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불멸의 검, 악마의 칼날 위에 서다.
작가 : 박현철
작품등록일 :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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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반전(急反轉)
작성일 : 24-01-05     조회 : 44     추천 : 0     분량 : 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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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화

 급반전(急反轉).

 

  체육선생의 물음에 바로 답한 게 아니라 2~3초

 호흡을 머금고 인터벌(interval)을 뒀다.

 그런 내 나지막한 말은 모두에게 어떤 확신을 심어줬다.

 나는 순간 목소리 깐 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우들은 흐윽! 들어가는 소리를 머금고 순간 하던 동작을 정지시켰다.

 효과 만점의 반증(反證)이었다.

 나는 속으로 내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고 전율에 머리가 쭈삣 섰다.

 조금 전까지 벌어졌던 상황이란 완전히 뒤바뀐

 전혀 예상 못 했던 일이 터졌던 거였다.

 

 - 이 새끼가 뒈지고 싶나...

 

 성제가 내 가슴을 뻥 찼다.

 

 나는 책상을 도미노 게임 하듯 밀며 쓰러졌다.

 

 (E) 우당탕탕!~

 

 소리가 나자 아이들이 놀라 모두 쳐다봤다.

 

 나는 비틀대며 일부러 과장되게 넘어졌다.

 

 교실은 일시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적이 감돌았다.

 

 성제가 터벅터벅 걸어와서 쓰러진 내 머리채를 잡았다.

 

 피식, 나는 비웃었다.

 

 내 아구통을 날리려고,

 한 방에 끝내려고 주먹을 힘껏 치켜드는 순간,

 

 - 뭐 하는 짓이야?!

 

 체육선생이었다.

 특이하게도 성격이 다른 그래플링(Grappling)과 태권도를 전공한 체육선생이었다.

 

  UFC 진출이 꿈이었는데 아킬레스건에 치명상을 입어 포기했다고 했다.

 

 잠시 멈칫하던 성제가 다시 주먹을 들었다. 일종의 무시였다.

 

 체육선생이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표명(表明)이었다.

 

 그렇다고 다혈질인 체육선생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성제 큰어머니 쪽을 통해 들어온 체육선생은 다른 선생들과 달리

 성제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 장성제, 내가 우스워?! 선생이 우스워?! 그 손 놓고 네 자리로 안 가?!

 

 체육선생이 체육복 소매를 걷으며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오히려 눈엣가시 같은 장성제 어디 한번 사생결단 붙어보자고 악다구니로 나왔다.

 

 체육선생이 세게 나오자 성제는 뜨끔한지 내 머리채를 잡은 손을 밀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리 장성제가 싸움에 일가견이 있다고 해도 온갖 격투기를 섭렵한

 체육선생은 두려운 존재였다.

 

 나는 비틀거리며 간신히 넘어진 책상을 잡고 균형을 잡았다.

 

 - 들어오세요, 경찰이라 해야 하나 형사라 해야 하나, 암튼 들어오세요...

 

 내가 쓰러진 책상을 세우는 동안 남자 형사와 여자 형사가 들어왔다.

 

 남자 형사는 첫눈에 눈매가 날카롭고 떡 벌어진 어깨가 형사처럼 보였지만

 여자 형사는 곱상하게 생겨 앳돼 보였다.

 

 채플 시간에 찬송가를 부르고 피아노도 치는, 우락부락 한데다가

 전혀 관리를 안 해 비정상적인 몸매 때문에 쓸데없이 비대하다고

 ‘쓸비’라는 별명을 가진 음악 담당 여선생과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 며칠 전 우리 학교 뒷산에 살인사건 났지? 그거 수사하러 나오신 형사들이시다,

  묻는 말에 답변 잘해주고...

 - 저, 선생님 수사가 아니라 탐문 조삽니다...

 

 여형사가 체육선생이 함부로 판단해 내지르는 말에 얼른 말을 끊고 정정했다.

 

 - 아이, 그게 그거지요...

 

 체육선생이 오지랖으로 무안을 당하자 머리를 긁적였다.

 

 여기까지가 체육선생과 형사들이 나타나므로

 상황이 급반전된 이야기의 전모다.

 

  * * *

 

 성제를 가리킨 내 손가락과 차가울 만큼 냉정한 저음의

 내 목소리는 모두에게 단말마(斷末魔)의 비명을 지르게 하고도 남았다.

 

 지목을 당한 성제도, 그 패거리도, 반 아이들도, 체육선생도,

 의례적으로 탐문왔던 형사들도, 영화에서 일어날 법한 반전이 졸지에 일어나자

 엄청난 충격파에 일시에 동작을 멈췄던 거였다.

 충격의 여파는 각양각색의 표정을 만들었다.

 

 - 이 새끼가 틀림없어요!! 재크나이프도 가지고 있어요!! 발목에 차고 있어요!!

  심심하면 내 등을 찔렀어요!! 그 칼로 내 등을 찌르듯이 사람을 찔렀어요!!

 

 이번엔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사자후(獅子吼)가 따로 없었다.

 교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광기의 외침이었다. 절박한 절규였다.

 

 - 칼 빼돌리지 마, 십새끼야!

 

 나는 두 발 정도 뛰어가 성제 패거리 한 명인 거머리를 향해

 붕 떠 두발차기로 찼다.

 내 발에 턱이 차인 거머리는 성제가 몰래 전하던 칼을

 떨어뜨리며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 저기 있잖아요, 저 칼!!

 - 움직이지 마!!

 

 곱상하게 생긴 여형사가 재빨리 삼단봉을 꺼냈다.

 

 - 김형사, 빨리 확보해!!

 

 김형사라는 자가 재빠른 동작으로 아무도 접근 못 하게

 손을 벌려 바닥에 떨어진 재크나이프의 위치를 확보했다.

 

 지문이 묻을까 봐 재크나이프가 떨어진 부근에 앉은 급우의 볼펜

 두 개로 항상 가지고 다니던 비닐봉지에 위태위태하게 담았다.

 

 - 너는 살인자야, 넌 연쇄살인마야! 우리 학교 뒷산에 일어난 살인사건은

  다 저 새끼가 저지른 겁니다! 이거 보세요, 이게 증겁니다!

 

 나는 윗도리 교복을 걷어 성제가 내 자리 뒤에서 재크나이프로

 찔러 피가 맺혀 딱지가 앉고 고름이 생긴 상처 자국을 보여줬다.

 

 반 친구들이 웅성거렸고 어떤 애들은 성제와 패거리들 몰래

 핸드폰으로 곰보 자국이 된 내 등짝을 줌인을 당겨 찍었다.

 마음이 여린 여학생들은 내 등짝이 끔찍한지 울기까지 했다.

 

  - 넌 새끼야, 친구가 아니야! 친구는 친구를 위해 목숨은 바쳐도 친구는 때리지 않 아! 넌 악마고 사탄이야! 이 개새끼가 저 개새끼들하고 우리 동네 누나를 집단으 로 강간도 했어요! 저, 네 명의 십새끼들이 누나를 꼼짝 못 하게 양쪽 팔과 두 다리를 잡고 성제 저 개새끼가 성폭행을 했다구요, 겁탈했다고요! 성제 저 개새 끼가 정액을 그 누나 얼굴에 뿌리고 낄낄거리며 웃었다잖아요! 그 누나는 충격과 수치심에 학교 뒷산 나무에 목매 자살했고요! 이 새끼들이 죽인 거나 마찬가 지예요! 개새끼야, 넌 소시오패스야, 야이 개새끼들아, 니들은 싸이코패스야! 이 새끼들 몽땅 잡아가서 사형시켜야 해요!!

 

 나는 극도로 흥분했다. 아무 말 잔치하듯 그동안 맺혔던 말을 마구 쏟아냈다.

 여기서 밀리면 나는 죽는다는 심정으로 악을 바락바락 썼다.

 

 응어리졌던 울분이 말이 돼 무방비 상태로 있던 성제와

 성제 패거리 가슴에 날아가 박혔다.

 

 상아로 빚은 듯한 성제 얼굴은 수치심과 모욕감으로 붉게 물들었고

 패거리들은 따가운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나는 갑자기 성제 얼굴을 향해 원투 스트레이트를 날리고 발로 찼다.

 

 

 

 성제는 가볍게 모두 피했다. 한 대도 맞지 않았다.

 역시 학교에서 짱 먹을 만큼 싸움 실력은 뛰어났다.

 

 하얗게 선병질적(腺病質的)으로 생긴 인간이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창피하고 쪽팔렸다. 반전(反轉)이 필요했다. 하복 상의를 찢었다. 단추가 두둑 떨어져 나갔다.

 

 그동안 단련한 체지방 5%의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가 드러났다.

 

 반전의 효과는 의외로 컸다. 반 아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놀랬다.

 

 체육선생도 눈이 휘둥그레져 감탄했다. 여형사만 약간 민망해했다.

 그러나 반 여학생들은 탄성을 질렀다.

 

 뭐만 큰 줄 알았더니 몸매도 죽이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오늘 러닝셔츠를 입고 싶지 않았다.

 

 - 좆만 한 새끼, 좆도 작은 새끼가...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옥상으로 올라와!

 

 내가 성제에게 한 말에 반 아이들이 어떤 영화와 연상이 됐는지

 킥킥대고 웃었다.

 

 - 이봐 학생 경찰서로 가야지...

 

 입꼬리가 보일 듯 말 듯 올라간 여형사가 말했다.

 

 - 몽대야, 옥상 문 잠겼다...

 

 체육선생이 눈을 끔벅이며 덧붙였다.

 

 - 김형사 임의 동행해...

 - 예...

 - 그건 안 합니까? 미란단가 환탄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오지랖 넓은 체육선생이 끼어들었다.

 

 - 아 그건 피의자로 연행할 때...

 

 김형사가 말했다.

 

 - 저도 가야 합니까?

 - 그럼, 참고인으로...

 - 몽대야 옷 입어라.

 

 체육선생이 은근히 나에게 엄지척을 한 뒤 부드러운 목소리로

 교복 상의를 내게 던져 줬다.

 내가 교복 상의를 왼손으로 멋있게 받으며 말했다.

 

 - 이 학교 재단이 이 새끼 집 겁니다, 이 새끼 아버지는 국회의원이고...

  형사님도 조심해야 합니다, 돈 있고 빽 있다고 지 꼴리는 대로 하는 새낍니다,

  형사님을 우습게 알 텐데요?

 - 걱정하지 마,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아...

 

 여형사가 씩 웃으며 말했다

 

 - 몽대야 가방은 거기에 맡길까?

 - 예, 감사합니다.

 

 거기란 나만의 아지트 떡볶이 가게다. 체육선생 동네 누나가 주인이다.

 

 김형사가 성제를 앞세우고 뒷문으로 나갔다.

 나도 단추 떨어진 웃옷을 입으며 뒤따라갔다.

 여형사가 내 뒤를 따랐다.

 

 피를 토하듯 내지른 내 목소리를 듣고 겁 없이 달려온 학생들이

 복도에 진을 쳤고 소심한 학생들은 교실 창에 얼굴을 내밀고 구경했다.

 

 아버지 말이 번쩍 떠올랐다.

 하려면 확실히 해라, 대충하면 안 한 거보다 못하다, 그 말이 뇌리를 스쳤다.

 

 - 장성제가 살인자다! 장성제가 사람 죽였다! 장성제는 연쇄살인마다!

 

 불쑥 두려움과 무서움과 공포감이 몰려왔다. 나는 그래서 계속 소리쳤다.

 

 학생들은 이제 인정사정 볼 거 없는 연도(沿道)를 가득 메운 구경꾼이 되었다.

 사형장에 끌려가는 사형수를 구경하듯 웅성거리며 떼로 따라왔다.

 

 내가 소리친 말이 팩트인 것처럼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삽시간에 입과 입으로 전달했다.

 

 심지어는 들으라고 성제가 살인자다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떠든 애들도 있었다. 성제가 노려봤다.

 앗 뜨거라 싶어 애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때 획 하고 뭔가 날아왔다.

 여형사가 윽 하고 쓰러지며 코를 싸잡았다.

 

 성제가 나를 향해 내지른 발에 김형사가 피하고 내가 피했건만

 결혼을 며칠 앞둔 예비 신부 여형사만은 피하지 못하고

 정확히 코에 맞았던 거였다.

 

 -괜찮아요?

 - 괜찮아...

 

 고작 학생인 나도 피했는데 베테랑 형사인 자기는 못 피하고

 코에 정통으로 맞은 것이 여형사는 수치스럽기도 했고 창피했다.

 

 - 어떡합니까? 선배, 내일모레가 결혼인데, 장 선배 화 많이 내겠네.

 -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기나 해.

 

 놀리듯이 김형사가 한마디 하자 여형사가 짜증을 냈다.

 손으로 막은 여형사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나는 얼른 체크무늬가 박힌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 어... 고마워...

 - 이 개새끼, 옥상으로 올라와 끝장내자!

 

 나는 이소룡처럼 주먹을 쥐고 섀도우 복싱하듯 두 발을 폴짝폴짝 뛰며

 원투 스트레이트를 허공에 날리는 객기를 부렸다.

 

 누가 봐도 내 눈은 겁에 질려 있었다. 구경꾼들은 우와~ 함성을 질렀다.

 어떤 구경꾼들은 손으로 골마루 벽을 두드렸다.

 그들의 두려움도 마찬가지였다.

 

 - 야, 옥상 문 잠겼다잖아...

 

 김형사가 말했다. 둘러싼 구경꾼들이 과도하게 웃었다.

 격렬하게 손뼉을 친 구경꾼도 있었다.

 그 말이 그렇게 우스운지 발도 굴렀다. 전형적인 군중심리였다.

 언제 닥칠지 모를 불안과 공포의 표출이었다.

 

 나도 민망한 듯 씩 웃었다. 그때 불쑥 이런 말이 떠올랐다.

 

 오늘이 내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 사생결단이 따로 없다. 여기서 물러서면

 나는 죽음이다. 이빨이 다 빠지는 한이 있어도 불독처럼 물고 늘어져야 한다.

 

 그날 내가 보인 행동은 최후의 발악이었고 칼날에 위에 선 벼랑이었다.

 

 마지막으로 성제에게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다.

 

 - 성제 이 개새끼가 자기 사촌 형도 죽였어요! 풀장에 밀어서 죽였어요!

  살려달라 매달리는 형을 못 올라오게 발로 찼어요! 그것도 수사해야 해요!!

  살인자, 살인마, 장 성 제!! 악마 장성제는 하나님의 천벌을 받을 거다!! 할레루야!!

 성제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리고 나를 적개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성제에게 혀를 내밀고 가운데 손가락을 폈다.

 온몸에 찌릿찌릿 전율이 흘렀다.

 

 나는 야비한 웃음을 지었다. 레옹의 게리 올드만처럼 몸이 비틀어졌다.

 

 -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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