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왜 그랬어?"
"뭐가?"
"내 사진 집에 보냈잖아."
"몰라."
최실장이 먼산을 보면서 대답을 했다.
창 밖으로 새 한마리가 날아 갔다. 까치나 까마귀는 아니었다.
이름 모를 새 였다.
도심 속의 새는 거대한 새장에 갇힌 것과 같다.
최실장을 그 새를 보는 듯 창을 보고 있었다. 이름 모를 새는 알 수 없는 소리로 울었다.
"돈 때문이야? 그 사람 한테 돈 뜯을려고?"
"뭐라는거야? 그 사람 한테 당신은 죽은 사람이야."
"그런데. 그렇게 해서 뭐가 득이 된다고! 그러니까 그냥 죽은 사람으로 놔 뒀어야지."
"그냥 몰라 나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숨을 쉬게 만들어 주고 싶다고 해야 하나? 그게 언제가 될 지 알 수 없지만 언 젠가는 돌아갈 수도 있다는 숨구명 말이야."
"나에게?"
"응 너에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어."
"알아."
"무슨 짓을 한 건 지나 알아?"
"그게 다 들통이 나게 만들어 버릴 거라고, 다 들통이 나면 우리는 끝이야. 그럼 아이들은? 아이들 한테는 살인자에 방탕한 여자의 자식으로 만들어 주는 꼴 밖에 더 돼?"
"돌아 가고 싶잖아. 아이들 한테......"
"그래 맞아. 돌아가고 싶어. 그런데 돌아간다고 해도 이전 처럼 살 수 없어. 이미 나는 살인자야. 그러니 아무런 의미도 없는 희망이니 뭐니 하는 소리는 그만 두라고......"
"자기는 수진이가 될 수 없어. 수진이는 죽었어. 내가 수진이를 죽게 했어."
"아니. 당신이 수진이를 죽이지 않았어. 내가 정한경을 죽였어. 그것 뿐이야."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니 행복할 자격도 없었다.
그날을 떠 올렸다.
들어가지 말라는 강에는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팻말에 분명히 써 있다.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저수지가 아니라고......그 곳에는 악어가 산다고
목이 말랐다. 그래서 그저 잠시 목이 말라 목만 축이려 했다. 운이 좋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운이 아니었다. 한경의 선택이었다.
지독하고 무료하고 지긋 지긋한 곳이라고 생각 했던 그 곳에서 벗어 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노라 선택 한것이었다.
한 남자를 만났다.
어떻게 되도 좋고 누구를 만나도 좋다고 그래서 벗어 날 수만 있다면 무료함에서 끌어 내줄 사람 이면 누구라도 상관 없다고......
그 사람이 최실장, 최재희 였다.
다들 그렇게 불렀다. 이름은 어디가고 다들 그렇게 불렀다. 그래서 한경도 그 사람을 그렇게 불렀다. 최실장
대학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모임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씩 사람들이 가고 한 친구만 남았다.
지수 였다.
한경과 영한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한경의 대학 동창
둘만 남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오랜 만의 만남이었다. 전에는 자주 어울렸는데 애들 한테 매달리니 처지가 같지 않아 못 만나게 되었다.
"혼자 사니 좋지?"
한경이 말을 했다.
"좋긴......뭐 외롭고. 난 네가 부러워."
"내가 뭘?"
"안정적이 잖아. 영한 같은 남자 가정적이고 좋잖아."
"좋으면 네가 살아 봐라."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 네가 가져라 나는 싫으니까"
" 그 말 정말이야?"
"정말이야. 나라는 존재 그냥 집에서 식모야. 결혼이라는게 그렇다. 우리 나라에선 행복 하고 싶어서 결혼 했는데 행복은커녕 못 헤어져서 사는게 결혼이야. 내가 죽든 그 인간이 죽든 양단간의 결정을 내야지. 조만간 둘 중 하나는 죽지 싶어."
"무슨 말이 그래?
"나는 세상에서 네년이 제일 부럽다."
"웃기네. 너도 내가 돼서 살아 봐라. 우리나라에서 결혼하지 않고 나이만 먹은 여자 어디 모자라는 팔푼이로 봐. 그래서 나는 점점 남자가 되어가고 있고.......나두 누군가 한테 기대면서 살고 싶어."
" 너도 내 입장 안 되고 겉만 봐서 그런거야. 그 기대서 산다는거 그 만큼의 댓가라는 것이 있는 거야. 허투루 생각 하지마."
"모르겠다 뭐가 정답 인지?"
잠시 대화가 끊겼다.
한경이 지수에게 화제를 전환 할 겸 물었다.
"너는 애인 없냐?"
"애인? 애인이야 생겼다 없어 졌다 그러는거지."
"그런데 너는 왜 결혼 안해?"
"글쎄."
"사랑하는 사람 없었어?"
"없긴. 있었지."
"그런데?"
"그런데 그 사람 나 두고 딴 사람이랑 결혼 했어."
"정말 좋아 했나 보다."
"그런가? 뭔 악연인가 싶기도 하고 그 사람 결혼 했는데 자꾸 그 사람 근처를 맴돌게 되네."
"누군데?"
"알아서 뭐 하게?"
"천하의 현지수가 사랑하는 유부남 때문에 결혼도 안 하고 산다? 내가 아는 현지수는 말이야 강하고 당당해서 뭐든 원하면 가지는 그런 사람 아니야? 너 도 늙었나?"
"야!"
"비밀로 할테니까 나 한테만 말해봐. 그 사람 누군데? 정말 궁금하다. 내가 아는 사람?"
"아니야."
"그럼 누군데? 누구야?"
"내가 말 했잖아. 너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참 슬프고도 안쓰럽다. 너 한테도 약점이라는 것이 존재 하다니. 조금은 고소하기도 하고."
지수에게는 아픈 부분인 것 같아 한경은 그만 하기로 하고 이차를 가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 섰다.
밤 공기는 겨울로 가고 있었지만 춥지는 않았다. 적당히 오른 취기에 딱 맞는 선선함이었다.
이차로 들어온 곳은 소주 방이었다. 안주가 저렴하고 친근 한 곳
왠지 그런 곳이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둘이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하고 몇 잔의 소주를 나누고 매운 닭발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지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잠시만.....응. 그래 친구. 한잔 하는 중. 모임 끝나고 응 친한 친구 좀 그런데......알았어. 잠시만 물어 보고......"
지수가 전화를 끊지 않고 한경에게 물었다.
"친구인데 같이 하자는데, 너 괜찮으면 오라고 하고."
"뭐하는 친군데? 남자?"
"응 남자. 그런데 그냥 아는 사람."
"그냥 어떻게 아는 사람? 아까 말한 네가 좋아 한다던....."
한경이 화를 내면서 말을 했다.
"아니라고 그냥 친구야. 친구."
"난 괜찮아."
"너 들어가야 하지 않아.? 너무 늦지 않았어?"
"됐어! 나도 시간 제한 안 받고 놀고 싶어 그래서 벼르고 별러서 나왔어 애들 아빠 한테도 늦을거라고 기다리지도 말라고 해 놨어. 괜찮아."
한경은 손사래를 쳤다.
지수의 친구인 최실장이 지수를 따라 들어와 꾸벅 하고 인사를 했다.
"최재희 입니다."
"아네"
"이쪽은 내 초등학교 동창 이자 대학 동창인 정한경."
"네 정한경 입니다."
"술 많이 드셨습니까?"
최실장이 물었다.
"아니오 일차에서 좀 먹고 다 깨고 이차에서 소주 몇 잔 마셨어요."
"저도 집에서 혼술 하다가 이친구 뭐하나 싶어 연락 했는데 잘 됐네요."
"그렇네요."
"뭐 이렇게 한잔 하는거죠 뭐."
"네."
최실장은 안주와 소주를 더 시키고 한경의 잔에 술을 부어 주었다. 한경은 잘도 받아 먹었다.
26.
한경의 눈이 풀어 졌다. 술에 취했다. 언제나 호기롭게 더 마실수 있다고 말을 하지만 그럴 때면 항상 술에 취해서 비클거리고 울었다. 지수는 그런 한경의 술버릇이 싫었다.
"정말 괜찮겠어? 최실장 얘좀 부탁해. 나는 집에 일이 있어서 이제 일어나야 하는데 얘가 일어날 생각이 없네."
가야 한다고 일어서니 최실장이 그럼 우리도 일어서죠 하고 말을 할때
"아니야 온지도 얼마 안 됐잖아."
한경이 안 간다고 할 것을 지수는 알았다. 어릴 적 부터 술이 들어가면 하는 술 주사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애랑 조금만 상대 해주고 좀 택시좀 태워줘, 미안하네 갑자기 일어서게 되어서......"
"그래 걱정 하지마. 내가 데려다 줄게."
"너 정말 안 갈거야?"
간다고 나설까봐 작은 소리로 말을 했다.
"안갈거야. 더 마실거야. 얼마만의 자유 인데 벌써 들어가라니!"
"알았다. 알아서 해라 한두 살 먹은 어린 애도 아니고......"
지수는 핸드백을 메고 술집을 나오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전화를 귀에 대었다.
전화가 와서 급히 떠나는 것 과 같이 보이기 위해서
억지스런 장치 같은 것은 필요가 없었다. 둘의 눈빛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지수는 택시를 기다리면서 둘의 눈빛이 오고 간 것을 떠 올렸다.
지수는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다만 우연이 도왔을 뿐이었다.
택시가 멀리서 오는 것이 보였다. 지수는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 새벽 2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집으로 갈까 하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혹시 들어오지 않 는 한경을 기다릴 영한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미끼를 던져 놨으니 둘이 알아서 할 일만 남았다. 물면 다행인 거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그것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없어.
혼자 사는 집이다. 아무도 없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5년 익숙해 질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그 곳에는 엄마의 온기와 엄마가 없다는 것을 자각한 후의 한기가 공존 하는곳이다. 그 두가지의 온도 차 때문에 지수는 현관에 잠시 서서 혼잣말을 한다.
"엄마는 없다. 이제는 나 혼자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엄마가 없을 때는 없었다. 엄마는 언제나 지수의 뒤에서 어떤 일이든 다 해 주었다.
그전에는 알 수 없었던 당연한것들 늘 다려져 있던 셔츠 늘 발려져 숟갈 위에 얹어 진 닭고기 생선, 뼈라는것이 존재 하기나 할까 목에 생선뼈가 걸렸다는 사람들을 이해 하지 못 했던 순간들 세상 제일 만만 했던 엄마의 존재를 향한 투정들 그것이 엄마 자체라는 것을 지수는 알 지 못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6개월 정도에 찾아온 부재의 자각 , 그렇게도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는데 그 잔소리가 가장 그리운 소리가 되었다.
지수는 외롭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결혼의 의미도 알게 되었다. 그저 능력만 있으면 혼자 살아도 되고 남편이 뭐가 필요 하고 아이가 뭐가 필요 한 가? 즐거운 자유연애주의자로 즐기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 해 왔다.
엄마의 나이든 딸을 향해 한숨이 늘어 갈때도 지수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이렇게 되고 나니 엄마가 돌아가신 이유가 외롭게 만들어서 결혼이라는것을 하고 싶게 만들고 싶어던 건가 하며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는 그렇게도 혼잣말을 잘 했다.
그걸 두고
"무슨 혼잣 말을 그렇게 해? 노망 났어?"
하고 말을 했다.
엄마는 역정을 내기 보다는 내가 노망 나기 전에 네가 시집을 가야 하는데 내가 노망이 나기 전에 죽어야 하는데 하고 하소연 하듯이 말을 했다.
"이 할매가 노망이 났나? 왜 죽는 타령을 하고 그래"
하고 소리를 지르면 엄마는 애써 말 싸움을 피해갔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지인들이 왔다. 인척들도 왔다
지수는 빈소를 지키면서 많은 사람들의 많은 말을 들었다. 그들은 제 마음대로 생각 하고 제 마음대로 말을 했다.
나이가 있으니 호상이다. 엄마 모시고 사느라 고생 했다. 네 엄마 저렇게 가셨으나 망정이지 병상에라도 누웠으면 어쩔뻔 했니? 네 엄마 때문에 네가 이 나이가 되도록 시잡도 못 가고......
지수는 그들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엄마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기 싫어 하지 않은 거라고 목구멍에서 넘실거리는 말을 꾹꾹 밀어 넣었다. 대꾸할 가치도 없었다.
제 마음대로 지껄이는 그 입들을 쳐 버리고 싶었다.
그때 시작이 되었다.
지독한 외로움은......외로워서 몸이 덜덜 떨렸다.
빈소를 찾아와서 자기들은 할짓은 하고 산다는 증명을 하고 싶어 하는 그들은 상대를 향해 하는 말들이 어떤 작용을 하는 지도 모르고 나불거리고 있었다.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친한 지인이라고 해도 그때 애인이라고 하던 놈도 지수를 차가운 행성으로 지구에서 멀리 밀어 내고 있었다.
잠시 빈소를 비워 놓고 밖에 나와 담배를 하나 물었다. 원래 담배는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차오르는 서늘함에 그거라도 해야지 싶었다. 시간은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대충 올 문상객은 다 온 것 같았다.
그때 계단 아래에서 영한이 올라오고 있었다. 지수는 자리에서 벌떡 하고 일어섰다. 담배를 바닥에 비벼껐다.
지수를 발견한 영한이 벌개진 얼굴로 말을 했다.
"미안, 미안 금방 소식 들었어 술먹다가 왔어. 정말 미안해."
영한이 지수를 덥썩하고 안아 주었다.
지수는 갑작스런 영한의 행동에 그와 밀착된 몸의 사이에 두주먹을 밀어 넣었다. 영한이 마치 반항 하지 말라다는 듯이 지수의 손은 빼 가슴과 가슴이 맞닿도록 안아 주었다. 그 가슴이 따뜻했다.
그때 알았다. 위로는 아무 말이 필요 없는 것이라는것을
그냥 꽉 하고 네 마음 알아 하고 안아 주는 것 지수는 그것이 필요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항 하던 두 팔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그가 지수를 더 꽉 안도록 내버려 두었다.
지수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지수는 영한의 가슴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의 셔츠가 젖었다는것을 알고 그의 가슴을 손을 닦으면서 말을 했다.
"밥은 먹었니?"
"밥은 나중에 일단 어머니 한테 인사드리고 이런 꼴로 와서 미안한데 그 소식 듣고 가만있을 수 없어서 그냥 왔어. 용서해라."
"아니야, 아니야 이렇게 달려 와준 건 만도 얼마나 고마운데"
그의 가슴이 따뜻했다.
지수의 뺨에 가슴에 손에 남아 잇는 그의 온기를 잊을 수 없었다.
앞서 가는 영한의 등을 보면서 저 가슴에 다시 한 번더 안고고 싶다고 생각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