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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온 건 지금껏 그녀와 이곳에서 함께 살던 ‘그’였다. 집 안에 온 그가 진중하면서도 심각한 얼굴로 곧장 거실로 가 소파와 그 부근을 살핀다.
‘이상하군. 원래대로라면 거실에 있을 텐데?’
여보! …… 여보! 그녀를 찾아 큰 소리로 외쳐 부른다. 그의 육성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면서 이층 방안에 있는 그녀에게도 들려온다. 그이의 목소리에 반갑기는커녕 상황이 상황인지라 도리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이야. 이 시간에 왜? 출근한 게 아니었나?’
한편 일층 거실에 있는 그는 아무 응답이 없자 의아해한다.
‘아직도 자고 있나?’
터벅터벅. 그녀가 평소 자는 침실로 향한다.
이층의 그녀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그저 앉아만 있다.
‘어쩌지? 이곳에서 그이가 날 본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이 사진을 봤다는 걸 알 텐데.’
이 와중에 그녀는 즐겨 보아 왔던 TV 드라마 속 막장 남편들의 여러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의 막장 행각이 가지각색이긴 했지만, 아내를 속으로 증오하고 기만하며 나아가 해하려 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거기다 종국엔 아내를 죽이려 드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그런 남편들 중에는 주위 가족이나 지인들에겐 표면적으론 마냥 좋은 배우자로 보이나, 속은 추잡하고 흉포하기 그지없는 싸이코들도 많았다.
그런 남편들의 정신 나간 모습을 볼 때마다, 그녀는 언제나 드라마니까 다소 과장이 된 거겠지 하고 단순히 넘겨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순간이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건 TV가 아닌 실제니까.
‘설마? 병우씨가?’
그녀는 아닐 거라 자신을 다독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 손에 들려 있는 사진이 자꾸 그 생각을 틀어막게 한다.
‘고민이나 할 때가 아냐. 당장이라도 저 문으로 그이가 들이닥칠 수 있어. 그럼 내가 사진을 봤단 걸 금세 알아채겠지. 그러니 여기 있어선 안 돼. 얼른 이 방에서 나가야 해.’
액자를 집어 들기 이전 본래의 자리에 서둘러 되돌려 놓는다.
‘다시 기어서 나가야 하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갑자기 기적이 일어나 그녀가 당당히 걸어 나갈 수는 없을 테니까.
‘너무 느릴 텐데. 이 방을 나서기도 전에 병우씨가 여기로 오는 거 아냐? 아냐, 일단 해보자. 그이가 당장은 일층을 먼저 뒤질 거야. 그럼 일말의 시간은 있을 거야.’
마음을 다잡고는 의자에서 바닥으로 풀썩 내려앉는다. 올라앉는 거에 비해 내려앉는 건 손쉽다.
의자를 처음 위치와 모양새로 신경 써서 되돌린다. 이후 몸뚱이를 방문을 향해서 일자로 뻗어 이제는 숙련이 된 포복자세로 기어간다.
‘토끼와 거북이인 셈이네. 방만 나서면 되는 아내 거북이와 일층을 다 뒤지고 와야 하는 막장 남편 토끼의 대결. 거기선 거북이가 이겼어. 아니, 지금 이런 생각이나 할 때야! 서두르자.’
그래도 그새 문 앞까지 도달은 했다. 그녀가 상체를 들어 올리고 손을 뻗어 문고리를 집고 돌린다. 되도록 소리 나지 않게 천천히 문을 열고는 방을 나선다.
한편 일층에선 그가 그녀의 침실에 당도했다. 역시 그녀가 없다.
“여보! …… 여보!”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면서 방에서 복도로 막 나오는 중인 그녀의 귓가를 때린다. 그녀가 흠칫 놀라면서 황급히 계단 쪽을 살핀다. 다행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어차피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였어. 아마도 내 침실인가?’
그렇다 한들 그가 언제 이층으로 올라올지 모른다. 훤히 트인 복도에 계속 있을 수만은 없다. 어찌 됐든 자신의 몸을 어디든 숨겨야 했다.
‘이제 어쩌지?’
바로 옆에 다른 방문이 있지만, 이미 앞서 잠겨 있는 걸 확인한 문이다. 자연스레 복도 안쪽에 더 나있는 양 옆 두 개의 방문을 살핀다.
‘일단 저기로 가자.’
다시 포복으로 이층 더 안쪽을 향해 기어간다. 걸어갈 수만 있다면 열 걸음이면 족할 거리에 불과했지만, 기어가는 터라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여보! 여보!”
또 메아리치듯 들리는 목소리.
느리게 기어서 가는지라 가뜩이나 갑갑한데, 초조함마저 엄습한다. 좀처럼 불안한 기분을 참지 못한 그녀가 이동을 멈추고 힘들게 고갤 돌려 뒤를 살핀다. 시야가 완벽하진 않지만 일단 아무도 그녀 뒤에 있진 않다.
‘조마조마해 미치겠네.’
계속 기는 것도 힘든 판에 긴장감이 더해져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친다. 힘들어선지 마음이 조여선지 아님 둘 다인지 얼굴 곳곳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웅~~ 웅~~. 기계가 떠는 소리가 난다. 바닥이 소리에 맞춰 같이 울린다. 그녀의 바지주머니 속의 폰으로 전화가 왔다.
재빨리 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한다. 역시 ‘나의 그이’다.
‘진동으로 해놔서 다행이네.’
수신은 하지 않고 진동만 끄고는 한 손에 쥔 채로 계속 기어간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풀어진다.
‘생각해보니 그이가 날 찾겠다고 여기 이층으로 오겠어? 못 걷는 내가 이층에 올라왔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어찌 됐든 저 문들 중 한군데만 들어가면 돼.’
이제 손만 뻗으면 되는 거리다. 양쪽 두 개의 방문을 번갈아보며 어디로 들어갈지 잠깐 고민한다.
‘아차, 휠체어!’
그렇다. 계단 앞에 내버려 두고 온 휠체어가 있다!
‘거실을 좀만 둘러본다면 계단 근처의 내 휠체어를 금방 발견할 거야. 그럼 내가 이층에 올라갔다고 알아챌 수 있어.’
“여보?”
철렁. 그녀가 대뜸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다. 황급히 고갤 돌려 복도를 보지만 여전히 이층엔 그녀 말곤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소리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왔다는 것을.
“여보!”
더 큰 소리가 다시 그녀의 귀를 때린다. 이제 그녀는 확신한다.
‘저 밑에 병우씨가 있어. 저 계단 아래에. 휠체어를 발견한 걸 거야.’
뚜벅뚜벅. 이 추정을 증명하듯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이, 더욱 뚜렷이 들려온다.
그녀가 서둘러 오른쪽 방문의 문고리를 잡는다.
‘제발 열려라.’
철컥. 문이 열렸다.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기는 그녀보단 걷는 그가 빠르다. 어느새 그녀의 시야로 그의 검은 머리가 보인다. 곧 1~2초 뒤면 그녀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오리라. 우스꽝스럽게 도마뱀처럼 바닥에 엎져 있는 그녀 모습이.
♪~~♪~~.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의 옷 안에서.
때마침 그가 멈춰 선다. 다행히 그의 눈이 이층 복도가 보이는 위치 직전에서 더는 올라가지 않는다.
그가 품에서 폰을 꺼내 전활 받는다.
“예, 집 안입니다.”
운이 좋았다. 그 틈을 놓칠 새라 그녀가 재빨리 방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여전히 계단에 그대로 서 있는 채 통화를 한다.
“기다리라고요? …… 예, 그럼 그렇게 하죠.”
방에 들어선 그녀가 문마저 살며시 닫히고는 한숨을 돌린다. 기진맥진해 축 늘어지는 그녀.
‘아직 끝난 게 아냐. 조만간 여기로 올라올 거야.’
방 안에 숨을 데가 없나 둘러본다. 다행히도 방이 침실이다. 눈앞으로 침대가 보이고 옆에는 큰 옷장도 보인다.
‘일단 숨어야 돼.’
그러면서 방에 뭐가 있나 더 둘러보는 그녀.
방구석에 탁자가 하나 있는데, 그 위로 큰 모니터가 있다. 모니터가 켜진 채로 화면이 떠 있는데, 한 화면이 아닌 여러 개로 분할이 되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나눠진 여러 화면에 떠 있는 영상이 놀랍게도 이 별장의 실시간 영상들이다. 감시 카메라에 찍히는 중인 장면들인 것.
‘이 집에 CCTV가 있었나?’
그녀는 이 별장서 감시 카메라를 직접 본 경험이 없다. 즉, 저 영상들은 몰래 설치된 감시 영상이라는 것이다.
보면 거실에서 찍히는 영상에 계단 밑에 방치된 휠체어가 보인다. 그 위 계단 한복판에서 그이가 아직도 통화중인 것도 보인다. 집안 곳곳을 감시하는 모니터인 것이다.
‘근데 이층은 없어. 다 일층뿐이야.’
생각대로 그녀가 자는 침실을 포함해 화장실까지 일층 전역에 몰래카메라들이 감시 촬영 중이지만 이층을 찍는 건 단 한개도 없다.
‘그럼 병우씨가 이 방에서 날 감시해 온 거야? 거기다 저 방에선 정민씨와 함께 찍은 사진을 놔둔 채로.’
이층에서 발견한 그이의 다른 모습에 그녀는 분노와 모멸감을 느낀다. 어느새 눈에서 새어 나온 물줄기가 볼을 타 뜨끈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이제 그는 그녀에겐 위험한 존재다. 또한 용서할 수 없는 존재다. 그녀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래, 상황이 이렇게 된 거 일일이(112)에 신고를 하자. 내가 안전하려면 그 수밖에 없어.’
하지만 마침 모니터로 통화를 마친 그가 마저 올라오는 게 보인다.
‘제길, 신고는 나중에 해야겠네. 우선 몸을 숨겨야 해.’
뚜벅뚜벅.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곧장 그녀가 있는 방 앞까지 온다.
벌컥! 그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숨을 죽인다.
‘왜 여기로 곧장 온 거지? 혹시 저 감시영상 때문인가?’
다행히 그녀는 그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몸을 감췄다. 한편 방안에 들어선 그가 모니터를 점검하고는 방을 둘러보며 속으로 생각한다.
‘정말 그녀와 끝장을 볼 때가 왔어.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그가 폰을 꺼내 발신을 보낸다.
“전원이 꺼져 있어……”
예의 자동응답이 들려온다.
‘어느 틈에 꺼놨군.’
여전히 쥐 죽은 듯이 숨어 있는 그녀는 그가 들어오기 직전에 폰도 꺼놓은 게 천만다행이었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안도와 달리 그는 이렇게 생각하는 중이다.
‘아마도 이 안에 있을 거야. 이층에서 몸을 숨길만한 방은 사실상 여기 밖에 없으니까. 자, 그럼 어디 있을까?’
그녀는 그가 이미 자신이 여기 있단 걸 간파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입과 코를 손으로 틀어막고 가만히 경과를 지켜본다. 조용한 입, 코와 달리 몸 속 맥박은 사정없이 방망이질 치고 있다.
이윽고 그가 성큼성큼 움직인다. 그리고는 먼저 생각해 둔 거기를 멀쩡한 오른손으로 열어젖힌다.
덜컥! 옷장을 열었다. 옷들만 있을 뿐 아무도 없다.
이를 침대 밑에 있던 그녀가 지켜보고 있다. 볼 수 있는 건 그의 발과 발목뿐이지만.
옷장이 아니란 걸 확인한 그가 뒷걸음치더니 그대로 침대에 걸터앉는다. 그녀 머리 바로 위의 매트가 크게 한번 요동친다.
‘이젠 딱 한군데뿐이군.’
그러면서 그가 시선을 아래 발쪽으로 둔다. 슬슬 몸을 낮춘다. 그녀도 그의 몸이 침대 밑을 향하고 있다는 걸 직감한다. 이제는 피할 수 없다.
‘그이가 날 죽일까? 설마? 어쩌면 죽이지 않을 수도 있어. 죽일 거란 보장도 없고. 이렇게 고민해 봤자 어차피 선택권은 그가 가지고 있지만.’
그의 손이 침대 매트 밑 부분을 집었다. 그녀가 더 이상 보지 못하겠는지 두 눈을 질끈 감는다.
♪~~♪~~. 또 폰이 울린다. 그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는다.
“예. …… 직접 하시겠다고요? …… 아닙니다. 그렇게 하죠.”
그러더니 후다닥 방을 나가 버린다. 뒤돌아보지 않고 서슴없이, 이번에도.
‘또 운이 좋았네.’
결정적인 순간, 두 번에 때맞춰 그의 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이가 누군지 모르지만, 마치 그녀가 어딨는지 알고서 도와주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어쨌든 지금이 기회야.’
그녀는 재빨리 폰의 전원을 켜고는 번호 112를 누른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웅~~ 웅~~. 이번엔 그녀의 폰이 진동벨로 울린다. 그녀에게도 때맞춰 전화가 왔다. 그런데 발신인이 ‘나의 그이’가 아니다. 등록이 안 된 휴대폰 번호다.
‘이 때에 누구지? 그이 말고 지금 내게 전화를 걸 사람이 누구지? 그것도 모르는 번호로.’
시간도 촉박한 상황인지라 그냥 종료를 누를까 갈등한다.
‘아! 그 남자! 어제 그 남자일지도 몰라!’
그녀는 잠시 잊고 있던, 어제 낮에 전화를 한 그 남자를 떠올렸다.
‘그 남잔 날 돕고 있다고 했어. 그이가 날 속이고 있다는 것도 미리 알려줬고. 어쩌면 그자일지도 몰라.’
통화 표시를 누른다.
“이연미씨?”
그다! 낭랑하고 절도 있는, 그 남자의 목소리다!
그녀는 이제와 보니 이 남자가 자기편이라는 사실과 이 중요한 순간에 연락을 해줬다는 것에 천군만마를 얻은 양 큰 안도감을 느낀다.
“저 좀 도와주세요.”
그녀가 속삭이듯이 낮게 말한다.
“네? 무슨 일이죠?”
“당신 말이 맞았어요. 그이가 날 속이고 있었어요. 지금 전 숨어 있어요. 그이가 날 찾고 있는 중이구요.”
그녀의 어조가 점차 다급해진다.
“진정해요. 제가 거기로 가는 중입니다.”
“네? 거기라뇨?”
“별장이요. 당신이 있는 곳. 건물이 보이는군요. 거의 도착했어요.”
‘여기로 오고 있다고? 이 남자 정말로 정체가 뭐야?’
그녀로선 현재 정체는커녕 영문조차 알 수 없다.
“내가 오기 전까지 문을 잠그고 기다려요.”
“예, 알았어요.”
뚝. 이번에도 그는 어제처럼 아무 예고 없이 통화를 끊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와는 다르다. 지난번처럼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겨를 따윈 없다.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와 문으로 다가간다. 그이가 문을 열고 불쑥 들어오지 않을까 불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손을 뻗어 철컥 문을 잠그는데 성공한다.
상체를 더 올려 세워 아예 잠긴 문에 자신의 등을 기댄다. 이후 숨을 고른다.
‘그자가 올 때까지 버티면 돼.’
그래도 사태의 전말을 몰라 아직도 아리송한 그녀다.
‘도대체 이게 다 어떻게 된 걸까? 종잡을 수가 없어. 그 사람이 와서 날 구해주면 그때 모든 걸 물어보자.’
누군지 이름도 모르는 남자를 구원자처럼 기다릴 뿐이다.
침실을 다시 살핀다. 그녀가 있는 곳은 본래 병헌씨네 침실이었다. 사고 이전에 병헌씨네가 이층의 침실을 사용했고, 그녀와 그이는 일층을 사용했었다. 그녀가 어제오늘 자던 침실이 이전에 그이와 함께 썼던 곳이었다.
‘맞아, 여기가 병헌씨네 침실이었지. 근데 병우씨가 왜 여길 쓰는 거지? 거기다 작업실도 자기 거가 아닌 병헌씨 거를 썼어. 왜 그런 거지?’
난데없이 이 방 침대 위에서 그이와 정민씨가 다정히 붙어있는 장면들이 앞에 아른거린다.
‘뭐지? 갑자기 이런 장면들이……’
그녀가 눈을 비빈다. 그러자 그 환시(幻視)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내 환시 대신 환청(幻聽)이 들려온다.
‘이연미씨?’
어떤 정체 모를 남성의 부드럽고 나긋한 목소리다.
거기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온통 검은색 추리닝에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라는 게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의 손에 줄 달린 금색 회중시계가 들려 있던 것도.
‘내가 왜 이러지? 환시에, 환청에……. 너무 긴장해서 그런가? 그런데 어째서 다 이전에 보고, 들은 거 같이 느껴지지?’
정신을 차리려는 듯 재차 눈을 문지르고는 머리를 도리도리 흔든다.
‘일단 현재 상황에 집중하자.’
눈꺼풀을 높이 치켜 띄우고는 모니터의 감시카메라 영상을 체크한다. 그이가 안 보인다. 아니 침대 밑에 나온 이후부터 그이는 쭉 안보였다.
‘설마 아직 이층에 있는 건가?’
마침 감시카메라에 처음 보는 남자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인다. 수염이 덥수룩한, 점퍼 차림의 사내가 거실로 오더니 지체 없이 이층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뚜벅뚜벅.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그 사람이 왔어. 진짜로. 바로 어제 그자야.’
이윽고 발소리가 그녀의 뒤, 문 너머에서 정확히 멈춘다.
침묵이 흐르고, 그녀가 침을 꼴깍 삼킨다.
똑! 똑! 그가 문을 두들긴다.
“이연미씨, 제가 왔습니다. 이제 안심하세요.”
폰 너머로 들었던 그 목소리다.
‘이제 됐어.’
“문 좀 열어주겠어요.”
그녀가 기댄 몸을 문에서 떼어 내고는 문의 잠금을 해제한다. 철컥. 직접 문을 열어 그를 맞이한다.
여기저기 수염이 나 있으면서 매끈한 얼굴선과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젊은 남자가 그녀를 향해 서 있다.
그녀가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이하려는 찰나, 그의 옆을 보고는 표정이 얼어붙는다. 앞에 있는 건 그 사람 한 명만이 아니었다! 그의 옆에 또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
수염이 있는 사내는 가만히 있는 가운데, 다른 남자가 그녀를 향해 방 안으로 발을 옮긴다.
그녀가 그의 얼굴을 보더니 경악하며, 뒤로 허겁지겁 마치 배영을 하듯이 기어간다.
그의 얼굴은 ‘병헌’씨이다! 죽은 줄 알았던 그가 지금 그녀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