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블랙웨이브
작가 : 어이비
작품등록일 : 202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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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작성일 : 22-10-16     조회 : 551     추천 : 0     분량 : 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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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의 작은 도시에는 세계 각지에서 오로라를 보기 위해 모여드는 여행객을 위해서 관광지로 개발된 오로라 빌리지가 있는데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관광객들은 오로라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가는 것일까. 불꽃놀이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불꽃놀이 역시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 놓는다고 하지만 불꽃에서 분출되는 수많은 화학물질에 포함된 중금속과 유해 물질이 대기 오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 걸까. 불꽃놀이에 사용되는 화약은 애초 전쟁에 사용할 무기로 개발되었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돌아보라, 전쟁 건너 편의 이들에게는 불꽃놀이일테니.

  오로라는 태양과 우주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플라즈마가 지구의 자기장과 충돌하는 것이 우리 눈에 보여지는 현상이다. 엄청난 방사능과 고온의 입자가 지구의 육지에 직접 충돌한다면 우리들은 이미 저세상 사람일 것이다. 만의 하나, 지구의 자기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플라즈마를 내 몸으로 그대로 받아낸다면.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믿는다. 또 자신이 보는 것만, 알고 있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해한다. 나 역시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모른다면 무엇을 믿고 알고 싶을까. 난 다 알았다. 그래서 믿을 수 있었고 의심할 수 있었고 세상에 외칠 수 있었다.

  내게는 일종의 초능력이 있다. 어렸을 때는 그것이 초능력인지도 몰랐다. 그냥 똑똑하니까 -실제로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일부 과정을 건너뛰고 십대 후반에 카이스트에 입학했고 이년만에 석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도 다 알게 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텔레패스-텔레파시 능력자로 텔레파시는 말이나 몸짓이 전혀 없는 곳에서 타인의 마음을 감지하는 것이다-였다. 텔레패스이기 때문에 영재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때 나의 능력이 저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은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그렇고 우리 모두가 그런 것 처럼. 물론 내게 이런 능력이 없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생각 자체가 사치임을 안다.

  지난 몇 달간 겪은 일은 내 인생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물론 앞으로의 삶은 더욱 힘들고 외로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나의 선택을 믿기로 한다.

  무진은 나의 무모함이 매력적이라고 한다. 무모함이라. 나와 같은 상황에선 어느 누구라도 나처럼 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믿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선하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모두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것이 인간다움이다.

  마루에 팔을 베고 누워 밤하늘을 바라본다. 쏟아질 듯한 별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차지 않은 바람이 뺨을 쓰치면 눈을 감는다. 꿈에서라도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서로 미워하고 원망도 했지만 끝내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지 못했던 남편의 얼굴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아들 노아를 떠올리면 노아가 지금 내 옆에 같이 누워있는 것만 같다. 노아를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흐른다.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나의 아들. 하지만 노아는 지금 미국의 한 연구소에 수면 상태로 냉동되어 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남편이 그 옆에 같이 있다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가는 길도 가야할 길도 달랐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노아를 사랑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아니 그렇게 믿기로 한다. 내가 죄책감을 느끼면 노아가 그러지 말라고,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속삭여 준다. 노아가 빨리 치료되기를 바란다. 노아는 금새 나을 것이다.

  모든 비극이 갑자기 한 순간에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어쩌면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리고 인류가 있기 전부터 설계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어느 시대에나 빌런은 존재하니까. 단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것이 문제다. 애초부터 그것은 구별이 안되는 하나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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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해상의 작은 섬, 고암도. 지금은 일곱 가구, 열명도 되지 않는 주민이 살고 있는 이 섬의 작은 선착장에 마을 주민이 모여있다. 5톤 어선이 출항을 준비 중이다. 조타실에서는 고암도의 이장인 정수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고 갑판에 정수의 아내가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 마을 주민들은 선착장 귀퉁이에서 안쓰러운 눈빛을 주고 받으며 섣불리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어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다.

  "언니, 이장님! 잠깐만요!"

  무거운 분위기가 깨졌다. 에스더가 마을 어귀에서 숨을 헐떡이며 선착장으로 뛰어오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더욱 안타까운 혹은 불편한 눈빛으로 에스더를 힐끔거린다. 정수가 조타실에서 나와 선착장으로 내려오면 주민 중 하나가 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건넨다.

  "우리끼리 십시일반 좀씩 모다 봤더라고잉."

  정수가 한사코 거절하지만 주민은 억지로 그의 조끼 주머니에 봉투를 넣어주며 지퍼를 닫아준다.

  그러는 사이 에스더가 빠른 동작으로 이들 앞에 멈춰 숨을 고르면 정수가 그런 에스더를 외면하고 돌아서려 한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개의치 않고 에스더가 재빨리 정수의 손에 봉지를 쥐여준다.

  "이거 언니가 제일 좋아하는 에스더표 매실청이요."

  정수가 갑판의 아내를 바라보면 아내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정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싸늘한 기운을 내며 봉지를 휙 낚아채서 배에 오른다. 에스더가 갑판의 정수의 아내를 바라본다.

  -언니, 조금만 버티고 있어. 이제는 내가 나설거야. 내가 고암도를 구할거야.

  -모두들 니 말을 들었어야했는데. 나는 우리 정수씨를 버릴 수가 없어서 여기 남았던 거지만.

  -내가 모두를 구할거야. 조금만 버티고 있어. 더이상은 내가 참을 수가 없어.

  -믿어. 에스더.

  아무도 그녀들의 대화를 들을 수 없지만 그녀들만큼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음을 띤 채로 서로를 응시한다. 정수의 배가 출항하면 섬주민들이 손을 흔들고 에스더도 눈물을 글썽이며 정수의 아내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주민들은 모두 각자의 생업을 위해 자리를 뜨고 에스더만이 정수의 어선이 작은 점이 될때까지 그 자리에 있다.

  에스더가 자신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동네 마을 어귀의 정자를 지나가야 한다. 정자를 지나 양갈래 길이 나오고 그 중 비탈길을 올라가야 에스더가 살고 있는 곳이다. 에스더가 정자에 다다랐을 때 고암도 근처의 상암도와 중암도에서 시집왔다해서 이름 붙여진 상암댁과 중암댁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에스더는 이들을 발견하고 털썩 정자에 앉는다.

  "하이고 큰일이랑게. 잉?"

  "진짜 누가 믿겠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디."

  중암댁이 손가락으로 세는 시늉을 하면 에스더가 한숨을 쉬며 대답한다.

  "언니까지 모두 다섯. 작년부터 세면 일곱. 언니까지 잘못되면 치사율100%, 심각한 상황이죠."

  중암댁이 눈치를 보며 에스더의 이야기에 딴지를 건다.

  " 여섯인거 같은디. 오씨는 자살이자네."

  "우을증도 뇌의 기능과 관련이 깊어요."

  에스더가 차분하게 대꾸하면 상암댁과 중암댁이 머뭇거리며 고개를 들어 마을회관을 바라본다.

  그녀들이 바라본 건물 옥상에는 다소 흉물스러워보이는 기지국이 있다.

  "니말대로 정말 저짝 물건 때문이다냐."

  중암댁이 한숨을 쉬며 바늘로 그물을 꿰면 에스더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슈슈, 밥을 깜빡했어요. 이만 가볼게요."

  에스더가 갈래길에서 마을과는 반대편인 비탈길로 올라간다. 그녀의 얼굴이 어둡다. 그녀를 따라 올라간 비탈길의 끝에는 이내 탁트인 갈대밭이 펼쳐진다. 반대편 끝에는 절벽해안이 보인다. 에스더가 자신의 집을 지나쳐 절벽해안앞에 서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난듯 자신의 집으로 뛰어간다.

  갈대밭 가장 자리 언덕에 고암도 가구 중 유일하게 에스더의 집이 있다. 낡고 단출하지만 오랫동안 관리가 잘 되있는 느낌이다. 빛바랜 플라스틱 기와지붕에 콘크리트 벽체의 단층 가옥으로 여기 저기 보수의 흔적이 남아있다. 에스더가 뛰어들어가면 슈슈라 이름붙인 골든리트리버가 그녀를 반갑게 맞아준다. 에스더는 사료를 챙겨주고 지붕에 세워놓은 사다리에 오른다. 지붕에 깔다가 만 전자파 차단 시트가 있다. 모퉁이를 잡고 지붕에 펼치다가 무언가 생각난듯 주머니에서 전자파 측정기를 꺼내서 체크한다. '삐삐' 소리가 들린다. 에스더가 한숨을 쉰다. 사다리 옆에는 아직 뜯지도 않은 전자파 차단 시트가 수북하게 쌓여있다. 에스더가 이를 판매한 사장에게 항의를 할 요량으로 사다리를 내려와보면 고양이 한마리가 꼬리감기 자세로 앉아있다.

  "못보던 녀석인데, 냐옹~ 어디서 왔니?"

  에스더가 주변을 둘러보지만 고양이가 어디서 왔는지는 오리무중이다. 슈슈 역시 한달 전 이렇게 에스더에게 왔다. 섬에 개나 고양이가 버려지는 일이 종종 있다. 에스더가 한숨을 쉰다. 고양이는 계속해서 에스더를 따라다닌다. 곁을 내주기로 결심한 에스더의 마음을 알아차린걸까. 집안으로 따라들어오는 고양이. 에스더는 '규규'라 이름붙이고 슈슈와 함께 고양이를 거두기로 한다. 슈슈가 집안으로 들어간 에스더와 규규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

 

  무진의 손에 한장의 사진이 들려있다. 에스더의 개 슈슈와 똑같이 생긴 골든리트리버 종의 개 사진이다.

  "그 개를 찾아가면 그녀가 있을거야."

  사모님이 쇼파에 앉아서 의미심장한 얼굴로 무진을 바라본다. 쇼파의 맞은편에 무진과 인영이 함께 앉아 있다. 이들은 IW라는 비밀조직의 일원이다. Innocent of Wave의 약어인 조직의 명칭은 사모님이 꼬꼬마였던 시절부터 존재했다. 50대가 된 사모님은 이제 이 조직의 수장이 되었다. 무분별하게 팽창하는 무선 통신 산업에 저항하는 조직이다. 이들은 소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초능력자들이 전자파 산업의 폐해로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개가 아니라 그녀를 찾아라?"

  무진이 사모님을 쳐다보면 사모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강대리님, 이 분, 우리 조직의 전설이라구요! 저처럼 어린 애들도 다 알면 그게 전설이죠!"

  인영은 무진을 꼬박꼬박 대리님으로 부른다. 무진과 인영은 같은 직장에서 근무 중으로 IW에서 언더커버 활동 중이다. 현재 사모님과의 비밀 회동도 회사에는 고객으로 가장한 사모님의 의뢰를 수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원탑 그룹의 야욕을 막으려면 그녀가 꼭 필요해. 그녀를 좀 만나봐줘."

  사모님이 무진을 바라본다. 무진, 입을 앙다물며 생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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