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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 카쟝: 세상을 바꾸는 도둑들
작가 : 꾸마네
작품등록일 : 202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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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의 날(2)
작성일 : 22-02-26     조회 : 75     추천 : 0     분량 : 7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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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가지만 해주면 목숨은 살려주지. 당장 내 동료가 있는 곳을 말하고, 정문을 지키는 경비원들에게 회사를 개방하라고 명령해."

 

 그것이 카쟝이 총을 겨눈 목적이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뚜걱.

 

 민관의 목소리는 사장실로 퍼졌고 사장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네 뜻대로만 되면 재미없잖아?"

 

 사장실에서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장 비서였다. 하지만 장 비서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옆에는 다른 사내가 있었다.

 

 "내 동료를!"

 

 장 비서의 옆에는 리브가 있었다. 리브는 정신을 잃은 건지, 수면제를 먹은 건지, 눈이 풀린 채 장 비서의 왼손에 질질 끌려왔다. 그의 양팔은 수갑으로 묶여있었다. 카쟝의 모습처럼 장 비서도 리브의 머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네가 여기 온 목적이 결국 저 녀석을 데려가기 위한 거지?"

 

 카쟝은 백민관을, 장 비서는 리브를 인질로 삼은 복잡한 상황이었다. 예상치 못한 리브의 등장에 카쟝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반면 백민관은 피식 웃었다.

 

 "카쟝, 난 널 알아. 넌 어차피 사람을 못 죽여. 근데 내 비서는 사람 하나 죽이는 거야 식은 죽 들이켜기지."

 

 그 때 장 비서의 무전기에서 음성이 들렸다.

 

 "1km 앞에서 다수의 도적단이 돌진해오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벽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카쟝이 명장제약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달구 도적단들에게 퍼진 것이었다. 그들은 다른 도적의 손에 현상금이 들어가지 않도록 서둘러 명장제약으로 달려들었다. 민관은 절대 원치 않던 상황이었다.

 

 “....”

 

 30층 로비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생기지 않았다. 네 사람은 동상처럼 제자리를 지켰다. 무전기는 또 한 번 울렸다.

 

 "도적단 200m 앞까지 도달. 곧 정문까지 진입할 것 같습니다."

 

 빠라빠라~ 빵빵!

 

 밖에서 요란한 차 소리가 들렸다. 도적단들이 모든 운송수단을 동원하여 명장제약으로 폭주하는 소리였다.

 

 "도적단이 바로 눈앞에 보입니다. 정문과 충돌하기 10초 전! ...5초 전! ...3초 전! 2초 전! 1초 전!"

 

 콰광!

 

 고막을 찢는 굉음이 들렸다. 장 비서는 재빨리 총구를 카쟝 쪽으로 돌렸다. 한 발의 총성으로 적을 쓰러뜨리기 충분한 거리였다. 동시에 카쟝은 총을 피해 몸을 던졌다.

 

 탕!

 

 총알은 아슬아슬하게 카쟝의 옆구리를 빗나갔다. 장 비서는 민첩하게 총을 재장전하려 했으나 카쟝도 그 동작을 기다릴 바보가 아니었다.

 

 "어딜!"

 

 카쟝은 자리에서 곧장 일어나 앞발로 장 비서의 오른손을 찼다.

 

 "악!"

 

 장 비서의 총은 로비 구석으로 떨어졌다. 카쟝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장 비서를 향해 총을 들었다. 하지만 장 비서는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한 몸놀림을 보였다. 그는 카쟝의 오른손이 다 들리기도 전에 카쟝의 품으로 접근했다. 동시에 카쟝의 팔을 강하게 꺾었다.

 

 "헙!"

 

 카쟝의 손에서 힘이 풀리며 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곧바로 카쟝은 팔이 꺾인 방향으로 몸을 틀며 장 비서를 발로 밀었다. 그는 겨우 장 비서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장 비서는 즉시 자세를 잡고 카쟝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카쟝은 당황한 나머지 다리가 굳었다.

 

 "이얏!"

 

 장 비서가 카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카쟝은 가까스로 몸을 굴려 좌측으로 빠져나왔다.

 

 "다람쥐 같은 녀석!"

 "허억, 허억, 허억."

 

 카쟝은 그새 숨이 찼는지 호흡을 가다듬었다. 장 비서는 숨을 고르는 카쟝을 또렷이 노려봤다. 두 사람은 3m의 거리를 두고 서로를 탐색했다. 두 사람 사이에 위치한 승강기가 도착한 것은 그 때였다.

 

 띵-

 

 [30층입니다.]

 

 곧이어 승강기의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선 실루엣 하나가 등장했다.

 

 "이거..."

 

 승강기에서 내린 자는 장 비서 못지않은 체격을 가진 사내였다. 온몸을 잿빛 옷으로 덮고 얼굴의 반을 가리는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좌우를 훑었다.

 

 "내가 영 좋지 않은 타이밍이 온 것 같군."

 

 30층에 있던 사람 중 유일하게 백민관만이 그의 정체를 추측할 수 있었다.

 

 "당신... 흑사...?"

 

 그 사내는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 사내의 대답이기도 했다. 카쟝의 얼굴로 '낭패'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반대로, 민관의 표정은 장마가 끝난 하늘처럼 환했다.

 

 "흠...."

 

 승강기에서 내린 사내는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허리춤에서 금속 물체를 집었다. 사내는 눈 깜짝할 새에 팔을 들며 장전을 마쳤다. 그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던 탓에 그 곳에 있던 누구도 반응할 수 없었다.

 

 푸슉.

 

 흑사는 고민할 틈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손에 들린 테이저 건의 총알은 목표물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총알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과녁 가슴팍에 명중했다.

 

 "으어...."

 

 털썩.

 

 장 비서는 외마디 비명도 못 지르고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테이저 건에 맞아 중추신경이 일시적으로 마비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정신적 충격을 가장 많이 받은 사내는 백민관이었다.

 

 "흑사... 왜... 내 비서를...."

 

 흑사는 콧바람을 불며 웃었다.

 

 "이제 여기서 당신을 구해줄 사람은 나 밖에 안 남았네. 안 그래?"

 

 흑사의 전략이었다. 이제 30층에는 카쟝, 리브, 흑사, 그리고 백민관뿐이었다. 흑사는 테이저 건을 다시 장전했다.

 

 "이쯤에서, 거래를 다시 할까 하는데."

 

 급박한 상황에서 그 소리를 하는 흑사를 보자 민관은 어이가 없었다.

 

 "3000억도 적은가? 저 앞에 있는 녀석을 잡기만 해도 3000억이라고! 당신이 전기총을 저 놈한테만 쐈어도 3000억을 벌었단 말이야!"

 "어차피 총알은 충분해.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쏘고도 남을 정도로."

 

 흑사는 민관을 날카롭게 쳐다봤다. 민관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그를 봤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4000억이면 되겠어?"

 "아니."

 "젠장. 원하는 게 뭐야?"

 "동행."

 "뭐?"

 "당신, 오늘 비밀리에 장관급 인사들을 초청했지? 그 작자들은 이미 명장제약 어딘가에 모여 있고. 나도 그 장소에 가고 싶어."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거든."

 

 명장제약의 비밀모임이 흑사의 레이더에 걸린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집회라면 분명히 돈이 모일 수밖에 없는 자리일 거야?”

 

 흑사는 총구를 민관에게 겨눴다. 흑사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가 무슨 냄새인 줄 알아? 바로 돈 냄새야.”

 

 더 이상 '거래'가 아닌 '명령'이었다.

 

 "이런 다급한 상황에선 거래를 조금이라도 빨리 성사시켜야 하지 않겠어?"

 

 민관은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거래하지. 얼른 저 카쟝 녀석을 기절시켜줘."

 "분부대로 합죠."

 “젠장.”

 

 카쟝은 재빨리 사장실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카쟝의 회피술보다 흑사의 사격술이 한 수 위였다.

 

 푹.

 

 테이저 건의 총알이 정확히 카쟝의 오른쪽 등에 꽂혔다.

 

 "끄윽."

 

 날카로운 통증이 카쟝의 등을 타고 상반신을 뒤덮었다. 그는 찌릿한 고통을 꾹 참고 왼손을 등으로 뻗었다. 이윽고 등에 박힌 총알이 손에 닿았다.

 

 "헉, 헉."

 

 카쟝의 온몸에 전기가 흐르고 있었다. 총알을 쥔 손가락까지도 고통스러웠지만 카쟝은 쓰러지지 않았다.

 

 "끄아아악!"

 

 카쟝은 손으로 직접 총알을 뽑았다. 그 모습을 본 흑사는 유유히 다음 총알을 장전했다.

 

 “아프지?”

 “하아... 하아....”

 

 카쟝은 다가오는 흑사를 꿋꿋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뭐야, 실신한 거야?"

 

 흑사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사장실로 접근했다. 그의 눈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카쟝이 들어왔다.

 

 "임무 완수네."

 

 흑사는 카쟝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어보았다.

 

 “돈이 걸려서 처리하긴 했지만, 너무 시시한데?”

 

 흑사는 느닷없이 카쟝을 있는 힘껏 찼다. 타격이 깊이 들어간 나머지 “퍽!”소리가 아닌 “푹!”소리가 났다. 하지만 카쟝은 미동도 없었다.

 

 “역시. 기절한 게 맞네.”

 

 흑사는 자리에 주저앉아 카쟝을 등에 짊어졌다.

 

 “자, 백 사장님. 이 녀석을 어디에 놓으면 되지?”

 

 민관은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오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는 흑사를 자신의 비밀 연구실로 데려간다는 사실이 썩 내키지 않았다.

 

 ‘지하 4층에 흑사를 데려간다면.’

 

 흑사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귀빈들과의 신뢰는 산산조각이었다.

 

 ‘최고의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 최악의 도둑을 데려갈 순 없어.’

 

 하지만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수술이었다. 그 수술을 진행할 때 필요한 재료가 흑사의 등에 올려져있었다. 흑사는 한 발짝씩 다가왔다.

 

 “이 녀석을 어디로 가져가야 하냐고.”

 “....”

 

 민관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보아하니 이 녀석을 그 비밀모임에 가져가야 하는군. 이 녀석으로 경매라도 하는가보지? 흠, 당신은 지금 나를 그 자리에 데려가야 할 지 고민 중이구나? 한낱 도둑을 그런 중요한 자리에 데려가면 망신살이 뻗칠 텐데 말이지?”

 “....”

 “아까 거래를 너무 성급하게 했다는 생각도 들겠지. 근데 뭐 긴박한 순간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잖아? 이미 거래는 끝났고. 당신이 그렇게 갈등할수록 나는 더욱 더 가고 싶어지는데?”

 

 흑사는 민관의 속내를 훤히 꿰고 있었다. 민관의 입장에선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흑사를 설득시키려다간 상황만 더 악화됐다. 민관은 숙고를 마치고 입을 열었다.

 

 “거래는 거래니까, 당연히 오늘 모임에 데려갈 거야. 그 대신 거래를 하나 더 하지 않겠나?”

 “하! 무슨 거래인데?”

 “현재 나는 당신에게 3000억 환을 주기로 되어있어. 그리고 이번 일만 끝나면 나는 당신에게 상여금으로 5000억 환을 더 얹어 줄 생각이야.”

 

 흑사의 입 꼬리가 들썩거렸다.

 

 “오, 나야 좋지.”

 “단 조건이 있어.”

 “암, 조건이 있겠지.”

 “우리는 이제 모임이 있는 층으로 내려갈 거야. 그 층에 도착해 승강기에서 내리면, 당신이 말을 한 마디 할 때마다 상여금이 1000억 씩 깎일 거야.”

 

 흑사는 씨익 미소 지었다.

 

 “그냥 입 닥치고 있으란 소리군. 내가 흑사인 걸 밝히고 싶지 않구나? 내 정체가 밝혀지면 모임도 파투날 테니까. 표정도 진지해 보이니 그 정도는 배려해주지. 내가 또 약속은 칼 같이 지키잖아?”

 

 흑사는 어깨를 으쓱거려 카쟝을 흔들었다. 민관은 흑사의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현재 우위를 점한 쪽은 흑사였다.

 

 ‘어차피 RB project만 성공하면 지하 연구실도 한 동안 문을 닫게 돼. 흑사인 것만 밝히지 않는다면 오늘 모임에 데려간 정도로는 큰 탈 없겠지.’

 

 “어서 엘리베이터에 타.”

 

 흑사는 민관의 손짓에 따라 승강기에 올랐다. 민관은 버튼을 누르기 전, 뒤쪽을 힐끗 보며 흑사의 동태를 살폈다. 하지만 흑사는 정면만 바라본 채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민관은 승강기의 [비상호출] 버튼을 눌렀다.

 

 “뭐하는 짓이지?”

 

 흑사가 물었다. 안 보고 있는 줄 알았지만 역시 민관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민관은 애써 웃었다.

 

 “걱정 마. 이 버튼을 누르고 [4층]을 눌러야 우리가 원하는 층이 나오거든.”

 

 민관은 [4층]을 눌렀다. 그러자 그의 말처럼 승강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강기는 문이 닫히기 무섭게 급강하했다. 줄이 끊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승강기에 탄 세 사람은 무중력을 느끼며 지하로 향했다.

 

 "도착하기 전에,"

 

 중간 정도 내려왔을 무렵, 민관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흑사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흑사의 어깨를 쳐다봤다.

 

 “확인해볼 게 있어서 말이야.”

 

 그는 흑사의 어깨로 손을 뻗었다. 손이 닿은 곳은 카쟝의 얼굴이었다. 민관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카쟝 얼굴을 뜯어냈다.

 

 부욱-

 

 그의 얼굴을 감싼 실리콘이 떼어졌고, 그토록 기다렸던 얼굴이 드러났다.

 

 “카쟝.”

 

 민관은 만족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이 녀석을 수술대에 눕히게 되는군.”

 

 띵-

 

 지하 4층에 도착한 것은 30초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문이 열립니다.]

 

 문이 열리자 지하 4층 내부가 보였다. 내부를 본 흑사는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지하 4층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단 한 곳만 빼고.

 

 “웬 무대가 있지?”

 "말하면 1000억씩 나간다고 했지?"

 "아."

 

 흑사의 시선은 한 곳에 꽂혔다. 30m 앞에 20평 남짓한 강단이 올라와있었고, 6대의 조명은 그 무대를 강렬하게 비추고 있었다.

 

 “무대라는 표현도 틀리진 않았지만, 정확히는 수술실이지.”

 

 민관의 말을 듣고서야 무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단상에는 여러 의료기구들이 즐비해있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중앙에 놓인 기구였다. 중앙에는 수술대 2개가 1m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놓여있었다.

 

 “보아하니 이 녀석을 저 수술대에 올려야 하는군.”

 “역시 눈치가 빠르네. 상여금을 받을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미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부턴 정말로 말을 삼가하지."

 

 민관은 손가락으로 왼쪽 수술대를 가리켰다.

 

 “저기에 카쟝을 눕혀. 왼편 수술대에 말이야.”

 

 흑사는 주문에 따라 승강기에서 내렸다. 흑사가 앞으로 10걸음을 나아갔을 즈음, 눈은 어둠에 적응했다. 동공이 확장된 눈으로 강단 앞에 앉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무대를 향한 조명 빛 뒤에 가려져있었다.

 

 ‘국회의원부터 장관까지 다 모였군.’

 

 다행히 흑사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손님들은 흑사를 장 비서의 대체자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흑사는 단상으로 올라가 수술대를 확인했다. 원래는 철제 실험대였지만 그 위에 얇은 매트리스를 깔아놓아 사람이 누울 수 있도록 만든 구조였다. 보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수술대였다. 특이한 점은 실험대 머리맡에 손바닥만 한 구멍이 뚫려있다는 점이었다. 흑사는 카쟝을 침대에 눕히듯 수술대에 가지런히 눕혔다.

 

 “아니, 그러면 안 되지.”

 

 민관의 목소리였다. 그는 흑사의 뒤에 서있었다.

 

 “뒤집어야지.”

 

 민관은 손바닥을 공중에서 180° 뒤집었다.

 

 “저 구멍에 얼굴을 넣으라고.”

 

 흑사는 민관의 요구에 따라 카쟝을 뒤집었다. 뒤집어놓고 보니 카쟝은 꼭 마사지를 받으러 온 손님 같았다. 카쟝의 얼굴은 뚫려있는 구멍으로 딱 맞게 들어갔고 등은 하늘로 향했다. 술자가 뇌와 척수를 꺼내기에 가장 편리한 자세였다. 곧이어 수술 어시스턴트들이 카쟝의 팔목과 발목을 벨트로 고정시켰다.

 

 “좋아. 이제 당신이 할 일은 다 끝났어. 약속대로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줄 테니 무대 뒤로 물러나있어.”

 

 흑사는 민관의 명령에 살짝 화가 치밀었지만 말없이 강단 밑으로 내려갔다. 그제야 민관도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TV에서 보던 그 얼굴이었다. 보조 연구원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은 그는 우렁찬 목소리로 지하 4층을 압도했다.

 

 “자,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죠. 하하.”

 

 흑사는 민관이 인사하는 사이 어둠 속에 몸을 담갔다. 흑사의 실루엣이 사라지자마자 천장에서 커다란 화면이 민관의 정수리 높이까지 내려왔다. 민관의 발표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는 신제품을 발표하는 CEO의 당당한 모습이었다.

 

 “제가 이 기술을 처음 고안한 것은 20년 전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명장제약에서 동물을 복제하는 연구를 성공했었죠. 저와 무대 옆에 있는 우 박사가 말이죠.”

 

 복제 동물을 만드는 기술은 우 박사가 5년 밤낮으로 연구하여 개발한 방법이었다. 장관 중 몇몇은 그때가 기억난다는 듯이 눈을 길게 깜빡였다.

 

 “그 후 20년 동안 우리는 다른 기술 하나를 더 개발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뇌를 바꾸는 기술 말입니다. 우리의 뇌와 척수를 다른 몸에 이식시키면 우리에게 새로운 몸이 생기는 것이죠. 이 기술을 성공시키는데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순탄하게만 진행되었다면 10년 전에 세상 빛을 봤을 기술이었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의 고소 때문에 10년이라는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고 해야겠죠. 우리 회사는 그 인고의 10년 동안 임상실험 결과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쌓았습니다. 덕분에 RB project를 견고하게 완성시켰고요. 그렇습니다. Re-Birth Project라고도 불리죠.”

 

 고위 인사들은 어둠 속에서 하얀 이만 드러낸 채 웃고 있었다.

 

 “이제 실용화만 앞두고 있습니다. 실용화를 시키기 위해선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고요.”

 

 귀빈들은 옆 사람과 이야기하며 긍정의 미소를 띠었다. 반면 흑사는 팔짱을 낀 채 민관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는 민관이 듣지 못할 정도의 음량으로 혼잣말을 읊조렸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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