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오빠! 저게 다 뭐야?”
종이 박스 벽을 간신히 타고 올라 얼핏 본 세상은 너무나 신기했어요. 네 발로 구석구석을 킁킁거리는 저와 다르게 두발로 걷는 사람들. 아 어쩌면 저렇게 걸을 수 있을까요? 바람을 타고 흐르는 여러가지 맛있는 냄새. 저는 이 좁은 박스를 탈출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팔려나가지 못해 떨이로 내놓은 채소들처럼, 파랗게 부풀었던 제 마음도 어느새 시들어 버렸어요.
“시끄럽다 가쓰나야. 체력 낭비하지 말고 잠이나 자 둬라. 우리에겐 간식도 없다.”
“어휴. 오빠나 실컷 자라!”
“엇 이 가쓰나 봐라. 니 곧 후회하게 될 거다.”
그때였어요. 처음 맡아보는 자극적인 냄새가 시장 통 골목 저 쪽에서 풍겨 왔어요.
“아이고 귀여워라.”
박스 곁으로 다가와 앉은 낯선 남자가 제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낯선 남자에게서 풍겨오는 냄새, 저는 이 냄새의 정체가 궁금해서 겁도 없이 혀를 날름 거렸어요.
“가쓰나야! 뭐 하냐? 그 인간 그만 핥아라. 그 인간도 잠깐 너 쓰다듬고 지 갈 길 간다. 그동안 겪어 보고도 모르냐?”
“흥! 오빠는 잠이나 계속 자셔!”
“헐 이것 봐라! 이 바보탱아! 우리 같은 족보도 없는 개를 데려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그동안 보고도 모르냐 저기 저 앞에 있는 가계에 있는 우리보다 멋있고 털도 부드러운 개들을 데려가잖아. 우리는 이 박스안에 버려진 시들은 채소와 다를바 없는 존재라고”
“아주 이 잠탱이가 저주를 퍼붓고 있네!”
오빠가 그렇게 짖어도 저는 희망을 버릴 수 없었어요. 저도 한 번 태어났는데 좋은 아빠 만나 산책도 하고, 맛있는 간식도 원 없이 먹고 싶었어요.
“헉! 너 방금 뭐라고 했니? 뭐 잠탱이!”
“킁, 킁, 이 냄새 무지 당기네.”
낯선 남자에게서 풍겨오는 냄새는 방금 전 저를 쓰다듬고 간 여자에게서 나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어요. 순간 저는 이 낯선 남자가 저를 보듬어 주었으면 했어요. 이 낯선 남자가 제 아빠였으면 했어요.
“아줌마 이 아기 얼마예요?”
“응, 오만 원만 줘.”
저를 쓰다듬던 아빠의 손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더니 한참이나 나오지 않았어요.
“아줌마. 삼만 원에 이 아기 데리고 가면 안 될까요?”
“그건 안 되지. 나도 그동안 먹인 사료가 있는데.”
“아주머니 그러지 말고 우선 데리고 갈게요.”
“총각 그냥 그 오만 원 다 주고 두 마리 다 데리고 가.”
“아주머니 두 마리는 좀, 제 앞가림도 힘든 걸요. 아주머니 그러지 말고 삼만 원에 이 암컷 한 마리만 데리고 갈게요.”
“나 참 총각도.”
“요즘 일이 없어서요.”
“뭔 일 하는데?”
“아 네, 사정이 생겨 당분간 용역 다니고 있어요.”
“알았어. 그럼 요놈도 데려가. 그놈 혼자면 외롭잖아. 둘이 한배야. 이다음에 이만 원 주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고.”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저를 쓰다듬는 아빠는 몸을 가누기 힘든지 약간 휘청거리는 것 같았어요. 이제까지 맡아보지 못한 자극적인 냄새 때문에 아빠가 내민 손을 오랫동안 핥은 것뿐인데, 글쎄 아빠는 갑자기 저를 들어 보듬고 막 우는 거예요. 아빠의 두 손에 들리어 가슴에 안기자 금방까지 차가운 가을바람에 방치되었던 제 몸이 따뜻해졌어요. 이내 아빠의 볼 위에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저는 아빠의 볼을 핥았지요. 짭짤한 맛이 났어요. 저는 그 눈물의 맛도 의미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아빠가 저를 세게 끌어당기자 갈비뼈가 부서지는 것 같았어요. 순간 오빠의 후회하게 될 거란 말이 떠올랐어요. 그 흔한 개들이 씹어 대던 개 껌 한 번 못 씹어 보고 끝나는 가 싶어 두려웠어요. 가슴을 누르는 압박 때문에 갈비뼈는 아파 죽겠는데 눈치도 없이 갑자기 이빨이 가려운 건 무엇 때문일까요?
“아이코 미안, 미안, 아빠가 너무 세게 보듬었구나.”
다행히 아빠는 제가 낑낑거리니까 꽉 조이던 두 손의 힘을 풀었어요. 아빠에게서 나던 냄새가 아까보다 더 지독해졌어요. 도대체 이 냄새의 정체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