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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검, 악마의 칼날 위에 서다.
작가 : 박현철
작품등록일 :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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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回想), 그 과거의 세계
작성일 : 24-01-04     조회 : 54     추천 : 0     분량 : 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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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회상(回想), 그 과거의 세계.

 

  맥(貘)은 갈증이 났다. 김수로와 무령 공주가 서로 희롱하며 노닐던, 낙하(洛河)를 만드는 천(川) 이 시작되는 신비스러운 원천(源泉)이 모이는 곳, 원지(圓池)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주위를 두리번거린 뒤 혀로 물을 후루룩, 후루룩 조급하게 마셨다.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되자 하늘같이 청명한 원지를 바라봤다.

 

 거기에 맥의 과거 세계가 보였다. 과거 세계는 흘러가며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깊은 인연을 나누는 소중한 사람들이 보여줬다.

 

 맥은 한동안 바라보다 훌쩍 날 듯이 아름드리 천년 홍송(紅松)의 가지 위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누워서 상념에 잠겼다.

  * * *

 (E) 달그락, 달그락~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E) 달그락, 퉁퉁, 달그락, 퉁퉁~

 

 나는 그 소리에 눈을 떴다.

 

 초여름인데 추위를 느꼈다.

 

 분명 더 큰 소리가 날 것이다.

 

 - 달그락, 우당탕!, 달그락, 우당탕!~

 

 늘 그랬다.

 처음엔 작게, 다음엔 제법 크게, 그다음은 더 큰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난 곳은 다락이었다.

 

 궁금증을 유발했지만, 저 소리 때문에 궁금증만 증폭되었다.

 다락에 올라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다.

 

 안 사면 아들이 바보가 되는 줄 알고 덜렁 할부로 샀지만, 말짱한 동화책, 저학년용 참고서와 교과서, 아버지가 보던 낡은 책과 한참 철 지난 구형 가전제품과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물건들, 제사 때 필요한 용품들,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 찬 다락에서 나는 소리였다.

 

 겁이 났다.

 겁이 나면 나는 어김없이 베개를 들고 안방을 찾았다.

 

 안방 문을 열었다.

 

 누운 그대로 자는 아버지와 몸부림이 심한 어머니가 자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엄마가 자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서서 기다렸다.

 방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할 거 같아서였다.

 

 - 용감한 아들, 왜?...

 - 아부지, 다락에서...

 - 내 옆에 오너라.

 - 응...

 

 불이 꺼진 깜깜한 방.

 보름달이 뜬 달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에 방이 훤히 밝았다.

 

 엄마는 아버지 트렁크 팬티를 입었다.

 하얀 속살의 허벅지가 선명하게 보였다.

 

 엄마의 농염한 허벅지가 자리 잡은 곳은 아버지 배 위였다.

 아버지는 엄마의 다리를 버거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흐뭇해했다.

 

 남편은 그 정도의 무게는 감당할 줄 알아야 자격이 있는 양

 조심스럽게 엄마의 다리를 다뤘다.

 

 아버지가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두드렸다.

 여기 누우라는 거였다.

 

 나는 엄마가 깰까 봐 조심스러웠다.

 살며시 아버지 옆에 누웠다.

 

 - 아빠, 다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우당탕 우당탕, 도둑놈 들어온 거 같다...

 - 아... 그건 천년 먹은 잉어가 용이 돼서 날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거다.

 - 에, 아빠 거짓말, 잉어가 어떻게 천 살이나 먹어, 생선인데...

 - 우포늪에 천살 먹은 잉어가 살았다. 니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그랬고, 니 할아버

  지도 그랬다. 나는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말 믿는다. 너도 믿어라...

 - 나는 못 믿겠다. 생선이 천년 살면 사람은 만년 살겠네...

 - 그러면 천년 먹은 잉어 누구 주지? 큰일이네, 나는 믿는데, 손자가 안 믿으니

  증조할아버지하고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섭섭하다고 울겠다...

 - 아빠, 그럼 다락방이 던전이가?

 - 던전이 뭐고?

 - 음, 지하 감옥 같은 거...

 - 그래, 그 말도 맞겠네, 천년 넘게 갇혀 있으니까...

 

 일곱 살 때 아버지 옆에 누운 나와 아버지와 나눈 대화였다.

 

 경남 창녕에는 신생대 때 형성된 대한민국 최대의 내륙 습지 우포늪이 있다.

 

 나는 창녕 조(曺)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창녕 63호 고분에서

 일본 도굴꾼을 죽이고 일본으로 밀반출될뻔한

 천년 먹은 잉어가

 변해 용천(龍泉)이 된 명검을 손에 넣었다고 했다.

 

 그 용천이 우리 집의 가보로 내려오니

 내가 물려받아 잘 보관했다가 내 자식에게 물려주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이었다.

 

 나는 그때 아버지 말을 믿지 않았고 그 뒤에도 믿지 않았다.

 그러다가 용천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버지도 그 뒤로 내 머리가 커 갈수록 더욱 믿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굳혔는지 용천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는 호기심에 아버지 배 위에 올린 엄마 허벅지에

 내 다리를 살짝 올렸다.

 

 - 자기야, 이게 뭐고?

 - 자기 아들 다리.

 - 내 아들 다리가? 묵직하네.

 - 인자 다 키웠다, 장가보낼까?

 - 그래, 우리 아들 꼬치 잘 있는지 확인부터 해보고...

 

 엄마 말에 나는 질겁했다.

 손으로 내 거시기를 막았다.

 

 - 그냥, 자라...

 - 그럴까... 몽대야, 우리 셋을 영어로 뭐고?

 - 패밀리...

 - 그래, 패밀리, 내 아들 똑똑네... 음냐, 음냐...

 

 엄마는 나와 아버지를 꼭 껴안고 행복한 가족이 꿈꾸는 세계로 들어갔다.

 

 내가 아버지나 엄마 옆에 자면 엄마는 꼭 내 거시기를 확인하려고 했다.

 

 나는 칠색 팔색했다.

 엄마가 끈질기게 성가시게 굴면 베개를 들고 내 방으로 달아났다.

 

 다락방에서 나는 소리가 무서웠어도 엄마의 짓궂은 장난보다 나았다.

 

 어떨 때는 엄마의 행동이 나를 안방에서 내쫓기 위한 의도적인 게 아닌가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심심찮게 내 거시게 대한 엄마의 번거로울 정도의 관심을 보면 아닌 거 같기도 했다.

 

 내 거시기는 갓난아기 때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친할머니 외할머니가 동네방네 거시기 하나는 물건이라고 떠들고 다닐 정도였다.

 

 동네 사람뿐만 아니라 친지들도 나만 보면 거시기부터 확인하려 들었다.

 

 나는 용돈을 준다고 해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우리 집이 철도공작창 부근에 살다가 주례로 이사 온 것도

 그놈의 내 거시기에 대한 열화같은 관심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의 결과였다.

 

 엄마는 아버지의 큰 덩치에 막혀 아버지 배 위에 올린 다리만 보였다.

 색색거리며 작게 코 고는 소리만 들렸다.

 

 엄마는 여느 엄마와 달리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 나를 못 자게 했다.

 자식 때문에 부부가 떨어져 자는 건 용납 못 한다고 했다.

 될 수 있으면 네 방에 가서 자라고 했다.

 정 우리랑 자고 싶으면 아버지 옆 또는 엄마 옆에서 자라고 다짐을 줬다.

 

 그래서 나는 두 분의 금슬을, 남의 이목을 아랑곳하지 않는

 저돌적인 엄마와 아버지의 금슬을 깨지 않으려고 될 수 있으면 내 방에서 잤다.

 

 그러나 오늘 같은 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는 다락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겁이나 안방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E)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 엄마, 전화...

 

 내가 참다못해 엄마 허벅지를 두드렸다.

 

 - 아, 또... 웬 전화야... 아들이 받아주라...

 

 내가 무릎으로 기어서 엄마 화장대 위에 놓인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네... 엄마, 성제 엄마다...

 

  * * *

 

 비가 내렸다.

 우리 가족은 우산을 썼다.

 

 우리 집 뒤 산등성이에 사람들이 모였다.

 

 모두 우산을 썼다.

 성제 가족도 우산을 썼다.

 

 그러나 성제 사촌 형 가족은 우산을 쓰지 않았다.

 성제 큰아버지, 큰어머니, 수진누나...

 그냥 비를 맞았다.

 

 성제 사촌 형은 그 자리에 없었다.

 성제 사촌 형 만제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만제가 땅에 묻히자 인부들이 흙을 덮었다.

 

 많은 교인이 울었다.

 찬송가를 부를 때도 울었다.

 기도할 때도 울었다.

 

 나도 울었다. 성제랑 만제랑 우리 셋은 친했다.

 

 셋은 매일 동네를 뛰어다니며 전쟁놀이했다.

 수진 누나가 있으면 소꿉놀이했다.

 

 우리 셋은 만제 방에서 자주 놀았다.

 그러면 만제 어머니가 그 당시 귀한 비스켓과 캔디를 줬다.

 

 나는 그게 먹고 싶어서 만제 집에 자주 놀러 갔다.

 

 당시 싸움은 셋 중 내가 1등이었고 2등이 성제였고 3등이 만제였다.

 공부는 만제가 1등이었고 성제가 2등이었고 내가 3등이었다.

 

 잘생겼다고 하는 건 사람마다 달랐다.

 만제랑 성제 둘 중 만제가 잘생겼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수진 누나만, 세 명 중 내가 제일 잘생겼다고 했다.

 

 만제는 일곱 살이었지만, 영어를 잘했다.

 나는 그게 신기했다.

 

 외국에서 온 선교사와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나는 만제, 만세라고 불렀다.

 

 그런 만제가, 나의 친한 친구 만제가 물에 빠져 죽었다.

 

 추도 예배할 때 통곡이 나왔다.

 땅을 치고 오열을 터뜨리는 교인도 있었다.

 

 엄마도 땅은 치지 않았지만, 오열했다.

 

 성제 큰아버지도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수진 누나는 엉엉 소리 내며 울었다.

 

 그런데 성제 큰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목석처럼 서 있었고 울지 않았다.

 얼굴에 흐르는 것은 빗물이었다.

 

 성제 할아버지가 두 손을 들고 벌리며 마지막 기도할 때

 성제 큰어머니는 결국 혼절했다.

 

 성제 할아버지는 목사지만, 사학재단을 운영했다.

 

 대학교 야외 풀장에서 성제 사촌 형 만제가 빠져 죽었다고 했다.

 

 며칠 동안 비가 퍼부어 풀장이 넘쳤다고 했다.

 

 빠져 죽은 날은 마침 비가 오지 않아 성제와 만제가 학교 위

 재단 소유의 산에 놀러 갔다고 했다.

 

 성제는 만제가 풀장에 빠져 죽은 줄 모른다고 했다.

 만제가 안 보여서 학교 밑에 있는 집에 내려간 줄 알았다고 했다.

 

 만제는 물이 넘친 풀장 바닥에 다리가 닿지 않아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다가 죽었다고 했다.

 

 왜 빠져 죽었는지 누구도 그 원인을 몰랐다고 했다.

 같이 놀러 간 성제도 모른다고 했다.

 

 부모 가슴에 만제를 묻고 그 사건은 끝났다.

 

 성제 할아버지가 한 일은 불도저( bulldozer)로 풀장을 메꿨고

 애먼 건물 관리자와 풀장 청소부가 목이 잘렸다고 했다.

 

 만제는 성제보다 석 달 먼저 태어났고 나는 성제보다 한 달 앞에 태어났다.

 

 만제는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았는데 성제는 찬밥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성제가 물이 가득 찬 풀장에 만제를 밀었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일곱 살 난 아이가 그럴 수 없다고 아무도 믿지 않았다.

 

  * * *

 

 나는 천천히 손가락으로 성제를 가리켰다.

 

 나는 성제를 가리키면서 그 짧은 시간에

 미친 듯이 소리칠 건지 아니면 저음으로

 나지막하게 말할 건지를 결정해야 했다.

 

 모두의 시선은 성제를 가리킨 내 손가락에 집중했다.

 교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감히 성제의 면상을 향해 손가락질한다는 건 경악할 일이었다.

 그래서 급우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짜릿하면서도 오금이 저렸다.

 

 - 몽대야 왜, 뭔데?

 - 이 새낍니다, 범인이... 이 새끼가 사람을 죽였어요,

  살인잔 이 새끼가 틀림없어요.

 

 체육선생이 뜬금없는 내 행동을 보고 뭔가 의심쩍은지 물었고

 나는 말소리는 깔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성제를 살인자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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