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이제부터 석유재벌
작가 : 진시황
작품등록일 : 20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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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돈은 얼마든지 쓰세요.
작성일 : 20-09-12     조회 : 265     추천 : 0     분량 : 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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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돈은 얼마든지 쓰세요.

 

 창식은 일부러 막히는 출근시간을 넘겨 회사로 나갔다. 사실 누가 뭐라할 사람도 없고, 좀 나태하고 한량처럼 보이는 게 자신을 숨기기 더 유리하다는 핑계였다. 가는 길도 최대한 편하게 가고 싶어 출퇴근용으로는 항상 같은 차량을 이용했다. 롤스로이스 팬텀. 특유의 정숙성과 편안함 때문에 마치 유령이 움직이는 듯 하다고 하여 유령(팬텀)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차량이다. 창식이 넘어온 이계에서야 마나를 움직여 더 편안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지구에서는 마나 대신 돈이라는 걸 움직여 그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띠리리디디딩딩딩딩.

 

 아침 시간. 셔츠 안주머니에 넣어놓은 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보니 막내동생인 성은의 전화였다.

 

 “어 동생. 무슨 일이냐. 아침부터. 용돈 필요하냐?”

 

 “오빠! 아까 경찰서에서 전화왔어! 어떡해?”

 

 “뭐? 경찰서? 뭔데 갑자기.”

 

 “몰라. 언니 있냐고 물어봐서. 없다고 했더니. 가족분들이라도 와서 빨리 합의보라고 하지 뭐야. 뭔지 말도 안해주고. 어떡해 오빠?”

 

 “뭔 합의? 잠깐 있어봐. 내가 회사에 이변호사님께 말 해놓을테니.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연락 온 곳이 어딘데?”

 

 창식의 연락을 받은 이변호사가 연락을 줬다는 인천 경찰서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들었다. 얼마 전에 떠들썩했던 고구려항공에 이현제 이사가 추행한 승무원이 바로 성희였고, 항공기 후진 사고와 별개로 이현제 이사와 성희간에 성추행건에 대해 합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변호사는 담당 경찰의 말 뿐만 아니라 지인들을 통해 자세한 내막까지 확인한 후에 정리된 사항을 창식에게 보고 했다.

 

 “그러니까 그 이현제라는 새끼가 미국에서 들어오는 비행기 안에서 성희를 추행했고, 성희하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빡쳐서 비행기 돌리라고 했다는 거네요. 지금 떠들썩한 사건에 성희가 연관되어 있는 거고.”

 

 “그렇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쪽에서는 지금 여러 문제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성추행문제까지 다시 불거지는 게 부담스러워서 하루라도 빨리 합의를 보려고 하는 거고. 그 과정에서 경찰쪽에 선을 대서 빨리 합의하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성희양은 뭐라고 하진 않든가요?”

 

 “집에서야 별 말 없었어요. 처음보단 좋아졌지만 아직 자기 얘기까지 하고 그러진 않거든요. 오늘도 별 말 없이 출근하더라구요.”

 

 “별 말 없이 출근을 해요?”

 

 “왜 그러세요? 뭐 다른 일이라도 있어요?”

 

 “제가 고구려 항공에 있는 지인들한테 좀 알아봤는데 말입니다. 지금 성희양이 대기발령중이라고 합니다.”

 

 “네? 무슨 대기발령이요?”

 

 “그게 아마 회사 측에서 오너한테 문제가 있는 거처럼 보일까봐 미리 수를 쓴거 같습니다. 그리고 추행건에 대해 합의하도록 압박하려는 것도 있을 거구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슨 사유가 있어야 징계를 할 거 아닙니까?”

 

 “그게. 회사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명예를 실추시키다니요. 아니 세상에 추행한 놈은 놔두고 당한 사람이 명예를 실추시켰다는게 말이 됩니까?”

 

 “사실 그 쪽 세계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저도 검사, 변호사 하면서 더러 봐왔었는데. 그 쪽 세계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게다가 최근에 성희양이 구부장님이 돌아온 뒤로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걸 가지고 안좋은 모양새로 포장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안 좋은 모양이라면 혹시 뭐?”

 

 “그게 스폰을 받아서 외제차를 끌고 다닌다고.”

 

 “이런 쌍것들을 봤나!”

 

 빚 때문에 힘들고 어려울 때도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올바르게 큰 아이였다. 모델 못지 않은 몸매에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져 솔직히 마음만 먹었다면 그깟 스폰서 따위 열도 더 만들 수 있었겠지만 여태 자존심에, 그리고 성실하게 사신 부모님의 영향 때문에 그 고생을 하면서도 정직하게 어찌보면 미련하게 산 아이였다.

 

 “이것들이 보자보자하니까.”

 

 화가 치민 창식의 몸에서 무의식 중에 살기가 뻗어 나왔다. 야생이 사라지고 문명이 자리 잡은 현대 사회에선 좀 처럼 마주하기 힘든 그 낯선 기운이 뭔지 이변호사가 알리 없었다. 다만 몸을 차게 식히고 숨이 가빠지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창식에게서 뿜어져 나온다고 느꼈을 뿐이다. 바로 이 느낌. 가끔 창식이 화가 났을 때 흘러 나오는 이 아우라가 이변호사로 하여금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창식을 함부러 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변호사님 이번 사건에 관련된 사람을 전부 조사해 주세요. 손톱만큼이라도 관련된 사람은 전부. 특히 그 이현제란 새끼에 대해서는 먼지 한톨까지 탈탈 털어서 가지고 오세요.제 카드를 드리죠. 필요하다면 돈은 얼마든지 가져다 쓰세요. 일주일 드리죠.”

 

 “네. 알겠습니다. 부장님.”

 

 등 줄기로 흐르는 식은 땀을 느끼면 자신도 모르게 이변호사는 고개를 푹 쑥였다.

 

 창식이 가지고 있는 법인카드. 연계된 은행에 보관된 잔고만 천억이 넘었다. 무슨 수를 써서든 해내라는 창식의 의지가 느껴졌다. 이계였다면 그냥 텔레포트로 날아가서 이현제 멱살을 잡고 와서 두들겨 패면 그만이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 창식이 있는 곳은 이계가 아니었다. 지구에선 지구에 맞는 방법을 써야했다. 마나 대신 돈이라는 힘을.

 

 하지만 그렇다고 창식이 9서클 마스터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창식은 이변호사에서 일을 맡기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자신만 할 수 있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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