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영한의 앞으로 택배가 하나 배달이 되었다. 발신인은 아내였다. 택배 상자의 발신인 란에는 정한경이라고 쓰여 있었다. 수신인은 영한이었다.
수신인란에 아내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면 아내가 죽은 줄 모르고 잘 못 보냈다고 생각 할 수도 있었지만 그 택배는 정확히 영한을 향하고 있었다.
아내는 죽었다. 그런데 아내에게서 택배가 왔다. 발신인 란에는 전화번호도 주소도 없다. 어디에서나 쉬 볼 수 잇는 택배 상자를 영한은 내려다 보았다.
아내가 보낸 택배상자
영한의 사정을 아는 어떤 사람의 질 나쁜 장난일 가능성이 높다.
그 안에 뭐가 잇는지 알 수 없었다. 무게는 그리 무겁지 않고 흔들어 보니 내용물이 택배 상자에 부딪쳐서 탁탁 하는 소리가 났다. 폭탄이나 위험물 같진 않았다.
천국에서 온 택배일까? 영한은 피식하고 웃었다.
택배를 손으로 뜯었다. 두려움 마음이 들었음에도 영한은 상자를 급히 뜯고 있었다.
손에 가위가 들려 있지 않다는 것 그래서 길게 늘어진 투명 테이프를 쥐어 뜯으면서 평상시는 잘도 뜯어 지던 택배상자를 싼 테이프 역시 평범하지 않은 것이라는 착각 마저 들었다.
손으로 뜯다 입으로 가져 가면서 가위가 어디 있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영한은 가위를 찾아 나서지 않았다.
가위가 생각이 났을 때 테이프는 상자를 향한 질긴 미련을 버렸다.
그 안에 사진이 몇장 있었다.
여자의 사진
아내의 사진인가? 하고 노안이 시작 된 눈을 찌푸리며 그 안에 있는 여자의 면면을 살펴 봤다.
아니다.
아내라고 하기에는 다른 그러나 아니라고 하기에는 닮은 듯한 아내를 닮은 얼굴이 그 속에 있었다. 사진의 밑에 찍힌 노란색의 날짜를 보았다. 일주일 전의 것이었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냥 아내를 닮은 사람일뿐이다. 그래서 질나쁜 사람의 장난질에 놀아 나고 있는 것 뿐이다.
아내가 아니다.
뭔가 달라져서 아내가 아니라고 해도 아내가 아닐 것 같은 여자이지만 영한은 그 여자가 아내라고 믿고 싶었다.
아내가 죽지 않았다. 아내는 살아 있다. 아내의 시신을 보았으나 그것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 아내라는 증명은 명확히 아내의 지갑, 아내의 옷가지 ,아내의 신분증이다. 그것이 아내가 되었다. 정황이 아내라고 말을 해서 영한은 그 정황을 믿었다. 그래서 아내가 죽었다고 생각 했다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하나의 생명이 이세상에서 지워지는 증명이 그딴 것으로 단정이 가능하단 말인가?
더 집요한 물음이 있어야 했다. 언제나 처럼 무책임 했다. 한심스럽기 까지 했다.
DNA검사를 했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다고 영한은 스스로를 질타했다.
그 사진 속의 아내는 더 머리가 길고 더 검고 코가 더길고 눈이 더 컸으며 더 말랐다. 아내의 입꼬리는 내려 갔지만 사진 속의 여자의 입꼬리는 묘하게 올라가 있었고 입술이 두꺼웠다. 그래서 꼭 입을 내밀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많은 어딘가의 길에 서 있었다. 정면을 향해 의미 하게 웃고 있었다. 다른 사진들도 그때 찍은 다른 각도의 사진이었다.
아내를 닮은 여자는 아내처럼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아내의 미소였다. 아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 그 미소였다.
인비를 보면 아내가 보이듯 먼 친척이라고 해도 이상하게 닮은 사람들이 있다. 영한의 사정을 아는 어떤 친 인척의 나름의 배려 인걸까?
그래서 닮은 여자라도 보라고 보내 준 사진인 걸까? 그것이 위로라도 된다고 착각을 하고 한 짓일까? 아내를 닮은 여자를 보고 흔들리는 마음을 느끼면서 영한은 한참을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이런 것을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는 말을 강제로 주입 시켜 주려는 듯이 아내가 절대 아닌 사진 앞에서 영한은 무너졌다.
겨우 참고 있었다. 무너져 내리지 않을 려고 무심한 척 했다. 마음을 돌려 아내가 사라진 상황을 보지 않으려 했다.
영한의 속의 건조함을 담당하던 제습제가 한 순간 없어 진 것일까?
영한의 눈에서는 감정이라는 형태의 눈물이 터저 나왔다. 감정 없는 사람이라고 타인들에게서 질타를 받았던 그래서 아내를 외롭다고 느끼게 했던 영한의 고집이 사진 몇 장 앞에서 허물어 졌다.
사내 자식이왜 질질짜냐고 혼이 났던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인지 우는것이 죄를 짓는 것만 같았던 영한에게 눈물은 낯선 것이었다. 그 낯선 것이 영한을 훑고 갔다.
그 눈물은 영한의 영혼을 정화하는 정수기의 필터 같았다. 한참을 몸을 웅크리고 울었다. 그렇게 울고 나지 가슴을 누르고 있던 것 같은 갑갑함의 중량이 줄어 든 것 같았다.
아내는 죽은 것이 분명하나 영한은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것이 DNA검사를 하지 않았고 부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
사람들에게 말을 하면 미쳤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이성을 넘어선 그것을 인정 하면서도 혼자만 간직한 희망이었다.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0.000001%의 확률이 존재 할 수 있다.
영한은 아내의 친인척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어머니와 둘이서 친인척 없이 살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먼친척 일 수 있다. 먼친척이 아내를 닮았고 그 친척이 사진을 보냈다는 확률은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이 아내라고 하는 확률 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다.
하지만 영한은 아내는 죽고 없다는 절대적인 명제 보다 아내가 살아 있을 지도 모른다는 확률에 기대고 싶었다. 그 편이 훨씬 더 행복 한 것이니까 아내를 닮은 먼친척이 존재 하는 것을 인정 하는 순간 그것 역시 인정 해도 좋을 듯 했다.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사진을 보내준 사람 혹은 사진에 찍어 당신이 있어 제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살아 있는 당신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아내가 아니겠지만 아내가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미비한 희망을 준 그녀에게 어떤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영한은 핸드 폰을 열어서 아내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찍으 때 인쇄소의 사장이 준 명함 속의 전화 번호로 전화를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