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분노는 언제나 길을 바꿔 놓는다. 분노는 방향을 잃게 만든다. 분노는 풍랑과 같다. 분노는 진실을 가린다. 분노는 끊임 없는 갈증이다. 분노는 역병이다. 분노는 복수의에너지이다. 분노는 죽음의 선봉장이다. 분노는 타는 나뭇가지 끝의 나뭇잎이다. 분노는 좀비바이러스이다. 분노는 가수지망생의 손에 들린 노래방마이크이다. 분노는 밟힌 찌그러진 빈캔이다. 분노는 군악대의 엇박자이다. 분노는 뉴턴의 사과와 아이슈타인의 상태성이론이다. 분노는 질주 하는 차량 안의 고장난 브레이크이다. 분노는 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혼돈이다. 혼돈 속의 블랙홀이다. 모든것이 빨려 간다. 흔적도 없이......아내 아무것도 없다.
분노는 우주와 우주의 충돌이다. 그 충돌 이후 남은 것은 무이다. 아무것도 없다.
평안하다. 이제서야 나는 평안하다.
아내의 노트 속에 쓰인 글귀이다.
영한은 아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글을 썼는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보여 주려고 할때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글귀 앞에서 아내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 속에 뭐가 있냐고? 이제서야 그것이 궁금 했다. 언제나 늦고야 만다.
영한은 아내의 노트를 보면서 아내의 글씨를 봤다. 시작은 동그랗고 끝은 뾰족한 아내의 글씨 이것이 아내의 글씨 였구나 그제서야 알았다. 그 역시 늦다.
아내의 유서속의 글씨 이제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아 하는 한 줄의 글귀. 그 글을 보면서 갈증이 났다. 더 더 당신의 죽음의 이유를 더더 알게 해달라고 갈구 했지만......그 글귀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 했던 것들이 아무것이 아닌 것이 되어 갔다. 모든 것이 특별 해지고 있었다. 서서히 멀어질 아내의 기억 점점 옅어질 아내의 체취 점점 식어갈 영한의 속의 아내의 온기
기억은 날카로운 톱니를 달고 영한을 재단했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12층의 아파트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낮이면 사람을 구분 할수 있겠지만 자정을 넘긴 시간에는경비실의 불빛도 조는 듯이 깜박거렸다.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아파트를 올려다 보더니 손가락으로 아파트 층수를 세는 듯 하더니 영한을 보는 듯 했다.
영한은 흠짓 놀라 뒤로 물러 섰다.
아내이다. 아니 아내가 아니다. 아니 나를 보는 것이 아니다. 나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제 볼일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아파트 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에대한 경계로 인한 걸지도 모른다.
여자는 한참을 올려다 보더니 아파트를 빠져 나갔다.
영한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에 별이 떠 있었다. 그 여자는 별을 세었을 것이다. 아파트 층수를 센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별을 손가락으로 세었을 것이다.
영한은 한 숨을 내어 쉬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지나갔다. 손가락 열개를 다 펼쳐도 헤아릴 수 없는 그런 수의 밤이었다. 손가락 열개의 갯수보다 더한 꿈을 꾸고도 다시 깨어 일어나 잠이 들 수 없는 그런 밤들이었다.
거의 매일을 12시가 넘으면 잠이 깨어 버리고 말았다. 중학교 3학년 생인 큰 딸 인비가 학원을 갔다 들어오는 시간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 닫히는 소리 꼭 두 소리중 하나에 잠이 깨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나와서 아이를 맞으면 왜 깼어 하고 신을 벗었다.
"그냥 잠이 안 오네."
"빨리 자. 나도 씻고 잘거야."
"학원은 어때?"
"어떻긴 똑같지."
"공부는 좀 할 만해?"
"공부? 뭐 그런 저럭."
사춘기 딸과 아빠의 대화이다. 아내라면 달랐겠지 아내라면 조금은 딸애를 귀찮게 했을 것이다. 그러다 싸움이 되기도 했다.
영한은 그래 하고 말을 하고 방으로 다시 돌아와 침대에 다시 누웠다.
잠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행여 잠이 오려나 싶어 아내가 천장에 붙여 놓은 야광 별과 달을 손가락으로 세었다.
그것을 세다 잠시 생각이 다른 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아파트 층수를 세든 별을 세든 무엇을 하던 그여자 어쩌면 아내 일지 모른다는 생각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피식 하고 웃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 여자가 아내라고 생각 하는가? 현실은 어디로 날아가 버리고 아내가 어디 잠시 여행이라고 간 것이라는 안락한 꿈에 젖었다. 그러고 나니 잠이 왔다.
꿈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빨리 돌아오라고 당신이 없으니까 내가 사는 꼴이 말이 아니라라고 아내에게 말을 했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왓다.
"무슨 일이세요?"
" 내일 퇴근할 때 들러서 반찬좀 가져 가라 싸 놨다."
"애들도 볼겸 어머니가 오시지."
'나는 그 집에 안 갈란다."
"왜요?"
"인성이 애미가 생각이 나서......"
꼭 살아 있을 것만 같다고 하는 어머니에게 화를 냈다. 영한 역시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런 말을 하는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그만 하세요."
"그냥 그래서......에구 사는게 뭐 그리 대수라고 참 허망하기도 하지."
"그러게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좋은 소리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였다. 있을 때 잘 하시지 그랬어요 하는 말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실은 영한이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래서 더 말을 하지 못 했다.
막내 인성이가 허겁지겁 들어와서 냉장고를 뒤졌다.
"배고파."
"알았어 손이라도 씻고와 뭐라도 해 줄게"
"아빠 빨리 빨리."
"그럼 라면이라도 끓여줘?"
"응 그거라도."
손을 씻고 주방 식탁에서 라면을 기다리던 인성이 물었다.
"아빠. 엄마는 왜 죽었을까?"
그 말에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고작 생각 해낸 다는 것 말이
"아파서......" 라는 말이었다.
"어디가?"
"마음이."
"엄마 마음이 어디가 고장이 났데?"
"응 엄마 마음에 수도꼭지가 있는데 파킹이 있이 고장이 나서 물이 줄줄 샜데."
영한도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는데 무슨 소리인지 알아 듣는건지 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도 이해를 할 것이다.
라면이 다 끓여 냄비 채 앞에 내 놓고 앞 접시를 놓고 나니 인성이 김치를 찾았다.
후루룩 후루룩 잘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