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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술사
작가 : HUNHUNHAN
작품등록일 : 201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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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거짓말 四 정명진
작성일 : 16-10-18     조회 : 662     추천 : 0     분량 : 8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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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낮에 도시 한복판 다차선 도로. 러시아워 시간대도 아닌데, 본래 막히는 구간인지 차량들이 일렬들로 물샐틈없이 한가득이다. 느릿느릿 나무늘보 마냥 이동을 하는 건지 정차를 해 있는 건지 구분조차 안 가는 교통의 아비규환 속 한가운데에 RV차 한 대 안으로 화와 라영이 있다.

 

 화는 운전 중이고, 라영은 옆에서 조수석 시트를 확 뒤로 젖혀두고는 너무도 태평하게 실상 누워있다시피 하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대고 있다. 화가 그런 라영을 옆에서 곁눈질로 힐끗힐끗 살핀다.

 

 “현재까지 알아챈 게 있나요? 운전 중이신 우리 셜록 씨.”

 

 그녀가 놀리듯이 빈정대는 어투로 말을 뱉어낸다. 뜬금없이 나온 비꼬는 식의 질문에 화가 뜨끔해 한 듯하다. 놀리는 게 불편한지 잠깐 언짢은 미소를 짓고는 흐음 목을 한번 가다듬더니, 괜스레 목소리를 깔고 엄숙하게 그것도 연극 톤으로 답한다.

 

 “아직이요. 왓슨 양. 그래도 이 셜록이 단서를 더 모아서 진상을 전부 풀어낼 거예요. 오늘 안으로. 두고 보아요.”

 

 “어디 한번 두고 보지요. 자칭 셜록씨. 근데 운전만하다 오늘 시간이 다 갈지도 모르겠네요.”

 

 라영의 말마따나 교통 체증에 답답한지 화가 핸들 위의 손가락을 딱딱 까딱댄다. 머잖아 평상시의 말투로 돌아가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 구간은 언제나 막힌다니깐. 그래도 자식들과 만날 때까진 아직 세 시간 정도는 남아있어.”

 

 라영도, 눈은 여전히 스마트폰에 둔 채로, 이제 정상적인 목소리로 묻는다.

 

 “근데 자녀들이 이상하지 않았나요? 다들 어머니가 좋은 분이였다, 안쓰러웠다 하면서 정작 속으론 싫어한 듯해요. 특히 딸은 다소 노골적이었구요.”

 

 “사람이란 게 이해(利害)관계의 동물이니까. 서순하가 착하고 상냥한 인물이었다 해도, 친절이란 것이 타인들을 언제나 만족시키는 건 아니지. 특히 불쌍하다 여겨서 한 자식을 편애했다면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밖에. 배려라는 것도 차등을 두면, 차별이 되어 버리거든. 그랬으니 자식들의 마음을 못 얻은 거겠지. 신경을 쓴 셋째 놈은 어떨지 아직 미지수지만.”

 

 “심성이 착한 부모가 꼭 좋은 부모인 건 아니다. 이건가요? 씁쓸하네요. 어쨌든 첫째하고 둘째는 만났고 막내 심대주는 나중에 보기로 한 거죠?”

 

 “응. 심대주는 그쪽 사정상 당장은 힘들고, 있다가 만나기로 했어. 지금 그가 시외에 나가 있거든.”

 

 “그가 요주의 인물이네요. 지금으로선. 가족 중의 사고덩어리. 그 인간을 그 할머니 집에서 보는 거죠? 우리가 가는 중인 그곳에서. 근데 거긴 지금 아무도 안 살죠?”

 

 “응. 현재는 빈 집이지. 대신 막내란 놈이 관리 중이야. 그 집을 어머니 유산으로 받았으니까. 이왕 가는 김에 탐문 수사도 해보자고. 그쪽 주변인들을 만나보자고. 시체 발견자인 경비원도 포함해서 이웃들을. 하나하나씩.”

 

 “어쩌면 편지를 보낸 소위 ‘고발자’가 그곳에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래, 어쩌면.”

 

 차가 교차로 앞에서 신호 때문에 완전히 멈춘다. 화가 그 틈에 핸들서 손을 떼 품에서 담배 개비 하나와 지포라이터를 꺼낸다. 계속 차 안에 있는 게 따분해선지 담배를 피우려는 듯하다.

 

 개비를 물고 불을 붙이려 라이터 뚜껑을 여는 순간, 불현듯 라영이 일어나더니 그의 입술 사이에 있던 담배를 휙 낚아챈다.

 

 당혹한 화가 실실대는 그녀를 빤히 보며 손을 뻗어서 개비를 다시 낚아채려 한다. 그러나 그녀가 몸을 젖혀진 시트에 다시 눕히더니 태연히 담배를 자기 입에 그대로 물린다. 라영의 당돌한 행동에 화가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손을 드러누운 그녀의 가슴 위 허공에 머뭇댄 채 미적거린다.

 

 “운전 중 흡연은 좀 그러지 않아요? 더욱이 예쁘고 가녀린 여자가 옆에 있는데. 그리고 우리가 담배냄새까지 공유할 사인 아직 아니죠? 아직은.”

 

 화가 체념한 듯 고갤 돌려 정면을 보고 핸들을 다시 잡아 앉은 자세를 바로 잡는다.

 

 “근데 담배를 그리 피워대는데 추리가 잘되나요?”

 

 “셜록도 골초였어.”

 

 “셜록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이잖아요. 어쨌든 좋아요. 추리에 도움이 된다면 여기요.”

 

 라영이 자기 입에서 담배를 빼내 화 코앞으로 내민다. 화가 감정이 동한 건지 흘끔 눈알만 아래 움직여 담배를 보지만 이내 시선을 거두고 창 너머 신호등을 응시한다.

 

 “됐어. 담배를 못 태우는 것보다 당신 잔소리가 귀찮으니까.”

 

 “그래요. 그거 고맙네요.”

 

 라영이 담배를 한번 머쓱하게 보곤 재킷 안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는 폰을 다시 집어 스마트폰 삼매경에 들어간다. 한편 화가 그래도 입이 심심한지 침을 꼴깍 삼킨다. 이어 신호가 바뀌자 기어를 N에서 D로 옮기고 액셀을 밟는다.

 

 

 ***

 

 

 거대한 고층아파트 건물 뒤쪽. 삼림(森林)으로 꽉 찬 뒷산이 마주한 가운데, 아파트와 산 사이 공간에 잘 정돈 된 초목과 이에 둘러싸인, 깨끗하고 연붉은 아스팔트 산책로가 있다.

 

 산책로 가에 듬성듬성 앉아 쉬기 좋게 벤치들이 놓여 있는데, 그 벤치들 중 하나 근처에 화와 라영이 길 위로 나란히 서 있다. 그들 맞은편에는 앞머리가 벗겨진, 노년 경비원이 격양된 모습으로 진술을 하고 있다.

 

 “어휴.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인데, 시체를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장례식도 아니고. 깜깜한 밤에 혼자 순찰하다 길바닥에서 말이야. 얼마나 무서웠는지. 오금이 저린다는 말 있잖아? 진짜 그때 여기 팔꿈치가 덜덜 떨리더만. 바로 여기였어. 우리가 서 있는 여기. 얼마나 쇼크를 먹었으면 아직도 잘 때 꿈에서 나와. 할 수만 있다면 그때 기억을 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구만.”

 

 경비가 본인의, 너무 훤칠한 이마를 가리키며 말을 매듭짓는다.

 

 라영이 여기가 추락 현장이라는 언급에서 나름 주위를 둘러보지만 딱히 얼마 전 누군가 떨어져 사망한 흔적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변고(變故) 이후 삼주 정도의 시간 동안 뒤처리가 잘 이루어진 듯하다고 속으로 으레 짐작한다.

 

 “당시 순찰하실 때 수상한 일이나 의심쩍은 사람은 없었나요?”

 

 라영이 묻는다. 켜둔 녹음기를 손에 든 채.

 

 “아니. 사실 시체를 발견한 거 빼면, 상시와 다른 점은 없었지. 시체를 본 게 워낙에 충격이 컸지만.”

 

 “사소한 거라도 좋아요. 그 날…… 아니 그 전날. 발견한 시간이 두시 경이었으니까. 살짝이라도 있었다면.”

 

 경비가 골똘히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있긴 했지. 지하주차장서.”

 

 “지하주차장이요? 뭐죠?”

 

 “그 날 밤 내내 이상한 차 한 대가 있었어.”

 

 “차요?”

 

 “스포츠칸데 꽤나 비싸 보이는 차드만. 뚜껑이 닫혀 있었는데, 차색이 새빨갛고 삐까뻔쩍한 게 눈에 확 띄더라고. 딱 봐도 외제차 같더라고. 근데 디자인도 특이했어. 차체 밑이 워낙에 낮더라고. 바닥에 끌리지나 않을까, 잘 굴러나 갈까 괜히 염려될 만큼.”

 

 “여기 주민 건가요?”

 

 “아니었지. 주민 스티커도 없었고. 그날 밤 이후론 한 번도 보질 못했거든. 당연 외부인이었겠지. 근데 놈이 개념이 없는 인간인가 출입문 바로 옆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다 딱하니 주차를 해놨더만. 그래서 더 눈에 들어왔었지. 아마도 차 주인이 돈 많은 부모를 둔, 싹수없는 젊은 놈팽이일 거야. 그런 녀석이 아니면 누가 그런 차를 몰고 다니겠어? 그때 아파트불법주차스티커를 붙일까 했는데. 비싼 외제차라 괜히 해코지 당할까봐 놔뒀어. 돈 많은 놈은 함부로 건들면 안 되니까. 괜히 다치기 십상이지. 나처럼 나이 들어도 돈 없는 늙은이는. 어디 중국인가 다른 나라선 람보 머시긴가 고급차를 기스 하나 냈다고 바로 옆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 노인도 있다더만.”

 

 “그거 빼곤요?”

 

 “없었지. 사실 그 차도 우연히 그날 눈에 띈 것뿐이지. 죽은 그 여자하곤 하등의 상관도 없을 걸.”

 

 라영이 경비를 심문하는 동안, 화는 한적한아파트 건물 뒷공간을 말없이 감상하듯 유유자적 살펴본다.

 

 “혹시 당시 이 장소에서 사체를 발견한 직후 어떻게 하셨죠?”

 

 “처음엔 화들짝 놀랐지만 그래도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일일이(112)에 신고를 했지. 늦은 새벽이어도 경찰들하고 앰뷸런스하고 재깍 와서 금세 현장을 정리하드만. 두 시간도 채 안 돼서 싹 치우고 사라지더라구. 그래 가지고 아침에 해 뜰 땐 아무 일도 없던 양 됐지. 봐봐. 지금 봐도 누가 저기 저 옥상서 사람이 여기로 떨어져 죽었다고 알 수나 있겠어?”

 

 경비가 이번엔 ‘옥상’이라는 단어에서 손가락을 위로 번쩍 치켜들어 아득해 보이는 고층아파트 꼭대기를 가리킨다. 어림잡아도 최소 이십층은 넘어 보이는 그 곳을.

 

 “하기사 그게 좋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여기 아파트엔 애들도 많이 사니까. 어른들은 숙덕숙덕 거려도 애들은 가급적 모르는 게 낫겠지.”

 

 “요사이 그 집 막내아들은 보셨나요? 현재 거기 집을 관리 중이라는데.”

 

 “거기 막내놈은 이따금씩 봤지. 당시 일에 관해서 나한테 직접 와서는 당시 사체를 본 일에 관해 꼬치꼬치 캐 묻드만. 몇 번씩.”

 

 “그래요?”

 

 라영이 열심히 탐문을 하는 중임에도 화는 도통 관심이 없는 건지 그녀와 경비에게 아예 등을 돌린 채로 있다. 여전히 주위를 보는 건지 아니면 내면의 상념에 빠져있는 건지 가늠을 할 수가 없다.

 

 “그럼 돌아가신 할머니 내외하고 친하게 지낸 이웃이 누가 있는지 혹여 아시는 거 있나요?”

 

 경비가 입을 굳게 다물고는 부정의 의미로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어이쿠야. 일개 경비가 그걸 어찌 알겠나? 봐봐.”

 

 그러면서 즐비하게 늘어선 거대한 아파트 건물들을 손가락으로 휙 가리킨다.

 

 “이 아파트 가구 수가 얼만데. 사실 돌아가신 분도 생전에 어찌 생겼는지 잘 떠오르지도 않아. 그나마 막내 얼굴은 그 후로 몇 번 직접 얼굴을 마주했으니, 보면 겨우 알아챌 수라도 있을 정도지.”

 

 근데 경비가 뭔가 생간 난 듯 아차하면서 위아래 입술들을 턱이 빠질 듯이 쩌억 크게 벌린다. 그것도 손뼉까지 짝 치면서.

 

 “아하, 잠깐. 잠깐만. 그 죽은 할머니하고 간혹 같이 붙어 다니던 할머니가 하나 있긴 했네. 그 할머니는 인상이 원체 특이해서 기억이 나. 근데 여기 주민인 거 같은데 정확히 누군지는 도무지……. 어디가 집인지도 모르겠고. 어쩜 다른 동일 듯한데……”

 

 라영이 정답이 나오길 가다리며 초조히 지켜본다.

 

 “이런 모르겠네. 모르겠어. 아파트에 사는 인간이 한둘도 아니고.”

 

 경비가 혀를 차면서 설레설레 머리를 흔든다. 실망한 라영은 입술을 깨문다.

 

 잠시간 적막이 흐르고 나서, 경비가 난데없이 낡은 구형 폴더폰을 꺼내더니 눈을 찡그리면서 앞 액정화면을 코가 닿게끔 바짝 대어 본다.

 

 “어이쿠 시간이 이렇게 됐네. 경비는 자리를 오래 비워두면 안 돼. 컴플레인 들어온다고. 게다가 오늘이 화요일이니 해 털어지기 전에 한번 분리수거장 정리도 좀 해둬야겠구만. 이만하면 됐지. 이만 갈게.”

 

 뭐라 말할 틈도 안 주고 경비가 휙 돌아 연세(年歲)답지 않은 잽싼 걸음으로 멀어진다. 금세 거대한 아파트 건물 사이에 난 길로 사라진다.

 

 

 ***

 

 

 1408이라는 호 번호가 박혀있는 문이 굳건히 잠겨 있다. 문 양 옆의 벽면에 형태는 네모지만 크기는 제각각인 광고지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집 앞 복도 공간에서 화와 라영이 서성인 채 하염없이 문만 보면서 있기만 해 있다.

 

 라영이 대뜸 얘기를 꺼낸다.

 

 “대주씨는 언제 오는 거죠?”

 

 “아까 오는 중이라고 문자를 보내왔어. 방금 전 출발했대.”

 

 “그럼 시외에 있다 했으니까 올려면 한창 걸리겠네요. 그 사람 허락 없이 무단침입을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죽치고 있기도 그러고. 탐문을 좀 해 보죠.”

 

 “그래서 뭘? 어떻게 탐문을 하면 좋으실까요? 전직 기자 양반.”

 

 화가 느긋하게 묻는다.

 

 “이미 관리사무소엔 다녀왔고 반상회는 도움이 안 되고. 그 친하다는 할머니를 어떡해서든 찾으면 좋겠는데 어느 동 누군지를 모르니. 게다가 이 아파트가 아닐 수도 있고. 그런데 시간마저 촉박하네요.”

 

 라영이 그리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맞은편 호실문으로 눈이 간다.

 

 “혹시 여기 옆집에 물어보는 건 어때요?”

 

 화가 절레절레 젓는다.

 

 “소용없는 짓이야. 이 현대 시대에 바로 옆집은 남남이라고. 아파트 살면서 옆에 누가 사는지 아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어? 당신은 알아?”

 

 화에게 정곡을 찔렀는지 라영이 머뭇댄다.

 

 “바보 같은 생각이지.”

 

 화가 덧붙이는 말로 그녀의 정곡을 확인 사살한다. 그렇지만 라영이 바보라는 단어에 울컥한 건지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고서 그보다 더 세찬 어투로 그를 쏘아붙인다.

 

 “그래도 모르잖아요! 일말의 여지가 있으면 부딪혀 봐야지.”

 

 “기자 정신인가?”

 

 화가 더 뭐라 할 새도 없이 라영이 막무가내로 맞은편 1407호로 다가가 초인종 버튼을 누르려 한다. 그런데 손가락 끝이 버튼에 닿으려는 찰나……, 띠리리리 스르륵 철컥. 때마침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화장을 안 한 민낯의 젊은 여자가 평상복을 입은 채 양손엔 커다란 종이박스를 들고서 모습을 드러낸다. 분리수거를 하러 가는 건지 상자 안에는 주로 페트병 같은 재활용 플라스틱들이 빼곡히 담겨져 있다.

 

 뜬금없는 집주인의 등장과 함께 의아하게 그들을 보는 그녀의 모습에, 마침 우연히도 초인종을 누르기 위한 집게손가락이 집주인 여자의 인중을 가리키게 된 라영은 무안해하고 그 뒤에 화는 키드키득거리며 숨을 참는다.

 

 딱 봐선 라영과 비슷한 나이지만 풍기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얼굴은 그저 평범하다. 라영에 비해서 말이다. 아니면 라영이 도드라지는 것일 수도.

 

 삶에 찌든 건지, 갓난 자식에 찌든 건지, 뭔가 나이에 걸맞지 않아 보이는 주름과 초췌함에서 육아를 시작한지 좀 된 여성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어쩌면 라영은 미혼이고 문 너머 여자는 신혼이기에 미(美)의 여부를 떠나 서로 그런 차(差)가 느껴지는 걸 수도 있다. 기혼과 미혼의 차이 때문에 말이다.

 

 분리수거하려고 나온 갓 주부가 잘생긴 선남선녀지만 괴이쩍게 떡하니 서 있는 그들을 번갈아 보더니 한번 머뭇하곤 입을 뗀다.

 

 “저 성당 다녀요.”

 

 다시 킥킥 웃는 화. 이제는 눈물이 핑 돌며 곧 숨이 넘어갈 정도다.

 

 비웃는 화와 달리 여전히 열이 죽어 있는 라영. 집주인 면전에 선 손가락은 진즉에 치운 상태다.

 

 라영이 진정을 하려는지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는 마음을 가다듬어 차분히 첫마디를 꺼낸다.

 

 “안녕하세요.”

 

 다음 마디들을 잇는다.

 

 “저희들은 보험사에서 나온 사람들인데요.”

 

 보험이란 단어에 갓 엄마가 반사적으로 대꾸한다.

 

 “미안하지만 관심 없어요.”

 

 하하하! 화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이내 두 여자의 따가운 눈총이 보이자 헛기침을 크게 하면서 숨을 고르고는 입을 굳건히 다문다.

 

 “저희들은 판매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조사를 하러 온 거예요. 여기 1408호 할머니 얘기 아시죠? 거기 관련해서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주부가 붙들리는 시간이 길어지겠다고 판단했는지 들고 있는 상자를 바닥에 사뿐히 내려놓는다.

 

 “할머니 애긴 들었어요. 참 안 된 일이에요.”

 

 “아시는 게 있나요? 아니면 서로 아는 사이였다든가?”

 

 “전혀요. 그냥 노부부분이 옆에 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죠. 우연히 만나면 인사나 나누던 정도. 실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전혀 몰랐어요. 할머니는 사고가 사고인지라 당일 낮에 소문을 듣고서 알게 됐죠.”

 

 “혹시 사고 뒤에 1408호에 들락날락한 사람은 없었나요?”

 

 “아무도요. 아니 정확힌 아무도 보지 못했죠. 그런데 자녀들이 관리 중이지 않나요? 누가 사는 거 같진 않고, 집이 팔리는 데는 시간이 걸릴 거 같고.”

 

 마치 혼잣말하듯이 응답한다.

 

 “요새 주위에서 이상한 얘기나 수상한 일은 없었고요?”

 

 “딱히는요. 저기 죄송하지만 이만 가 볼께요. 아이가 자는 중에 분리수거를 하러 나온 거라.”

 

 화가 그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매너 있게 박스를 대신 들어준다.

 

 “대신 해줄까요?”

 

 “아뇨. 금방이면 되는데요, 뭘. 그리고 분리수거장이 어딘지도 모르실텐데.”

 

 주부가 박스를 화에게서 옮겨 받는다.

 

 “근데 분리수거가 언제든지 가능한가요?”

 

 화가 대뜸 묻는다.

 

 “아뇨. 화요일하고 목요일 그리고 주말만 가능해요. 오늘이 화요일이고요.”

 

 “월수금은 안 되고요?”

 

 “네.”

 

 “계속 그래 온 건가요?”

 

 “네.”

 

 그녀 입장에선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을 꼬치꼬치 하고 있어 보이지만 그래도 성심껏 대답은 해준다. 목소리 크기가 점차 줄어들었지만.

 

 엘리베이터 문 위에 뜨는, 하나하나씩 올라가는 층수를 올려다보면서 다리를 약간씩 까딱댄다.

 

 “여기 산 지는 얼마나 됐죠?”

 

 “이년 정도.”

 

 12, 13, 14. 드디어 전광판에 숫자가 정지한다. 띵동. 드르르륵. 도착했다. 주부가 가볍게 목을 끄덕이는 식으로 인사를 하고,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선다.

 

 “하나만 더요!”

 

 오도카니 서 있던 라영이 느닷없이 외친다. 화가 센스 있게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 문을 열린 채로 한다.

 

 “돌아가신 분하고 친한 할머니가 한 분 있다던데.”

 

 기대는 안 하지만 혹여나 하고 마지막 물음을 던졌다. 주부가 라영을 반히 살피면서 입을 연다.

 

 “혹시 정씨 할머니를 얘기하는 건가요?”

 

 뜻밖의 수확에 옳거니 화색이 도는 라영.

 

 “설마 그분을 아세요?”

 

 “네. 그게 이 엘리베이터에서 그 할머니가 몇 번 얘기를 걸어서요. 그분이 누구든지 간에 남한테 말을 잘 거시는 분이거든요.”

 

 “혹시 어디 사시는지도 아시고요?”

 

 라영이 잔뜩 기대에 찬 눈으로 그녀를 주시한다. 곧바로 원하던 단어가 들린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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