작가의 일원은 남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실제로 내가 혈연이라고 애정을 느낀 것은 조카의 손주까지였다. 나는 메르헨 공작가의 망령이 되어 죽은 듯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다.

 

 메르헨 공작가의 지하 감옥에서 풀린 날, 나는 내 미래를 봤다. 내 수명은 이제 30년도 채 남지 않았다고. 이제 생명을 갉아먹는 예언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 190번째 생일 다음날에 죽을 운명이었다.

 

 ‘이제부터 조상님께서는 제 양녀가 됩니다. 그리고 황태자비가 되실 겁니다.’

 

 메르헨 공작은 나를 양녀로 입적시켰다. 나는 하녀들의 손에 이끌려 목욕을 하고 머리카락도 잘랐다. 긴 머리카락은 발목을 지나 바닥에 끌릴 정도로 자랐다. 백 년 만에 나온 바깥 세상에 적응하기도 전에 나는 마차에 태워져 황궁에 가게 되었다.

 

 불안하고 초조했으나 예지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랜 경험으로 이들이 나를 죽이려면 진장에 죽였지 이렇게 성의 있게 대접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황태자비라면 황태자의 아내였다. 내가 지하 감옥에 갇힌 백 년 전만 해도 이종족의 혼혈은 불결하다고 이종족이든 인간족이든 배척했다.

 

 엄격한 황실에서 나를 황태자비로 맞이한다는 것은 이상했다. 여기서 나는 추론을 할 수 있었다. 황태자는 필시 장애를 갖고 있을 것이다. 비장애인이 아니기에 공작가의 피를 이으나 버릴 수 있는 패로 나를 결정한 것이다. 몸이 불편해도 성격이 좋으면 상관이 없다. 그러나 신체는 멀쩡하고 정신이 이상한 거면?

 

 아니다. 장애를 가진 자를 황태자로 추대할 리가 없었다. 설마, 황태자가 나이가 많고 호색한 자인가? 온갖 추측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마차가 황궁에 도착할 때까지 불안에 떨었다.

 

 마차 문이 열리고 나를 마중한 사람은 내 허리밖에 오지 않는 작고 마른 남자 아이였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색 눈동자와 그 아래 깊은 다크서클. 상처투성이의 홀쭉한 뺨과 가녀린 어깨.

 

 아이는 황궁에서 고용한 시중이라고 하기에 볼품이 없었다. 나는 거추장스러운 베일을 등 뒤로 넘겼다. 반투명한 베일이 걷히자 아이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연두색 머리카락이 달빛 아래에 빛났다. 요정족의 신체적 특성 중 하나였다. 아이는 내 얼굴을 보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도도하게 올라간 눈꼬리가 커지는 모습이 웃겼다.

 

 그런 아이는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어려 보였다. 그리고 불쌍해보였다. 아이는 눈빛에서 내 감정을 읽었나보다. 아이의 고운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아이는 분노하고 있었다.

 

 ‘죽을래?’

 

 아이가 으르렁 거렸다. 길들여지지 않은 한 마리의 작은 맹수 같았다. 혼혈이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이의 주변에 진동하는 마나가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을.

 

 야생의 맹수는 약할수록 사납게 군다.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마차에서 내려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구부렸다. 흉포한 아이의 모습은 사라졌다. 아이는 이렇게 누군가 가까이 다가가는 게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면 내가 그보다 어른이기에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걸가. 나는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가, 너는 누구니?’

 ‘...지, 지그프리트이요.’

 ‘지그프리트?’

 

 아이는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떨고 있었다. 가을밤은 싸늘했다. 몸이 안 좋아 보이는 지그프리트에게 치명적일 수 있었다. 나는 지그프리트의 어깨에 순백의 케이프를 벗어 입혔다. 지그프리트의 몸에 손이 닿자 아이는 더욱 굳었다.

 

 ‘다, 닿으면, 안, 안됩니다! 나, 나를 만지면 아파요..’

 

 지그프리트가 떠는 이유는 추워서도 나를 무서워해서도 아니었다. 아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 자신이었다.

 

 축복 없는 가을 밤, 나는 아스란네 제국의 황태자비이자 꼬마 신랑의 아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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