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라이라
작가 : 너굴토끼
작품등록일 : 20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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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 명의 소환자 (2)
작성일 : 20-09-22     조회 : 359     추천 : 0     분량 : 5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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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이 맞닿았다.

  아쿠아마린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려 사라지고 생겨나기를 반복했다.

  담청색의 깊은 눈동자와 아쿠아마린 눈동자가 서로 마주쳤다.

  담청색의 눈을 가진 소년,

  담청색에 윤기가 흐르는 긴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살짝 흩날렸다 가라앉았다.

  휘둥그레진 소년의 눈동자, 입술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미소 짓고 있었다.

 

 “응답했어! 역시 노력하면 된다니까?”

 

  운디네와 마찬가지로 겨우 9살 남짓 밖에 되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던 소년이 말했다.

  맞잡은 두 손은 자신의 손처럼 어린아이 같았고, 얼굴 또한 순진하고 장난기 가득한 어린 소년의 얼굴이었다.

  소년은 담청색의 깊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운디네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말로만 전해 듣던 엘라임의 모습이 생각보다 어려보이는 게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린 모습이네, 엘라임.”

 「네?」

 “우와! 목소리도 되게 아이 같다! 어쨌든 만나서 반가워 엘라임!”

 

  소년은 운디네의 두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무척 반가운 듯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소년을 바라보고 있던 운디네는 소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음을 알고 당황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소년은 그 미소의 의미를 잘못 받아들이고 있었다.

 

 “엘라임, 그 미소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거지?”

 「네?」

  “나 아직 태어난 지 100년 밖에 안 된 헤츨링이지만 나와 계약해줘.”

 「아니, 저, 저는…….」

 “내 이름은 아쿠아야! 엘라임과 계약한 ‘마린’의 아이고.”

 

  자신을 아쿠아라 소개한 소년은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으로 운디네를 바라보고 있았다.

  그러나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운디네는 살며시 아쿠아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뺐다.

  운디네의 행동에 아쿠아 역시 당황하기 시작했다.

  곧 그는 시무룩해졌다.

  마치 맘에 든 장난감을 손에 넣지 못한 소년의 얼굴로 한숨을 푹 쉰 아쿠아는 슬프고 실망한 눈으로 운디네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아직 어려서……계약할 수 없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럼 왜 계약할 수 없다는 거야, 엘라임. 나랑 계약할 생각이 없었으면 소환에 왜 응답한 거야, 말해줘, 엘라임!”

 

  많이 실망했는지 폭풍같이 질문을 토하는 아쿠아의 모습에 운디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전 엘라임이 아니에요.」

 

  운디네의 말에 아쿠아는 의아한 듯 다시 말했다.

 

 “엘라임이 아니라니? 이건 분명히 엘라임의 기운인데 엘라임이 아니라니 무슨 소리야?”

 

  아쿠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한 번 운디네의 손을 마주잡았다.

  분명히 엘라임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도 엄청난 힘이.

  그런데 한 편으론 엘라임의 기운뿐만이 아니라 어딘가 많이 느껴본 정령의 기운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것은 분명히 물의 하급정령 운디네의 기운이었다.

  엘라임의 기운과 운디네의 기운이 뒤섞이자, 아쿠아는 어디서도 느껴본 적이 없는 정령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마주잡았던 두 손을 놓은 아쿠아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운디네에게 말했다.

 

 “누구야, 너.”

 「저는…….」

 “분명 엘라임인데, 엘라임이 아닌 기운도 가지고 있어. 누구야, 넌?”

 

  아쿠아의 물음에 운디네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바세리나 대륙의 라이라 숲에 숨어 있는 아쿠아마린 호수에 살고 있는 라이라의 운디네라고 해요.」

 

  아쿠아는 놀란 얼굴로 운디네를 바라보았다.

  그가 놀란 이유는 하급정령인 운디네가 엘라임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디네가 엘라임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니! 역사상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눈 앞에 그러한 존재가 있었다.

  당연히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아쿠아가 갑자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엘라임이라 믿었던 정령이 사실 엘라임이 아니라 운디네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확연히 실망한 아쿠아의 표정을 읽은 운디네는 자신이 엘라임이 아닌데 응답해서 미안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운디네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아쿠아의 담청색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미안해요. 어머니가 아닌데 소환에 응답을 해서.」

 

  아쿠아는 운디네의 손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정령왕을 제외하고 모든 정령은 드래곤을 무서워했다.

  드래곤은 일정 나이가 지나면 아무런 조건 없이 정령왕과 계약할 수 있는 종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령왕을 제외하고 모든 정령들은 드래곤을 무서워했다.

  그런데 하급정령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다니?

 

 “지, 지금 뭐하는 거야?”

 「아. 미, 미안해요.」

 

  운디네는 아쿠아의 질문에 그의 머리에서 황급히 손을 뗐다.

  아쿠아는 자신의 머리에서 운디네의 손길이 떨어지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손길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포근하고 편안했다.

  블루 드래곤은 물에서 축복을 받은 존재였다.

  운디네의 손길이 포근하고 편안하다 느낀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쿠아는 자신의 머리에서 떨어진 운디네의 손을 황급히 잡아 다시 자신의 머리로 가져갔다.

 

 「아.」

 “다시 쓰다듬어 줘.”

 「기분…나쁜 거 아니었어요?」

 “아니야, 포근해. 그러니까 다시 쓰다듬어 줘.”

 

  운디네는 아쿠아의 말에 잠시 손을 멈칫했지만 곧 그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어주었다.

  아쿠아는 그녀의 손길에 자신도 모르게 헤헤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에 운디네 또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보기 좋게 얼굴에 홍조가 생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쿠아는 잔잔하지만 매서운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등에서부터 오싹함을 느꼈다.

 

 “누구야, 이 분노는.”

 

  오싹한 분노에 아쿠아는 운디네를 품에 감싸며 그녀를 보호했다.

  갑작스런 포옹에 당황한 운디네가 아쿠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깊고 어두운 바다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누가 그에게 분노하는가,

  헤츨링이라고 하지만 그도 엄연한 드래곤.

  운디네는 곧 잔잔한 분노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아쿠아의 레어 중앙에 물기둥 하나가 생겨났다.

  물기둥에서 잔잔한 빛줄기가 퍼져 나오더니 곧 인간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과 분노를 머금고 있는 푸른 눈동자가 아쿠아를 바라보았다.

  엘라임, 운디네가 보고 싶어 하던 어머니 엘라임이었다.

  매서운 분노의 기운이 아쿠아를 향했다.

  운디네는 분노의 기운에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어머니?」

 

  매서운 분노의 기운에 짓눌린 운디네는 살며시 엘라임을 불러보았다.

  운디네의 목소리에 그녀의 분노가 금방 수그러들었다.

  엘라임은 운디네를 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쿠아는 처음 보는 엘라임의 미소에 놀란 듯 운디네와 엘라임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나의 아이. ‘라이라’의 운디네야. 라이라의 호수에서 너의 기운이 순간 사라져 걱정 했다.”

 

  엘라임은 운디네에게 그렇게 말하곤 아쿠아를 바라보았다.

  아니, 쳐다보았다라고 하는 것이 더 옳았다.

  자신의 아이를 가로챘다는 듯, 그녀는 그렇게 아쿠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매서운 분노가 서서히 아쿠아를 향했다.

  태어난 지 100년 밖에 되지 않은 헤츨링이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버거운 분노였다.

  아쿠아의 몸이 덜덜덜 떨렸다.

  분노의 기운은 곧 엘라임의 목소리를 타고 나왔다.

 

 “호수에서 사라질 리 없는 ‘라이라’의 기운이 사라져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군. 블루드래곤 ‘마린’의 아이 아쿠아여.”

 “엘라임…이겠지, 네가. 너를 불렀는데 응답한 건 너의 기운을 가진 운디네였어.”

 “……그래서.”

 “어째서 운디네가 너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어?”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엘라임…….”

 

  운디네는 냉랭한 엘라임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니, 그녀가 냉랭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황녀였을 시절에 읽었던 정령에 관한 책에 대부분의 정령왕들은 굉장히 냉랭하고 잔혹하며 무심하다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 번도 운디네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무척 포근하고 따스하며 자애로운 모습만을 보여주었는데 아쿠아에게 보이는 행동을 보며 운디네는 두려움에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운디네의 고동이 아쿠아에게도 전해졌다.

  이 작은 운디네가 떨고 있다.

  아쿠아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애초에 엘라임이 소환에 응답했으면 네가 걱정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

 “그러니 그녀에게 화내지 마. 엘라임.”

 

  아쿠아는 엘라임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그러나 엘라임은 아쿠아의 경고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엘라임의 모습에 운디네는 약간 초조한 듯 자신의 푸른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자신이 가꿔야하고 지켜야하는 라이라 호수를 떠나서 그녀가 화내고 있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운디네의 모습을 본 엘라임은 매서웠던 분노를 점차 누그러뜨렸다.

  엘라임은 천천히 운디네에게 다가왔다.

  아쿠아는 운디네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지만, 곧 그들의 주위에 물방울이 생겼다.

  물방울은 옷자락을 움켜쥔 운디네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가 엘라임을 바라보았다.

 

 “무서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마렴. 라이라의 운디네야. 나는 너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란다.”

 「어머니…….」

 “라이라의 호수에 있어야할 네가 어찌하여 이곳에 왔는지,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겠니?”

 

  평소에 자신이 알고 있던 목소리와 얼굴로 엘라임이 말했다.

  운디네는 잠깐 입술을 꾹 깨문 뒤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어, 어머니를 닮고 싶었기 때문에 아쿠아가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아요.」

 

  운디네의 말에 엘라임은 조용히 허리를 숙여 무릎을 꿇었다.

  운디네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서였다.

 

 “나를 닮고 싶었다니?”

 「나이아스들과 실프들에게 들었어요. 어머니께서 인간계로 유희라는 것을 떠났다고 들었어요.」

 “계속 이야기 해보렴.”

 「어머니를 닮고 싶었어요. 제가 인간이었을 때, 한 번도 어머니의 정을 느껴본 적은 없었지만, 어머니는 제게 포근함과 따스함을, 자애로움을 가르쳐주셨어요.」

 

  운디네의 말에 엘라임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비록 나를 배신했던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는 인간계이지만, 그보다 어머니를 닮고 싶어요. 어머니가 보고 느꼈던 것을 저도 느끼고 싶어요.」

 

  엘라임은 운디네의 말에 조금 놀랐다.

  그러나 인간이었던 그녀를 고려해보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생각이었다.

  인간계엔 ‘존경’이라는 것이 존재했으니 말이었다.

  다른 정령들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정령.

  자신과 똑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정령이어서인지 엘라임은 그녀를 지켜주고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고 느꼈다.

  속에서 느껴지는 생소한 감정이었지만 무조건적으로 축복하고 들어주고 싶었다.

  우물거리던 입술로 이야기하던 운디네는 눈을 반짝이며 엘라임을 바라보았다.

 

 「제가 어떻게 해야 어머니처럼 인간계로 나갈 수 있는 거죠?」

 

  엘라임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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