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2,000년 전에도 핸드폰이 있었을까?
선의가 미나미 핸드폰을 들고 자기 핸드폰의 장치를 통해 적외선을 비추니 놀랍게도 잠금 해제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사각 중간에 /이 그어져 있었다.
그대로 선의가 잠금 해제 패턴을 그렸다.
열렸다. 화면 가득 어플(application)이 깔리며 나타났다.
- 우와!~
선의가 환호성을 질렀다. 미나미와 무령 공주와 하이 파이브를 했다.
미나미와 무령 공주는 얼떨결에 하이 파이브를 받아줬다.
선의가 미나미 전화번호로 전화하니 전화가 가지 않았다.
선의는 그럼 그렇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혼자 미소를 지었다.
혹시나 해서 다시 문자를 보냈다.
- 뚜르르 뚜뚝~
‘미나미 이모’ 라는 글자가 미나미 핸드폰에 떴다. 놀라운 현상이었다. 이건 분명 기적이었다. 대단한 능력자 조한에 대해 또 한 번 놀랐다. 이것이 가능한 건 선의가 쥔 핸드폰 내에 인공위성 기능이 탑재되었기 때문이었다. 즉 통신사를 통하지 않고 핸드폰과 핸드폰이 다이렉트로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미나미 핸드폰엔 그런 기능이 없으니 선의 핸드폰만 일방적으로 가능하다는 얘기다.
- 우아, 으아, 우아~
선의는 놀라 괴성을 지르고 하이 파이브를 하고 개다리춤을 췄다.
- 무슨 일이냐?
- 문자가 갔어요?
무령 공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선의가 상상을 초월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는 듯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대답을 했다.
- 문자?
- 네, 글자가 내 핸드폰으로 보내니까 이렇게 문자가 왔잖아요, 미나미 이모, 큭.
- 어디 보자, 이 글자가 미나미 이모란 말이냐? 알듯 말 듯 하네, 가림토 문자랑
많이 비슷하다.
- 예? 아 그러면 흉노족? 그렇지 그러면 흉노족은 가림토 문자를 쓰지... 이게 우리나라에서 쓰는 글자 한글이에요.
- 그래? 한글? 그럼, 우리 글도 보낼 수 있어?
- 그럼요.
- 그럼 보내 봐.
무령 공주는 호기심 천국에 사는 어린아이처럼 눈이 반짝였다.
가림토(加臨土) 문자로 ‘무령 공주 예뻐’ 라고 써서 보냈다.
- 뚜르르 뚜뚝~
‘무령 공주 예뻐’ 라고 문자가 미나미 핸드폰에 떴다.
- 무령 공주 예뻐... 어떻게 우리 글자를 아느냐?
가림토 문자로 쓴 글을 무령공주가 또박또박 읽었다.
- 공부했으니까요, 옛날 한자도 사용하죠?
- 옛날 한자인지는 모르겠고, 한족들이 은나라 때부터 쓴 한자를 우리 고위층에서만 쓰고 읽을 줄 알아, 갑골문자니 창힐문자니 그러는데 그건 모르겠고 아무튼 한자는 쓸 줄 알아.
- 뚜르르 뚜뚝~
鍪岭公主 絶世佳人(무령공주 절세가인)이라는 문자가 미나미 핸드폰으로 왔다.
- 무령공주 절세가인...
무령 공주가 한자를 읽었다. 무령 공주는 가림토 문자도 알고 한자(漢字)도 알았다. 흉노의 왕족이라서 그런지 무령 공주의 지적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 낙양에 유학 갔어요?
- 아니 한족 유학자를 글 스승으로 모셨다, 넌 꼬만데 어떻게 가림토 문자와 한자를 아느냐?
- 우리나라에서는 어릴 때부터 배워요, 부모들이 극성이죠, 학원비 대느라 등골이 휜답니다.
- 참 별꼴이다, 우리는 공부하기 싫어 도망다니는데...
선의가 허풍을 떨자 순진한 무령 공주가 넘어갔다. 기세가 등등하던 무령 공주가 어느새 수그러져 살가운 선의랑 친자매같이 다정다감하게 대했다.
- 공주마마 그럼 날 뭘 시켜줄 거요? 우현왕(右賢王)?
- 우현왕은 나랑 대등한 위치를 말한다, 우현왕은 최고 우두머리라 칭하는 탱리고도선우(撑犁孤塗單于)께서만 임명하신다. 그리고 우현왕이 되면 우현왕이 다스리는 임지(任地)를 떠나야 하느니라, 나랑 헤어지는 게 좋으냐? 아마 거기 가면 결혼도 해야 할 걸...
- 아뇨, 같이 있을래요, 절대로 안 갈래요.
10살 소녀 선의에게 결혼 이야기를 했으니 얼마나 놀랐겠냐, 공포감을 느끼는지 선의는 극구 손사래를 쳤다.
- 그럼, 나랑 같이 있으려면 우대장(右大將)을 하거라.
- 좋아요, 그럼 미나미 이모랑 직급이 같네요?
- 급은 같지만, 서열은 한 단계 밑이다.
선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차피 여기 오래 머물 것도 아니고 비천붕익남명중검(飛天鵬翼南冥中劍)만 찾으면 떠날 것이니까...
- 자, 이건 선물...
선의가 주머니에서 가스라이터를 꺼내 건넸다.
- 춘자 오천콜...
가스라이터가 희한하고 이상한지 살펴보다가 무령 공주가 한글을 가림토 문자인 줄 알고 또박또박 천천히 읽었다.
- 투명한 막대에 물이 든 이 요상한 것이 뭐 하는 물건인고?
선의가 베아트리체 집안일을 돌보는 집사에게 특별히 부탁했더니 광고용으로 돌리는
가스라이터를 한 묶음 구해준 거였다.
- 미나미 이모가 잘 알잖아, 이모가 설명해줘.
- 꼬마야, 난 진짜 몰라, 뭐 하는 것인지, 춘자 오천콜이 뭘 말하는지 몰라, 난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자란 것만은 확실해.
과거에 대한 기억이 깡그리 지워졌는데 미나미는 시치미를 뗄 수밖에 없었다.
- 마마, 담배 피워요?
- 당연히 피우지.
- 큰일이네, 여자가... 결혼했어요?
- 아니, 미혼이야.
- 처녀가 말이야, 결혼도 안 했는데 담배를 피우고 싸가지 없게, 뼈 녹아요.
- 왜 처녀가 담배 피우면 안 돼? 우리나라는 당연시 하는데...
- 글쎄, 안 됩니다, 몸에 해로워요, 여자가 담배 꼬나문 게 꼴 보기도 싫고, 특히 몸을 많이 쓰는 전사(戰士)들은...
- 그럼, 남자들은?
- 남자들은 피워도 되지만, 자기 몸을 생각한다면 안 피우는 게 좋지요. 병사 하나 불러보세요. 이게 뭐 하는 물건인지 가르쳐 드릴 테니...
- 밖에 누구 없느냐?!
- 예, 마마.
병사 하나가 말 떨어지자 무섭게 급히 뛰어 들어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 담배를 꺼내 입에 물어라.
- 예, 마마.
병사가 말아 피우는 궐련을 꺼내 입에 물었다.
선의가 춘자 오천콜 가스라이터를 켰다.
불이 화 올라왔다.
병사가 화들짝 놀라 그만 물고 있던 궐련을 떨어트렸다.
선의가 불을 조절했다. 불이 적당하게 작아졌다.
다시 병사가 담배를 주워 입에 물었다. 불을 붙였다.
무령 공주 앞이라 병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담배를 빨아당겼다.
무령 공주와 미나미가 불이 톡 켜지는 가스라이터를 신기해했다.
병사가 시원하게 오줌 누는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 콜록 콜록, 어우 무슨 담배가 이렇게 독해?
- 됐다, 그만 나가 보거라, 못 본 걸로 하고...
- 예, 마마.
병사가 황급히 뛰어나갔다.
선의가 가지고 온 각양각색의 춘자 오천콜 가스라이터 다섯 개를 무령 공주 손에 쥐어 줬다.
- 야, 춘자 오천콜 이게 신비로운 물건이구나. 불이 입에서 나오는 것을 보니 이게 정녕 환두국 남쪽에 사는 입에서 불을 내뿜는 염화국(炎火國) 기인(奇人)이랑 진배없구나.
무령 공주가 진귀한 물건을 다루듯 가스라이터를 켜보며 감탄했다.
- 마마, 이 춘자 오천콜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사명을 다하면 사라지는 희귀한 물건이니 너무 남용하지 마시고 소중히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당연하지, 비단에 싸서 묘당(廟堂)에 모신 죽은 거북이보다 더 귀하게 여기 마.
- 쉽게 흥분하는 스타일입니까?
- 스타일?
선의는 아차 싶었다. 입에 배긴 거라 자기도 모르게 나온 거였다.
- 어, 체질... 우리나라에서는 체질을 다른 말로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 아, 그렇구나, 색목인(色目人) 나라에서 쓰는 말인 줄 알았다.
- 맞습니다, 저기 멀리 눈이 파란 나라에서 쓰는 말입니다.
- 그럼, 넌 첩자냐?
동시에 미나미가 칼을 빼 들어 선의 목을 겨눴다.
- 제가 첩자면 춘자 오천콜을 선물로 줄 이유가 없지 않나요?
- 헤, 장난...
선의는 속으로 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흉노족들은 원래가 무지막지한 종족이라 수틀리면 칼부터 먼저 휘두르고 시작하기에 그렇다.
- 날 놀렸기에 마지막 선물은 없습니다.
- 보기보다 속이 좁구나, 허허...
- 여자가 허허가 뭐에요? 호호해야지, 치...
- 호호, 어이 소름 돋는다, 하하!
- 여자다워야 시집을 가죠?
- 난 시집을 가지 않는다, 내게 장가를 오는 거지.
- 시집갈 생각은 있는가 보죠?
- 그래, 마지막 선물은 뭐냐?
무령 공주가 정색하고 말을 돌렸다. 부끄러웠다. 이럴 땐 천상 여자였다. 전쟁터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단련된 몸이지만 무르녹았다. 호랑이나 희귀동물 가죽으로 만든 옷 속엔 터질듯한 여체(女體)가 익을 대로 익었다. 서로 마음에 든다면 활화산처럼 터트릴 준비가 된 농염(濃艶)의 자태(姿態)였다.
- 이겁니다, 천리경(千里鏡).
- 전설로만 존재한다던, 이게 정녕 천리경이라는 말이냐?
선의가 아담한 망원경을 몸속에 차고 있던 힙색(hip sack)에서 꺼내 건넸다.
무령 공주가 신기한 망원경을 받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밖으로 뛰어나갔다.
선의와 미나미도 따라 나갔다.
좌현왕 무령 공주의 천막으로 된 거대한 막사는 약간 언덕진 곳에 있었다. 크기가 무려 30여 평 아파트만 했다. 텐트처럼 된 구조가 아니라 둥글게 나무를 둘러쳐 기둥을 만들고 천정은 연기가 빠져나가고 공기가 들어오게 굴뚝처럼 뚫렸다.
막사는 훤하게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어 병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장할 수 있었다. 지휘 본부도 겸했다.
좌현왕 무령 공주의 막사가 한 개가 아니었다. 겉보기가 똑같은 몇십 개의
막사가 줄지어 서 있어 장관(壯觀)이었다.
좌현왕을 자객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위장 전술이었다.
어느 곳에 좌현왕 무령 공주가 머무는지는 최측근 아니면 알 수 없었다.
물론 옆이나 아래의 막사에서 친위대들이 좌현왕을 지키기 위해 혈안(血眼)이 되어 있기도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닌가... 숱하게 많은 우두머리들이 암살당하는 것을 보면... 그래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하지 않는가.....
- 조리개를 돌리면서 조절하세요.
- 야~
- 죽이죠?
- 죽여?
무령 공주가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물었다.
- 너무 좋다, 감탄하면서 쓰는 말이에요.
- 야~ 죽인다.
무령 공주가 감탄을 연발 쏟아냈다.
- 천리경을 이용하면 천산 북쪽 차사국(車師國) 둔전(屯田)을 수복할 수 있겠어요?
- 너, 진짜 첩자 아니냐? 어떻게 그걸 알아?
-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을 무슨 군사 비밀이라고, 참 나... 동한(東漢)이랑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비옥한 땅이잖아요? 우대장(右大將) 자격 있죠?
- 인정.
쿨하게 무령 공주가 선의의 신묘(神妙)한 능력을 인정했다.
- 너 말도 잘 타?
- 장난이죠, 저기 길들지 않은 가라말, 타키 타 볼까요?
선의가 야생마를 잡아 놓은 울타리 속의 말을 손으로 가리켰다.
- 좋아, 근데 왜 이런 경우에 장난이죠, 라는 말을 써?
- 아, 그건 장난치듯 쉽게 할 수 있다, 그런 말입니다.
- 그래, 그럼, 말과 장난쳐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