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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검, 악마의 칼날 위에 서다.
작가 : 박현철
작품등록일 :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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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라 쥰페이, 나의 절친이 되다
작성일 : 24-02-09     조회 : 58     추천 : 0     분량 : 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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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화

 노무라 쥰페이, 나의 절친이 되다.

 

  목검이라는 말에 잠깐 했던 행복한 고민은 눈 녹듯 사라졌다.

 검도 시합이 아니고 왜 목검만 가지고 하자는 거지? 검도로 하면 검도복 입고 사생결단(死生決斷) 겨뤄도 덜 아플 텐데... 이 자슥 이거 무식하게 마구잡이로 때리는 거 아냐? 아무리 내가 맞는 건 이골이 났다고는 하지만 조록나무로 만든 목검 스누케(スヌケ)로 때리면 엄청 아플 텐데, 숙모한테 목검으로 배우면서 맞아봐서 아는데... 이 지슥 이거 목검만 가지고 많이 뛰어봤다는 거잖아, 졌네... 아 씨, 이왕이면 비싼 비파나무로 만든 목검(木劍)으로 하자고 할 걸, 비싼 거라 부러질까 봐 살살 때릴지 모르는데...

 

 - 콜...

 

 그렇다고 사나이 자존심이 있지, 다른 걸로 하자고 할 수도 없고, 눈치 안 채게 저음으로 묵직하게 말했지만 자신 없어 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구경꾼들은 이미 승패가 났다고 짐작했을 것이다.

 쥰페이는 학교에 있는 검도장으로 나를 데리고 가지 않고 자기 집안에서만 쓰는 전용 검도장으로 데리고 갔다. 검도장은 잘 조경(造景)된 일본식 정원 속에 자리 잡았다. 검도장 분위기가 써늘했다. 경건하고 웅장해 주위를 압도했다. 그때는 쥰페이 집이 잘사는지 몰라 자슥이 나 기죽이려고 여길 데리고 왔구나, 생각했다.

 소문 듣고 더 많이 학생들이 참관하러 왔다. 아 쪽팔리면 어쩌지... 나중에 알았지만 유리나하고 미나미도 있었다. 당연히 아야코는 없었다. 쥰페이 집안의 형인 가쿠슈인

 고등과 출신에 가쿠슈인 대학 다니는 검도 4단 선배가 심판을 봐주기로 했다. 쥰페이가 목검을 하나 내게 던져줬다. 스누케(スヌケ)였다. 묵직한 것이 맞으면 엄청 아플 것 같았다. 쥰페이가 먼저 검도를 제대로 배운 폼을 잡더니 악, 악, 소리까지 질러가며 멋지게 휘둘렀다. 나도 숙모에게서 배운 대로 여러 동작을 선보였다. 보는 구경꾼들이 흥미진진해 침을 삼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군중심린 줄 몰라도 어깨가 올라갔다. 해보는 거다. 아니 여기서 장렬하게 전사하자...

 쥰페이와 마주 보고 섰다. 선배가 먼저 검도의 정신과 검도의 예의범절을 읊고 패했을 때는 정정당당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상대를 향해 인사를 시켰다.

 인사를 하자마자 내가 쥰페이를 불렀다.

 

 - 야, 쥰페이!

 

 쥰페이가 어리둥절했다.

 

 - 아니 목검을 이런 걸 주냐?! 니꺼랑 바꾸자!

 - 뭐가 어때서?

 - 와서 봐, 목검이 엉망이잖아, 불공평하게... 너만 좋은 거 가지면 안 되지?

 - 아닌데...

 

 쥰페이가 투덜투덜 대며 걸어오고 나도 목검을 보라는 듯이 쥰페이에게 다가갔다.

 목검을 찌를 만큼 거리가 가까이 되자 나는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이 쥰페이 명치를

 향해 목검을 찔렀다. 쥰페이는 윽, 했다. 무방비 상태로 찔린 거였다. 배를 안고 힘들

 어했다. 그만큼 쥰페이는 순진했던 거였다. 천성이 그랬다. 악성종양 같은 학폭 가해

 자 장성제하고 차원이 달랐다. 어느 나라이든 반드시 있는 악랄한 학폭 가해자들같이 쥰페이는 악의적이고 잔인하지 않았다. 그런 인간이었다면 그러든 말든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목검을 내게 휘둘렀을 것이다. 쥰페이는 다만 엄포가 조금 과할 뿐이었다. 나는 칼을 던지며 외쳤다.

 

 - 내가 이겼다, 맞죠, 선배?!

 - 야, 비겁하게!

 - 일 대 일이다.

 - 나쁜 새끼... 잡히면 죽는다!

 

 잡아먹을 듯이 나를 노려봤다. 그러나 나는 안다, 성제 일당들에게 여러 번 명치 끝

 을 맞아 봤기에, 숨이 턱 막히고 힘이 빠지면서 진땀이 난다. 잡힌들 회복되기 전까지 머리칼을 잘린 삼손 꼴이 돼 아무런 힘을 못 쓴다는 것이다.

 나는 낄낄대며 검도장 안을 달아났고 쥰페이는 아픈 명치 끝을 잡고 나를 잡으러 왔다. 긴장해서 오금이 저릴 것같이 쳐다보던 구경꾼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검도장 안을 몇 바퀴 쫓고 달아나고 하는 동안 두 사람의 살벌한 시합은 코믹으로 변했다. 선배도 내가 이겼다고 선언했다. 매사에 조심하지 않은 것이 쥰페이의 패인이라고 분석했다. 분위기가 화기애애 지고 도장 안의 기운이 부드러워졌다. 마지막으로 누가 햄버거를 많이 먹냐 시합을 했다. 지켜보던 유리나(友梨奈)의 제안이었다. 근처 롯데리아로 가서 햄버거 먹기 시합했다. 똑같이 20개씩 먹고 두 사람 급체(急滯)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그리고 나와 쥰페이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사실 가쿠슈인 학생들은 잔인하거나 악하지 않았다. 부모 세대들은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뺏으려고 하지만 자식들은 부족한 거 없이, 약육강식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는 고민 없이, 성장했기에 대체적(大體的)으로 온순했다. 가쿠슈인 짱이라는 쥰페이가 이 정도였으니까 알만하지 않는가, 또 모르지 극한 상황에 처하면 늑대의 발톱을 드러낼지... 아무튼 내 경험상 한국하고는 달랐다. 낭만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아직 신용카드나 QR 코드가 일반적으로 퍼져 있지 않고 현금 사용이 많은 거만 보더라도 그렇다. 최첨단 국가이긴 하나 학교 사회는 보수적인 색채가 강했다. 특히 전통 깊고 특수인(特殊人)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가 그랬다. 오래전 선배 짱이 만만한 급우에게 빵 셔틀을 시키자 그 만만한 학생이 집에 전화해서 빵 가지고 오라고 했다. 빵을 20톤 대형트럭으로 가득 싣고 왔다고 했다. 만만한 학생은 유명한 빵집 아들이었다. 한 번은 학폭(學暴) 당한 황족이, 그것도 황위(皇位) 서열 5위 안에 드는 황족이 천황의 재가를 받아 황궁의 궁녀와 시종 그리고 요리 도구를 갖춘 요리사를 앞세우고 등교한 적이 있었다. 황족을 괴롭히던 학교의 주먹이 황제가 먹는 우동이 먹고 싶으니 구해 오라고 황당무계한 주문을 하니까 시중에 팔지 않아서 고민 끝에 황궁의 요리사를 대동해 학교에 가서 황실의 요리를 해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가쿠슈인 정문을 통과하는 황실의 행렬을 본 주먹은 아연실색(啞然失色)했다.

 황족인 줄 모르고 괴롭혔던 주먹은 꿇어앉아 싹싹 빌었고 졸업한 뒤 반성하는 뜻에서 그 황족의 시종이 되었다고 했다. 주변의 눈총이 따가워서라도 시종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주먹의 집은 영원히 그 사회에서 매장당하기에 그랬다. 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가쿠슈인 출신이면 한 번 정도

 들었던 전설적인 이야기다.

 아무튼 천황의 직계와 방계 그리고 화족과 신흥 귀족, 고관대작, 유수의 재벌 등등

 일본의 최상위층 지도자급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에 양아치의 살벌한 칼부림은 일어날

 수가 없을뿐더러 만일 일어난다면 질서를 파괴한 자나 그 집안은 엄청난 후폭풍을 감

 당해야 했다. 그렇다. 일본 기득권 세대의 중추인 가쿠슈인 부모 세대들은 현 일본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냉혹한 이너 서클(inner circle)을 가동해야 하기 때

 문이었다.

 

 - 선생님, 지금 퇴원해도 됩니까?

 - 안 돼, 퇴원하려면 마지막 뇌파 검사를 하고, 내일 예정돼 있으니까...

  오늘은 푹 쉬고...

 

 내가 회진온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생에게 묻자 선생은 칼로 자르듯 단호하게 반대했다.

 

 - 아니, 그러면 다른 병실로?

 - 안 돼.

 - 이 친구한테 미안해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부자라 해도 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서...

 - 몽, 걱정하지 마, 그냥 있어도 돼.

 

 쥰페이가 날 안심시켰다.

 

 - 이 병원 너희 병원이냐?

 - 아니, 스에마쓰...

 

 쥰페이가 전혀 예상 못 한 이름을 댔다.

 

 - 스에마쓰?

 -응, 니 여친 스에마쓰 아야코 집이야, 그러니까 얼마든지 있어도 돼.

 

 어잉, 뭔 소리야, 이 소리가? 기절해 있는 동안 여친이 생기다니... 귀신 곡할 노릇이었다.

 

 - 걔가 스에마쓰 아야코야?

 

 내가 황당해서 쥰페이에게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재차 물었다.

 

 - 야는 지 여친 이름도 까먹었냐? 선생님 진짜 얘 머리에 이상이 있는 거 아닙니까?

 

 엄마가 작은아버지 통역으로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걱정했다.

 

 -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이틀의 공백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으니까요, 그럼 안심하

  시고 편히 쉬십시오, 몽대 학생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쉬어, 늦어도 모레는 퇴원

  할 수 있을 거야...

 - 네,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좋아하시는 거 있으시면 말씀하십시오,

  제가 준비를 하겠습니다. 우리 아들 살려주신 은인이신데...

 - 아이구 말만 들어도 받은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자, 그럼, 회진 때 뵙겠습니다.

 

 작은아버지가 엄마와 준이치로 선생 양쪽을 통역해줬다.

 준이치로 선생과 간호사들이 총총걸음으로 나갔다.

 

 - 스에마쓰 아야코 집이 쥰페이 너희 집보다 잘 살아?

 - 우린 비교도 안 돼...

 - 그래?

 - 스에마쓰 이라면 스에마쓰 글로벌 그룹을 말하냐?

 

 작은아버지가 궁금해서 쥰페이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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