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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경계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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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 1
작성일 : 23-04-03     조회 : 368     추천 : 0     분량 : 4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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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금매화 - 꿈 많은 소녀

 

  은이라는 글자가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한, 여, 은, 이라는 내 이름이 서늘한 기운을 풍긴다며 혹시 생일이 11월이나 12월이 아닌지 묻기도 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겨울의 끝자락, 2월에 태어났으니 겨울아이라고 해야 하나? 2월에 태어났지만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 추운 게 싫다. 남편은 더운 여름을 힘들어 하지만 내겐 겨울이 최악이다. 매번 돌아오는 그 계절을 피할 수만 있다면 연말이 올 때마다 어디 해외여행이라도 다니고 싶다. 그럴 여유도 돈도 없어 그저 바라는 게 다지만.

  현무가 어젯밤 잠을 잘 자서 나도 잠을 설치지 않았더니 오늘 몸이 가뿐하니 컨디션이 괜찮다. 애는 잠을 자주는 게 최고의 효도다. 애 울음소리에 자다 깨다를 반복한 다음날이면 하루 종일 머리가 멍하고 집중하기 힘들다. 아직 아기가 8개월 밖에 안 됐는데 굳이 일하러 나가겠다고 기를 쓴다는 타박을 주위에서 들어도, 아기랑 집 안에 틀어박혀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일 핑계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게 너무 좋다. 그렇다고 우리 현무가 보기 싫거나 정이 가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떨어져 있다 보면 더욱 현무가 그립고 간절하고 보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든다. 부족함을 느끼니 그게 더 간절해지는 거다. 항상 곁에 있어 눈 밖으로 벗어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사람을 질리게 한다.

  일하러 나올 때면 시댁에 애를 부탁해야 해서 그게 가장 마음에 걸린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어서 친정엔 부탁할 데가 없다. 시부모님은 싫은 내색 없이 현무를 보는 게 너무 좋다고 하시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렇기만 하겠나. 그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갈 때마다 양손에 시부모님 좋아하시는 음식 바리바리, 챙겨들고 가는 걸로 조금이나마 보답을 하려고 노력한다. 현무가 보육시설에 갈 수 있는 나이만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만 되면 지금보다 훨씬 사정이 나아지겠지.

  “언니, 나무 영양제 주문한 거 아직 안 들어왔죠?”

  “오늘쯤 들어오지 싶은데.”

  “사장님이 잊지 말고 주말 전에 영양제 주라고 당부를 하셨어요. 주말 고객 신경 써야 한다고.”

  “우리야 주로 주말 장사 아니겠어? 다들 평일보다 주말에 시간이 나서 꽃이나 분재 보러 오니까.”

  “괜히 잊어먹었다 사장님한테 욕먹고 싶진 않다니까요.”

  “물건 들어오면 나도 챙길게.”

  예슬인 참 싹싹하다. 나보다 어리지만 여기서 일은 먼저 시작한 고참이다. 고참이라고 해봤자 직원은 예슬이와 나, 둘 뿐이지만. 손이 빠르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척척, 해내면서도 내가 관련 전공을 했다고 자꾸 추켜세운다. 자신은 여기 들어와서 일하며 배운 게 전부라고. 내 전공이 원예조경이긴 하다. 그렇지만 나는 책에서 배운 것보다 직접 현장에서 배우고 익힌 게 더욱 소중하다고 여긴다. 그 경험보다 더욱 값진 이론은 없다. 아무리 지식을 책으로 익히고 받아들여도 실제로 현장에서 몸소 체감하며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걸 제대로 익혔다고 하기 힘들다. 게다가 이론을 통해 배운 내용이 실제로 맞닥뜨리는 현실에서 배운 대로 통하지 않아 곤란해지는 순간이 부지기수다. 지금도 자주 예슬이한테 몰랐던 걸 배울 때가 있으니 확실히 고참은 고참이다.

  “오늘은 제가 마감이네요. 대강 마무리 하고 일찍 퇴근하세요.”

  “내일 나갈 꽃들 물에 담가놨고 포장 재료는 미리 빼놨어. 화분은 볕 쬐이고 나서 다 비닐하우스에 넣어뒀어.”

  “아휴, 바지런하시기는. 수고하셨어요. 얼른 들어가세요.”

  시부모님 댁으로 가서 애를 찾아야 하는데 어째 바로 가기 주저된다. 조금만 숨만 고르고 가자 싶어 어디 앉을 자리를 찾는데 마땅히 앉을 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근처 카페라도 들어가서 앉을까 생각하다 굳이 자리 세를 내가면서 앉아야 하나 망설여진다. 이런 내가 싫을 때가 있다. 그런 차 한 잔 값에도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이라니. 언제부터 그랬을까? 결혼하기 전엔 그렇게 따지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었는데. 이럴까 저럴까 마음을 정하지 못하다 그리 주저하는 시간마저 아깝게 느껴져 일단 발을 옮겼다. 도착하고 보니 남편 가게 앞이었다. 겨우 갈 곳이 여기밖에 없었나?

  남편은 자신을 천생 비즈니스맨이라고 소개했다. 자기 사업을 운영해서 관리하고 확장하는 게 꿈이자 삶의 목적이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해도 꼭 부루마불이나 심시티 같이 뭔가 짓거나 사고파는 것만 했단다. 비즈니스맨이라고 하기에, 혹여 거창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라도 되나 내심 기대했지만, 상가 건물 한쪽에 자리한 가게를 운영했다. 그것도 자신의 돈만으로 부족해 대출을 끼어서 샀다. 그렇다고 그를 낮게 평가하지 않는다. 참 부지런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노력한다. 어떻게 사업을 확장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그에게 요즘 대세는 편의점이라고 하니 프랜차이즈 편의점은 로열티를 너무 떼간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할인마트를 하기엔 요즘 곳곳에 자리한 대형마트를 이겨내긴 버거웠다. 그러다 그가 중국집 짬짜면에서 영감을 받아 아이디어를 냈다. 가게를 반은 편의점처럼, 반은 할인마트처럼 꾸며서 양쪽 모두의 수요를 받아들이자는 의도였다. 일리가 있다 싶으면서도, 그게 효과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남편이 일단 그렇게 밀어붙이겠다고 하는데 달리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때부터 그 사람은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해 나갔다. 편의점 나름의 유통구조와 할인마트의 물류성향을 파악해서 정말 딱, 절반씩 그에 맞게 거래를 진행시켰다. 반반이라는 게, 그게 가능할까 했는데, 그는 그렇게 입간판까지 그 의도에 맞게 마련했다. ‘반반24.’ 첫 번째 반 아래엔 편의점, 두 번째 반 아래엔 마트라는 글자가 요즘 유행하는 글씨체로 조그맣게 새겨졌다. 할인된 물건을 24시간 살 수 있게 하면서, 그와 더불어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간단한 먹거리를 동시에 구입하도록 해 편의점 구매고객까지 함께 끌어들이자는 의도였다.

  네온불빛을 받아 샛노랗게 빛나는 간판을 멍하니 바라봤다. 간판은 눈에 띌수록 좋다고 하던데 그런 면에서 저건 만점이다. 내 개인적 취향으론 너무 유치해 보여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잠시 그러고 있다, 문득 그걸 바라보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내가 서 있는 방향에선 제대로 보이지만 그가 있는 곳에서 날 보기 애매한 지점이다. 옆얼굴이 깎아 자른 듯이 반듯하다. 남자가 너무 잘 생기면 오히려 남성적인 면이 줄어든다고 하던데 그러면서도 그는 야성적인 면모도 제대로 풍긴다. 저녁 시간이 되어 슬그머니 턱 주위로 올라온 수염자국. 그가 착용한 위아래 정장까지 마음에 든다. 오른손에는 직장인들이 주로 들고 다니는 가방을 들었다. 항상 가게 돌보느라 바쁜 남편에게 그래도 가끔은 사장 티가 나도록 정장을 입어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해도, 들은 척도 않는다. 일하는데 불편하게 정장을 왜 입냐고 오히려 나를 타박한다. 아무리 못난 얼굴을 한 사람도 옷이 받쳐주면 훨씬 멋있어 보이는데 남편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 저 사람, 거뭇한 회색으로 상의와 하의, 안에 받쳐 입은 와이셔츠까지 맞췄다. 조금은 너무 타이트하게 입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몸에 꼭 맞는다. 그러다 보니 몸에 두른 근육이 선명히 드러난다. 근육질 남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적당히 몸에 오른 근육 윤곽이 보기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건드려보고 싶을 정도다. 문제다. 아줌마, 이제 돈 벌고 애 키우느라 남편 손길이 살짝 뜸해졌다고 이렇게 남자를 밝히게 되었나? 아니, 뭐, 눈요기 하는 거야 나쁠 건 없겠지.

  그는 왜 남편의 가게를 보고 있을까? 나처럼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는 저 간판에 시선을 뺏겼던 건가? 멋지다고 아님 유치하다고 그렇게 판단을 내리겠지. 이제 슬슬, 애 데리러 가야 하는데 속으로 자꾸 조금만, 조금만, 하며 비비적거린다. 남편 가게 간판을 보던 시선이 이제 그에게 꽂혀서 떼어내질 못하겠다. 그래, 눈요기라도 하며 배라도 불리자. 이건 누가 돈 내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보기만 하는 건데 뭘. 누군지 모르겠지만 저 남자의 애인이나 부인은 참 좋겠다는 부러움이 불쑥, 속에서 흘러나온다. 문득 그의 손을 살폈지만 결혼반지는 끼지 않았다.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네. 저렇게 멋있는데 여자친구는 있겠지. 휴, 한숨이 나온다. 우리 남편도 저렇게 꾸미기만 해도 저 정도는 아니라도 나름 볼 만할 텐데. 그래, 싫다는 사람 억지로 저렇게 꾸미게 할 건 아니고 저 사람 구경이나 실컷 해야겠다. 아, 좋다. 보기만 해도 좋네. 아이쇼핑이라는 말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하루 이 좋은 기분으로 잘 마무리 하는 거다. 감사합니다. 이 저녁 제 눈에 띄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쪽도 좋은 저녁 마무리 잘 하세요. 그 몸매 유지 잘 하시구요. 감사, 감사.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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