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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천장이 높은 주방 안, 넓은 식탁에서 그와 그녀가 마주 보고 식사를 하고 있다. 당연한 거지만 그는 의자에 앉아 있고, 그녀는 의자를 치우고 대신 휠체어에 타 있는 채이다. 식탁 위엔 특별한 음식 없이 플라스틱통에 담긴 조촐한 반찬들로만 묵묵히 식사를 하는 중이다.
참고로 그는 앞에 있는 그녀를 일부러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마치 권태기에 빠진 남편인 것처럼. 반면에 그녀는 뭔가 반응이라도 주길 기대하는 양 이따금씩 그를 쳐다본다.
사실 그의 입장에선 그녀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다리를 못 써서 자신이 돕지 않으면 굶을 수도 있기에 마지못해 함께 저녁을 드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그녀가 자기 도움이 없어서 굶었다 하며는 나중에 귀찮아질 수도 있으니까. 바로 그가.
그에겐 평안하던, 현재의 침묵을 그녀가 깨뜨린다.
“저기, 동서는 어떻데요?”
하필이면 불편한 질문이다.
“응. 정민이…… 정민씨는 탈 없이 지내고 있는 거 같아.”
“우리도 이렇게 다쳐서 힘들지만, 동서도 얼마나 힘들겠어요? 내가 이 꼴이니 직접 갈 수는 없고. 당신이 잘 챙겨줘요. 알았죠?”
“그래. 그럴께.”
실은 정민이란 여자는 일주일 전까진 이 별장에서 그들과 함께 지냈다. 여기 그녀가 몸이 성치 않고, 그도 마찬가지이기에 이곳에 가족이 한 명 더 있는 게 좋다고 판단해서였다. 정민이도 처음엔 그와 그녀를 이곳에 내버려 두고 혼자 쓸쓸히 지내는 건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선 아니게 됐다.
“그리고 당신, 동서 좀 설득해 봐요. 여기 다시 들어와 살라고. 혼자 살다 뭔 일 벌이지나 않을까 걱정돼 죽겠어요.”
그에게는 정민에 관한 얘기를 그녀와 한다는 건 거북하기까지 한 고초였다. 그는 뭣도 모르는 그녀가 오지랖을 넓게 부린다며 속으로 비난하면서도 겉으론 차근하게 답한다.
“난 그렇게까지 할 필욘 없다고 봐. 오히려 지금 정민씨는 우리와 떨어져 사는 게 더 나을걸. 생각해 봐. 여기서 계속 우리들을 보고 있으면 정민씨가 어떻겠어? 계속 ‘그’가 생각나지 않겠어?”
“생각해보니까 그러네요. 우릴 보면 아마도 병헌씨 생각이 나서 힘들었겠네요.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미안해요.”
그는 말마따나 정민이 이 집을 나가긴 했어도 한편으론 한동안 이곳에 있었다는 게 참 대견한 일이었다고도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정민이가 여기 그녈 위해 희생해 준 거지. 분이 치밀어 오르는 걸 참으면서, 여길 전부 뒤엎어버리고 싶은 걸 억누르면서.’
속이 답답한 듯 애꿎은 반찬들을 쑥쑥 쑤신다. 단, 앞의 그녀가 눈치 못 채게 주의하며.
“오늘 혼자 지낼 만은 했어?”
그가 오늘 여기 와서 처음으로 그녀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당연히 말을 걸긴 싫었지만, 이왕 얘길 하게 된 거 필요한 질문을 해두자는 심산에서였다.
“네. 오늘 아주머니가 없긴 했지만 별 문젠 없었어요. 혼자 목발을 짚고 일어설 수도 있으니까.”
낮 동안엔 그가 직장에 있기에 가사도우미가 있는 건 마땅했다. 거기다 며칠 전까지 살던 정민도 계속 근무 중이었으니.
“모레까진 괜찮겠어?”
도우미가 사정이 생겨 오늘부터 삼일간 출근을 못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나오지 않았고.
“걱정 마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그녀의 대답에 그는 안심했다. 사실 그녀가 집에 혼자서 탈 없이 있을 수 있다는 건 현재 그에게 ‘필요한 조건’ 중 하나였으니까. 일단 첫날은 순탄해 보여 다행이다.
그는 일단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으니 이제는 잡담은 멈추고 식사를 빨리 마쳐 금방이라도 그녀를 벗어나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녀는 순순히 그러지 않았다.
“여보?”
“응?”
“내가 스웨터를 거의 다 짰는데, 식사 마치고 나서 한 번 입어봐 줄래요?”
그는 더 붙들려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우선 짜증이 올라왔지만, 이번에도 밖으로 티 하나 내지 않으며 태연히 응답한다.
“그러지 뭐.”
사실 그녀와 얘길 하는 게 싫기도 했지만 불안하기도 했다. 혹여나 자기가 ‘말실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제 남은 식사 시간은 정말 조용하게 편안히 음식을 먹을 수 있겠단 기대를 가졌다. 허나 이 기대는 그녀가 불쑥 뱉은 말에 금세 무너졌다.
“젓가락질이 불편한가 봐요?”
“응? 뭐가?”
“당신 젓가락 집는 법이요?”
그녀의 말에 젓가락을 집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본다. 특별한 이상을 느끼지 못하는 그.
“젓가락 집는 법이 이상하잖아요.”
“그래?”
“본래는 검지와 약지로 젓가락을 받치고 중지를 그 사이에 놓아야 돼요. 그런데 지금 당신은 검지는 놔두고 중지와 약지로만 젓가락을 받치고 있잖아요.”
그녀가 직접 본인이 집은 모습을 보여주며 설명한다.
그녀 말이 맞다. 그는 살면서 가끔 그런 지적을 받았던 게 떠올랐다. 다만 그리 집는 게 불편하단 건 전혀 못 느꼈지만.
“제가 예전에 당신 젓가락질을 교정해줬잖아요. 기억 안 나요?”
‘젓가락질 지적이라니. 유치원 강사답군. 괜한 참견질로 사람 귀찮게 하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번에도 차분하게 해명한다.
“내 손 상태가 이렇잖아.”
왼팔의 깁스를 들어 보인다.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을 쓰려니 그래.”
“아하, 맞네요. 미안해요. 당신이 왼손잡이니 힘들겠네요.”
‘근데 이 여편네는 왜 이제 와서야 이걸 알아채고, 또 지금에서야 얘길 한 거지? 왜 지금?’
무안해선지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식사를 하는 그녀. 그런 그녀의 정수리를 보면서 그가 곰곰이 생각한다.
‘아마 그녀도 정신이 없는 거겠지. 그 사고 이후로 쭉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그는 당장의 고민을 접고 다시 젓가락을 집는다. 평소 해오던 것처럼, 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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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거실서 그가, 방금 주방서 얘기한 대로, 그녀가 만든 자색 털실 스웨터를 입고 있다. 한 팔에 깁스가 있다 보니 다소 쩔쩔맨다. 그래도 어찌어찌 입는 데는 성공한다. 그가 스웨터를 입자 옆에서 지켜보던 그녀가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난감해한다. 입고 보니 스웨터가 헐렁한 것. 보면 옷 사이즈가 그의 신체 사이즈보다 더 큰 듯하다. 거기다 어깨도 헐겁고 팔 길이도 약간 더 길다.
“좀 큰 거 같네요?”
휠체어의 그녀가 의아해하며 말한다.
“아무래도 그 사고 이후로 내가 살이 빠져서 그럴 거야.”
그 사고를 언급하기 싫었지만, 해명을 하려면 어쩔 수가 없다.
“전부터 짜오던 거잖아? 안 그래?”
“그러네요. 오랫동안 짰는데.”
낙담한 듯 고개를 떨구는 그녀. 그는 탐탁지 않지만 그래도 위로의 말을 건넨다.
“다시 살이 찌면 그 때 입으면 되지. 어쨌든 고마워.”
그로서도 상심하는 그녀를 바로 앞에서 보고는 무심히 넘기긴 어려웠다. 거기다 그 스웨터엔 슬픈 사연이 서려 있는 걸 아니까.
그의 말이 힘이 됐는지 그녀가 눈은 촉촉하지만 입가엔 미소를 띠워 보인다. 그가 한쪽 팔이 여전히 불편한 와중에도 조심스레 스웨터를 벗어 곱게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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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간이 지나 그와 그녀가 TV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그는 소파 끄트머리 팔걸이에 머리를 대고 소파 위에는 두 다리를 쭉 펴서 사실상 누운 자세로 편히 있다. 반면 그녀는 소파 앞, 그의 머리와 반대편인 위치에 휠체어를 두고서 거기에 타 앉아 있다.
그는 그녀와 함께 TV에 눈을 두고는 있지만, 마음까지 두고 있진 않다. 사실 그에게 TV 드라마는 허황되고 심심한 것 따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어쩔 수 없이 있는 건 전부 다 ‘그녀’ 때문이었다.
그녀는 몸 상태 때문에 유치원 일도 잠시 쉬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뜨개질을 하고 말 잘 듣는 애완견도 있다지만, 애초 그것들만으로는 남아도는 시간을 다 때울 수는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시간이 나면 번번이 드라마를 봤다. 드라마를 몰입해 보면 시간을 죽일 수 있으니까. 그래야 편치 않은 몸의 시간에서 체감상 금세 벗어날지 모르니까.
어쨌든 그런 그녀 때문에 그는 쉬면서 잠들고 싶은 이 시간에 붙들려서 하등의 흥미도 없는 드라마를 같이 봐야 했다. 거기다 지금 나오는 드라마 제목이 <아버님은 내 사위>다. 요새 막장 드라마가 줄기차게 쏟아진다지만 제목부터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 스토리야 설명하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허무맹랑하다.
그런데 그녀는 드라마 삼매경에 빠진 여느 여자들이 그러하듯 본 방송을 보면서도 쉴 새 없이 줄거리를 떠들어댄다.
“글고 여보, 저기 저 여자가……”
이러쿵저러쿵. 어쩌고저쩌고. 보통 이런 여자들은 말하고 얘기하는 걸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 창구로 삼으니까. 그가 퇴근길에 승차했던 그 택시 기사처럼.
그는 택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녀가 정성껏 서술하는 스토리를 한 귀로 흘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순 없었다. 나중에 그녀가 물어볼 테니까. 그때 답하지 못하면 그만 곤란해지니까.
그렇기에 같이 산다는 건 고역(苦役)이다. 택시 기사야 이후에 볼 일 없으니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여기 그녀는 ‘이후’에도 ‘이곳’에서 ‘계속’ 얼굴을 마주쳐야 하니까. 여기 있는 동안 나와 맞지 않는 걸 그녈 위해 맞춰 줘야 되고, 게다가 그녀에게 자신이 신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그래서 그는 여기 오기가 싫고, 그녈 만나는 게 마뜩치 않았던 거다.
하지만 이내 그는 이런 불만들을 다음과 같은 마음속 말로 다독인다.
‘그치만 이러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그렇게 그는 쉬지 않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눈은 TV에, 귀는 그녀의 이야기에 가만히 맞춰 둔다.
“여보?”
그녀가 그 좋아하던 드라마 내용 설명을 중단하고 의문형으로 그를 지칭한다.
“왜?”
“보니까 손가락을 깨무네요.”
상념에 집중하고 있어서였는지, 택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가 어느 틈에 손가락을 입으로 물고 있었다.
‘또 유치원 강사질이군.’
속으로 그렇게 외치면서 머쓱하게 입속에 넣고 있던 손가락을 뺀다.
“여보, 예전엔 그런 버릇이 없었잖아요. 보니까 요 근래에 티비를 볼 때마다 자주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
‘이 여편네는 내가 애기도 아니고, 웬 뜬금없이 훈수질이야.’
속은 당연 불만이지만 그래도 설명은 해야 한다.
“이것도 그 사고 때문 아닐까? 아무래도 사고 후유증으로 불안해서 이런 버릇이 생겼나 봐. 다음부턴 주의할게”
어쨌든 그녀는 고개를 까딱대며 손쉽게 수긍한다. 다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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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침 시간이다. 그에겐 그녀를 재우기 위해 매일 밤 침대에 눕히는 것도 나름 노역이었다.
그녀를 간신히 눕히고 이불까지 덮어준 뒤 돌아서서 나가려는 순간, 그녀의 양손이 그의 팔목을 힘주어 붙든다. 그러고는 그녀가 그의 눈을 똑바로 물끄러미 보며 나긋하게 몇 마디를 뱉어낸다.
“여보, 오늘 나 무서운데 같이 자요.”
이쯤 되면 고역을 넘어 고문이다. 그에겐 이 상황이 지긋지긋하다. 더욱이 이런 전개는 이 집에서 가장 난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크게 염려하진 않았다. 이미 몇 차례 겪어 봤고, 대응 매뉴얼이 구축되어 있으니까.
그는 점잖게 대처한다.
“아직 몸이 편치 않잖아. 난 일이 있어서 한 한 시간 정도는 자지 않고 있을 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 폰도 있고, 종도 있고 호루라기도 전부 옆에 있으니까.”
조목조목 얘기하는 그. 실제 그의 말대로 침대 옆 낮은 서랍장 위에 폰, 종(핸드벨), 호루라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녀가 만족스럽지 않은 듯 살짝 뾰로통한 표정을 한다. 그는 이를 만회하려는 듯 그녀의 이마에 쪽 입맞춤을 한다. ‘작은 걸’ 미리 내줘서 ‘큰 거’를 막자는 꿍꿍이일 터.
그녀가 본인의 입술을 그의 입술에 대려는 걸 고갤 돌려 외면하고, 그녀의 양손을 부드럽게 매만지는 듯하면서도 실상 뿌리치고선 성큼성큼 방을 나선다. 물론 잠깐 멈춰 전등스위치를 눌러 끄고 살며시 문을 닫는 건 잊지 않고.
문을 닫기 직전, 허탈해하는 그녀를 보며 뻔한 멘트 또한 잊지 않는다.
“잘 자.”
철컥. 문이 닫히자 그는 서둘러 복도를 가로질러 거실로, 다음은 계단을 거쳐 2층으로 올라간다.
뚜벅뚜벅. 굳어 보이던 그의 얼굴이 계단에서 그리고 2층에 도달했을 때 더욱더 서서히 풀어진다. 한껏 표정이 편해진 그가 2층 복도를 걸으며 생각한다.
‘이 집에서 이층은 참 좋은 공간이야. 걷지 못하는 그녀가 여기로 올라올 순 없으니까. 즉, 절대적인 나만의 공간이지. 그래서 난 여기가 좋아. 여기 이층이.’
복도에 나 있는 여러 문 중 하나를 벌컥 열고는 안으로 들어간다.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켜자 작업실로 보이는 방이 드러난다. 큼직한 책상이 문 맞은편에 있는데, 위에는 서류 파일들과 노트들이 빼곡히 더미로 쌓여 있다.
책상에 다가가 노트 하나를 끄집어내더니 앉는다. 노트를 펼치고선 펜을 꺼내 능숙하고 재빠르게 글을 써 내려간다.
한편, 책상의 한 구석에 여러 사진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두 남자와 두 여자, 총 네 명이 여기 별장을 배경으로 가지각색의 형태로 찍은 사진들이다. 네 명 중 두 명은 현재 이곳에 있는 ‘그’와 ‘그녀’이고, 또 다른 한 명은 ‘그’와 아주 흡사하게 생긴 남자다. 나머지 여자는 갈색으로 염색한 긴 머리에 샤프한 인상으로 ‘그녀’와는 전혀 다르게 생겼다. 어찌 됐든 성한 몸의 네 남녀가 사진 속에서 서로 취하고 있는 다정스런 포즈들을 보면 이들이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건 자명하다.
그런데 아무렇게 방치된 사진 말고 고이 세워진 작은 사진액자가 하나 따로 있다. 거기에는 두 남녀가 친밀하게 바짝 어깨동무를 하고 환한 얼굴로 찍은 사진이 들었다. 특히 여자가 남자의 뺨에 자신의 입을 맞추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남자는 지금 이곳에 있는 ‘그’이고, 여자는 여기 일층에 누워있는 ‘그녀’가 ‘아닌’ 아까 사진들 속 긴 머리의 다른 여자다!
필기가 한창이던 그가 펜을 내려놓는다.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예. 오늘 별일은 없었어요. 그녀는 잠들었고요. …… 내일 아니면 모레 시작을 하자구요? …… 그러면 내일 아침에 다시 통화해서 결정하면 어떻겠습니까? …… 예, 그럼 내일 연락드리죠.”
그가 통화를 끊고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면서 옆에 놓인 액자 속 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거, 드라마보다도 내가 더 막장인 게 아닐까? 아니, 아니야. 나와 그녀 그리고 모두가 막장인 셈이지. 그 사고 때문에. 어쨌든 그녀와 작별할 수 있겠군. 곧 여기서.’
이내 노트 등을 정리하고는 일어나 방의 불을 끄고 문을 쾅 닫으며 나간다.
뚜벅뚜벅. 깜깜한 방 안에서 멀어지는 그의 발소리가 조금씩 사그라진다. 그렇게 오늘 하루가 지나가고 다음날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