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해오던 일을 그만뒀다. 그럼 나는 누구지?
그랑드에서 농사를 짓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간 거야?
농삿일을 계속했던 게 지금까지의 나라면, 지금부터는 영주 밑에서 시중을 드는 일을 하는 게 나 자신이 됐다.
이런 변화를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뭔가 돌이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묻고 싶었다.
‘마드린느, 넌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또 다른 속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
영주밑에서 일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도 쉽지만은 않았다.
앞으로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낯선 곳에서 적응하는 일은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몫이라는 점에서 혼란스러웠다.
‘과연 난 어른인 걸까? 잘 하고 있는 걸까? ’
처음에는 무작정 떠나려고 했지만 셸 아일랜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만약 벗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쯤 산맥을 걷고 있었을까, 아니면 해안가로 내려가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떠났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일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잘 할 수 있을까. 나와 온전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랑드 사람들처럼 나 또한 돈에, 티그리스 가문이라는 감언이설에 넘어가 버린 건 아닐까.
뒤척이다가 잠에 든 마드린느를 지켜봐 주는 건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뿐이었다.
그랑드를 떠날 때 길가에 있던 꽃과도 같은 색을 내뿜은 은은한 달빛을 이불삼아 스르르 잠이 든 마드린느를 밤하늘만이 안타깝게 바라봐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