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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칼날의 여기사
작가 : 에스투
작품등록일 : 201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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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작성일 : 16-09-06     조회 : 566     추천 : 1     분량 : 5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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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왜?!”

 

 라이나의 머릿속은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혼란으로 가득 찬 바람에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죽었나 싶었는데. 낮선 숲에서 눈을 뜨지 않나. 심지어는 자신의 모습이 어린애가 되었다.

 

 도통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을 뻔 한 라이나는 간신히 자신을 진정시켰다.

 

 그래. 전장에서도 이성을 잃는 자가 먼저 죽는다. 하물며 지금까지 기사로서 계속 검을 수행했던 자신이 냉정함을 잃으면 안 된다.

 

 “진정해야해. 진정해야해…… 진정…….”

 

 라이나는 몇 번이고 자가지산에게 중얼거렸다.

 

 “진정하겠냐!”

 

 다만 침착해지진 못했다.

 

 다시 한 번 마음먹고 호수에 자신의 모습을 비쳐보았다.

 

 ‘……이거 나 맞지?’

 

 어린아이인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라이나는 자신의 가슴께에 손을 대어보았다.

 

 ‘……없네.’

 

 왠지 모를 상실감.

 

 그녀를 아는 사람이 이곳에 있다면. 어차피 성인이었을때 너도 별로 차이 없잖아 하고 지적했겠지.

 

 ‘내가 몇 살 때 모습 이었을려나.’

 

 지금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당연하다. 자신의 어릴 때의 모습이 아닌가.

 

 곰곰이 고민해보던 라이나는 이때의 자신이 아마 열 두 살 쯤 이었을 때가 아닐까 짐작했다.

 

 ‘그렇다는 건 여덞살이나 어려졌다는 거야?’

 

 라이나의 본래 나이는 스물.

 

 자그마치 여덞살이나 어려졌다.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들으면 부러워할 기적의 회춘(?)을 이뤄냈지만. 정작 당사자는 황당할 뿐이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딱히 그녀는 젊음을 갈망 한 적도 없고. 수상한 비술 같은 것에도 손댄 적이 없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검을 갉고 닦는데 투자했겠지.

 

 애초에 평생 동안 기사로서 검을 휘두르는 것. 그리고 왕국과 시민들을 지키는 것 외에는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은 그녀였다.

 

 “여기가 저세상 같진 않은데…….”

 

 저세상에 들어서면 모두가 어린아이가 되는 걸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는데 그건 아니겠지. 아무리 독실한 신자가 아니라고 해도 신이 어린아이 취향이라곤 믿기 싫었다.

 

 거기에 지금 그녀가 느끼는 현실은 너무나도 생생하다.

 

 가슴께에 손을 대면 여전히 심장이 뛰는 고동이 느껴진다.

 

 “살아 있어.”

 

 이미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을 거라고 직감하고 있다.

 

 “……그럼 역시 그 괴물이 원인 혹은.”

 

 라이나는 자신이 들고 있는 새까만 검을 내려다보았다.

 

 “마검?”

 

 물론 묻는다고 검이 대답할리는 없다.

 

 빛 한점도 반사하지않는 새까만 검을 대강 한손으로 휘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상에는 평범한 검과는 궤를 달리하는 검이 존재한다.

 

 명검의 영역을 넘어선. 검 자체에 특수한 힘이 깃들어있는 것. 그것이 마검.

 

 “마검치곤 이상한데…….”

 

 휘둘러봐도 특수한 힘은 암만해도 없다. 조금 날이 예리한정도? 아무리 잘 쳐봐도 평범한 명검정도였다.

 

 거기에 사용자를 어리게 만든다는 마검 따윈 들어본 적도 없다.

 

 애초에 어린애가 된 것에 무슨 메리트가 있단 말인가. 정말로 그런 힘이 있다면 그건 저주의 영역이다.

 

 “으음…… 일단 가정해보면…….”

 

 라이나는 필사적으로 머릴 굴렸다.

 

 솔직히 머리 쓰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딱히 머리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평생을 검만 휘둘러왔기에 자연

 스레 오래 고심하는 것보다 직감을 믿고 몸을 움직이는 게 더 쉽다.

 

 “첫째 내가 어려졌다.”

 

 지금의 자신의 모습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가정.

 

 어떤 원인으로 인해 자신이 어려졌다. 그런데 그 원인은 모른다. 라는 답답한 상황.

 

 “그게 아니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더욱 말도 안 된다. 약 8년을 회귀했다? 소설도 아니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말도 안 되는 상황도 납득이 갈 수 밖에 없다.

 

 고민하던 라이나는 머리에 열이 올랐는지 호수에 얼굴을 처박고는 머리를 식혔다.

 

 “푸하! 정보가 너무 부족해.”

 

 숲속에서 머리를 굴려봐야 해답이 나올 리가 없다. 역시 현 상황을 판단할 근거가 필요하다.

 

 “그전에 여긴 어디야?”

 

 왕국 지리를 나름 꿰고 있는 라이나라고해도 아무것도 모른 채 숲에 덩그러니 놓인 상황에서 이곳이 어딘지 파악할

 능력은 없다.

 

 ……숲에서 서바이벌 할 재주는 있지만.

 

 “일단, 움직일까.”

 

 이곳에서는 판단한 근거가 더는 없다고 생각한 라이나는 가장먼저 행동 방침을 정했다.

 

 숲을 빠져나간다.

 

 근처에 마을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숲을 져나가면 언젠가는 도달하겠지.

 

 혹은 마을에 도착하지 못해도 행상인이나 혹은 여행자라도 마주치면 된다.

 

 그리고 현 상황을 파악한 정보를 찾는다.

 

 그럼 싫어도 알게 되겠지.

 

 “좋아.”

 

 라이나는 홀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길을 돌리려다.

 

 옷자락을 밝고 넘어졌다.

 

 “흐앗?!”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라이나는 울상을 지었다.

 

 “으으으으…… 뭐야…….”

 

 원래 그녀라면 넘어지기 전에 그 자리에서 몸을 틀어 자세를 바로잡았을 터.

 

 그런데 입고 있는 옷이 걸려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라이나가 입고 있는 건. 이미 다 깨져버린 갑옷 조각과. 그리고 그 안에 받쳐 입은 천 옷 정도다.

 

 그래봐야 죄다 찢어지고 뚫려서 넝마조각이나 다름이 없어서 이게 옷인지도 의문이 들었지만.

 

 “거치적거리네…….”

 

 어른일 때의 자신이면 몰라도 어린아이인 지금의 그녀에겐 너무나도 거치적거린다. 지금도 남은 옷자락을 밝고 넘어졌지 않은가.

 

 라이나는 우선 입고 있는 옷을 벗었다. 갑옷조작은 더는 쓸모없으니 버려두고. 남은 가죽과 천 조각을 대충 들고 잇는 새까만 검으로 찢듯이 베어내고는 자신이 뒤집어 쓸 수 있는 만큼만 남겼다.

 

 “……완전 거지꼴이네.”

 

 남은 옷을 다시 걸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입은 소녀의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야생미가 넘친다고 해야 할까. 까놓고 말해 그야말로 거지꼴이었다.

 

 “뭐…… 벗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아무리 어린아이의 몸이 라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돌아다니기에는 그녀의 수치심이 용납하지 못한다. 차라리 이거라도 걸치고 있는 게 낫다.

 

 “가능하면…… 좀 더 제대로 된 옷도 구하고 싶네…….”

 

 일단 해야 할 일중에 정보 다음으로 이 몰골을 어떻게 하는 것도 우선순위에 넣은 다음 라이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른다.

 

 애초에 이 숲은 별로 인적이 없는지 누군가가 지나다닌 길은커녕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대충 나아가보면 숲에서 나올 수 있을 거야.”

 

 반쯤 나사 빠진 생각을 하는 그녀였다.

 

 과거 기사가 되기 위해 받은 훈련 중에는 식량도 물도 아무것도 받지 않고 깊은 숲속에서 서바이벌을 하는 것도 있었다. 먹을 것도 구하지 못해서 독성이 없는 벌레를 구워 먹기도 했다.

 

 다행이 이 숲은 그때만큼이나 가혹한 환경은 아니었다. 적당히 먹을 만한 풀도 보였고. 그리고 작은 동물의 기척도 느껴졌다.

 

 기사가 돼서 참으로 다행이다.

 

 “응? 아닌가?”

 

 라이나는 걷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아무렴 어때. 지금은 우선 해야 할 일만 생각하자.

 

 그녀는 숲속을 하염없이 걸었다.

 

 

 ***

 

 

 단번에 숲을 빠져나 오는 건 무리였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넒은 탓도 있고. 어린애가 된 그녀의 보폭이 좁은 것도 있었다.

 

 이동속도가 느리니 자연스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치명적으로 라이나 자신의 체력이 예상이상으로 약했다.

 

 “예전 같으면 삼일정도는 안자고 걸어도 끄떡없었는데.”

 

 지금은 고작 반나절 걸었는데도 기진맥진했다.

 

 애초에 완성된 성인 여기사의 체력과. 열두 살 어린애의 체력이 같을 리는 없지만.

 

 혹시나 하고 기대는 해봤는데 역시나 지금의 몸은 너무나도 약했다.

 

 “완벽한 어린애네…….”

 

 나무에 기대 앉아 쉬면서 라이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낙담하고 잇진 않았다.

 

 반쯤은 예상했다.

 

 ‘몸이야 다시 만들면 되니까.’

 

 비록 신체능력은 떨어졌다지만. 그녀가 지금까지 검을 휘두른 경험과 감까지 사라진건 아니었다. 다행히 출처는 알 수 없지만 검도 가지고 있다.

 

 걸으면서 몇 번이나 멧돼지. 심지어 곰도 마주친적이 있지만. 라이나는 제법 간단히 격퇴할 수 있었다.

 

 힘이 없으면 없는 대로 싸우는 요령이 있다.

 

 검이란 건 애초에 무식하게 근력으로 휘두르면 되는 게 아니다. 섬세하게 힘을 빼야할 때도 있고. 그저 무게에 맡기고 흘려야할 때도 있다.

 

 거기에 나름 달인이라 자부하는 그녀는 어린아이라도 검을 휘두를 요령쯤은 이미 꿰고 있다.

 

 물론 야생동물 상대할 때나 먹히는 이야기니. 지나치게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는 건 안 되지만.

 

 여차할 땐 비장의 수도 있다. 적어도 웬만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은 그녀가 곤란한일은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한 라이나는. 다시 머릿속을 비우고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 며칠을 더 걸아야 할지 모른다. 가능한 쓸데없는 생각을 해서 기운을 빼고 싶진 않았다.

 

 그런 라이나가 곤란한 상황에 직면한건. 한시간정도 걸었을 무렵이었다.

 

 “……어?”

 

 묘한 기척을 느끼고는 눈가를 찌푸렸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착각이아니라면 지금 희미한 피비린내가 느껴진 것 같았다.

 

 ‘……예전이라면 기척만으로 다 알 수 있었는데.’

 

 다소 답답함을 느끼며 라이나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뛰었다.

 

 그녀의 직감이 맞다면 아마 저곳에는…… 그녀는 둘고 있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자연스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소리가 들린 현장에 도착한 라이나는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몇 대의 마차가 있었다. 생긴 걸로 보아하니 행상인의 것 같았다.

 

 정보를 얻을 사람을 만나길 원했던 라이나에겐 둘도 없는 발견이나. 정작 라이나는 기척을 죽인 채 수풀에 몸을 숨겼다.

 

 다른 이유가 아닌 지금 저 마차는 습격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행상인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검을 빼들고 서로 등을 맞대고 자신과 마차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포위한 것은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괴한들. 아마 도적이 아닐까 싶다.

 

 제법 치안이 안정된 편인 제오란 왕국이나. 인적이 드물 길이나 숲에서는 행상인들이 도적에게 습격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분명 저 들도 이곳을 지나다가 미리 매복해있던 도적들에게 습격당한 것이다.

 

 도적도 문제지만 라이나는 도적들이 부리는 검은색 짐승들을 보며 경악했다.

 

 “저거…… 마물이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그리고 붉은색 눈. 전신이 검은 털로 뒤덮인 저 짐승은 마물이라 불리는 불길한 생물이다.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도적들은 마물을 부려 그 힘을 이용해 마차를 습격한 모양이다.

 

 “……곤란해 보이네.”

 

 라이나는 조용히 상황을 살폈다.

 

 저대로 행상인들이 도적을 퇴치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녀가 보기엔 어려울 것 같았다.

 

 행상인들이 고용한 호위병으로 보이는 남자는 이미 숨이 끊어진 채 피 웅덩이에 잠겨있다.

 

 아마 실력에 자신이 있는 용병을 고용했겠지만 마물 까진 당해내진 못했을 터.

 

 그럼 남은 행상인들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답은 부정적이다.

 

 그들도 나름 검술은 배웠겠지만 그래봐야 자기 몸을 간신히 지키는 수준.

 

 머릿수는 도적이 압도적으로 많은 건 아니나. 그들이 부리는 마물의 존재 때문에 무사히 이 위기를 벗어날 확률은 적었다.

 

 이런 인적이 드문 숲에서 습격당했다면 도적들은 분명히 저 행상인들을 몰살할 것이다. 괜히 살려 보내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다간 이후 왕국에서 토벌대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떤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마물을 부린다는 게 알려지면 분명 왕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들을 처단하러 할 것이다.

 

 라이나도 몇 번이고 도적을 토벌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해봤기에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알기 때문인지 행상인들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엿보였다.

 

 “……도와야겠네.”

 

 라이나는 저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비록 이런 꼴이나 그녀는 원래 기사다.

 

 위기에 처한 이들을 못보고 지날 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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