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계속해서 진행해.”
아무도 없는 그저 의자 하나와 책상 하나만이 놓여 있는 텅 빈 방 안에서 의문의 인물이 전화를 끝마쳤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아진 2권의 책을 바라보았다. 한 권은 약 2세기 전에 ‘존 H 왓슨’이 집필한 [마지막 사건], 또 한 권은 본인의 조상(俎上)인 ‘제임스 모리어티’가 직접 쓴 [일기장]이었다. 그는 그 두 권은 한참을 바라보다가 눈을 뗀 후 창밖에 환하게 뜬 런던의 달을 쳐다보면서 자그마하게 본인의 다짐을 중얼거렸다.
“망설임도... 후회도 없이... 앞으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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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 군, 혹시 내가 먼저 말해도 되겠나?"
이 상황을 머릿속으로 조용히 풀어나가고 있던 홈즈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데런 경감이 본인의 생각을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사실, 자네들이 오기 전에 쭉 이 말도 안 되는 현장을 훑어보았네. 일반적인 도로와 비슷한 상태라 뺑소니가 일어났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지. 순간 또 허위 신고인가 싶었지만, 홈즈 군 자네가 그럴 리가 없지. 게다가 이 주변 CCTV 전부 하필 그 시간대에 나간 건 분명 이상했고, 그래서 다시 주변에 건질만 한 것들을 살펴보고 이 근방 주변 병원에 전화를 일일이 돌려 확인했어. 다행히도 유일하게 [나이팅게일] 병원에서 교통사고 응급수술자가 수술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네. 그리고 부하 경사가 도로의 수상한 점을 발견했어. 홈즈 군, 왓슨 선생 한 번 도로를 쭉 보십시오. 다 보셨습니까? 그렇다면 왓슨 선생님. 일반적으로 뺑소니 사고가 일어난 도로라고 쳤을 때, 어떤 흔적들이 남을 것 같습니까?”
갑작스러운 지목에 왓슨은 잠깐 흠칫했지만, 이내 경감의 질문에 골똘히 생각한 후 답했다.
“아마도 타이어 자국, 레이첼이 흘린 혈흔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아 혹시 레이첼의 지문도 가능성 있을 것 같네요. 쓰러졌을 때, 지문이 도로 위에 남겨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주 잘 대답하셨습니다. 왓슨 선생님. 제 생각을 좀 더 말해보자면 그 밖에도 CCTV, 도로 주변에 주차된 차들의 블랙박스, 혹시 있을 목격자 정도가 더 있을 것 같군요. 홈즈 군 생각에는 더 있을 것 같나?”
“역시 데런 경감님이군요. 현재까지론 더 추가할 것은 없는 것 같네요. 이어서 말씀해주세요.”
“이러한 요소들을 다 파악해 보니 한 가지의 결론에 도달했네. 먼저 간단한 것부터 설명하자면 CCTV와 블랙박스는 쓸모가 없는 방안이네. CCTV는 전부 먹통에다가 오늘따라 이 야심한 새벽 가에 주차되어 있던 차도 없었으니, 말이야. 그리고 뺑소니 사고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보았지만, 아직까진 들은 사람이나 본 사람은 나오지 않았어. 뭐 계속해서 부하 경위와 경사들이 찾아보고 있으니 나오면 바로 말해주겠네.”
왓슨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탄식했다.
그에 반해 홈즈는 경감의 설명을 듣는 건지 안 듣는 건지 몸을 돌려 계속해서 도로만 쳐다보며 가끔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이렇게나 흔적이 없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탐문수사 중 [나이팅 게일]병원에서 연락이 안 왔다면 못 믿을뻔했습니다. 그렇지만 경찰 15년 차의 경험이 제게 속삭이더군요. 이 사건은 분명히 뭔가가 있다고. 그래서 더욱 촉을 날카롭게 세우고 더욱 파헤치기 시작했더니 의외의 부분에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바로 도로 위에 전반적으로 '클로라민' 향취가 발생하는 '락스'냄새가 깔려있었습니다. 대략 1km 정도 뿌린 것 같더군요. 아마도 철분에 반응하는 '루미놀 검사'를 방해하기 위해서 뿌렸을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사건 현장 부근에 스키드마크(타이어 자국)가 없었습니다. 제 생각엔 흔히 스키드마크를 지울 때 사용하는 바닥 전용 세제(플로어크린)와 자국 제거용 특수청소차를 사용한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렇게 완벽하게 뒤처리했는데 과연 뺑소니 차량을 찾는다해도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나올지... 의문이군요, 그래서 아까 홈즈 군이 개인이 아닌 거대한 세력이라고 말한 부분이 이 의미였을 겁니다. 홈즈 군, 이젠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군.”
“확실히 노련한 관찰력과 넘치는 경험과 뛰어난 통찰력이 만나 이런 멋진 결과를 만들어 냈군요, 아주 훌륭한 추론입니다! 저도 경감님과 똑같은 생각입니다. 제가 말했던 흰색 랜드로버 차량을 찾더라도 입증하지 못한다면 결국 이 사건은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아까,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분명 샅샅이 뒤졌는데, 어디를 놓친 거지? 말해주게 홈즈!”
“아닙니다. 경감님은 최선이자 최고의 추론을 하였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릴 부분은 오직 그 현장에 있었던 저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때의 상황을... 후우. 다시 떠올리기 힘들지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흰색 랜드로버 차량이 레이첼을 치고... 급정거했습니다. 차 앞쪽에 레이첼이 피를 흘린 채로 쓰러져있습니다. 이후 잠시 움직임을 멈춘 차량은 레이첼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그때 도로 위에 묻은 레이첼의 피를 밟고 지나갔습니다. 아까 경감님이 락스 흔적이 약 1km 정도 나는 것 같다고 말해주셨는데 루미놀 반응을 그 부분 너머로 도주 방향으로 확대해서 검사해보면 나올 겁니다. 생생하게 찍혀있는 혈흔의 스키드마크를 말입니다.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차량도 발견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거대한 세력의 배후라면 그렇게 허술하게 짜지 않았을 테니까요. 확인해봐야 확실하겠지만 뺑소니 차량은 버려져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럴 가능성이 크기에 CCTV의 도움이 절실했었는데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네요.”
간단하고 막힘없이 술술 풀리는 홈즈의 추리에 그저 데런 경감과 왓슨은 홀린듯 고개를 계속 끄덕거리며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왓슨이 무언갈 알겠다는 눈치로 말했다.
"자네의 추리는 언제나 들어도 뛰어나는군! 근데 홈즈, 그럼 결국엔 다시 실마리가 끊긴거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아닌가?"
“오, 왓슨. 맞아... 아주 정확히 핵심을 집었어. 그렇기에 나는 함정을 파놓을 생각이야. 왓슨,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잖아. 『모든 사건의 범인은 반드시 다시 현장에 돌아온다.』 그래, 나는 이것에 희망을 걸어 범인을 잡을 그물을 만들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우린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그저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야 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군. 쉽게 말하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야.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왓슨.”
그렇게 어리둥절한 왓슨의 손을 잡고 홈즈가 베이커 거리를 떠나 병원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지금까지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던 데런 경감이 화들짝 놀라며 홈즈의 왼팔을 붙잡고 물었다.
“아니, 잠깐! 홈즈 군. 이대로 가면 어떡하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범인이 다시 올 거라고 확신하지?”
그의 질문에 홈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경감의 엇나간 포인트를 잡아주었다.
“아니요 아닙니다. 경감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저와 왓슨 단 두 명일 뿐입니다. 경감님과 경찰 여러분은 이제부터 매우 바쁘게 움직이셔야 합니다. 하하, 왜긴요. 왜냐하면 경찰 여러분들은 [민중의 지팡이]이시지 않습니까? 경감님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시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제가 너무 혼자만 앞서갔군요. 죄송합니다,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대로만 해주신다면 저절로 범인은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바로….”
“자네... 미쳤나?! 혹시 우릴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는건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유감이네. 내 아무리 자네의 도움을 받았어도 ‘그 플랜’은 하지 못하네. 이건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야…. 후우... 홈즈 군. 자네 장담할 수 있겠나? ……흠. 자네가 그렇게 확신에 차가 있다면 일단은 믿어보겠네. 하지만, 단 일주일일세. 그 이상은 아무리 자네에게 도움을 받았다 해도 도와주기 힘들어.”
홈즈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하고 왓슨과 함께 병원으로 돌아갔다. 경감은 홈즈의 플랜을 부하 직원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그러자 부하 직원들도 똑같이 아니 경감보다 훨씬 반발을 일으켰지만, 경감은 모든 책임은 본인이 지겠다고 하면서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러자 닉 경위를 포함해 경사들은 한숨을 쉬면서 어쩔 수 없이 플랜을 이행하기로 했다. 부하 직원들이 플랜 준비를 위해 먼저 떠나고 아무도 없는 텅 빈 베이커 거리에 데런 경감은 홀로 서 있으면서 조금 전 홈즈에 대해 깊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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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런 경감님.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홈즈가 홈즈로서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홈즈’이기 때문입니다.』”
에런 홈즈는 허리를 매우 꼿꼿이 펴고 고개를 든 후 그의 밝고 옅은 회색의 두눈으로 확신을 빛내면서 강인하고도 굳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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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몸에 소름이 쫙 왔어. 그렇게 강인한 젊은 친구가 요즘 있을까 싶군. 나조차도 그런 확신을 내보내기 힘든데 말이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플랜’을 단숨에 그 자리에서 짤 수 있었지? 오직 홈즈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건가? 그의 그림자 정도는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예 그에게 닿을 수조차 없나 보군.”
씁쓸하게 생각을 마무리한 그는 문뜩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달이 구름 뒤에 묻혀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구름 뒤에 숨어있는 달의 모습이 마치 이번 뺑소니 사고의 범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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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나도 움직일 준비를 해야겠어. 흐음. 3년 만인가? 아니면 4년 만인가? 아 그래. 5년쯤 되었겠군. 내가 직접 움직이는 건. 오랜만에 움직이겠어. 차를 준비하라고 일러라. 지금 당장 내 동생, 에런을 봐야겠구나.”
에런의 형 셰린포드 홈즈가 위스키를 홀짝 마시며 말했다.