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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그리스 강가에서
작가 : 애플타운
작품등록일 : 2016.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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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원하든, 원치 않던 간에 (2)
작성일 : 16-06-02     조회 : 587     추천 : 0     분량 : 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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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이 격해지며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멈추지 않는 폭포처럼. 한 번 물꼬를 틀자 우수수 내려오는 것들이 있었다.

 “ 지금 내 앞에 있는 당신은 신이 맞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 자가 한 끼 식사에 먹다가 남은 음식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해오는 삶을 살았는데, 이 자는 아버지가 신께 청까지 해가며 얻은 금과 은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하는 군요. 제 꿈이 누군가에게는 버리고 싶은 꿈이란 말입니까? “

 “ 그대의 섭섭함은 이해하네. 섭섭하다는 말로 그 세월과 한을 어찌 표현하겠는가. 다만 자네의 성이 테르피이듯, 자네는 이번 생에 그 누군가를 치유하기 위해 온 것일세. 다만 그 기회가 아이러니하게 온 것 뿐일세. ”

 “ 저는 제 이름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성은 제가 버리라면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숨기려면 밀봉을 해놓고서 영영 꺼내지 않을 수 있는 이름입니다. ”

 “ 그대에게 사연이 있듯 다른 이들에게도 사연이 있네. 어찌 한 사람의 행동을 자네의 이야기로만 평할 수 있겠나? 각 사람의 소매 끝에 달려있는 못된 악마들이 없을 리가 없지. ”

 훌쩍거리는 마드린느를 자애롭게 달려주는 여신에게서 현자의 모습이 보였다. 여신은 강물처럼 변화무쌍했다. 많은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주었지만 그만큼 자연스럽게 흘러가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지금은 목이 타는 여행자에게 오아시스가 나타나 여행자를 조금이나마 달래 주는 모습이었다.

 조금은 엄격해진 목소리로 여신이 말했다.

 “ 그대가 이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소년의 바램도 이뤄질 수가 없네. 이 셈법은 그대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라 해도 이 세계에서는 성스러운 것. 계약 철회가 행해지면서 마드린느 테르피라는 존재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성장할 수 없네. 성성장할 수 없는 자는 자라지 않는 식물처럼 제 기능을 못하게 되버리지. ”

 대화를 계속 듣고만 있던 가이온은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님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마드린느가 원하는 대로 그냥 돌려보낸다면, 자신이 불리하게 되어 버린다. 반대로 마드린느가 원치 않는 일을 하라고 억지로 밀어붙인다고 해도 될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소원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상태인지라 어떠한 판단도 섣불리 내릴 수 없었다. 머릿속에 복잡해진 가이온은 침묵을 유지했다.

 “ 저로써는… 역시나 이해가 가지 않는 일입니다. ”

 “ 받아들이게, 마드린느 테르피여. 그리고 인정하게. 이것의 자네의 삶의 일부라는 것일세. 다가 아닐세. 작은 부분이지. ”

 “ … ”

 “ 아니면 이 소년의 청을 거절하고 자네를 제물로 받을까? ”

 “ 이미 제 답을 알고 계시는군요. ”

 제물이 되는 것보다 삶을 영위하는 게 더 낫다. 앞으로 재밌는 일이 있을 것만이라는 보장이 있는 게 아니라, 죽음을 최대한 미루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

 그리고 아까부터 귀밑을 살짝 감싸던 운명이라는 가벼운 감각이 있었다.

 ‘ 이 선택이 꼭 나쁘다고 보지는 말자. 어떻게 보면 잘 버텨온 거잖아? 지금까지 잘해왔어.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

 어떤 상황이 와도 자기 자신을 믿는 것. 마드린느 테르피가 가진 좋은 재능 중에 하나였다. 자기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돌봐주는 사람이 되는 법을 일찍이 습득한 그녀는 비록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지만 달리기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고개를 똑바로 쳐 들고 허리를 곧게 편 당당한 자세로 돌아온 마드린느가 말했다.

 “ 제가 할 일을 말씀해 주시지요. ”

 여신이 허공에 손가락을 가볍게 휘두르자 흰 빛이 빠르게 날아가더니, 가이온과 마드린느의 목에 목걸이가 둘려졌다. 가이온은 금색의 목걸이를, 마드린느는 은색의 목걸이를 걸게 되었다.

 “ 엘제나의 영혼이 만족스럽게 눈물을 거둘 때 비로소 목을 조여오는 족쇄가 날아가 버릴테니, 도망가거나 서로 떨어질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시게. ”

 “ 엘제나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

 가이온이 물었다. 이 소원만 들어주면 그도 자유가 된다. 이제 시간 문제였다.

 “ 그건 그대들이 가서 알아볼 문제지. 미리 답을 알아버린 수수께끼가 무슨 재미라고. ”

 마드린느와 가이온의 주위로 나비들이 날아들었다. 팔랑거리는 날개짓들이 그들의 몸을 끌어 올려 강에 떠있는 조각배로 인도했다.

 “ 이 배가 그대들을 데려가줄걸세. 도착하고 부터서의 다음은 온전히 그대들의 몫이 될 것이야. ”

 나비들이 밤하늘을 날아가면서 안개가 점점 자욱해졌다. 하얀 거품 속에서 여신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일이 끝난 다음에는 그대의 아버지에게로 가 그대가 해야 할 일을 하게. ”

 가이온은 그 말의 뜻은 잘 몰라도, 일단은 기억을 하기로 했다. 소원이 이뤄졌을 때에도 나머지 할 일이 있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찔렀다. 여신이 부리는 마법이란 알 수 없는 셈이었다. 끝나지 않는 셈.

 안개가 시야를 가려 그들은 그저 배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 어디로 가는 지 조차 몰랐다. 둘 다 몸이 반듯하지 못하고 구부러져 있었다. 스르르 눈이 절로 감기고 있었다. 변덕스러운 영혼과의 거래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친 자들은 말이 없었다.

 주변의 수풀들이 부드럽게 몸을 흔들어 주었다. 시간은 아직까지 새벽이었다. 고요하게 물은 흘러만 가고 있었고 사공 없이도 배는 잘 떠내려가고 있었다. 마치 아무런 만남도 없었다는 듯, 아무런 근심도 없다는 듯 주위는 조용했다. 부엉이가 푸드덕 하고 날개를 접고서 나뭇가지에 앉아 부리부리한 눈을 뜨고서 달빛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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