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도대체 무슨 얘긴지……”
어리둥절해하는 그 사람이 방바닥에 자빠져 있는 상태로 말을 잇지 못한다. 맞은편에 떡하니 서 있는 두 사람 중 남자 하나가 입을 연다.
“본론을 먼저 얘기하는 게 좋겠군요.”
남자가 그 사람을 똑바로 보면서 또박또박 다음 말을 뱉어낸다.
“당신의 기억은 조작됐습니다. 그리고 조작된 건……”
***
하루 전날.
한적한 대로변에 덩그러니 놓인 공중전화 부스. 낮 햇살이 내리쬐는 부스 안으로 남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수화기는 얼굴에 바짝 대고 있다. 남자가 진중한 어조로 통화를 하는 중이다.
“그 사람에게 집중하세요. 찬찬히 기억을 되짚어 보면, 그 사람이 숨기는 게 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모순을 찾아내세요. ‘모순’을 말입니다.”
***
또 그 전날. 즉,
< 첫째 날 - 그 >
높고 쾌청한 하늘 밑으로 푸르른 야산들과 황금빛 들판,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반듯한 2차선 도로가 보인다.
새하얀 택시 한 대가 쌩하고 도로 위를 내달린다. 택시 안에선 중년의 기사가 뒷좌석에 청년 손님을 태워 놓고선, 속사포처럼 그것도 우람한 소리로 얘기를 난사하고 있다. 청년은 기사의 얘길 듣는 둥 마는 둥 창 너머 휙휙 바뀌는 시골 경치에 눈을 두면서, 속으론 끓어오르는 부아를 삭이며 생각했다.
‘내내 정치 얘기네.’
택시기사가 장시간 차 안에 지내고 하다 보니 심심해서라도 승객과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걸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말을 하려거든 나름 손님들 눈치는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얘기를 걸기가 어딘가 알맞지 않은 상대거나 말하고 듣는 걸 본래 좋아하지 않는 타입으로 보이거나 혹은 당장 내켜 하지 않은 거 같으면, 보통은 묵묵히 운전만 하는 게 예의(禮儀)고 또한 그러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근래 자주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청년의 경험이 그랬다. 그리고 청년은 앞에 열거한 승객에 대한 경우들 중 후자에 해당했다. 실제로 청년은 택시에 탄 이후 ‘예’라는 단어 외엔 다른 말은 꺼내지도 않았으니까. 허나 이 기사는 청년이 반응을 하건 말건 그가 승차한 이후 십분 내내 정치 얘기뿐이었다.
‘사람 피곤하게.’
오늘은 한창 일을 하고 몸이 녹초가 된 상태로 퇴근하는데다, 어젯밤 아내와 불미스런 일도 있었기에 그는 차에 탄 순간부터 말 걸기는커녕 들어주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었다. 가야 될 곳까지 이십분이 좀 넘는 거리니 괜찮다면 잠깐의 시간이나마 눈을 붙이면 좋겠단 생각이었는데 이미 말짱 도루묵이 된 듯했다.
‘조금이라도 편히 있고 싶은데, 이 수다쟁이 기사 땜에 다 망쳤네.’
기사가 끝이 안 날 것 같던 입의 움직임을 잠깐 멈추더니, 무슨 일인지 룸미러로 뒤의 청년을 자꾸 힐끗 살핀다. 그러다 불쑥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거 보니 손님 팔이 다치셨네.”
정치인 욕만 해대던 기사가 청년의 한쪽 손목에 석고붕대가 싸여 있는 걸 이제서야 발견하고선 화제를 전환하는 것이다.
“예.”
청년은 차에서 내내 그래왔듯 짧게만, 그것도 쌀쌀맞게 대답했다.
보면 청년이 입고 있는 양복 상의(衣)의 왼쪽 팔목 부분이 두툼하다. 그 안으로 흰색 깁스를 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옷에 가려져 팔에 얼마큼 깁스가 됐는지는 정확하게 보이진 않으나, 볼록 나온 부분을 봤을 때 육안으로 보이는 손목에서부터 팔꿈치 바로 밑까지 둘러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리고 가운데와 넷째 손가락엔 석고는 아니나 고정 장치와 함께 붕대가 휘감겨 있다. 이것이 그가 택시를 탈 수 밖에 없는 ‘사정’이었다.
‘거 정말 빨리도 보셨네. 지금까지 정치인 욕만 지겹게 하더니만. 기사 양반이 눈치가 차암 빠르셔.’
청년은 속으로 힐난했지만, 겉으론 무심한 듯 차창 밖만 응시하며 내색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직업상 여러 사람들을 가급적 평안하게 상대해야 되다 보니 순간의 감정은 숨기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게 완전히 습관이 돼버렸다.
“젊은 양반이 거 어쩌다 다치셨을까나?”
청년은 짜증이 솟구치는 걸 다시 한 번 참았다. 손에 붕대와 석고 때문에 만나는 사람마다 왜 다쳤냐고 물어보기 일쑤였다. 대답하는 것도 한두 번, 아니 십수 번이지 지금껏 일일이 답하고 설명한 게 족히 백 번은 넘었을 것이다.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도 만나면 꼬박꼬박 한 번씩 어쩌다 다쳤냐고 질문을 해댔다. 어떨 때는 직장 휴게실에서 세 번이나 연달아 똑같이 설명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마음에도 안 드는 기사한테 같은 설명을 또 해야 한다. 지긋지긋해서 단내가 날 지경인 그 얘기를.
“교통사고를 당해서요.”
청년은 아주 간단히 함축적으로 얘기했다. 더 이상 자세히 묻지 말길 바라며, 이대로 그냥 넘어가라 속으로 되뇌며.
“어이구, 어떻게 사고를 당했길래?”
청년은 속으로 혀를 찼지만 사실 예견된 추가 질문이었다. 하긴 누군들 궁금해서라도 더 안 물어볼 리가 없지. 누구나 다 그래왔고.
“다른 차가 신호 무시를 하고 달리다 박아버리는 바람에.”
이번에도 간략하게 답변한다.
“그래도 고만큼만 다친 게 참 다행이구만.”
“예.”
청년은 또 짤막하게 답하곤 시선을 일부러 옆으로 돌려서 바깥 풍경만을 지그시 바라본다. 사실 청년은 진실만 말했다. 하지만 전부를 말하진 않았다.
그 박은 차가 한밤에 총알같이 내달리던 택시였다는 것을. 또 자신이 있던 차엔 본인만 아니라 다른 두 명이 있었단 것을. 그 두 명은 자기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는 걸. 한 명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몸의 상처를. 다른 한 명은 평생 남을 마음의 상처를.
그래서 청년은 그 사고 얘기를 하는 게 더욱 싫었다. 그렇기에 남들이 자기에게 왜 다쳤냐 묻는 것 또한 싫었다. 어쩔 수 없이 사고 얘기를 해야 했으니까. 전부 얘기 않고 감추더라도 그 일을 떠올려야 했으니까.
청년은 문득 생각했다.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들 한다. 그러면서 아픈 이들을 방문하고, 안부를 묻고 다친 경위를 들으며 위로한다.
한데 아픔이란 게 정말 나눠지나? 육체의 아픔은 애초 나눠지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 대신 아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만에 하나 육체의 아픔을 나눌 수 있다면, 그래서 그가 그 사고에서 육체적 고통을 나눌 수가 있었다면, 그의 형제는 현재에도 이 세상에 남아 있었겠지.
그럼 육체가 아니라 마음의 아픔은? 마음이 아픈 것도 말마따나 나눠질 수 있고 반이 될 수 있을까?
내면의 아픔은 기억에서 비롯된다. 기억하기에 괴로움을 다시 떠올리고 계속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위로랍시고 안부를 물으면서 괴로운 일을 재차 생각나게 하는 게 도리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 아닐까?
어쨌든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그게 고통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오히려 아픔의 근원인 기억을 떠올리지 않게 하는 것, 기억이 나지 않게 하는 것, 나아가 기억이 희미해지게 하는 것. 바로 망각하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가슴 속 아픔을 치유하는 약일 것이다.
여하튼 청년이 내린 결론은 아픔이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은 헛소리라는 거다.
“근데 손이 그래 갖고 일하는데 지장은 없을란가?”
기사가 뜬금없이 또 질문을 던진다.
‘자기 하고 싶은 정치 얘기만 실컷 해대더니 뭔 바람이 들었나, 웬 질문질이야?’
청년은 속으론 당연히 내키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겉으론 태연스레 그러면서 또 짧게 답한다.
“없습니다.”
“하긴 바른손은 말짱하니깐.”
청년은 속으로 ‘그야 그렇지’라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뱉어내진 않는다.
“혹시 결혼은 하셨나?”
또 질문이다.
‘질문충이야? 뭐야? 피곤해 죽겠는데.’
속으론 이리 생각해도 대놓고 욕할 순 없는 노릇.
“예.”
딱 한 단어지만 되도록 낮고 딱딱한 어조로 이제는 정말 물어보지 말라는 감(感)을 느끼게끔 뱉었다.
“결혼한 지는 몇 년 되셨을까나?”
다 글렀다. 웬만한 택시기사들은 눈치가 있다. 하기야 하루에도 몇십의 승객을 태울 텐데, 그게 몇 달 몇 년이면 당연지사 눈치가 안 생길 리가. 적어도 청년은 그렇게 믿었다.
근데 이 양반은 천성부터가 아닌가 보다. 꼭 이 기사만 아니라 남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거나, 얘길 안 하면 곧 죽는 거 마냥 입을 쉬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아마도 그런 타입일 것이다. 어쨌든 참 피곤한 기사를 만났다.
청년은 주행 중인 차 안에서 대놓고 씹기는 그러니 어찌됐든 대답은 하기로 한다.
“삼 년 정도.”
“자식은?”
“없어요.”
“젊은 양반이 참. 결혼을 했으면 자식이 있어야지. 이게 처음엔 힘들지만서도……”
또 시작이다. 1막이 정치 얘기였다면 이제 2막은 자기 자식 자랑질이다.
‘결혼 관련 질문도 이걸 위한 밑밥이었군.’
남은 시간에 안식을 취하려던 건 진즉 실패다. 아니, 이미 이 차에 탄 순간부터 이리 될 예정이었다고 봐야지.
‘제길.’
이왕 이리 된 거 청년은 기사의 애절한 자식 자랑은 어떻든 간에 한 귀로 그냥 흘리면서 자신의 심란한 머릿속 상념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결혼이란 화두에 그는 자연스레 본인의 결혼 생활, 나아가 결혼 상대인 아내에 대해 고민한다. 사실 그에게는 아내가 당장의 심각한 골칫거리였다. 어젯밤 그녀와 한바탕 크게 다퉜기 때문이다.
‘한 성깔 하시는 아내가 머리끝까지 열이 잔뜩 올라 나를 쏘아붙였지. 나는 반격조차 하지 않았고. 하기야 그녀가 성낼 만하니까. 그녀에겐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그녀 입장에선 이런 얼토당토않은 상황을 하루라도 용납할 수 없겠지. 따지고 보면 내가 그 사고의 피해잔데. 아니, 아니야. 결국엔 아내도 피해자가 된 셈이로군.’
그는 속으로 모순된 자신의 현재 삶을 한탄하면서도 그 원인에 대해 고민한다.
‘우리의 비극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내가 그녀와 같이 한집에 지내면서부터?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부터? 아니면 그날 그 사건이 일어나서?’
그러고선 금세 답을 내린다.
‘아마도 모두겠지. 처음의 비극이 두 번째 비극을 낳고, 그 비극이 또 다음 비극을 낳고. 비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국이야.’
생각에 너무 잠긴 건지 청년이 깁스를 안 한 오른손 손가락을 깨물어 댄다. 버릇인 듯하다.
‘하지만 이제 곧 그 비극의 고리도 끝이야. 더 이상 방치하면 내 가족도 나 자신도 끝장이니까.’
그러면서 아까 전까지 물던 오른손을 불끈 쥔다.
‘이제는 족쇄를 풀 때가 됐어. 나야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아내와 함께. 그리고 그녀도 미련을 버리고 나중을 살아야 한다.’
기사는 어느새 첫째 자랑을 마치고 둘째 자랑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청년에겐 남의 자식 이야긴 어차피 알 바 아니었다. 당장 자기 가족이 문제고 위긴데.
기사의 말은 여전히 흘려들으면서 청년은 창 건너로 시골 도로에서 간혹 볼 수 있는 황홀한 황혼녘 붉은 하늘을 감상한다. 그 풍경이 살짝이나마 위안이 되는 듯하다.
***
어느덧 택시에서 하차한 청년이 깁스를 안 한 오른손에 가죽으로 된 서류 가방을 든 채 녹음이 우거진 산속 돌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다. 저만치로 고동색 벽돌로 이뤄진 아담한 이층집 건물이 보인다.
사실 그가 택시에서 내린지는 한참 됐다. 자신이 가는 저 건물이 도로에서 제법 들어가야 나오는 위치인데다 길 상태가 안 좋아 평상시에도 포장도로에서 미리 내려 운동 삼아, 십분 정도는 그냥 걸어온다. 오늘은 수다쟁이 기사 때문에 더 일찍 내려 걷고 싶었지만, 긴 산길을 오르는 건 꽤 고된 것이기에 간신히 참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줌인(zoom in)을 하듯 건물의 윤곽이 뚜렷해진다. 널찍해 보이는 뜰과 낮게 둘러쳐진 하얀 나무 담장도 보이기 시작한다. 한적한 숲 속에 홀로 있는 아늑한 집이다. 꽤 산 안이라선지 몰라도 근처에 다른 건물은 보이지도 않는다.
저 건물, 아니 정확힌, 저 별장은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와 형제에게 남겨주신 보배였다. 그들 형제 모두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지…… 아니 있었지만, 자수성가하셨던 부모님이 넉넉한 재산을 남겨 두셨기에, 다들 힘든 이 시기에도 형제는 운 좋게도 미래에 대한 걱정을 크게 할 필요가 없었다.
물려받은 유산 중 별장은 특히 여러모로 유용했다. 임대 수입도 짭짤했고, 필요시엔 가족들이 사용하기도 좋았으니까.
그렇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던가. 저 별장을 포함해 부모님이 남긴 풍족한 유산이 급작스러운, 그것도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막을 순 없었다.
그 ‘사고’로 행복한 미래가 보장돼 보였던 그들은 한 순간에 불행해졌다. 그리고 저 별장은 행복한 때의 휴가처가 아닌 불행을 감추기 위한 도피처로 변해 버렸다. 그는 그 도피처로, 원하지 않음에도, 오로지 거기에 있을 ‘그녈’ 위해 나아가고 있었다.
금세 대문 앞에 다다랐다. 별장이지만 대문이라는 게 별거 없다. 가슴에도 못 미치는 낮은 높이의 백색 칠 된 문을 벌컥 열어젖히곤 뜰로 들어선다.
푸르고 낮게 깎인 잔디들로 뒤덮인 널찍한 뜰이 네모에 가까운 형태로 초목투성이인 비탈에 에워싸여 있다. 마치 분지와도 같다. 건물 맞은편 뜰 한쪽 언저리엔 널평상 하나가 조촐히 놓여 있다. 그리고 건물 앞엔 큰 개집이 비어 있는 것도 보인다.
월! 월! 정겨운 소리가 들려온다. 보드라운 황금색 털에다 잘생기고 의젓한 얼굴을 갖춘 대형견 골든 리트리버 종이 어느 틈에 꼬리를 살랑살랑 대며 다가와 반가운 듯 긴 혀를 날름날름 거린다.
아내가 재작년에 분양받은 암컷 개다. 분양 당시 쪼그맣고 앙증맞던 강아지가 금세 무릎 위 높이의 성체 개가 되었다. 청년에겐 오고 싶지 않은 이 별장에서의 유일한 락(㦡)이라 하겠다.
‘지금은 저기 안에 있는 그녀보다 여기 있는 이 년이 더 좋다.’
자기 앞에서 재롱부리는 이 년(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청년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저기 들어갈 때로군. 개 짖는 소리가 났으니 내가 온 걸 알았겠지.’
집 건물을 일순 둘러보며 또 생각한다.
‘아직 그녀의 상태론 나를 맞이하러 나오긴 어렵겠지. 그러니 이번에도 내가 들어가 그녀를 맞아야겠군. 지겹게도.’
개를 보내고 현관문을 향해 걸어간다.
‘업보인 걸까? 내가 그날 살아남은 업보? 아니면 역시 그때 같이 생존한 그녀의 업보? 그래도 죽진 않았으니 다행인 건가? 그래서 현재의 우리가 있으니 괜찮은 건가? 하지만 우리의 현재는 모순되어 있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는 그녀와 함께 그 모순된 삶을 영위(營爲) 해야 한다.’
현관문 앞에 다다라 보니 시멘트로 된 낮은 층계 바로 그 위로 철제로 된 넓적한 판이 그대로 눕혀져 있다. 그 덕에 돌계단이 층계가 아닌 철제 경사로로 사실상 바뀌어 있다. 거동이 불편한 그녀를 위한 거다.
쿵쿵. 철판을 울리며 올라가 그녀가 있을 집의 현관문을 연다.
***
안으로 들어와 보니 실내가 일반 집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단, 무지 넓고 2층집이라는 걸 제외하면. 그래도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물건들은 없어 보이며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이곳저곳에 잘 구비되어있다. TV, PC, 스피커 같은 대형 기계 설비부터 스탠드, 가습기, 로봇 청소기 등 소형 가전 장비까지 최신형 제품들이 적재적소 배치되어 있다. 벽지나 바닥은 유별나지 않게 무난하면서도 말끔하다.
거실은 천장이 2층 높이라는 것만 뺀다면 역시나 특별하진 않아(?) 보인다. 거실 한편에 길쭉한 거실장 위로 50인치가 넘는 곡면 TV가 놓여 있는데, 케이블 재방송 드라마가 낮은 볼륨으로 커져 있다. 맞은편엔 널찍하고 고즈넉한 소파가 놓여 있고, 소파 끝 팔걸이 부분에 알루미늄 목발 두 개가 살포시 기대어 있다. 한편, 소파 앞으로 전동식 휠체어가 떡하니 있다. 바로 그 휠체어 위로 대바늘로 자색 털실 스웨터를 묵묵히 짜고 있는 ‘그녀’가 앉아 있다.
그처럼 젊으며 검은색 단발머리에 포근한 인상을 주는 그녀. 특이하게 조금은 철이 지난 반바지를 입고 있는데, 그 아래 다리가 그의 팔처럼 석고붕대로 싸여져 있다. (아마도 반바지는 이 때문일 것이다.) 발목부터 무릎 밑까지 정강이와 장딴지가 석고로 둘러져 있다. 그것도 양다리 둘 다.
그녀를 조용히 먼발치서 바라보는 그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팔을 다치고, 그녀는 다리를 다치고. 참 사이좋게도 다쳤어.’
이런 생각은 지금만이 아니라 이전에도 수차례 해온 것이다. 이후에도 또 할 것이고.
한창 뜨개질 중이던 그녀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고갤 돌려 소파 너머에 서 있는 그를 발견한다.
“왔어요?”
반갑다는 듯 한껏 미소를 짓는 그녀. 그는 본래 그녀와 말을 섞는 게 달갑지 않지만, 본심을 잘 감추는 그만의 직업 스킬을 활용해 천연스럽게 응답한다.
“응.”
다만 짧게. 아까 기사를 대한 것처럼.
“오늘 일은 어땠어요?”
그래도 그녀는 말을 이어간다. 그녀의 순진하고 정감 있는 눈빛에서 그와 얘길 더 나누고 싶고 또 그것을 즐긴다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별일 없었어.”
그가 무심히 답한다. 진짜로 별일이 없다기보다 너한테 별말 하기 싫다가 본뜻일 거다.
“올라가서 정리하고 씻을게.”
마치 그녀가 다음 말을 뱉기도 전에 그걸 사전에 차단하려는 듯 불쑥 말을 툭 던지더니, 망설임 없이 근처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른다. 그가 그녀에게 눈길 한번 안 주고 지친 몸에 힘을 주어 한 계단씩 올라탄다. 조금이라도 그녀의 시야를 벗어나고 싶은 거 같다.
하지만 그녀가 그를 지칭하는 특정의 ‘단어’로 그를 불러 세운다.
“여보?”
그가 여기 이 별장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단어다. 그렇지만 내색하지 않고, 차분한 얼굴로 계단 난간 너머로 그녀를 지그시 내려다본다.
“왜?”
“괜찮아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서.”
“피곤해서 그래. 올라갈게.”
점잖이 답하나 속내는 말을 빨리 접고 당장이라도 그녀를 벗어나고 싶다. 허나 그녀가 한 번 더 붙든다.
“어제 미안했어요.”
“괜찮아.”
간단히 답하곤 그녀가 뭐라 또 하기도 전에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나서 2층 안쪽으로 들어가 밑에 있는 그녀에게서 그 자신을 감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