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월영지의
작가 : 참마도
작품등록일 : 20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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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지의 1
작성일 : 16-05-16     조회 : 489     추천 : 1     분량 : 6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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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봐 온교 이제 그만 가봐야 되지 않겠나?”

 “그러게 말이네. 어서 가세나. 다들 기다릴 터이니......”

 축사를 손보던 두사람이 허리를 주욱 펴며 신형을 곧추 세웠다.

 꽤나 오래 허리를 숙이고 있었던 듯 얼굴가득 인상을 쓰며 연신 허리만 돌려대었다.

 “이런 제길.....나이가 들었나? 허리가 왜이래 고거 좀 일했다고 뻑적지근하네...”

 “쯧, 그러게 제수씨하고 작작놀아! 어젯밤에도 무지하게 시끄럽더만....”

 “킬킬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라. 요좀 네놈이 시원치 않은가 보지?”

 “이놈아! 내가 시원치 않기는 왜 시원치 않아! 여편네가 밤마다 보채는 바람에 힘들어 죽겠구만....”

 걸쭉한 농짓거리와 함께 두사람은 웃었다. 워낙에 시커먼 얼굴이라 솔직히 웃음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은 웃음이었다. 한데 왠지 모르게 딱딱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에후....오늘은 그만 가자고. 이러다 늦겠어.”

 “벌써 그렇게 되었구만. 그러세. 어차피 일손도 안잡히는구만.”

 두사람은 말과 함께 작업도구들을 대충 챙겼다. 그리고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헌데 오늘은 결론이 나올까 모르겠네. 맨날 한말 또하구 또하더니 오늘은 좀 나을려나?”

 “촌장님이라고 별수가 있나? 시간도 별로 없으니 이젠 어쩔 수 없겠지뭐....”

 두런두런 낮은 목소리를 내던 두사람은 이윽고 어느 건물의 앞에 도달했다.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그곳은 이층건물이었는데 바로 촌장의 집이었다.

 마을에 관련된 모든 대소사를 논의 하는 곳이기도 했는데 평소엔 참으로 시끄러운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새로 들어섰는데도 말이다.

 아니, 애당초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것이 옳았다. 모두들 저 위쪽의 태사의쪽에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그곳엔 한 노인이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고 그를 사이에 둔채 열띤 목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촌장님! 이러다간 우리마을은 끝장입니다. 다음 교역허가를 받지 못하면 어찌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 대관절 왜이러십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어차피 그 아이는 돌봐줄 사람 하나 없는 처지입니다. 그냥 보내면 되는 것을 뭘그리 고민합니까?”

 “..............”

 마을사람들을 답답한 듯 크게 소리쳤지만 촌장이라 불린노인은 아무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상당한 고민을 하고 있는 듯이 보였는데 그때문인지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이미 다른 아이들은 다 준비된 상태입니다. 어떻게든 버텨서 될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나라에서 국법으로 정해진일을 우리가 뒤집을수도 없습니다.”

 “더구나 내일이면 영아사(嬰兒士)가 올것입니다. 그땐 모든게 다 늦거늘 정말 이렇게 넋 놓고 있으실 겁니까 촌장님?”

 마을 사람들이 다시금 소리치자 촌장은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주민들을 바라보았다.

 근 삼십여명쯤 될까? 그를 둘러싼 모두가 촌장에게 최후의 결정을 묻는 듯 했다.

 이정도면 마을의 전부라 해도 틀림이 없었다. 물론 그리 많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숫자라면 이 근방 아니, 광남서로(지금의 사천지방)를 통털어 봐도 그다지 작은 규모는 아닐터였다. 그것은 그들이 한족이 아닌 순수하게 묘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묘족을 비롯한 이민족은 대단위의 부락민으로서 같이 살 수가 없었다.

 원래 기질이 공동생활 자체가 쉽지 않기도 했지만 그것은 새로 새워진 송이라는 나라의 정책이기도 했다. 한족을 제외한 모든 타 민족들은 완전한 공동체를 성립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각 로(路)에 산재하는 수많은 현의 현령들은 수시로 이런 이민족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

 이렇듯 한족이 아닌 타민족에게 송이란 나라는 가혹할 만큼 강한 제제를 가하고 있던 것이다.

 솔직히 오늘 마을사람들이 이렇듯 모여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모여 있었다.

 “촌장님, 그 누구도 선학동(先學童)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촌장의 미간이 더욱더 좁혀졌다. 모든 것은 이 선학동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선학동이란 발전된 신문명을 이민족의 아이들부터 강제로 배우도록 한 제도였다. 먼저 신문명을 배우고 익힌다는 것이 본래의 취지이나 그 본뜻은 전혀 달랐다.

 본디 송의 유화정책(宥和政策)중의 하나로서 자연스럽게 한족의 우월성을 보여주고 상대적으로 소수민족들에게 열등감을 심어 주는 것이 목표였다.

 혹자는 뜻이 나쁘지는 않다고 하겠으나 그건 이 제도가 시작된 무렵에나 해당되는 이야기, 이제 근 십여년이 흐른 지금 선학동제도는 그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 했다.

 모집된 아이들은 제대로 배우긴 커녕 이곳 저곳으로 흩어져 군역과도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즉 노예나 다름없기에 아이들을 내어 주어야 하는 소수민족들에게 있어서는 죽기보다 싫은일이었다.

 당연한 것이 과연 누가 자식을 한족의 노예로 내놓겠는가?

 더구나 선학동으로 선발되어 간 아이들중 상당수는 거의 돌아오지도 못한다.

 대부분 실종처리되었고 돌아온다 해도 사람구실 못하게 되어 버리니 기피현상은 더더욱 심화되어만 갔다.

 이에 보내는 쪽에서도 요령이 생겼는데 선학동이 될 아이들은 어딘가에서 데려오게 되었다.

 어디서 주워온 아이, 혹은 기근에 부모를 잃고 살아갈 길이 막막한 아이들은 데려와 대신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마을도 그런식으로 대처를 하려하고 있었다.

 “한명이 모자랍니다. 촌장님, 마을사람들이 백방으로 노력해 네명은 맞추었습니다. 허나 더 이상의 아이를 모을수가 없어요!”

 “네 그렇습니다. 촌장님, 이젠 그 아이라도 보내야 합니다. 아니면 누가 가겠습니까?”

 “맞습니다. 촌장님 아무리 그 아이를 아끼신다고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수 없지 않습니까? 아니 그렇다고 촌장님의 손자를 보낼 것은 아니지 않습......”

 누군가 외친소리에 맞장구 치려던 사람이 흠칫하며 입을 닫았다.

 아무래도 해서는 안될이야기가 나온 듯 해서 였다.

 역시나 사람들의 눈이 사납게 변해 있었다. 사내의 경솔함을 탓하는 것이었는데 그때였다.

 촌장의 늙수구레한 음성이 사람들의 귓가에 들려왔다.

 “가서 ......우아(旴兒)를 데려오시게나.....”

 “.............”

 힘들게 입을 여는 촌장의 모습에 사람들은 굳은 얼굴로 일제히 그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결국 촌장은 결정을 한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의 신형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텅빈 의사청 안에서 촌장은 묵묵히 고개를 떨구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사라질때까지 말이다. 그후로도 꽤 오랫동안 촌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미안해 연우야......”

 “미안해 할것이 뭐가 있어? 그저 그렇게 된 것 뿐인데, 게다가 잘되었다. 나도 이젠 마을사람들 눈치보며 여기 있기 좀 곤란했는데 그냥 이렇게 해결되니 마음이라도 편하다.”

 고개를 푹 숙인 소년의 앞에서 또다른 한 소년이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갓 열 서너살정도 되었을까? 허나 소년의 얼굴에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여유로움 같은 것이 흘러 나왔다.

 두 아이가 있는 곳은 작은 움막안이었다. 사방으로 다 해봤자 반장이 조금 안되는 협소한 곳이었다.

 그나마 몇몇 가재도구로 인해 더욱 좁아진 실내에 두 소년을 끼어있듯이 앉아 있었다.

 그렇게 무릎을 감싸쥐며 시선을 밑으로 내린채 두 소년은 이야기 하고 있었다.

 “원래 내가 가야 하는 것인데 네가 가지 그렇지. 왠지 난 마음이 편치가 않다......더구나 그 길은.....”

 고개를 숙인 소년은 계속 입을 열면서 침울한 얼굴을 만들었다.

 소년, 촌장의 손자인 자신을 대신해 신학동으로 가야하는 친구 서연우(徐延旴)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형식상으로야 네가 가는 것이 맞겠지. 허나 그런식으로 따진다면 곤란한 일이 벌어져.”

 “......”

 “저 대장일을 하시는 관씨네 아들도 가야하고 마을에서 글을 가르쳐 주는 송선생님네 아들도 가야돼.”

 “......”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그분들도 모두 다른 아이들을 양자로 들인 것 아니냐? 나또한 마찬가지야.”

 “......”

 “영음(映陰)이 네가 죄책감 가질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영음이라 불린 소년은 그제서야 또랑한 눈을 들어 어른스럽게 이야기하는 연우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비친 연우의 모습은 자신과는 너무도 달라 보였다.

 연우는 키도 중키에 얼굴도 그리 잘생긴 편이 아니었다.

 까맣게 때묻은 옷을 언제나 입고 다녔었고 사람들과 대화도 잘 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저 조용한 아이, 하지만 그 안에 깃든 총기는 남달랐다.

 촌장인 자신의 할아버지가 책을 가지고 오면 그는 그 책을 들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이곳으로 찾아와 연우에게 책을 보여주었다.

 연우는 그냥 빙긋 웃으며 그 책을 받아주었고 적어도 일주일이면 다 보고 돌려 주었다.

 그는 그 책을 모두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원래 묘족은 글자가 없었다. 서로가 의사소통하는데 있어 말로서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묘족의 특성상 거대 군락으로 생활을 하지 않기에 자연스럽게 성립된 일이었다.

 따라서 그가 한족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마을에서도 제대로 읽는 사람은 아마도 글을 가르쳐주는 송선생님이나 가능할 일일 터인데 여기 연우는 한어를 아주 유창하게 할줄 알았다.

 이제 열서너살 먹은 아이가 홀로 글을 깨우쳤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었다.

 “연우야 차라리 할아버지께 부탁해서 과거를 볼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자.”

 “음?”

 “어떻게 하든 한사람을 구해서 보내고 넌 우리집으로 와서 공부하면 되잖아?”

 “영음아...”

  “그래서 나이가 차면 과거를 보라고. 분명 우리같은 묘족도 과거를 볼수가 있잖아?”

 얼굴 가득 인상을 쓰며 영음은 연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딴에는 그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해 한 말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연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잘 알잖아, 난 글을 읽을 줄은 알아도 쓰는건 불가능해, 그런놈이 무슨 과거냐? 게다가 난.........관직은 생각도 안하고 있다.”

 왠지 쓸쓸한 얼굴을 지으며 연우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그 모습에 영음은 다시 침울한 얼굴이 되었다.

 정말 옆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을 보면 문명 글자는 아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연우는 글씨를 못썼다.

 그것도 남아 알아보게 힘들게 쓰는 것이 아니라 아예 손조차 대지 못할 정도였다.

 마치 풍끼가 있는 노인을 보듯 덜덜 떨다가 한획도 긋지 못하는 것이 바로 연우였다.

 “그런 일을 그만이야기하고 영음이 너 이제 돌아가 봐야지 꽤 날이 어두워....”

 “응?....어...그래 알았다.”

 “촌장님께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너희집으로 간다고 말씀드려라. 그래도 준비를 하긴 해야지.....”

 “그래.....알았다. 그럼 내일 보자.....”

 영음은 못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 그렇게 머뭇거리다 결국 움막을 나섰다.

 연우는 방에 앉은채 조용히 웃음짓고 있었다. 영음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그제서야 본심이 담긴 얼굴이 나왔다. 잔뜩 굳어진 표정이 말이다. 그라고 마음이 편할 리가 없는 것이다.

 아직 어린아이이기에 마음속에 드는 생각은 모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전부였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다른사람도 아니고 친구 대신 가는 길이다. 이미 분에 넘치는 보살핌을 받아왔던 그였다.

 그가 살던 마을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모님, 일가친척 모두가 다 죽은지 오래였다.

 그런 연우를 받아 지금껏 키워준 사람이 이 마을의 촌장이었다. 솔직히 이유는 모른다.

 아니, 이렇게 선학동을 위해 그랬을 지도 몰랐다. 다분히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마을에 더 남아 있게 된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으니 말이다.

 마을이 모두 피와 죽음으로 덮인 날, 그는 꿈꾸는 것을 버렸다.

 이곳에 남아 있다 해서 그것이 다시 가능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떠나야 할 것이라면 이런 모양도 좋았다. 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주섬주섬 땅에 폈다.

 그것은 비어있는 죽간이었다. 이어 불가에 있더 숯하나를 집어들더니 죽간위로 올렸다.

 그리고는 마치 붓을 잡듯 살짝 쥐더니 죽간위에 얹었다. 뭔가 글을 남기려는 듯 했다 한데.....

 “......큭...”

 헌데 연우의 표정이 좀 이상해졌다. 아이답지 않게 굵은 땀을 흘리더니 손을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던 것이다.

 맨처음 숯으로 찍은 죽간위에서 단 일촌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죽을 듯이 노려볼 뿐이었다.

 파각....

 작은 소리가 나더니 연우의 손에 쥐어졌던 숯이 바스러진다. 너무 힘을 준 것이었다.

 “하아....역시 안되는건가......”

 연우는 작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글자 하나 남기지 못한다니....

 고맙다는 말 한마디, 외롭다는 의사표현 하나 남지기 못하는 신세인 것이다.

 그는 눈을 떠 움막의 지붕사이를 보았다. 문득 들어오는 밝은 달빛에 온 시야가 환하게 트였다.

 “언제나 내 곁에 있는건.... 너뿐이구나....”

 마치 넋나간 사람처럼 연우는 그렇게 말간 달빛에 시선을 고정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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