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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 카쟝: 세상을 바꾸는 도둑들
작가 : 꾸마네
작품등록일 : 202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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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민
작성일 : 22-02-26     조회 : 63     추천 : 0     분량 : 7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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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잉-

 

 그녀가 정신을 집중해서 끝끝내 고통을 참는 사이 문신 기계는 왼쪽 옆구리를 겨우 지났다. 이후의 통증은 참을만했다. 그렇게 골반에서 부화한 뱀은 미네민의 허리를 감싸고 등을 오르는 듯한 형상을 했다.

 

 ‘이제 흑사단이 되는 거야.’

 

 그녀가 몸에 뱀을 품는 까닭이었다. 모든 흑사단원은 몸에 뱀 문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온통 검은 비늘로 되어있는 뱀이었다. 검은 뱀이 흑사단의 표식이기도 했고, 서로의 신원을 확인할 때도 유용했다.

 

 같은 흑사단원이라도 뱀의 위치는 제각각이었다. 종아리, 허벅지, 골반, 허리, 팔뚝, 등, 가슴, 어깨, 목, 그리고 뒤통수까지. 위치마다 각기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규칙이 있었다. 흑사단 내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뱀의 위치도 머리에 가까워졌다. 흑사의 오른팔인 청사의 경우엔 뱀이 목덜미를 타고 뒤통수로 날카로운 혀를 내밀고 있었다.

 

 “끝났습니다.”

 

 문신이 끝나자 미네민은 힘을 풀고 침대에 누워 잠시 숨을 골랐다. 문신사는 다음 단원에게 문신을 해주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미네민은 바닥을 내려다보며 앞으로 할 일을 떠올렸다.

 

 “내일이 입단식인가.”

 

 흑사단은 그녀가 꼬마였을 때부터 달구에서 가장 큰 도적단이자 가장 강한 도적단이었다. 게다가 작년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많은 도적단들을 흡수하기까지 했다. 현재는 어느 도적단들도 건들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자랑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흑사단을 감히 자극할 생각조차 못했다.

 

 신입 단원들의 경우, 타의로 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자의로 들어온 자들도 드문드문 있었다. 미네민도 자의로 입단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최근 한 달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많은 단원들이 유입되다 보니 그때그때 입단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흑사는 이번엔 날짜를 잡아 한꺼번에 입단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입단식은 내일 밤에 열렸다.

 

 ‘흑사.’

 

 그녀는 흑사를 한 번도 만난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흑사에 대한 기억은 강렬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흑사와 맞닥뜨리기 전 그녀를 급히 차에 태워 보냈던 모습이 떠올랐다.

 

 “얼른 도망 가!”

 

 도망가라고 했던 것을 보니 미네민의 아버지도 자신의 패배를 예감하고 있었다. 미네민은 그 뒤로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아버지 외의 다른 가족들도 만날 수 없었다. 그녀는 꽉 쥐고 있던 왼 주먹을 폈다. 손바닥에 그려진 문신 하나가 나타났다. 태양 문양의 문신. 아주 뚜렷한 자외단의 문신이었다.

 

 자외단에서 투항을 하고 흑사단으로 들어온 단원들은 아까의 사내처럼 원래 있던 문신을 지워야 했다. 흑사단 외의 도적단 출신은 입단식 전까지 도적단 문신을 흑사단의 뱀 문신으로 수정해야 했다. 하지만 미네민은 사정이 달랐다. 그녀는 소속을 밝히지 않고 무소속으로 흑사단에 들어왔다. 그런 연유로 문신을 지우라는 명령을 따로 받지 않았다.

 

 미네민인 무소속으로 입단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자외단이었음을 밝힐 수 없었다. 그녀는 자외단의 수장 손선장의 딸이었다. 흑사가 잡고 싶어 했던 손선장의 가족이었다. 그런 그녀가 제 발로 흑사단에 입단한 것이었다. 입단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흑사에게 무조건 복수한다.’

 

 흑사가 무너뜨린 자외단, 그녀의 가족,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까지. 그녀가 갚아야 할 빚이 너무나 많았다. 미네민은 이를 갈고 한 발짝 한 발짝 꾹꾹 디뎌가며 흑사단에 발을 들였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내일 있을 입단식에서는 ‘돈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선서와 함께 각 단원들이 들어갈 대대가 정해졌다. 미네민은 한 시라도 빨리 흑사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가까워지기만 한다면... 이 손으로....’

 

 미네민은 다시 한 번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손톱이 또다시 손바닥을 깊게 찔렀다. 손톱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자극했지만 그녀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

 

 

 바다 특유의 짠내가 카쟝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네요.”

 

 카쟝은 서마루 항구에 도착해있었다. 솔코라인을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배를 탑승해야 했다. 카쟝은 솔코라인행 선박티켓을 끊기 위해 터미널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넓은 라운지가 나타났다. 여행의 설렘을 수다로 떠는 사람, 시간을 확인하며 배를 기다리는 사람, 벤치에 앉아 TV를 보는 사람 등 많은 이들이 라운지를 채웠다. 저녁 시간대라 그런지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카쟝은 한 바퀴 둘러보고는 구석에 위치한 매표소를 발견했다. 그는 곧장 매표소 앞으로 접근했다.

 

 "솔코라인 성인 2장이요."

 "타시는 두 분 전부 신분증 주세요."

 

 카쟝은 뒤로 돌았다. 그곳엔 우 박사가 있었다.

 

 "신분증 달라는데요?"

 

 우나영은 가방에서 신분증을 꺼냈다.

 

 "여기."

 

 카쟝은 눈을 내려 그녀의 신분증을 힐끔 보았다.

 

 "와, 나이가 꽤 있으시네요."

 "네가 보태준 거 없으니까 신경 꺼."

 "네."

 

 우 박사의 바늘 같은 눈초리가 카쟝의 입을 꿰맸다. 카쟝은 오른 주머니에서 자신의 신분증을 꺼냈다. 두 신분증이 매표소로 넘어갔다.

 

 "우나영 씨랑, 강일호 씨 맞죠?"

 

 접수원은 신분증에 나온 사진과 두 사람을 비교했다. 카쟝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네. 맞습니다."

 

 접수원은 접수기에 그들의 신상정보를 입력했다. 잠시 후 티켓 2장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즐거운 항해되세요."

 

 두 사람은 선착장으로 가기 위해 표에 인쇄된 게이트로 향했다. 터미널 곳곳에 이정표가 붙어있어 선착장을 찾는데 무리는 없었다. 다만 우 박사의 걸음 속도가 느린 나머지 카쟝은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설렁설렁 걸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우 박사는 자신의 허리까지 올라오는 캐리어를 끄느라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무슨 짐을 이렇게나 많이 싸왔어요?”

 “나도 개인적으로 알케일에 가는 건 처음이라서. 루베 씨에게 드릴 조그마한 선물이랑 배에서 읽을 논문 3편, 그리고 대부분은 알케일 가서 입을 옷이지 뭐.”

 “옷이요? 오래 있을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많이 챙겨왔어요?”

 “겨울옷이다 보니 부피가 커서 짐도 커지더라고.”

 “예? 겨울옷이요?”

 “왜? 전에 얘기하지 않았었나? 알케일은 솔코라인에서 가장 추운 도시야.”

 

 알케일은 1년 내내 기온이 0℃를 넘지 않는 북부 지역이었다. 날씨 탓에 농사를 짓기는 무리였고 외출활동도 쉽지 않았기에 상대적으로 연구시설이 발달했다. 혹자는 과학자들이 추워서 연구실에만 박혀있다 보니 연구 실적이 늘었다는 농담도 할 정도였다. 그만큼 연구만 집중하기 딱 좋은 도시였다. 아니, 연구만 할 수 있는 도시였다.

 

 “어라?”

 

 카쟝은 캐리어도 없었고 배낭에는 기껏해야 긴 팔 티셔츠뿐이었다. 그는 알케일이 추운 도시라는 말만 들었지 사시사철 영하를 유지한다는 정보는 지금 처음 알게 되었다.

 

 "크흠."

 

 솔코라인에 도착하면 옷부터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직 30분 정도 남았네요.”

 “쉬면서 미리 멀미약 먹고 있지 뭐.”

 “솔코라인까지 가는 데는 얼마나 걸려요?”

 “10시간은 가야 할 걸?”

 “꽤 오래 걸리네요. 타자마자 잠들면 푹 잘 수 있겠어요.”

 

 애초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지만 최대한 신속하게 항구로 이동하다 보니 두 사람은 저녁 배를 타게 되었다. 하룻밤을 바다 위에서 보내야 하는 신세였다.

 

 “어, 저기 3번 게이트 보이네요.”

 

 카쟝이 3번 게이트를 가리키는데 뒤에서 누군가 불러 세웠다.

 

 “거기 두 분! 잠깐만 서보세요.”

 

 카쟝은 직감적으로 그 소리가 자신을 향한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카쟝은 재빨리 눈을 돌렸다. 남색 하의, 하늘색 상의, 그리고 가슴에 은색 배지를 단 남자 4명이 서있었다. 이 터미널의 경비원으로 보였다. 그 때 카쟝의 머릿속엔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왜 오시는 거지?'

 ‘우리가 못 알아채도록 조용히 쫓아온 건가?’

 

 카쟝은 본능적으로 종아리에 힘이 들어갔다.

 

 “무슨 일이시죠?”

 

 경비원 넷 중에서 눈가 주름이 가장 진한 남자가 카쟝을 쳐다봤다. 그는 카쟝을 위아래로 훑더니 우 박사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우나영 씨인가요?”

 

 우 박사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네. 그런데요?”

 “잠시 검사에 응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던 카쟝이 나섰다.

 

 “무슨 일이시죠?”

 

 경비원은 주머니에서 수첩으로 보이는 물건을 꺼냈다.

 

 “저는 해양 경찰에 소속된 위인철이라고 합니다. 저희 조사에 따르면 우나영 씨가 범죄 경력이 있어서요. 해외로 나가기 전에 몇 가지 검사를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매표소에서 우나영의 신상정보를 입력한 게 원인이었다. 경찰이 나영의 교도소 이력을 확인하고 출동한 것이었다.

 

 “지금 출항까지 30분 남았는데요.”

 “잠깐이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들에게 저항하면 아예 배를 타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나영은 순순히 그들의 지시를 따랐다.

 

 “일호 씨, 먼저 타고 있어.”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위인철 경찰은 가만히 서있고 다른 두 경비원들이 나영을 데려갔다. 나머지 경비원은 나영이 끌고 있던 캐리어를 받아서 어디론가 끌고 갔다. 인철은 카쟝을 쳐다봤다.

 

 “우나영 씨와 어떤 관계이시죠?”

 “직장 동료입니다.”

 “솔코라인은 왜 가시는 거죠?”

 “지인을 만나려고 갑니다.”

 “지인을 만나러 가시는군요. 지인 분은 솔코라인 어디에 계시죠?”

 “알케일에 있습니다.”

 “알케일이라... 알케일에 가시는 이유는 어떻게 되십니까?”

 “사업상의 이유입니다.”

 “알겠습니다. 검사는 최대한 빠르게 끝낼 겁니다. 먼저 타고 계시죠.”

 

 경비원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카쟝은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숨을 돌렸다.

 

 “출발부터 삐그덕거리는구만.”

 

 카쟝은 또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 서둘러 선착장으로 나갔다. 그곳엔 거대한 크루즈가 떠있었다. 마치 빌딩이 바다에 떠있는 듯했다. 크루즈 옆에는 선박의 이름이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SL-J]

 

 "SL이면 '솔코라인'의 약자인가? J는 무슨 뜻이지? 아무튼 엄청나게 크네."

 

 카쟝이 입구로 들어가니 로비가 눈앞에 펼쳐졌다. 천장에 달린 책상만 한 샹들리에부터 바닥을 메운 자주색 카펫까지, 그 세련됨은 최고급 호텔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카쟝은 선박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티켓에 적힌 객실을 찾아 어슬렁거렸다.

 

 배를 한 바퀴 쭉 돌았을 즈음 그와 우 박사가 배정된 객실에 다다랐다. 카쟝은 객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침대가 좌우 각각 1개씩 있고 중앙에 조그만 책상이 있었다. 카쟝은 배낭을 오른쪽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나 왔어.”

 

 카쟝은 뒤를 돌아봤다. 우 박사가 서있었다. 그녀는 이미 지쳤는지 눈에 힘이 없었다.

 

 “다행이네요. 출항까지 5분도 안 남아서 걱정했어요.”

 “나도 겨우 나온 거야. 하마터면 못 탈 뻔했어.”

 “한시름 놨네요. 저 혼자 갔으면 루베 씨 만나기도 힘들었을 거예요. 어서 짐부터 놓으세요.”

 

 카쟝은 나영의 캐리어를 받아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나영의 손은 비어있었다.

 

 “캐리어 어디 갔어요?”

 “그게 말이지.”

 

 해양 경찰이 그녀의 짐을 검사한다고 해놓고는 안 돌려준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돌려주겠다고 하길래 알겠다고 하고 일단 배에 탔지.”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듣자하니, 온드리안에서 우나영은 특수 범죄로 분류되어 집중 검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경비대는 15분의 시간 동안 검사실에서 그녀에게 정확한 여행지, 여행목적, 귀국일 등을 쉴 새 없이 물어봤다.

 

 마지막으로 나영은 온드리안으로 귀국하면 다시 검사실에 들러야 한다는 명령에 서명하고서야 검사실을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대면검사는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영에게 캐리어를 돌려주지 않았다. 해양경찰은 그녀의 짐을 철저하게 조사한 뒤 돌려주겠다고 전했다.

 

 “그럼 우 박사님은 당분간 빈털터리네요.”

 “당분간일 수도 있고, 앞으로 계속 그럴 수도 있고.”

 

 우 박사는 조사 받는 동안 지쳤는지 침대에 털썩 누웠다.

 

 “액땜했다고 칠래. 아무튼 이제 읽을 논문도 없고, 난 한숨 잘 거니까 도착할 때나 깨워줘.”

 “알겠어요. 바로 주무실 거예요?”

 "잠은 안 오는데 일단 그냥 누워있으려고."

 

 5분도 지나지 않아 나영이 코 고는 소리가 객실을 채웠다.

 

 

 ***

 

 

 이제 명장제약회사엔 카쟝도, 우 박사도 없었다. 일호는 블라인드를 걷고 창밖을 보았다. 하늘은 가을바다처럼 맑았다.

 

 "솔코라인엔 잘 도착했으려나?"

 

 일호는 하늘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의자에 앉았다. 책상 위엔 그의 결재를 기다리는 보고서들이 두둑이 쌓여있었다. 일호는 홀로 사장실에 남아 백민관이 맡던 업무를 보고 있었다.

 

 백민관은 워낙에 일 중독자였다. 일호도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뼈에 사무치도록 깨닫고 있었다. 민관을 대신하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서둘러 읽지 않으면 시간 내에 못 끝내겠어."

 

 일호도 백민관 못지않은 일벌레였다. 그럼에도 처음엔 몸이 2개여야 할 정도로 바빴다. 그래도 백민관의 자리에 앉은 지 사흘 정도 지나니 일에 점점 익숙해졌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다.

 

 "문제가 생겼으면 일단 연구를 중단시키고 체크... 문제가 없는 실험은 계속 진행시키고...."

 

 명장제약에는 크고 작은 연구팀이 총 10팀 있었다. 백민관은 모든 연구에 관여하고 있었다. 민관을 대신하는 일호로서는 각 팀이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연구를 하는지, 그리고 현재 진행 상황은 어디까지 왔는지를 모두 머릿속에 담고 있어야 했다.

 

 "이걸 다 혼자 해오셨다니, 대단하긴 하시네."

 

 일호는 마지막 연구9팀의 보고서를 다 읽고 시계를 봤다.

 

 [AM 09:54]

 

 "아슬아슬하게 끝냈네."

 

 10시부터는 회사를 순회하는 시간이었다. 일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거울 앞으로 갔다. 거울 속에는 젊은 백민관이 서있었다.

 

 "감쪽같긴 하단 말이야. 전혀 못 알아채겠지?"

 

 일호는 카쟝의 손을 빌려 약간의 변장을 했다. 명장제약에는 일호의 얼굴을 아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변장이 필수였다.

 

 안경을 비롯한 옷차림은 모두 백민관의 기존 스타일 그대로 차용했다. 가발을 사용하여 이마를 좁게 만들었고 덥수룩했던 수염을 깔끔하게 다듬었다. 백민관의 경우, 40대 초반 시절, 눈꺼풀이 처져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쌍꺼풀 수술을 했다. 50년 넘게 쌍꺼풀이 있던 민관이었기에 사람들 기억 속의 민관은 쌍꺼풀이 있었다. 따라서 일호도 쌍꺼풀을 일부러 만들었다. 게다가 피부가 유독 하얬던 민관을 따라 화장까지 하니, 예전 일호의 흔적은 솜털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 정도면 내려가도 괜찮겠어."

 

 일호는 외투를 입고 사장실을 나섰다. 로비에 있던 경호원이 민첩하게 일어났다.

 

 "나오셨습니까? 오늘도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응. 얼른 한 바퀴 돌아야지. 그나저나 새 비서는 언제 뽑지?"

 "오늘 순회 마치고 돌아오시면 면접이 있을 예정입니다."

 "알겠어."

 

 일호는 비서가 아닌 경호원과 함께 각 층을 차례차례 내려갔다. 일호는 매일 회사 내부를 돌아다니며 사내 분위기와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확인했다. 업무 실적을 보며 충고나 조언을 해주고 싶을 때도 그 시간을 이용했다. 사원 입장에선 맨날 있는 일이었기에 연차가 쌓인 이들은 사장의 존재와 상관없이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했다. 연차가 낮은 사원들만 일호가 출입할 때마다 꾸벅꾸벅 인사했다.

 

 "이제 4층인가?"

 

 연구1팀과 5팀이 있는 층이었다. 그중에서도 연구1팀은 일호가 소속됐던 연구2팀에 비견되는 우수한 실적을 내는 팀이었다. 이번에 연구1팀에서 만든 노화치료제는 DNA 변성을 막아주는 약제였다. 이름은 Never-A12. 만약 연구2팀의 1000H-β가 개발 마지막 단계에서 차질이 발생했다면, Never-A12가 먼저 시장에 발을 내밀었을 게 분명했다.

 

 "이 팀도 거의 다 완성했을 텐데."

 

 4층 연구실로 들어가니 연구 1팀이 보였다. 1팀은 한환기 팀장의 지휘 하에 실험을 진행했다. 한환기 팀장은 명장제약에서도 '노력의 왕'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연구 때문에 밤새는 일이 다반사였으며 식사도 거를 때가 많았다. Never-A12을 창조하기 위해서 자신의 한 몸을 깡그리 바친 인물이었다.

 

 일호가 한창 1000H-β 개발에 매진할 때도 일호보다 늦게까지 남아 일하던 사람이 한환기였다. 일호가 매일 퇴근하며 회사를 나갈 때도 4층은 언제나 불이 켜져 있었다. 하지만 운 때문인지 능력 때문인지, 결국 신약 개발에 먼저 성공한 팀은 일호의 연구2팀이었다. 환기보다 1년 늦게 연구를 시작했지만 더 일찍 마침표를 찍었던 일호였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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