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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 카쟝: 세상을 바꾸는 도둑들
작가 : 꾸마네
작품등록일 : 202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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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의 비밀
작성일 : 22-02-24     조회 : 68     추천 : 0     분량 : 7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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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틀.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일호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이미 일호는 어깨까지 환기구 밖으로 나와 있었다.

 

 '실험동물인가?'

 

 일호의 눈으로 차차 그 물체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다리

 축 늘어져 바닥에 붙은 팔

 주먹만 한 머리

 

 일호는 물체들의 정체를 파악했다.

 

 "뭐, 뭐야?"

 

 상상도 못한 정체로 인해 그는 중심을 잃었다. 떨어지지 않으려 팔을 천장으로 뻗었지만 이미 천장은 손과 닿지 않는 거리였다. 그는 그대로 바닥으로 직행했다.

 

 쿠웅!

 

 통증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하 3층엔 생각지도 못한 그림이 펼쳐져 있었다.

 

 "웬 아이들이 이렇게나...."

 

 연구실로 추정되는 공간마다 아이들 열댓 명이 차지하고 있었다. 크기는 교실과 흡사했으나 구조는 감옥과 다를 게 없었다. 간소한 변소와 바깥창문 하나 없는 공간은 아이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일호는 연구실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끄응."

 

 연구실은 열리지 않았다. 다시 보니 손잡이 옆에 도어 록이 설치되어있었다.

 

 '역시 갇혀있는 거였어.'

 

 복도와 통하는 통로라고는 출입문 하부에 설치된 배식구가 전부였다. 일호는 다음 연구실로 건너갔다.

 

 '저건 뭐지?'

 

 방 안에 소형차 크기의 캡슐 10개가 따닥따닥 붙어있었다. 캡슐 덮개는 유리로 되어있어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여기도 아이들이야.'

 

 캡슐 속 아이들은 정자세로 자고 있었다. 일호는 아이들이 여기에 들어온 연유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음성은 코고는 소리뿐이었다.

 

 '하긴 한밤중이니까. 아니, 여기 있는 애들은 밖이 한밤중이란 건 알까?'

 

 일호는 이 아이들이 왜, 어떻게 여기에 있는 지가 가장 궁금했다.

 

 "이건... 너무... 실험실 동물 같잖아...."

 

 아이들은 일호의 등장엔 아랑곳하지 않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전부 애들이야. 이 층에 연구실이 10개 정도 있으니 100명은 훌쩍 넘겠어.'

 

 일호는 지하 3층을 돌아다니며 실험실의 갇힌 아이들을 확인했다. 그는 마치 동물원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일호는 실험실 유리창을 두들겼다.

 

 쿵. 쿵. 쿵.

 

 "얘들아. 일어나 봐."

 

 이렇게 된 이상 진상을 파악해야했다.

 

 쿵. 쿵. 쿵.

 

 유리를 통해 충격음이 전해졌을 텐데도 아이들은 이상하리만치 곤히 누워있었다.

 

 "얘들아!"

 

 쾅. 쾅. 쾅.

 

 일호는 더욱 거칠게 두드렸다.

 

 "그런다고 안 깨요."

 

 일호는 동작이 멈췄다. 좌측 구석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걸걸한 목소리. 대강 들어도 아이의 음성은 아니었다. 그러나 복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 누구세요?"

 "방금 전에 모든 방에 수면가스를 틀었어요. 당분간은 일어날 일 없을 겁니다."

 

 일호는 경계심을 세우고 목소리를 따라 구석으로 접근했다. 목소리와의 거리는 한 걸음씩 좁혀져 갔다.

 

 "아이들이 왜 여기 갇혀있는 거죠?"

 "그건 저도 몰라요. 아는 거라고는 아침에 저 애들 중 몇몇을 어디론가 데려갔다가 다시 원래 방으로 돌려보낸다는 사실뿐입니다."

 

 일호는 음성의 근원을 찾아 마지막 연구실 앞까지 도달했다.

 

 '목소리는 이 방에서 들리고 있어.‘

 

 일호는 숨을 고른 뒤 한 발짝 나아갔다. 그는 앞으로 몸을 숙여 살며시 연구실 내부를 보았다. 연구실 내부에서도 일호를 보는 두 눈이 빛났다. 먼저 반응한 쪽은 내부의 사람이었다.

 

 "카쟝!"

 

 '카쟝?'

 

 일호는 잘못 들었나 싶어 가만히 있었다.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안에 있던 사람은 단 한 명. 그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호에게 달려들었다.

 

 "어? 어?"

 

 일호는 좀비라도 마주친 것처럼 뒷걸음질 쳤다. 유리창이 막아줬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좀비에게 잡히고도 남았다. 일호의 눈앞까지 다가온 남성은 푸짐한 살집의 소유자였다. 얼굴과 팔다리에 멍과 상처가 덕지덕지 나있어 조명만 어두웠다면 정말로 좀비로 착각할 수도 있었다. 그는 일호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카...쟝...?"

 

 일호는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다. 그제야 두 사람은 잠시 상황파악의 시간을 가졌다.

 

 '저 남자 왜 여기 갇혀있는 거야? 심지어 혼자 성인이잖아? 그건 그렇고, 나한테 '카쟝'이라고 한 거 맞지?'

 '카쟝 맞는데? 카쟝이라면 나를 못 알아볼 리가 없어. 왜 저러고 멍 때리고 있는 거야? 설마 카쟝이 아니야?'

 

 지하 3층은 두 남자의 눈 굴러가는 소리 뿐이었다.

 

 "저...."

 

 이번에도 통통한 남성이 먼저 운을 뗐다.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네요."

 "아니에요."

 

 일호는 갑작스런 만남에 겁이 났지만 이곳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런 일호의 앞에 대화가 가능한 남자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말문을 두드린 자는 통통한 남성이었다.

 

 "여기는 어떻게 들어오신 거죠?"

 

 그 순간 일호는 거듭 고민했다.

 

 '이 남자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당연히 몰래 들어온 걸 알고 있을 텐데 이렇게 물어보는 저의가 뭐지?'

 

 "여기서 울음소리가 나서요...."

 

 고민 끝에 나온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복잡한 부분은 지금부터였다.

 

 "그러시구나. 혹시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네?"

 

 아무도 모르던 장소, 그 중 가장 구석에 갇혀있던 사내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일호는 머리속이 착잡해졌다.

 

 '내가 여기 들어왔다는 걸 아는 사람은 저 사람 밖에 없어. 내가 돕지 않으면 여기 왔다는 사실을 사장님에게 신고할 지도 몰라. 아니지? 사장님과 같은 편이라면 이렇게 가둬놓을 리가 없잖아?'

 

 "저도 여기 직원이 아니라서...."

 "'여기' 직원이라고 한 거 보니 여기가 명장제약이 맞나보군요."

 "...네?"

 

 일호는 아차 싶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몰랐나?'

 

 일호는 두뇌를 초고속으로 돌렸다.

 

 "아무튼 저는 너무 급해서 화장실을 찾는다는 게 여기까지 들어와 버렸네요. 이런 곳도 있었구나. 하하하."

 "혹시 강일호 과장님 아니신가요?"

 "......."

 

 일호는 전원 끊긴 로봇처럼 작동을 멈췄다.

 

 '날 알잖아? 이 사람 뭐야?'

 

 통통한 사내는 예전부터 일호를 알던 사람처럼 대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자의 정체부터 밝혀야겠어.'

 

 "그러면 당신은 누구시죠? 회사에서 뵌 적은 없는 것 같은데."

 "......."

 

 이번엔 저쪽 좀비의 전원이 꺼진 듯했다. 하지만 잠시 후 답변이 들렸다.

 

 "저는 강정희 씨의 손자에요. 이 회사의 청소부셨죠. 지금은 잘렸지만."

 

 그러고 보니 요새 들어 청소 할머니가 바뀌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젊은 여성으로 교체되어있었다.

 

 '전에 계시던 할머니 성함이 강정희셨나 보네.'

 

 경비원이 "강 씨"라고 부르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일호는 3년 동안 마주쳤던 사람의 이름 석 자도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아는 분인 것 같네요. 그런데요?"

 "저희 할머니가 느닷없이 이 회사에서 퇴사 당하셨거든요? 그걸 따지러 왔다가 이렇게 갇혔어요."

 

 '진짠가?'

 

 "근데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신 거죠?"

 "저희 할머니가 하도 과장님 칭찬을 많이 해서요. 얼굴도 잘생겼는데 능력도 좋아서 최연소로 과장을 하셨다나 뭐라나. 저도 궁금해져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정말로 미남이라 기억이 남았어요."

 

 미남이라는 말에 일호의 의심은 살짝 누그러졌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죠? 사장님에게 부탁드리면 되겠습니까?"

 "아뇨. 그것보다는, 저희 할머니한테 연락 한 통만 남기고 싶은데... 제가 연락도 못하고 있어서 엄청 걱정하실 거예요. 제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알려드려야죠."

 "아, 그 정도야 뭐."

 

 일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의 휴대폰은 배식구로 들어가 실험실 바닥에 놓였다.

 

 "한 통만 쓰시고 돌려주세요."

 

 휴대폰이 바닥에 놓이자마자 살집의 사내가 후다닥 기어왔다. 그는 휴대폰을 쥐자마자 현란한 손놀림을 보였다.

 

 '생긴 건 곰 같은데 손 하난 엄청 빠르네.'

 

 "근데 전화가 아니라 문자로 연락을 남기시는가 보네요?"

 "네. 할머니가 귀가 안 좋으셔서 문자로 남기는 게 더 편해요."

 

 손자는 쌓인 이야기가 많았는지 5분 동안 눈도 깜빡이지 않고 휴대폰을 뚜들겼다. 일호는 질문을 던지기에 지금이 적기라고 여겼다.

 

 '이 사내라면 지하 3층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 지도 몰라.'

 

 "여기 있으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정확히 모르겠네요. 한 동안 쓰러져있었거든요. 체감 상 나흘 정도 된 것 같은데."

 "여기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갇힌 이유가 있나요?"

 

 일호는 최대한 상냥한 말투로 물었다.

 

 "아이들이라...."

 

 사내의 시선은 여전히 휴대폰에 고정되어있었다.

 

 "제 맞은편 방 보이죠?"

 

 일호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창고 같은 방이 하나 있었다. 일호의 호기심은 브레이크가 부서진 지 오래였다. 그는 그 방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아이들이 아침마다 구석에 있는 실험실로 끌려가고 나면, 실험복 입은 사람들이 저 방을 반드시 들러요. 저도 뭐가 진행 중인지는 궁금하지만 여기 갇혀있는 신세다 보니 알 수가 없네요."

 

 30m 정도 걸으니 맞은편 방과 맞닥뜨렸다. 다른 연구실과 달리 이 방은 철벽으로 덮여있었다.

 

 "유리창도 없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들어갈 순 있나?"

 

 다행히 도어 록은 없었다. 일호는 뒤로 돌아 사내를 보았다.

 

 "여기 좀 들어가도 될까요?"

 "이 장소 자체가 제한 구역일 텐데, 이미 들어오신 거 아닙니까?"

 

 '그건 그러네.'

 

 일호는 죄책감을 무시하며 출입문을 당겼다.

 

 푸슉-.

 

 익숙한 느낌이었다.

 

 '냉장고?'

 

 냉장고를 여는 느낌이었다. 내부에선 냉기가 흘러나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일호는 문을 슬그머니 열고선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으어 추워라."

 

 슈퍼마켓의 야채 코너와 흡사한 구조였다. 중앙에 높은 선반이 놓여있었고 천장에서부터 끊임없이 냉기가 흘러내렸다. 그 밑에는 계단식으로 빨간 봉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저게 뭐지?"

 

 일호는 한발을 더 내딛었다. 한참을 쳐다본 끝에 그것이 빨간 봉투가 아닌 혈액 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사장실에서의 백민관이 떠올랐다.

 

 "혈액 팩이면... 사장님이 쓰시는 거잖아?"

 

 어림잡아도 50개가 넘는 듯했다. 혈액 팩이 나란히 줄지어있는 모습은 괴이하기까지 했다. 일호의 뒷목으로 닭살이 돋았다.

 

 "이런 게 왜 여기 쌓여있는 거야?"

 

 일호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냉장실을 찬찬히 훑어봤다.

 

 "이 곳에 있는 내용물은 저 혈액들이 전부인가?"

 

 그때 일호의 시야에 특이한 게 들어왔다. 혈액 팩마다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이름표 안에는 검정 잉크로 된 글자가 보였다.

 

 "뭐라고 적힌 거지?"

 

 또다시 슬금슬금 삐져나오는 호기심이 그를 냉장실 안으로 불러들였다. 이미 일호의 왼손을 제외한 몸 전체가 냉장실 안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숫자 같은데?"

 

 일호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살을 찌푸렸다.

 

 "11... 살?"

 

 일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주위의 혈액 팩을 확인했다.

 

 "11살... 13살... 10살... 11살... 12살... 뭐야 이게?"

 

 틀림없는 나이였다. 이름도 성별도 없이 그저 나이만 적혀있었다.

 

 "설마 아침마다 아이들을 끌고 간다는 게, 이것 때문에?"

 

 미끄덩.

 

 일호는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문을 놓쳐버렸다. 그때였다.

 

 푸슈욱.

 

 일호는 얼른 돌아섰다. 하지만 일호의 손을 떠난 문은 원래 지키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닫혔다."

 

 일호는 힘으로 열어보려했다.

 

 쿵! 쿵!

 

 그는 온몸을 부딪혀가며 출입문을 밀었다. 수차례 힘을 썼지만 밖에서만 열 수 있도록 설계된 출입문은 철옹성으로 버텼다. 일호는 네펜데스에 빠져버린 개미가 되어있었다. 탈출하려는 의지가 거세질수록 좌절감만 늘어갔다.

 

 "망했다."

 

 밖에서 일호를 도와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휴대폰도 손에 없었다. 일호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젠장!"

 

 냉기가 일호의 소매에 스며들었다.

 

 

 ***

 

 

 "끄응...."

 

 일호는 힘겹게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그는 낯선 공간에 누워있었다. 주위는 온통 칠흑이었고 등으로는 한기가 서렸다.

 

 딸깍

 

 스위치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천장 조명이 얼굴을 비췄다. 일호는 따가운 빛을 피하려 고개를 좌측으로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지금 누워있는 곳이 드러났다.

 

 '실험대?'

 

 일호는 실험대에 누워있었다.

 

 쿵 쿵 쿵 쿵

 

 그는 미친 듯이 발광했다.

 

 "뭐야! 어서 풀어줘!"

 

 하지만 양팔에 묶인 고정벨트는 그의 움직임을 철저히 차단했다. 일호는 실험대 위의 동물이 되어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아... 또 실패네."

 

 남성의 목소리였다. 일호 말고도 다른 이가 있었다.

 

 "거기 누구세요?"

 "이번 건 실험체가 너무 불완전해. 이 정도로 만족할 순 없어."

 

 일호의 물음은 완벽히 무시되었다.

 

 "저 좀 풀어주세요."

 "응. 그건 그렇지. 그래도 이렇게 완성체가 만들어진 것만 해도 큰 성과긴 하지."

 

 알 수 없는 말의 연속이었다.

 

 "제 말 안 들리세요?"

 "기계라도 집어넣어서 생명 유지만 시켜놔."

 

 또각 또각

 

 남자의 구두소리가 일호를 향했다.

 

 "저기요!"

 "이번 실험은 성공할 줄 알았는데."

 

 또각 또각

 

 발소리는 일호 바로 왼편까지 다가왔다. 일호는 시선을 고정했으나 발소리의 주인은 어둠 속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엄청난 공을 들였다고."

 

 일호의 입이 굳었다. 익숙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이런 실패작 같으니라고."

 

 그 남자는 조명 아래로 들어왔다. 동시에 그의 얼굴이 보였다.

 

 "실패작."

 

 백민관이었다.

 

 

 "으아악!"

 

 일호는 눈을 떴다. 그는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내 방이잖아."

 

 익숙한 공간임을 깨닫자마자 곧장 팔을 움직였다.

 

 "끄어...."

 

 다행히 그를 속박하는 물체는 없었다. 하지만 팔을 올리는데도 상반신 모든 근육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하아... 하아...."

 

 그는 팔을 제자리로 내렸다. 내리는 동작도 고통의 연속이었다.

 

 "으윽... 꿈이었구나...."

 

 신음과 함께 온몸의 힘이 쫙 빠졌다. 몸 전체가 땀범벅이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눈만 껌뻑였다. 그의 눈엔 오직 천장만 보였다.

 

 "어?"

 

 일호는 문득 어디부터가 꿈인지 아리송했다.

 

 "나, 지하 3층에 가지 않았나?"

 "갔었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일호는 놀란 고양이처럼 침대에서 일어났다.

 

 "누구야!"

 

 일호는 침대 옆의 램프를 몽둥이 삼아 쥐었다. 그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여차하면 공격할 자세를 취했다. 그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거실에서 계속 들렸다.

 

 "갔다가 혼자 혈액보관실에 갇혔고. 바보처럼."

 

 일호는 목소리를 쫓아 한 뼘씩 발을 움직였다. 침실 문턱을 건너자마자 거실 소파에 누군가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불청객은 테이블에서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었다.

 

 "당신 누구야? 누군데 허락도 없이 들어와!"

 "아,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당신 생명의 은인입니다."

 "생명의 은인?"

 

 생명의 은인이란 자는 일호의 등장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로지 노트북 화면에만 집중했다.

 

 "학목 바이러스에 대한 스크랩도 해놓으셨네요?"

 

 일호는 램프를 더 꽉 쥐었다.

 

 "그거 내 노트북이잖아. 뭐하는 짓이야?"

 

 일호는 고개를 내려 불청객의 얼굴을 확인했다. 처음엔 누군지 못 알아봤다. 하지만 넓은 이마, 처진 눈 꼬리, 그리고 턱밑 점은 흔치 않은 외모였다.

 

 "당신, 그때 그 스파이."

 

 하지만 스파이의 외모는 전과 조금 달랐다. 머리는 검은 색에, 수염도 없었다. 안경도 없었다. 게다가 얼굴도 좀 앳되어 보였다.

 

 '주름도 좀 없어진 것 같고.'

 

 스타일을 바꾸니 일호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였다. 심지어 일호보다 10살은 어려 보였다.

 

 "자꾸 스파이래. 기껏 살려줬더니만."

 

 그제야 일호는 지하 3층 냉장실에 갇혔던 기억이 돌아왔다.

 

 "당신이 날 살렸다고?"

 "그래. 내가 지하 3층을 찾아냈으니 망정이지. 못 찾았으면 지금쯤 정육점 냉동육 신세였을 걸?"

 

 일호는 냉장실에 갇힌 직후, 열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걸었다. 하지만 4시간 정도 움직이니 신체적으로는 피로감이, 정신적으로는 좌절감이 쌓여갔다. 혈액 팩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소리라고는 냉매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밀폐된 공간이었다. 맨몸으로 그곳에 갇혀있는 것만으로도 고문 그 자체였다.

 

 '밖은 한밤중이겠지?'

 

 최소한 아침까지는 일호를 구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5시간 가까이 와들와들 떨다보니 탈출의욕은 사라져갔다. 전략도 열을 내는 방법에서 열을 붙잡는 방법으로 바뀌었다. 일호는 냉방기에서 가장 먼 구석에 웅크리고 앉았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30분도 되지 않아 일호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대로... 죽기는 싫은데...."

 

 일호의 온몸은 동상처럼 딱딱해졌다. 팔다리엔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 눈을 부릅떴지만 그 노력도 헛수고였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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