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남자만큼 매혹적인 것은 없지!
그 미모에 여신도 깜짝 놀라 한번 숨어버리고서는
다시 눈을 씻고 봐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에 반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말해놓고서는,
몰래 발치밑에서 항상 기다리고 있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여신을 실망시킨 자, 대대손손 사랑스러운 두 눈을 가질 수 있을까?
여신을 만족시키지 못한 자, 시간을 제때 맞추지 못한 자,
여신의 분노에 어떻게 대처할거야?
그녀의 동정에 호소해!
그녀의 발에 입맞추고, 눈물로 죄송함을 호소해!
하지만 이내 만남을 후회하게 될걸?
여신은 바다의 풍랑보다도 더 변덕스럽다고!
-작은 요정들이 장난스럽게 부르던 노래 중-
잘생긴 외모,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은 다른 이들보다 더 출세할 기회가 많았다.
윗사람들의 눈에 띄기도 쉬웠고, 같은 재능을 가졌어도 미모는 그 재능을 더욱 빛나게 해주곤 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를 칭송하기도 하며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지만, 그들이 모두 선량한 자들의 눈에만 들었을 리가 없다.
그들은 다른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만 했으며, 그들의 선택과 운명은 모두를 파멸로 이끌곤 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파리스’ 를 떠올려볼 수 있다.
아름답기에 눈에 띄었던 목동 파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아프로디테로 선택했고, ‘가장 아름다운 아내 헬레네’ 를 얻었으나 트로이 전쟁을 일으켰다.
아름다움을 탐내던 아름다운 자, 전쟁의 불씨가 되다.
결국 아름다움은 당사자와 그 주변을 모두 파별시킨다.
이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진리다.
다만, 그 당사자가 현명하며 신념을 가진 정의로운 자라면, 그의 재능은 공동체의 계단을 한 층 올라가는 데 일조할 것이다.
그러니, 후손들은 아름다움의 진짜 가치를 일찍이 깨닫고 부디 현명하기를.
이곳에서도 역시나 이방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이, 집사는 말도 안 되는 구실을 만들어 마드린느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내보내려 했다.
해가 뜨기도 전인 검은 새벽에 방에 쳐들어와 잠을 방해해놓고서는, 당장 떠나야 한다고 했다.
금발의 알피에게 문제가 생겨 다른 사람이 필요하게 됐다.
그러니 알피의 임무를 대신 수행하러 가야 한다는 말만 남기고 집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고, 이끌려간 마차에 마부와 긴 붉은색의 로브를 쓴 남자와 타게 되었다.
아무도 마드린느를 배웅하지 않았고, 이젠 이 마차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정신이 혼미했다.
앞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어떠한 물체가 있다고 짐작은 할 수 있는 정도랄까.
작은 램프에 성냥으로 불을 지폈다.
파앗-!
노란 빛이 공간을 채웠지만, 마드린느의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주진 못했다.
린느는 편치 못했다.
어제 먹은 만찬의 음식이 너무 기름졌나, 아니면 속이 허해 평소에 잘 마시지 않던 와인으로 마음을 달래서 그런걸까.
집사에게 가기 싫다고 반발할 수도 없는 처지였고, 그렇다고 안심하고 있기에는 수상했다.
단순히 일을 하러 가는 사람에게 만찬을 차려주는 것부터가 순수한 호의가 아니라는 것은 눈치를 챘지만, 심한 고생을 시키러 가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알피는 사라져버린다 해도 누군가 찾아올 사람이 하나도 없는 혈혈단신의 몸이었고, 그렇기에 하녀로 들어온 것이다.
마드린느의 신세도 알피보다 나을 게 없었다.
다들 저택에서 일한다고만 알고 있지, 가족도 없는데 누가 소식이 없다고 찾으러 오겠는가.
마드린느를 지킬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었다.
마차 안에는 호위무사라고 딸려온 남자가 맞은 편에 앉아있었지만, 치렁치렁한 로브 덕분에 얼굴은 커녕 표정도 알기 힘들었다.
특이하게 보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인 장도를 지닌 사내였다.
그렇게 긴 칼은 처음 봤다.
게다가 저택의 사람이니,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 그저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게 상책이었다.
린느의 옆에는 한 사람 몫의 먹을거리가 바구니에 놓여져 있었다.
비몽사몽하는 동안 들은 말을 더듬어보니, 다른 사람들의 식사량은 이미 챙겨놨고 이건 자신만 챙겨먹으면 된다고 했다.
‘고맙기도 해라.’
이 저택은 먹는 거 하나만큼은 잘 챙기는 모양이었다.
혹시 먹다 죽은 귀신이 티그리스 가문에 붙었나.
옛말에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했던가.
알피는 몇 달 동안 연락도 안되고 소식도 없고, 어디갔는지도 모르고, 배를 탔는지 아니면 배가 뒤집어진건지.
언제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먹기나 해야겠다고 다짐하고서 용맹하게 크로와상을 한 입 베어물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그거, 안 먹는 게 좋을 텐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인사 치레도 없던 남자.
계속 팔짱만 낀 채로 고개를 숙이고서 과묵하게 자리를 지키던 사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무식하고, 검만 잘 다루고 얼굴은 별로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목소리가 생각 외로 괜찮았다.
저음의 안정적인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믿음을 주는 목소리에 잠시 마음에 두근거렸지만, 새침하게 대꾸했다.
“ 크로와상은 식으면 맛 없어요. ”
“ 그건 그냥 크로와상이 아냐. 그걸 먹으면 계속 잠만 자게 된다구. ”
흠칫 놀랐다. 동도 트지 않은 새벽에 수면제를 또 탈 이유가 뭐가 있는가.
“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죠? 그냥 크로와상이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말을 해요. 나눠줄테니까.”
나눠준다는 말에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로브를 벗어재끼며 남자가 다시 질문을 했다.
“ 벨체 라 돌리아 저택에 온 지는 얼마나 됐지? ”
“ 별로 안됐어요. 반 년 정도 됐을려나? ”
“ 그래, 그런 것 같군.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지. ”
이 남자는 호위무사라면 호위무사답게 제 일이나 잘 할 것이지, 뭐 이리 갑자기 말이 많아졌어? 라며 눈을 마주친 순간, 마드린느는 딸꾹, 하고 소리를 내버렸다.
로브가 가리고 있던 이목구비는 예전에 한 번 본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그이가 여기에 있었다.
벨체 라 돌리아 저택에서의 첫날밤에서는 라벤더 향의 꿈을 꿨다.
다른 세계의 수많은 보름달들과 자욱한 안개속에서 잠시 대화를 나눴던 그이.
여전히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작은 마차안에서 그는 그때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푸른색과 검은색이 섞어 밤에 강물이 흘러가는 듯한 머릿결은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한 길이로 약간의 곱슬기가 있어 보였는데, 담비 가죽과도 같이 윤기가 나고 부드러워 보여 아무도몰래 얼굴을 파뭍어보기도 하고, 손끝으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절로 들게 했다.
이목구비는 섬세하면서도 누가 다칠라 염려하며 빚어놓은 듯한 인상을 주었는데, 이와 파릇한 젊음이 만나 고귀해보였다.
린느는 그 남자가 차가우면서도 단아하다, 그러면서도 잘생겼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입술은 벨체 라 돌리아의 정원에 있는 붉은장미보다 더 붉었고, 피부도 사원의 대리석 기둥처럼 하얗고 빛났다.
‘뭐 이렇게 이쁜 남자가 있담.’
꿈에서는 짧은 시간이라 얼굴만 잠시 보고 헤어졌었는데, 지금 만난 이 사람은 웬만한 사람들보다 머리 두세 개가 더 있을 정도로 훤칠했다.
너무 잘생겨서 자신도 모르게 딸꾹질을 해버린 게 부끄러워 말을 하지 못했는데, 그런 린느를 보고 당황하기는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저택에 있었던 마드린느는 빚도 갚았겠다, 태양볕 아래서 고된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 해서 몸과 마음이 편한 상태에 있을 수 있었다.
덕분에 가려져 있던 미모가 살짝 나온 상태였다.
알맞게 그을려져 있어 건강해보이는 피부색에, 삶을 버텨온 자긍심과 충만한 의지가 담겨있는 빛나는 눈동자가 매력적이었다.
린느는 보자마자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자세히 눈여겨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귀여운 모습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 호위무사는 그런 매력을 짧은 시간 내에 파악하고 받아들인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친절한 단어를 내뱉을 줄 아는 작은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밑으로는 턱에서부터 목까지 깔끔하게 떨어지는 선이 아찔하게 다가왔고, 가지런해보이는 어깨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사내는 마주 앞에 앉은 여성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호흡을 멈추었다.
심장이 넓은 평야를 쉬지 않고 오래 달렸을 때처럼 빨리 뛰었다.
사내는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느낌에 어떻게 대처할 지를 몰랐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이런 적은 처음인데… 거사를 앞두고 내가 긴장했던 모양이군. 당황하지 말자.’
그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곤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이 당황했음을 상대방이 눈치채지 않게 표정을 관리하고 최대한 냉담해보이게 눈빛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정신없기는 마드린느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내는 아름다운 정원을 닮았지만 너무나도 다른 느낌을 주었다.
갑자기 부끄러운 느낌도 들었고, 얼굴에 홍조가 마구 피어오르고 있다는 걸 잘 알지만 두근거려서 사내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마차 안에는 알 수 없는 기류가 흘렀다.
더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았고 둘 다 서로를 마주보지는 못했지만 계속 곁눈질로 상대방을 훑고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끼리의 덧없는 탐색전속에서 먼저 정신을 차린 호위무사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에게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 일에는 이 여자도 어쩔 수 없이 연루될 수 밖에 없었다.
빨리 이 사태를 이해시키고, 자기 살 길을 찾아가게 할 생각이었다.
“ 티그리스 가문에서 일하면서 주인내외나 자녀분들을 본 적이 있나? ”
“ 아뇨, 딱히 없는데요. 제가 주인내외분들하고 가까이할 만큼 오래 있지 않았어요. 겨우 일 배우는 정도였을 뿐이었고… 저택이 워낙 엄격해서 말이죠. ”
“ 그래, 허트 반, 그 집사 양반이야 항상 철저하지. 이름이 뭐지? ”
“ 마드린느 테르피요. 근데 왜 아까부터 반말이신거죠? 우리 둘 다 저택에서 일하는 처지일텐데, 초면에 반말은 좀 아니지 않나요? ”
“ 테르피? 그건 어디서 가져온 성이지? 아네모네처럼 꽃 이름은 아닐테고. ”
“ 원래 성이에요. 어머니가 쓰시던 성이라구요. 물려 받았어요. 근데, 알피를 아세요? 알피는 어디로 간거죠? 왜 여태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는거죠? ”
“ 알피 아네모네 양이야 자기 할 일 하러 간 거고, 그쪽 걱정이나 해. 그나저나 테르피란 성이 어머니쪽이라면, 아버지는 행방불명이거나 집을 떠났거나 해서 연이 끊긴지 오래겠지. 어머니가 살아계신다고 해도 몸이 성치는 않으시겠어. 좋은 연줄이 있는 건 아닐테고. 혹시나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군.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나 자매는 물론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경우일테고 말이야. ”
긴 다리를 한쪽으로 착 꼬며 말하는 사내가 달리 보였다.
아까의 아름다움은 신기루였던걸까.
자신의 처지에 대해 여러 수를 던지는 이 사내가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오만하고, 건방지게만 보였다.
‘보자마자 반말이나 찍찍 던졌을 때 얼굴만 반반한 놈이라는 걸 알아차려야 했었는데… 어쩜 이렇게 무례하지? 칼이나 좀 쓴다고 사람 좀 패고 다녔나보지? ’
썩어가는 얼굴로 심드렁하게 린느가 답했다.
“ 그래요. 그런 처지죠. 그쪽은 어떤 처지길래 이 마차를 탔어요? ”
갑자기 사내가 두 눈을 번쩍이더니 얼굴을 들이밀며 호기롭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